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66)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66화(266/373)
제로는 자신의 생각에 아마 그것이 가장 오래된 진실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덧붙였다.
스치듯, 아주 짧은 편린 같은 기억. 그중에서도 그나마 직감상 가장 오래된 것은 그것이란 말에 케인이 입을 열었다.
“무수히 많은 반복이 있었다면 그 어느 것도 진실이 될 수 있겠지.”
“하긴,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케인의 말을 체이서가 받아 이은 뒤 그림자에서 자신의 스태프를 꺼내 그것을 잡고 기대듯 몸을 앞으로 숙여선 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살아 있는 신이 저를 길들이기 위해 보여 준 것들 중에서는 허무함을 깨우치게 만든다는 미명하에 종말에 가까운 내용도 있었는데 말이죠.”
하다가 문득 케인과 제로, 체이서의 눈이 문으로 향했다.
“나만 빼고 무슨 대화를 그렇게 재미나게 해?”
아델리안이 한 손에 와인을, 다른 손에 한입 크기로 자른 치즈와 훈제 햄. 단단한 빵을 가지고 들어오자 제로가 냉큼 일어나 건네받았다.
‘일어난 기척은 느꼈지만 다시 잘 줄 알았는데 말이죠.’
‘보통 지금까지는 그러셨지 말입니다.’
아델리안 몰래 체이서와 제로가 눈빛으로 말했고 케인은 그냥 입을 열었다.
“더 자지 그랬나.”
“좀 많이 먹었는지 목이 말라서. 그런데 너희도 아직 안 자는 거 같고.”
생각해 봐라. 너희 셋이 한 방에 있는데 이게 그냥 넘어갈 일이야? 하듯 아델리안이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이래서 천재들이란, 하며 뭐 하나 쓰는 것도 없이 대화했나 보네 하더니 손으로 테이블을 한번 훑어 자리를 만든 뒤 아공간에서 깃펜과 종이를 꺼냈다.
“별 대화 안 했습니다. 주인?”
“응, 안 믿어.”
차라리 체이서가 루나나 리프, 레이첼이랑 같은 방에서 속닥거리고 있었으면 잡담이었겠지만 케인과 제로랑 속닥거린다?
무조건 꿍꿍이가 있는 거지 하며 아델리안이 오만하게 웃었다.
* * *
누굴 속이려고. 오늘 식사에 소금을 좀 쳐서 먹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목이 말라 깼더니 저 셋이 뭉쳐 있다?
‘무조건 쑥덕쑥덕 한 거지.’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자체에 관심이 없는 케인과 더불어 날 납치한 일로 제로는 은근슬쩍 체이서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 셋이 함께?
나는 와인을 따서 한 잔씩 나눠 따른 다음 입을 열었다.
“무슨 대화했냐?”
케인은 물어도 대답 잘 안 할 놈이고 체이서는 세 치 혀로 은근슬쩍 딴소리나 헛소리할 놈.
그러니 바로 그냥 제로를 보며 묻자 제로가 살짝 굳더니 고민하는 눈으로 케인을 슬쩍 본다.
뭔가 가벼운 대화는 안 했네.
날 빼고 말한 것을 보니 뭔가 심각한 대화였던 모양.
거기에 루나와 리프, 레이첼도 제외했다?
잠깐 스치듯 든 생각에 고갤 기울였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주제면 제로가 있는 게 이상해서.
“그냥 남자들끼리 그렇고 그런 이야기 했죠.”
“마나에 맹세할래?”
“아뇨.”
체이서와 난 웃었다. 어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내가 왜 알면 안 되는 내용인지 힌트라도 줘 봐.”
“그냥.”
케인의 대답은 무시했다. 그렇게 치면 나도 그냥 들을 거야.
“제로 잠시 귀 막아.”
“예.”
내 말에 제로가 귀를 막는 시늉을 한다. 손바닥으로 귀를 누르고 고개도 돌리고.
물론 저런다고 내 말이 안 들리지야 않겠지만 듣지 말라는 의사를 표했으니 알아서 마나장막을 쳤을 테고.
“둘이 그 이야기 했어?”
이곳이 어찌 흘러가는지?
사실상 그 이야기가 아니라면 케인과 체이서가 함께 있을 일이 없을 테니.
연무장이면 모르되 개인 침실에?
어림도 없지.
내 물음에 체이서는 그냥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피실 웃었고 케인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맞다.”
“왜?”
왜 루나나 리프, 레이첼이 아닌 제로를?
가장 오래 함께 있어 신뢰가 쌓였을 루나나 데이터 기반으로 사고방식을 굴리니 그나마 충격을 덜 받을 리프.
