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6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63화(263/373)
소르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질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완벽한 하나의 세계.
분명 이곳은 자신이 살던 대륙이었으며 아니기도 했다.
마치 복제가 된 듯 그 풍기는 느낌은 비슷하였으나 무언가 거대한 멸망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보는 것 같았다.
물 대신 피가 흐르다 그것마저 말라붙은 강과 살아 있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대지.
가끔 짐승의 발톱 같은 바람이 불 때면 바닥에서 재인지 먼지인지 모를 것들이 흩날리고 얕은 고랑이 파였다.
“이걸… 어찌 네가?”
분명한 사실은 이 공간을 만든 힘은 일반적인 마법 같은 게 아니라는 것.
소르페는 이 힘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건 분명… 가낙스의 트레잇.’
트레잇이라는 것은 재능. 재능이라 함은 타고나거나 혹은 개척하는 것.
하지만 누군가는 예지몽을 꾸고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영혼을 보는 것처럼.
타인과는 다른 힘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들이 있는 법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소르페였다.
대륙의 모든 트레잇 컬렉터를 한자리에 모아도 소르페 자신과 맞먹는 이는 드물 것이라 자신할 만큼.
그러니 소르페는 확신했다.
이런 트레잇을 동시대에 두 명이 타고날 수는 없는 법.
가낙스를 자신의 컬렉션에 넣기 위해 만난 적 있는 소르페는 확신했다.
이것은 케인의 트레잇이 아니라 가낙스의 트레잇이라고.
“그의 트레잇을 어떻게 네가?”
강탈, 복제, 모사, 흉내와 같은 트레잇을 타고 태어나 극한으로 수련하여 트레잇의 등급을 SSS급으로 맞췄다고 치자.
그렇다고 모든 트레잇에 그것들을 적용할 수 없는 법이다.
가낙스의 트레잇은 특별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트레잇. 그것으로 가낙스는 조합하고 응용해 트레잇으로 정의되지 않는 기술들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트레잇에도 급이 있다. 신성과 신성력이 다르듯이.
마나라는 트레잇은 마나와 관련된 모든 것에 보정치가 붙는다면 마나 컨트롤이라는 트레잇은 말 그대로 컨트롤에만 보정을 받는다.
한마디로 어지간한 강탈류 트레잇이라 해도 가낙스의 트레잇을 가져올 수는 없는 노릇.
소르페가 짧은 시간에 깊이 생각하여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그가 주었나?”
“그랬지.”
보통 트레잇이 계승되는 경우는 혈통을 따라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건강함이 트레잇으로 붙을 만큼 튼튼한 이라면 그들의 자손 또한 건강할 확률이 높으므로.
하지만 이건.
‘가낙스의 트레잇이 혈계 전승이 아닌 의지대로 누군가에게 계승할 수 있을 만큼 희귀한 트레잇이라고? 그리고 그걸 저 아이에게……?’
소르페가 잠시 침음을 흘렸다.
그 말이 뜻하는 건 하나였다.
케인은 그 트레잇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며 또한 완벽하게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을 지녔다는 것을.
“준비되었다면 언제든 시작하지.”
케인이 거무튀튀한 무광의 흑철 반지, 스카를 검의 모양새로 만들어 쥐었다.
“…그 건방짐이 얼마나 갈지 보자고.”
케인의 외모마저 컬렉션으로 완벽하지만.
흉은 포션과 신관의 치유로 지울 수 있는 법.
신체 어느 부위가 망가진다고 해도 드래곤인 소르페가 마음만 먹으면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소르페의 금색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둥근 모양의 동공이 점차 길쭉하게 찢어지며 몸 주위로 강한 마나의 파동으로 인한 공기의 와류가 흘러넘친다.
본디 드래곤은 탐욕적인 존재.
대륙에서 단일 종족으로 치면 가장 강한, 단순하게 오래 살아남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반신의 경지에 닿는 축복받은 종족이다 보니 그 거만함과 탐욕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다른 이들이 개입할 수 없는 공간에 나를 데려온 것을 후회하게 될 거야. 넌.”
이상하게도 오만함이 몸에 배여 있어 그것이 너무 거슬리던 사내.
아델리안이 그랬던가.
“너를 꺾고 부러뜨려 굴복시켜 줄게.”
