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71)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71화(271/373)
인간족은 모든 아인족의 근원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인간족의 영혼이야말로 가장 오롯한 형태.
그렇지만 그 영혼의 일부가 망가지거나 유실되어 부족해진 부분을 짐승의 영혼으로 채워 넣은 것이 아인족이라는 게 대륙에서 암암리에 퍼진 소문, 상식이었다.
개개인이 인간보다 강한 엘프나 드래곤 같은 종족들마저도 그 강함은 인정할지언정 인간 우월주의에 빠진 이들은 그런 종족들도 결국엔 인간의 원류에서 파생되었다 주장했을 정도.
그것은 좀 배웠다는 귀족 계층뿐 아니라 신관들, 하다못해 길거리 잡배들까지도 뇌리에 뿌리박힌 인식이다 보니 내세울 게 종족밖에 없는 이들도 많았던지라.
빈민에 가까운 인간족과 그래도 자수성가한 아인족의 사이는 굉장히 좋지 못했다.
당장 오늘 먹을 양식이 없어도 오물 구덩이는 청소하기 싫은 이들은 곧잘 그리 말했다.
세상의 온갖 더럽고 힘든 일은 당연히 아인족이 해야 하지 않냐고.
애초에 영혼 자체가 망가진 것들은 그런 것이나 하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지금 자신이 꽤 괜찮은 일자리나 하다못해 농토 한 자락 없는 게 다 아인족들 때문이라고.
그리고 아인족 또한 불만은 많았다. 종족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아인족의 신체능력이 더 좋은 데다 아예 챠비드에서만 사는 아인족이 아닌 인간들과 섞여 사는 아인족은 대체로 생존을 위해 부지런했으니까.
그러니 제대로 일을 하지도 않고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며 놀기만 하는 일부 인간족들이 아니꼬울 수밖에.
아인족인 자신이 한 노력의 반만 했어도 출발 지점이 다른 인간족이라면 조금 더 많은 것을 손에 쥘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뿌리 깊은 서로에 대한 적대.
물론 아인족이 많이 섞인 도시에서는 대놓고 보이는 차별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가진 인식들이 그러했다.
특히 아인족이 큰돈을 만지는 일이나 혹은 격식을 갖춘 일을 하면 차별은 더 심했다.
보통은 은연중에 아인족을 육체 노동을 전문으로 부리곤 했으니까.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짐승이 가져온 물건은 의심스럽다며 면박만 주더니.’
챠비드에서도 손꼽히는 으뜸 부족의 부족장이자 아인족으로만 이루어진 상단을 이끌던 훌라가 새로운 거래처를 뚫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찰나.
늘 보는 앞에서 더러운 짐승 취급을 하던 마을의 영주가 오늘따라 너무 온화한 얼굴로 환대하는 것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일단 어설프게 웃었다.
“그래, 직물과 고급 양탄자?”
“…아무래도 챠비드 하면 역시 가축이니까 말입니다.”
흔히 제국에서 기르는 품종의 가축이 아닌 좀 더 야생성이 살아 있는 가축인 데다 희소성 있는 털을 지닌 것들이니.
그것으로 만든 직물과 양탄자는 일반적으로 다른 상단에서 유통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설명하며 훌라가 흘긋 가로 동공을 움직여 영주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눈이나 다리 관절에 상단원들의 뿔이나 손톱, 꼬리 등을 보며 혐오감을 감추지 않던 이가 자신을 코앞에 두고도 미간을 찌푸리지 않다니.
‘…이거 되레 더 신경 쓰이는걸.’
혹시 따로 원하는 게 있어 겉보기에 일시적으로나마 ‘사람’ 취급 해 주는 건가.
훌라가 생각하며 일단 샘플로 가져온 작은 양탄자와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 정도 크기의 샘플 직물들을 챠르르 테이블 위에 펼쳤다.
“이건 털에 약초 처리를 해서 광택이 방향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고 이건 짧고 빡빡하게 자란 털의 특징을 살려 가공한지라 촉감이…….”
“음, 호오. 이거 좀 괜찮군.”
훌라는 샘플로 가져온 직물을 한 장씩 넘겨가며 설명하다가 결국 손길을 멈칫했다.
‘분명 저번엔…….’
어디서 이런 쓰레기를 들이미냐고 했던가.
품질엔 자신 있으니 한번 보기라도 해 달라며 들이밀었지만 오물이 묻은 것처럼 손등으로 후려치더니.
