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6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64화(264/373)
황제가 움직였다.
아주 오랜 시간 그 누구도 곁에 두지 않은 이.
그 자신이 너무나도 강해 감히 누가 나를 보호하냐며 그를 지키는 호위 기사도, 의사나 마법사도, 하다못해 신관도 없이.
음식마저도 들이지 말라 한 지 몇 년이었나.
‘하필 지금…….’
세리아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몰라 머리카락은 원래도 물결치는 금발이었으나 좀 더 손을 대어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늘어뜨린 데다 목까지 올라오는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었으니 목 뒤의 그것은 아직 들키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로 바닥을 딛을 때마다 울리는 발아래의 진동이 마치 심장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이 붉은 카펫이 마치 세리아 자신의 심장이라도 된 듯 밟으며 갈수록 가슴이 아프다.
‘들키면… 아니야. 그래서 뭐? 어차피 폐하는 우리들에게 관심 없어.’
관심이 있었다면 세리아 자신이 봉인이라는 트레잇으로 형제자매들에게 장난질을 칠 때 이미 제재가 들어왔을 것이다.
이 제국의 황제는 그런 이였다. 지배하되 존재하지는 않는.
분명 실재하나 실체가 없는 이.
보통은 누군가 왔다면 누가 왔는지 널리 알리고 문을 열 이가 서 있어야 하나 황제의 개인 공간은 그 무엇도 없었다.
오로지 거대하고 위압감 넘치는 긴 복도와 붉은 카펫.
그리고 그 앞의, 보통 사람은 하나를 밀기도 힘들 만큼 무겁고 두꺼운 석문.
그것이 세리아가 다가가자 어디엔가 끌리거나 비벼지는 소리도 없이 스륵 열렸다.
벌어진 문틈으로 분홍색과 보라색이 섞인 희뿌연 향연이 마치 높은 산의 발아래 운해처럼 넘실거리며 밀려나왔다.
“하늘 같…….”
“됐다.”
길고 긴, 황제에게 드릴 미사여구가 붙은 인사를 딱 자르는 목소리.
‘언제나 소름 끼쳐.’
못 해도 수십 년을 황제의 제위에 앉아 지배한 이의 목소리가 고작 20대에 불과하다는 것.
물론 세리아도 잘 알고 있었다.
강하디강할수록. 마나나 혹은 오러에 통달할수록 육신은 젊어지고 노화는 느려지는 법.
물론 그것에 한계가 존재한다고는 하나 과연 저 황제에게도 한계가 있을까.
“5년 만에… 뵙니다.”
“그래? 5년 만이었던가.”
세리아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뒤 그대로 바닥만을 바라보았다.
그 누구가 감히 나의 위에 있겠냐는 듯 굴어도 그것은 황제가 깨어나기 전.
인간의 제국, 그중에서도 인간들의 도시.
거기에 순혈에 가까운 핏줄만이 모여 있다는 테이트리아 황실이다.
그런데 암암리에 인간이 아니냔 소문이 돌 정도로 강대한 황제였다.
‘적어도… 저 머릿속에 든 건 사람이라 보기 힘들지…….’
어린 시절 자신과 같은 배에서 나온 동생이 사고로 갈기갈기 찢겨 죽었을 때 무어라 했더라. 저 황제가.
‘이번에는 피가 여기까지 튀었군.’
찻잔을 엎질러 흐른 찻물이 옷을 적셨을 때도 그보다 더 감흥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아이가 많다고 해도 자신의 핏줄 아닌가. 세리아 자신이야 비록 같은 배를 타고난 동생을 포함하여 다른 형제자매들이 전부 라이벌이니 정을 주지 않는다고 하나.
‘치우거라.’
여상스러운 손짓. 세리아의 어머니였던 이가 어찌 그럴 수 있냐며 매달려 울 때 어찌 말했던가.
‘아이는 또 볼 수 있으니 지금 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아.’
저잣거리 천민들이나 들을 법한 가치 평가 아니었나.
저 황제에게 자식이란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당장 세리아 자신이 불의의 사고로 죽어도 상관없겠지.
“고개를 들어도 좋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나 황제가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하는 말에 세리아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인사하기 위해 조금 비스듬히 기운 자세를 유지하려고 온통 힘을 주고 있었던 터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났으나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세리아는 옅게 웃었다.
“어인 일로 부르셨습니까.”
“글쎄…….”
긴 금색의 머리칼. 세리아보다 좀 더 짙은 색의 금발은 곧게 늘어져 침상의 전부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마 자신의 키보다 더 길지도 모르는 일.
“아비가 자식을 보자는 것이 이유가 필요한 일이던가.”