혹은 이런 걸 들어서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존재는 드래곤인 레이첼이 아니라 미궁에만 있어서 상식 정도만 요즘 깨우친 제로에게 왜 굳이?
내 눈빛의 의미를 알았는지 체이서가 낮게 웃었다.
“제로 씨도 알고 있더라고요. 이미.”
다는 아니고 어느 정도? 우리와는 중복되지 않게.
어쩌면 우리들 중 가장 많이?
체이서의 말에 나는 양 귀를 누르듯 막은 제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이야?”
“예?”
내 말에 제로가 내 입 모양만 보고는 되묻다가 귀에서 손을 내렸다.
“너도 알고 있었냐고 묻는 중인데.”
내 말에 제로가 잠시 케인과 체이서를 바라보면서 대화의 맥락을 유추하는 듯 몇 번 눈을 깜빡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에 가뮈르 님과 바하디 님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 몸의 빠른 회복을 위해 별빛 샘에 담가짐과 동시에 그들의 피를 조금씩 받았습니다.”
그때 섞인 기억으로 짐작한다고. 이 세상이 반복되고 있음을 안다는 말에 나는 허 하고 소리를 뱉었다.
‘그럼 가뮈르와 바하디 중 누군가가 안단 말인데.’
그러다 문득 난 무언가 생각나 아공간에서 종이를 뒤져 꺼냈다.
[가뮈르 아크펜시온_진실 너머를 비틀어 보는 눈을 가진 자]라고 적은 글 밑에 기록된 그의 트레잇 중 눈에 띄는 건 [이레귤러S].
운명의 신을 모시는 성녀 마리안느를 만났을 때 잠시 생각했었지.
이레귤러라는 트레잇을 가진 데다 칭호 자체도 ‘진실 너머를 비틀어 보는 눈을 가진 자.’라는 가뮈르는 다는 몰라도 무언가 희미하게 아는 것 같다고.
“이걸 나에게 바로 말하지 않은 까닭은?”
나는 케인이 손도 안 댄 브레드 푸딩을 가져와 퍼먹으며 물었다.
루나와 리프나 레이첼에게 바로 말하지 않은 이유는 짐작했다.
하지만 난 왜?
내 물음에 체이서가 입을 열었다.
“저희끼리 정보를 정리하고 취합한 후 알려 드리려고 한 거죠.”
“그렇습니다. 뭔가 뒤죽박죽으로 아는 상태라 그게 나을 거 같아서…….”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금은 탐탁지 않은 대답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까.’
나는 일단 넘어간다는 듯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로는 무엇을 아는데.”
“저는…….”
나는 제로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가볍게 적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기억은 미궁 안 던전에서 갇혀 있던 것. 하지만 종종은 아니었고 가장 오래된 것이라 느낀 기억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들의 전쟁이었다고.
난 가만히 듣다가 물었다.
“악신교단은 인간우월주의 종교라서 결국 인간족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배척하게 되니 결국엔 인간과 나머지 종족들의 전쟁이 될 텐데.”
살아 있는 신이 몇 번을 루프한다 하더라도 악신교단을 세운 후라면 아마 대부분의 끝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게 가장 오래된 기억이라 생각해?”
내 물음에 제로가 대답했다.
“비공정이 떠 있었습니다.”
비공정이라…….
하긴 내가 소설로 읽었을 때 비공정은 이미 망가진 후였다.
바닷빛 진주를 악신교단이 탈취한 후 그 안의 양산형 골렘이 쏟아져 나와 엘프들과 싸웠고 결국은 두 세력 다 멸망했지.
그리고 나중에서야 케인이 그곳을 지나가다 반쯤 묻혀 이끼가 낀 채 작동이 정지되어 있던 리프를 발견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제로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비공정이 온전한 모습으로 활약했다면.
나는 아공간에서 합금판을 꺼냈었다.
개구리 감정인이 감정한 타이탄의 합금판.
‘드래곤을 수십 수백 번 죽인 강철 인형에게서 떨어진 겁니다. 그 이렇게 생겼는데.’
지금 것이 아닌데 예전이라 할 수도 없으며 아주 과거의 것이 아니나 아주 오래된 것이기도 한.
말 그대로 시간이 엉켜 있는 합금판.
“저도 드릴 말씀이 있는데 말이죠.”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 체이서가 입을 연다.
“살아 있는 신이 무한히 보여 준 환상 중엔 말 그대로 우주적 공포를 주기 위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저항할 의지조차 꺾어 버리는 종말.