그래서 다신 오나 봐라 하며 떠났지만 하필 챠비드의 상단이 자주 오가는 길목에 놓인 곳이라 잠자리라도 제대로 챙기고 싶어 들른 찰나에 다시 부르는 게 아닌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물건 던지며 화풀이라도 할까 싶어 던지면 망가지는 동물의 뿔과 뼈로 만든 아티팩트나 장식품, 장신구는 빼고 그나마 파손의 위험에서 안전한 직물류만 가지고 왔는데.
‘분위기 왜 이리 좋아?’
훌라는 다시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드세요?”
“들다마다. 그럼 1차적으로 이거랑 이거. 이렇게 해서 각각 2천 골드씩 어떤가.”
훌라는 직물 몇 개를 고르는 손을 바라보다가 소매에 수놓인 녹색의 원형 덩굴 안에 노란 꽃과 원이 그려진 문양을 흘긋했다.
‘분명 이 가문의 문장은 아닌데.’
그렇다고 그냥 장식이라기엔 기묘한 그 문양. 그것을 바라보던 훌라는 이내 손바닥을 샥샥 비비며 계약한 뒤 계약서를 곱게 말아 통에 넣고 나오면서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함정 아니야, 이거?’
하지만 무력으로는 물소 수인인 댜미드가 있고 계약으로 수작을 부리기엔 대륙 제일의 상단인 크루거 상단에서 구른 훌라의 눈으로 흠잡을 곳 없는 계약이었다.
‘그럼 진짜란 말인데.’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바뀔 수가 있는 건가?
훌라가 아인족을 꺼려하는 영주 덕에 영지 외각에 잡은 숙소로 돌아가는데 오늘 그냥 예사로 지나칠 때는 눈치채지 못했으나 영지민들의 시선 또한 예전에 비하면 제법 온화해 보였다.
‘도대체 뭐지.’
이렇게 우호적인 분위기는 이 영지에서 처음인지라 되레 기분이 이상하여 얼른 숙소로 돌아갔는데 그곳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좀 친절해졌는데요?”
“원래 이 숙소도 빌리고 난 뒤엔 짐승 냄새 나지 않게 쓰라느니 털을 한 올도 흘리지 마라느니 트집 잡지 않았습니까.”
“오늘 마을에서 신선한 과일을 좀 샀는데 바가지는커녕 덤도 받았어요.”
같이 상단을 꾸려 움직이던 아인족들의 말에 훌라가 머리를 쥐며 입을 열었다.
“뭐야. 왜 그러는지 살짝 알아본 녀석 있어?”
훌라의 말에 쫑긋한 토끼 귀를 가진 누군가가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제가 좀 여기저기서 들어보고 슬쩍 알아봤는데.”
편견을 버리고 본질을 봐야 하며 우리 모두는 결국 이 세상에 속해 있는 존재 아니냐.
뭐 그런 취지의 종교가 요즘 유행이라며.
그에 훌라가 기가 찬 얼굴로 말했다.
“아니, 종교에 유행이 어디 있어?”
믿음이 유행 따라 바뀌는 건가? 하다가 훌라가 순간 깨달은 얼굴을 했다.
어차피 만신전도 신들의 집합이라 단일 신이 아닌 적당히 만신전에 가서 기도만 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유행 따라 이 신도 믿어 보고 저 신도 믿어 보고 하는 건가.
“인간족이든 아인족이든 결국 넓게 보면 이 세상을 이루고 살아가는 살아 있는 생명 아니냐, 뭐 그런 내용이던데요.”
“그래서 일단 그 종교 이름이 뭔데.”
훌라가 아델리안에게 이런 일이 있다고 보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묻는데 토끼수인이 대답했다.
“이노센트교요. 수호교라고도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던데요.”
“…어?”
훌라가 가로 동공의 눈을 끔뻑거렸다.
* * *
모 배우의 영화 대사 중에 진실의 방으로 따라오라느니 이런 게 있었지, 아마.
그걸 내 눈으로 본 느낌이었달까.
나는 기가 팍 죽어 어색하게 웃다가도 시무룩하게 나에게 고개를 숙인 뒤 돌아간 엘윈 폰 테이트리아를 생각하며 차를 홀짝 마셨다.
“듣고 있나요, 아델리안 공자?”
“아, 예, 뭐.”
아니요.
나는 애써 미소 짓는 듯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세리아를 그제야 조금 또렷해진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엘윈 폰 테이트리아를 쳐내니 세리아 폰 테이트리아를 만나고 있네.
