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6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67화(267/373)
레이스 양산 위로 오러가 덧씌워져 검과 격돌했다.
둥글게 꺾인 손잡이를 손목에 걸어 양산을 한 바퀴 돌리듯 움직이다 손아귀로 잡아서 앞으로 찌르듯 내미는 것에 누군가가 피한다고 몸을 뒤틀었으나 옆구리가 크게 뜯겨 나갔다.
“괴, 물!”
“말이 너무 지나친데. 우리 귀여운 리지가 어딜 봐서 괴물이지?”
진정한 괴물을 보지 못했나 봐?
그것은 밤 같은 머리칼과 달 같은 눈을 하고서 짐승보다 더한 성격으로 몰아세우는데.
청금색 머리와 눈동자를 한, 사내로 보이는 이가 피식피식 웃으며 하는 말에 옆구리를 부여잡은 사내가 으르렁거렸다.
“라줄리! 이 입만 산 계집애 같은 자식이!”
“하하, 그거 나에게 욕이라고 하는 건가? 너무하네, 리지. 저자를 좀 혼내 줘.”
라피스 조직의 라줄리가 상쾌하게 웃자 그 옆에 서 있던 리지라는 소녀가 낮게 한숨을 쉬며 양산을 제대로 쥐고 땅을 박찼다.
아래를 보는 은방울 꽃 모양의 드레스가 잠시 비죽하게 모양이 일그러지듯 하다 반쯤 부서진 담장 위로 뛰어 딛자 한번 넓게 부풀더니 다시 모양이 잡힌다.
드레스와 색을 맞춘 크림색 레이스 양산을 검처럼 휘두르며 사내를 공격하자 사내가 한 손으로는 내장이 삐져나오지 않게 누르고 다른 손으로 검에 오러를 실어 맞상대했다.
오러끼리 부딪쳐 거친 소리와 더불어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이대로는…….’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피가 흘러나온다. 이대로 시간을 오래 끌었다가는 자신이 무조건 패할 게 뻔했으므로, 차라리 한 번의 기회를 노린 후 온 힘을 다해 도망가는 게 맞겠지.
‘저 아이를 크게 상처 입힌다면.’
라줄리는 어렵게 얻은 정보에 분명 무력이 아주 강하다 알려져 있지 않은 데다 가드인 저 소녀를 아낀다고 되어 있으니 아주 잠깐 추격을 피할 수 있을 터.
죽이면 아예 포기하고 쫓아올 수 있으니 상처를 크게 내자.
그리 판단한 사내가 잠시 옆구리에 손을 떼고는 양손으로 검을 잡아 제대로 오러를 집중하여 레몬색의 단발과 녹색의 눈. 무표정한 얼굴을 지닌 소녀에게로 힘껏 내질렀다.
팡―!
“읏?”
그리고 순간 크림색의 레이스 양산이 큰 소리를 내며 펼쳐졌다. 자신의 시야 전부를 가리듯 펼쳐진 양산에 잠시 멈칫한 것도 잠시.
사내가 다시 검을 휘두르려는데 눈앞에서 이미 소녀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 무슨!”
그에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는데 들고 있는 검 위로 페일 블루색의 둥근 앞코를 가진 구두가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양산을 바로 들어 하늘하늘 내려온 소녀가 검을 밟고 서서는 그대로 한 걸음 좁혀 발로 사내의 머리를 돌려차자 그대로 사내의 몸이 억, 하더니 바르르 떨며 쓰러졌다.
“역시 우리 리지.”
오러 사용법을 보니 제법 강해 보이던데 다친 곳은 없어? 하며 다가오는 라줄리, 아니 파이얀을 바라보며 리지가 양산을 둥글게 말아 접은 뒤 미간을 좁혔다.
‘구경만 해?’
수어로 불만을 나타내는 리지를 보며 파이얀이 하하 웃었다.
“좀 봐줘. 그렇다고 내가 매혹을 걸거나 안개화를 했다가 혹여 누군가 멀리서 보고 수도 외각에 마족이 나타났다고 할지도 모르잖아.”
그걸 변명이라고 하냐는 듯 리지가 고개를 한번 내저었다.
‘그 일로 바쁘다더니 오늘은 왜 왔어.’
기절한 사내를 줄로 묶은 뒤 들어 올리던 파이얀에게 리지가 수어로 묻자 사내의 모습으로 변장한 파이얀이 짙게 웃었다.
“그래도 한 번씩 얼굴을 비춰야 기어오르는 녀석들을 밟을 수 있지.”
지금처럼, 하며 으쓱이는 모습에 리지가 끄덕였다.