소르페의 주위로 수많은 속성의 마법이 허공을 밀어 그 자리에 앉은 것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 * *
‘이건,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감히!
소르페가 찢어진 피막을 감추듯 날개를 접으며 몸을 비틀어 꼬리로 케인을 후려치듯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입을 열어 흰색과 노란색이 섞인 듯한 레이저 브레스를 날리자 일직선에 있던 황폐한 산 중앙에 둥근 구멍이 깔끔하게 열렸다.
‘본체로 현신까지 했건만!’
폴리모프한 인간의 몸으로는 다룰 수 있는 마나가 한정적이라 결국 드래곤의 모습으로 상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르페는 경악에 찬 눈동자로 케인을 바라보았다.
이게 인간이란 말인가. 이것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이다.
단순한 강함으로는 이미 경지를 밟아 버린 존재.
소르페가 입을 열어 일직선으로 레이저 브레스를 쏘아 허공을 덧그리듯 고개를 움직이자 공기가 녹아 뭉그러지듯 사방이 흘러내리는 형상이다.
‘고작 인간 따위에게!’
인간이란 종족은 뭉쳐서 강한 거지 단 하나의 절대자가 나올 수 있는 구조는 분명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이상해, 너무나도 이상해.’
중요한 건 마치 몸이 기억하는 것처럼 케인에게 아주 미묘하게 위축되는 자신이었다.
케인이 검을 들고 숨골 아래를 노릴 때면 자신도 모르게 방어적으로 마법을 날리며 거리를 벌리지 않는가.
이것은 본능이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소르페는 확신했다.
케인이 허공에서 태양을 등질 때 생기는 희미한 그림자.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기도 전에 스치는 단편적인 감각들.
그것은 깨달음과도 같았다.
레이첼을 만나 티타임을 가지며 잠시 맛봤던, 이유 없이 솟은 공포심과도 그것은 닮아 있다.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자신이 케인을 꿇리는 것이 아니라.
케인이 소르페 자신을 사냥할 것 같은 불안감.
‘소르페. 잘 생각해 봐. 잘 느껴 봐. 본능적으로 우릴 두렵게 하는 존재가 있을 거 같아?’
‘없지. 그런 존재가 있을 리가.’
‘그렇지? 그런데 잘 생각해 봐. 누군가 너를 죽이고 네 심장을 갈라 드래곤 하트를 꺼낸 적 없는지.’
마치 환청처럼 레이첼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던 그 순간.
잠시 마나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레이저 브레스를 멈춘 그때 케인이 박차 올라 스카를 역수로 들고 소르페를 내리찍을 듯 떨어져 내렸다.
―자, 잠깐!
멈추거라, 인간의 왕이여.
본능적으로 소르페가 날개를 꺾어 자신의 몸을 감싸며 하는 말에 케인이 멈칫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소르페가 연신 숨을 몰아쉬며 사람의 키만 한 가로 동공의 눈을 끔벅거렸다.
* * *
곳곳에 놓인 속성 비보들이 마치 초처럼 타들어가 허공에 아주 느리게 녹아드는 곳.
마나로 이루어진 검은 휘장이 겹겹이 둘러쳐진 곳이라 쉽게 휘장 너머의 사람은 바라볼 수 없는 곳이었다.
살아 있는 신은 허공에 다리를 꼬아 앉아선 옆으로 기대 타오르는 속성의 마나를, 그 안에 담긴 이 대륙의 정수를 흡수하며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이상하군…….”
참 이상해.
지금 이 대륙은 살아 있는 신. 그 자신이 공들여 만든 연극 무대나 다름없는 공간.
어느 경지를 넘어서 그 영혼에 자격이 생긴 이들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살아 있는 것들은 전부 살아 있는 신이 권능으로 유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풀 한 포기, 나비 한 마리. 저 깊은 오지에서 밭을 매는 사람 하나까지도.
대륙에 발 딛고 선 이부터 바닷속의 몬스터까지.
살아 있는 신이 조종하거나 깃들여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하나 그 미물의 수가 엄청나기 때문에.
살아 있는 신은 언제나 성신교를 세우면 팀을 꾸려 세상에 내보내곤 했다.
인신공양과 더불어 영혼을 지우는 것으로 부담을 줄여 주거나.