“그러니까 내 말은.”
대충 뭐 또 크루거 가문의 힘을 얻기 위해 날 구슬릴 달콤한 제안을 열거하는 중이지만 나는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어차피 오늘 세리아를 만난 이유는 무슨 소릴 하는지 한번 들어보자가 아닌 다른 이유였으니까.
나는 세리아의 말에 적당히. 아 그래요?를 앵무새처럼 되뇌이며 느리게 트레잇창을 훑었다.
[세리아 폰 테이트리아_용혈의 축복을 받은 자.]대표 Traits : [마나친화력A+] [성실함B-]
히든 Traits : [악식C] [중독D] [용인D]
봉인 Traits : [봉인SS] [교만S] [잔인함A-]
원래 붙어 있던 은밀한 계약자라는 칭호 대신 보이는 용혈의 축복을 받은 자.
거기에 그림 대신 마나친화력이 생겼다.
아마 저것이 성녀상으로 받은 트레잇이겠지.
그리고 중독이 E에서 D로 올랐고 잔인함이 A에서 A-으로 소폭 하향되었네.
‘그리고 용인이라…….’
얼핏 보면 나쁘지 않은 트레잇 변화와 칭호이다.
중독이 야금야금 등급이 올라 D인 것을 보니 악신교단에서 손써 주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럼 저 마나친화력이란 성녀상으로 받은 것인 이상 어디 탈이 나기 전일 터.
‘아니, 이미 났나?’
묘하게 신경이 날카로워 보이는 데다 무심코 하는 행동인지 옷으로 가려진 무릎 옆과 목덜미를 한 번씩 손으로 만지는 것도 그렇고.
오늘 볕이 좋은 데다 온실 화원 안에서 티타임 중인데 드레스가 맞지 않게 길고 덮인 부분이 많다.
“제 말 듣고 있긴 한가요. 아델리안 공자?”
“뭐 듣기는 잘 들었습니다만 별로 당기진 않네요.”
예비 동작 없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조금 숙이며 하는 말에 세리아가 갑자기 몸을 뒤로 빼더니 머리카락을 슬쩍 매만져 내가 보는 방향에 놓인 자신의 목을 덮었다.
‘분명 눈으로 확인 가능한 변화가 있는 거 같은데.’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건 육안으로 확실하게 티가 난다는 소리.
그런데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마법인지 화장인지. 다른 방법으로 가렸는지.
“너무… 가깝. 어?”
그러다 문득 세리아가 내 뒤를 응시했다. 고개를 돌리니 온실 화원 바깥쪽으로.
제법 떨어진 야외 화원에서 누군가 걸어간다.
아주 긴 황금색 머리칼, 그것을 성기게 땋아 어깨에 굽혀 늘어뜨린 사내.
이제 막 20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폐하가 어인 일로 밖에…….”
세리아가 문득 중얼거리는 말에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원작에서는 세리아가 황위 찬탈을 하며 내전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내용 중 황제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난 병석에 누워 있다가 세리아에게 어찌 된다 정도로 생각했지.
워낙 황권이 강대한 나라다 보니 세리아가 내전을 일으켜 가며 다음 대 황제가 되는 이상 원래의 황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건강한데?’
샤하드처럼 단명이나 세리아처럼 중독 같은 디버프라도 걸려 있나.
나는 무심코 사용자의 눈을 켰다.
[*^!_…….]나는 정말 본능적인 감각으로, 창이 제대로 내 뇌리에 인식되기도 전에 사용자의 눈을 취소했다.
정말 0.1초도 안 되는 그사이에 스친 잔상.
그리고 동시에 황제가 고개를 탁 돌려 나를 바라보는 것에 나는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X발.’
제발. 제발. 제발제발제발.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고개를 돌리며 다시 자리에 앉은 뒤 티스푼을 들어 찻잔을 저었다.
티스푼의 중간을 잡고 그 위에 살짝 넓적한 금속 손잡이 부분으로 내 뒤를 비춘 채.
아주 천천히 황제의 고개가 모로 기울더니 내 쪽으로 한 걸음.
그러다 그냥 고개를 돌려 가던 길로 걸음을 옮긴다.
“…내 제안에 그렇게도 관심이 없다면 오늘 왜 왔죠?”
“그럼 뭐 돌아가겠습니다.”
“…뭐?”
나는 세리아가 여지를 준 순간 일어나 애써 싱글싱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축제 때 봅시다.”
내가 기절이라도 하기 전에, 일단 헤어집시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