“대대적인 축제야. 그 말은 수도에 어느 때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 소리지. 사람이 몰리면 정보와 돈이 몰린다는 뜻도 돼.”
거기에 악신교단이 이번에 세리아 황녀에게 붙어 표면적으로나마 세탁해서 괜찮은 종교인 척 굴기 위해 소문을 퍼트리고 여론을 선동할 인물들도 섞을 테니.
“더불어 우리 조직, 수도에서 엄청 커졌어.”
어지간한 힘으로는 그냥 거래나 하는 게 이득이지만 압도적인 힘이 있다면?
원래 있던 조직들은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강해지고 규모가 커진 터라 자연스레 뇌물과 로비를 받은 이들이 얽히고설켜 있지만.
라피스는 신생조직이기에 유착관계가 끈끈하지 않다. 누군가 단기간에 먹어치워 전력손실만 줄이면 뒤탈이 예전 조직들보다는 적은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한번씩 돌며 실력 행사를 해 줘야 한단 말씀이야.”
더불어 스트레스도 풀고.
파이얀이 웃으며 기절한 사내를 흘긋 바라보았다.
“어떤 식으로 망가뜨려야 경고가 되려나.”
한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를 얼마나 해쳐야 다들 두려워할까.
“뽑고 찢고 머릿속은 아이처럼 만들어 버릴까?”
파이얀이 비틀어 웃자 리지가 무표정하게 손을 움직였다.
‘관리자께서 싫어 하실걸.’
“당연한 소릴?”
그러니 몰래 해야지. 하며 파이얀이 사내를 질질 끌며 걸었다.
“보스는 귀족이라서 그런가 은근히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긍정적이란 말이지.”
원래 귀족들이 보는 세상과 평민들이 보는 세상, 그리고 아인족들이 보는 세상은 다른 법이다.
‘먹을 것 하나에 자신의 몸을 팔거나 아이를 넘기는 일은 머리론 알아도 겪어본 적 없어서 모를 테고.’
그나마 인간족 평민은 좀 낫다. 혹은 돈이 좀 있는 아인족이나.
아예 강한 아인족이 아닌 이상 어설프게 강하면 그것은 아인족에게 독이나 다름없다.
자신보다 약한 이들의 괄시를 견디는 건 생각보다 힘들거든.
주먹질 한 방으로 머리를 터트릴 수 있는데 눈앞의 조롱을 견뎌야 한다면 누구나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냥 머리통을 부수고 도망갈까 하고.
‘그런 점에서 미궁도시가 좋았어.’
보이는 치안은 나쁘지 않았지만 미궁 안은 무법지대라 설사 귀족들이라 하더라도 아주 조금은 눈치를 보니까.
‘그러니 가능한 일도 있는 거야.’
리지의 수어에 파이얀이 끄덕였다.
“난 보스가 수인족 상단을 만든 것에 까무러쳤다니까?”
그나마 다른 곳의 귀족은 낫지만 이곳 테이트리아의 수도에서는 노예로 아인족을 부리는 것도 격이 떨어진다 여겼다.
아주 취향이 별난 이만 대놓고 아인족을 부렸지. 혹은 몰래 숨겨 놓고 즐기는 악취미적 도구로 사용하거나.
그런데 아무리 본가가 수도에 있는 귀족은 아니라고 하나 대공가가 아닌가, 크루거 가문은.
“재미있는 분이야.”
아무리 만신전은 많은 신들의 집합이라 그 위엄이 절대적은 아니라고 하나 보통 신이 존재하며 신을 모독하면 말 그대로 신벌을 받는 게 가능한 세상에서.
가짜 성녀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나.
“수호교는 어때? 요즘 체이서까지 합류한 덕에 세뇌 교육은 잘 되어 가는데.”
‘귀족 계층은 아직 반응이 크지 않으나 평민과 아인족들 사이에선 교리가 와닿는지 제법 빠른 속도로 퍼지는 중이야.’
리지의 보고에 파이얀이 끄덕이고는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사내를 끌고 들어가 마나장막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좋아. 그리고 다른 소식은?”
이 자식 잡으러 바로 온 바람에 보고서를 덜 봤거든 하자 리지가 입을 열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황제가 거동을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황제? 몇 년간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문만 무성하던 그 황제?”
파이얀의 물음에 리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황제? 황제가 이번 축제 때 모습을 보인대?”
<그거까진 모르겠으나 황궁에서 살지 않던 황족들이 순서대로 입궁한다고도 하고 그중 하나가 말을 흘렸다던데요. 보스.>
황제는 분명 세리아가 나중에 황위 찬탈 내전을 일으킬 때도 제대로 나온 적이 없었다.