“그리고 제 생각에 살아 있는 신은 너무나 많은 반복으로 새롭게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에 지치고 피곤해하던 것 같았으니.”
제가 본 것은 살아 있는 신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만든 것이 아닌 이미 있었던 일, 혹은 알고 있던 일의 내용이 아닐까 싶은데.
하는 체이서의 말에 나는 일리가 있다는 듯 끄덕였다.
“말해 봐.”
“대부분 비슷한 시작입니다.”
제 반항 의지를 상실시키기 위해서 언제나 살아 있는 신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네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게 있단 걸 알려 주고 싶어 했거든요.
더불어 나는 못 해도 자신은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내가 내 자아를 내려놓고 살아 있는 신에게 자아를 위탁하고 의탁하며 꼭두각시처럼 굴기를 바라였기에.
“가장 행복한 환상을 먼저 겪게 하죠. 친구나 가족 등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목표를 잡고 이루기 직전.”
그러고 나면 꼭 종말이 찾아오는 겁니다.
“수많은 몬스터의 범람. 언데드의 습격. 혹은 전염병으로 시작된 기근.”
메인 인카운터들.
“혹은 수인족의 역습이나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전 대륙이 물에 잠기기도 하죠. 혹은 모든 드래곤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땅은 불바다가 된 채로 다른 아인족들이 걸어 다니며 인간을 학살하거나.”
레비와 레이첼인가.
“혹은 마족의 군단장들이 진군하는 중이라는 불안감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삼킨 뒤 자신의 것으로 세뇌시킨다는 마왕이라든지.”
결국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이 파괴되거나 자신조차도 죽기 직전에야 풀리던 환상들.
체이서의 말에 나는 그것들을 적다 문득 깃펜을 멈췄다.
루나를 제외한 나머지 파티원들.
제로와 리프. 그리고 레이첼은 물론이고 레비에 파이얀까지.
전부 이 세계의 종말과 관련이 있다.
제로는 제로의 악몽에서 본 것과 더불어 방금 체이서에게 들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삼킨 뒤 자신의 것으로 세뇌시킨다는 마왕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제로도 수많은 루프 중 최소 한 번 정도는 미궁에서 탈출하거나 혹은 그곳에 갇히기 전에 살아 있는 신의 계획을 망가뜨리고 이 세상을 멸망시킬 뻔했다는 소리.
리프 같은 경우에는 비공정이나 타이탄이라는 존재, 그리고 체이서의 말이나 레이첼의 꿈을 토대로 그리자면 드래곤조차 몰아세우던 집단의 일원이고.
레이첼 또한 원래는 드래곤 하트가 하나였을 테니 그때 마법을 자유자재로 썼다고 치면 드래곤로드인 이상 온 대륙을 불바다로 만드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마족의 군단이야 파이얀일 테고 온 대륙을 물로 잠기게 하려면 아마 각성한 레비겠지.
중요한 건 이들 전부가 제로를 제외하면 원래 케인의 파티였다는 것이다.
모두가 한 번씩 세상을 멸망시키던 종말의 근원인데 케인은 언제나 반대였을까.
아니, 애초에 파티원이 왜 그렇게 짜진 걸까.
‘제로의 말대로 종족대전이 가장 처음이라고 치자.’
인간과 인간이 아닌 이들의 전쟁.
원래는 악신교단이 주축으로 벌일 전쟁이지만.
아니라면?
그럼 케인은 뭐지? 그때부터 이미 인간 혐오자였단 건가.
나는 종이에 정리하다 말고 케인을 바라보았다.
“내가 널 경매장에서 사지 않았다고 쳤을 때 수많은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면.”
넌 결국 인간을 싫어하다 못해 전부 죽이고 싶어질까?
내가 케인을 바라보며 묻자 케인이 대답했다.
“아니.”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무리 괴로운 일을 당해도 내가 본 케인이라면 그것으로 인간 전부를 혐오하고 불신한다 해도 무시하거나 혹은 이겨내려고 했으면 했지 아예 인간의 적으로 굴지는 않을 녀석이다.
그러니 내 파티의 아이들이 이유가 된 멸망이 있다면 적어도 케인을 만난 이후는 아닐 터.
“체이서 솔직히 말해 봐. 넌 그런 일 해 본 적 없어? 환상 속에서.”
“저요? 하하, 설마요. 그냥 살아 있는 신만 열심히 보좌해도 가능한데 굳이 제가요?”
수많은 가능성 중에 케인과 만나지 않는 미래의 어디엔 전부 멸망초래자란 사실에 나는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