혹은 전염병 등으로 한 번에 많이 죽여 이 대륙을 유지하는 힘을 조금 덜어 주거나.
“분명 전자는 잘 되어 가는 상황인데. 이번의 돌발적인 사건은 이것이려나.”
분명 체감하기에 이맘때면 슬슬 수인족과 인간족의 경계에 해당되는 강부터 해서 꽤 많이도 고통 받다 죽어 나가는 것이 늘상 있는 순서인데.
이번에는 영 세상을 유지하는 힘이 덜어지는 것이 느린 것만 같았다.
물론 너무나 많은 시간을 다시 시작하고 또 하고 또 해 본 터라.
어지간한 변수는 흥미롭다 여기게 된 살아 있는 신이기에 다만 기지개만 켜며 허공에서 몸을 흔들었다.
“마음 같아선 단번에 생명을 꺼트리고 싶지만.”
자연스럽지 않다면 케인은 너무나 쉽게 의심한다.
아무 이유 없이 수십만 명의 사람이 사라지는 것과.
전쟁과 전염병, 몬스터 웨이브 등과 그것으로 인한 식량 부족 등으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
이렇게까지 공들여서 하는 이유는 오롯하게 케인의 영혼을 망가뜨리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 격의 상실. 무너짐을 위해서지 세계의 이상함을 느껴 각성하면 피곤해지는 것이다.
신이 만든 새장이나 다름없는 세계를 깨닫고 부수는 것으로 격이 쌓일 테니.
케인의 격을 망가뜨리기 위한 루프가 되레 격을 올려주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법.
“이래서 아이러니하지.”
살아 있는 신의 격이 너무나 높기에, 그 행위를 간파하는 것마저 이제는 업적이 되어 버린 지금이라.
조금은 귀찮고, 지겹고, 늘어지는 일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세상 전부를 움직여 케인을 깎아내리는 것이 낫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
“곧 축제였던가…….”
정수가 타오르는 방 안에 있어도, 소리를 전부 막아 주는 마나장막을 둘렀다 할지라도.
간혹 심심하면 밖의 소리를 듣곤 했다.
뻔한 내용, 수만 번, 그 이상도 들었던 내용이라도.
이번엔 다를까 싶어서.
그렇게 들었던 밖의 대화 중 하나가 테이트리아 수도에서 열리는 축제였다.
“세리아 그 아이가 성신교와 제대로 손잡는 시점이 이맘때였던가.”
아니면 조금 후?
시간은 몇 년 차이가 날지라도 결국 세리아 황녀는 성신교와 손을 잡고 원하는 트레잇을 살아 있는 신, 자신에게서 받아가겠지.
영혼에 심지가 생기듯 격이 쌓인 인물들은 아무리 살아 있는 신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무언가를 비틀 수 없지만.
세리아는 언제나 그랬듯 욕심은 존재하되 업적을 쌓지 않고 그 자리에 안주하는 인물일 테니까.
그리고 성신교가 몰래 중독시켜 세리아가 집권하는 그날 국교가 바뀔 것이다.
“이 흐름도 제법 잘 짜두긴 했어. 내가.”
살아 있는 신이 자기 스스로를 칭찬하며 가볍게 키득거렸다.
이 세상에서 흘러가는 아주 거대한 사건, 그 대부분은 살아 있는 신이 그리 흘러가게끔 만들어 심은 것이기에.
“축제 전에 오랜만에… 돌아가 볼까.”
살아 있는 신이 허공에서 몸을 바로 앉아 가볍게 손짓했다.
소리를 막는 어두운 휘장이 더욱 늘어나 방 안을 가득 채우며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모든 문이 잠겼다.
움직이기 편하게 몸에 감긴 옷은 단단하고 질겨져 양 손과 발목에 감기더니 이내 사방으로 뻗어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몸을 결박했다.
“마음 같아선 깊게 재우고 싶지만.”
이 몸은 제법 고집불통이니까.
살아 있는 신이 자신을 결박한 그대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자 이내 얼굴에 증오가 서리며 입에서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테이트리아 제국의 수도의 성.
그 중심의 가장 은밀한 곳에서.
누군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황금색 머리칼에 검은색 눈동자.
“아아… 이 몸이 되레 낯선데.”
이제 고작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거대한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앉아 길고 긴 황금색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