원작에서는 워낙 파티와 동떨어진 사건이었고 게임에서도 특별한 모습은 보여 주지 않았지.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내전이 일어나며 그 덕에 테이트리아의 전력이 제법 소진되고 세리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다음 악신교단을 국교로 밀어붙인다는 것 정도.
그리고 황제의 힘 덕에 일단 국교가 된 악신교단이 만신전을 상대로 ‘너 이단’ 해서 대대적으로 종교전쟁이 벌어진다.
동시에 수인족과도 전쟁하고 몬스터와도 전쟁하고. 하여간 대륙 말아먹는 짓은 걔들이 다하지.
하지만 뭔가 찝찝하다. 황제라는 존재가.
‘분명 원작이나 게임에서는 제대로 나온 적 없어 몰랐지만.’
아델리안의 기억이 합쳐져서 확실히 아는 건데. 황제는 엄청나게 강한 존재다.
뭔가 그게 너무 상식으로 깔려 있는 상태랄까. 정확한 트레잇까진 모르겠으나 대대로 황실 혈통은 강력한 트레잇을 타고 태어나는데 그중 최고가 지금 황제라는 게 상식이었다.
뭔지는 모르는데 일단 그 양반 대단해.
하는 인식.
더불어 그래서 세리아를 비롯해 트레잇이 발표되지 않은 이번 대의 황위 계승자들이 더 암암리에 무시당하거나 혹은 동정받는 이유 중 하나였고.
‘그런데 그런 자가 세리아의 황위 찬탈을 그냥 두고 본다고?’
나는 턱가를 매만지며 고민했다.
“일단 황제에 대해 다른 정보 더 들어오면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바로 넘겨 줘.”
<넵. 알겠습니다, 보스.>
그럼 전 신도들 꿈속으로 출장 좀 다녀올게요. 하고 세이렌을 끊는 파이얀에게 수고하라 한 뒤 나는 흐음 하고 숨을 흘렸다.
“이번에 세리아를 만나면… 알아볼 기회가 있으려나?”
황궁에 들어가는 거니, 혹?
어찌 화장실 가는 척 나와서 운명적 만남처럼 얼굴이라도 볼 기회를 만들면 좋을 거 같은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노크했다.
“무슨 일이야.”
내 말에 제로가 들어와 편지를 하나 건넸다.
“뭐, 세리아가 티타임 시간 변경이라도 하자는 편지인가…….”
편지를 봉인한 실링 왁스의 문장을 보아하니 황족 중 하나네.
가문의 이름으로 보내는 공적인 편지는 가문 문장만 찍어 보내지만 개인이 보내는 편지는 가문을 나타내는 기본 문양에 보통 개인 문양을 덧대 쓰니까.
이런 사적인 편지는 봉인으로 쓰는 실링 왁스만 봐도 얼추 티가 난다.
나는 아공간에서 페이퍼 나이프를 꺼내 실링 왁스를 깔끔하게 베어 뗀 뒤 편지를 열었다.
“흐음, 엘윈 폰 테이트리아?”
7황자잖아.
꽤 독특한 행보를 보이는 존재였다. 분명 그도 세리아 덕에 트레잇이 봉인되어 있을 터.
그래서인지 애초에 자신은 황위 계승에 관심 없으니 빠지겠다고. 대신 유력한 이가 나온다면 손을 잡을 것이라 신에게 맹세한 이였다.
그래서 대놓고 군사를 훈련시키기도 하고 상업에도 뛰어들어 부를 쌓기도 했지.
처음에 세리아를 견제할 후보 중 하나로 올렸다가 황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데다 아예 신에 맹세까지 해 버린 황족이기에 뇌리에서 지웠는데.
‘왜?’
나는 천천히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자는 왜 연락한 걸까요. 아델리안 님보고 오라 합니까?”
제로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직접 오겠다는데?”
보통 황족은 세리아처럼 자존심이 강하고 거만한 것이 당연할 만큼 대우를 받는다. 말 그대로 손짓 하나로 사람을 부리는 존재들.
고작해야 준남작, 남작급만 되어도 소위 말하는 갑질이 몸에 배인 이들이 많은데.
다른 이도 아닌 황족이면 더하지.
내가 아무리 대공가의 혈통이라고는 하나 분명 아랫사람이긴 하니까.
‘그런데… 직접 온다고?’
아니, 우리 파티에서 스쳐 지나간 적도 없는데, 왜?
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세이렌을 쥐고 다시 파이얀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