검은색의 눈동자. 그것은 탁하다 못해 심연과도 같았다.
빛마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눈동자가 세리아를 한번 훑는다.
문득 세리아의 목 쪽에 잠시 시선이 멎었다 흘러간 것은.
‘착각이겠지.’
무심코 손을 올려 목 뒤를 감싸쥐고 싶은 감각을 억누르며 세리아가 화사하게 웃었다.
“저 또한 그동안 뵙고 싶었습니다. 폐하.”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꽤 많이 컸구나.”
무기질스러운 눈으로 응시하며 하는 말에 세리아가 침을 삼키며 갈라질 뻔한 목소리를 억누른 뒤 조심스레 웃었다.
자주 불러 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폐하와 같이 저녁도 먹고 싶고, 차도 마시고 싶고, 후원도 걷고 싶어요.
마치 성서에 그려진 천사 같은 얼굴로 세리아가 조금 애원하듯 말하자 황제가 살짝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그것을 원하느냐.”
“네… 네. 그럼요.”
마치 정말 사실이라는 듯 양손을 모아 기도하듯 들고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황제가 침소에 기대자 머리칼이 마치 물처럼 흘러내리듯 흔들렸다.
“다른 아이들의 알현이 끝나면 고려해 보지.”
황제의 말에 세리아가 파르르 웃었다.
“이번엔 언제까지 폐하를 뵐 수 있나요?”
“축제의 날까지.”
세리아가 기도하듯 맞잡은 손의 안쪽을 자신의 손톱이 꺾일 만큼 꾹 눌렀다.
* * *
당근과 양파, 양배추에 감자와 같은 기본적인 채소부터 옥수수와 양념된 콩에 덩어리진 소고기와 훈제 및 염장되어 독특한 풍미가 있는 돼지고기.
거기에 샐러리나 향이 나는 허브류도 조금 넣고 붉은 파프리카 가루와 전분물을 섞어 농도와 색을 맞춘 모둠 스튜.
‘…비주얼이 조금 익숙한데?’
물론 특유의 향이나 그런 건 다른데 눈으로 보는 건 뭔가 부대찌개랑 좀… 비슷.
‘라면사리 없나.’
“빵은 종류별로 드릴 테니 먹어 보고 입맛에 맞는 걸 더 가져가시면 됩니다.”
겉은 단단하고 속은 쫄깃한 빵과 겉도 속도 부드러운 빵. 그리고 곡물을 거칠게 갈아 퍽퍽하면서 살짝 산미가 도는 빵이 한입 크기로 잘려 한 조각씩 개인 접시에 올려진다.
그것을 버터나 혹은 시큼하게 졸인 와인과 올리브유, 아니면 방금 한 접시 크게 받은 스튜에 찍어 먹으면 되겠지.
메인을 두 가지로 정했는지 스튜 말고도 스튜가 갖은 양념을 한 덕에 맛의 조화를 위해서인지 소금만 뿌려 화덕에 구운 큼지막한 닭다리가 하나씩 접시에 올라온다.
그 위에 허브와 소금을 같이 갈아 강한 불에 한번 볶은 것을 제로가 살살 뿌려 준다.
거기에 메인인 스튜에도 야채가 들어가는 데다 육류는 스튜의 소고기와 돼지고기, 거기에 구운 닭고기까지 얹어서인지.
샐러드는 상대적으로 잎채소만 가득 넣어 계란도 없이 올리브와 토마토를 썰어 넣고 레몬즙과 소금, 올리브유로 드레싱을 한 가벼운 것으로 놓여진다.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먹음직스럽던지, 케인에게 된통 깨진 듯 넋이 나가 이곳으로 온 소르페마저도 지금 눈에 이채가 돌았다.
‘정말 저녁 전에 끝내고 올 줄은 몰랐는데.’
제로는 되레 당연히 그 전에 올 거라 여겼는지 만찬 느낌으로 꾸린 모양.
마치 회식에 참석한 사장 같은 기분이 든다.
원래 혼자 앉는 상석이지만 뭔가 아직 어린 레비를 위해 자리를 배치한 듯 나와 레비를 나란히 붙인 테이블에서 눈을 들었다.
레비를 제외한 나머지는 파티에 합류한 순서대로 앉은 듯 오른쪽의 가장 가까운 자리의 루나와 왼쪽의 가장 가까운 자리의 케인부터.
제로와 리프. 그리고 레이첼과 파이얀에 체이서와 더불어 소르페까지.
당장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먼저 빵을 들었다.
“소르페 앞으로 잘 부탁해.”
거기 옆이랑 앞에 있는 두 사람과 한동안 볼 테니 인사라도 하라며 말하고는 빵을 입에 넣었다.
스튜는 아쉽게도 매콤하거나 고추장 맛 같은 건 나지 않아 부대찌개와는 달랐지만 진한 육수와 더불어 씹히는 모든 것이 풍미가 굉장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소고기가 질기지도 그렇다고 그 모양이 많이 뭉개지지도 않았으며, 스푼을 깊게 넣어 한술 뜨면 딸려오는 옥수수와 콩마저 맛있다.
닭다리는 그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뼈가 잘 발리도록 칼집은 넣어 놓고 맨 끝만 칼집 없이 굽는 방식으로 한 듯 손에 들지 않고 썰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정형이 잘 되어 있었다.
기본적인 염지를 위해 뿌린 소금 외엔 혹 겉이 고르지 않게 익고 탈까 다른 양념 없이 화덕에 구웠는데도 닭 잡내 하나 나지 않는다.
빵은 하나만 먹기 아쉬워서 계속 종류별로 받아 버터도 발라 먹고 스튜에 푹 담가서도 먹고 오일에도 찍어 먹고.
왜 사람은 위장에 한계가 있을까. 많이 먹어서 저장했다가 나중에 빼서 쓰면 안 되나?
생각했다가 그게 지방이라는 진실을 알아 버려 조금 심란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와인을 삼켰다.
“어디 다친 데는 없구?”
“없다.”
잔잔하게 낮은 목소리로 소르페와의 전투에서 부상은 없었는지 대화하는 루나와 케인.
[최고야.]“후배님. 맛있게 드세요.”
[너무 맛있어.]칭찬에 쑥스러워하며 웃는 제로와 그런 제로를 더 괴롭히듯 칭찬 메모를 폭격하는 리프.
“아니… 무슨… 뭐?”
“제 옆의 선배님은 성녀입니다.”
“서큐버스가?”
“왜, 서큐버스는 성녀 하면 안 돼? 그리고 어딜 나에게 눈을 그렇게 치켜 떠? 그렇죠? 레이첼 선배님.”
“그럼! 당연하지, 파이얀 후배. 내가 혼쭐을 내줄게. 어어딜 하늘 같은 선배에게! 소르페 제대로 안 해?”
“그렇습니다. 나름 선후배가 확실한 곳입니다. 이곳이. 아시겠습니까. 소프페 후배?”
자신이 한동안 같이 붙어 다녀야 할 일이 뭔지 듣다가 어이가 사라진 소르페와 그런 소르페를 놀리는 레이첼, 파이얀과 체이서.
언제부터 우리 파티가 위아래 엄격한 곳이었는지?
“맛있어? 더 먹을래!”
“아, 내가 줄게. 뭐 줄까?”
잠시 드는 생각은 내 옆에서 짧뚱한 손을 들어 흔들며 즐거워하는 레비 덕에 흐려졌다.
남들보다 앉은키가 작은 덕에 다리를 높게 만든 전용 의자에 앉아서는 야무지게 포크와 스푼을 들고 있는 게.
난 냅킨으로 레비의 입가에 묻은 스튜를 닦아 주며 닭고기와 스튜를 추가했다.
소르페의 합류 덕에 내가 사용자의 눈을 써서 생길 부유감의 하락이 좀 줄어들겠지.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하나씩 하나씩 당장 맞닥뜨린 일을 해치우며 내 할 일 하다 보면 살아 있는 신에게 닿겠지.
그리고 케인도 강해지다 보면, 신의 권능을.
루프 자체를 망가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살아 있는 신 자체를 압살하지 않아도 좋다. 약간의 비틀림만 만들 수 있어도. 하다못해 케인만 루프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살아 있는 신의 목표는 케인이니까.’
어떤 식으로건 루프가 끝날 확률이 높았다. 그럼 사실상 인질로 잡힌 것이나 다름없는 내 눈앞의 모든 이들도.
제대로 된 엔딩 후 정말 끝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인정 못 해! 내가 진 건 케인뿐이라고!”
“난?”
“레이첼 너까진 인정하지만 나머진 인정 못 해.”
나에게 용언으로 맹세까지 했으니 일은 잘하겠지만 서열 문제는 다르다는 듯 소르페가 반란을 시도했다.
“그럼 나중에 밥 먹고 게임으로 겨룰까요? 제가 가장 늦게 합류했으니 저부터 이기시면 차례로 대결 가능하실 거라 생각하는데.”
설마 드래곤이나 되셔서 무력만 앞세우는 그런 무식한 방법으로 하자는 건 아니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며 체이서가 뱀처럼 웃는다.
‘체이서 사탕병이 좀 더 차겠네.’
나는 스튜를 크게 한 스푼 떠서 입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