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7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74화(274/373)
“보통 황위를 계승할 이들이 다투는 것엔 무엇이 있을까.”
“트레잇 아닙니까.”
내 물음에 샤하드가 답했다. 나는 그 대답에 고개를 느슨하게 기울이며 웃었다.
“그거야 기본적인 거고.”
압도적인 재능은 가끔 혈통도 넘어선다.
눈으로 재능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보니 가진 트레잇에 따라 종종 본부인의 자식이 아닌 다른 이도 계승자가 될 수 있는 곳.
하지만 그 재능이 엇비슷하다면 역시 다른 조건을 많이 타게 되어 있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세리아 황녀가 지금 숨기고 있는 트레잇은 마나친화력이더군. 등급은 아마도.”
나는 맨 마지막에 확인한 세리아의 트레잇인 [마나친화력A+]를 떠올리며 읊조렸다.
“못해도 A에서 세리아의 노력과 더불어 운이 좋다면 S겠지.”
내 말에 샤하드가 살짝 미간을 좁힌다.
“애매하군요.”
[샤하드 폰 테이트리아_제12황자]대표 Traits : [천재B] [무골A] [신성B]
히든 Traits : [긍지B] [집념C]
샤하드의 트레잇은 ‘허약’과 ‘예민’이 대표 트레잇에서 사라진 대신 히든 트레잇이었던 ‘천재’와 ‘무골’, ‘신성’이 올라왔다.
거기에 ‘천재’는 그대로지만 ‘무골’과 ‘신성’은 한 단계씩 오른 상태.
그것을 정확하게 입 밖에 내지는 않았으나 샤하드가 언급하며 말했다.
“트레잇만 보면 저도 나쁘지 않습니다. 혹은 조금 더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그래, 말했다시피 그건 기본적인 조건이고.”
나는 달짝지근한 와인으로 대화하느라 조금 마른 입을 축였다.
“세리아 황녀는 1황녀인 데다 모계 쪽 가문이 강대하지.”
황제의 배우자는 많다. 하지만 세리아는 수도권 고위 귀족이 모후로 있다.
그리고 샤하드는 살짝 그을린 갈색 피부에서 나타나듯 남부 쪽 귀족의 혈통.
다투는 무대가 남부였다면 모르지만 이곳은 아무래도 수도이다 보니 세력 자체는 엇비슷하다 해도 그 세력의 분포도가 다른 것이다.
“지지 세력이…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맞아.”
그동안 세리아가 해 둔 이미지 메이킹과 더불어, 지지 세력의 분포뿐 아니라 악신 교단도 문제다.
그들은 성신교로 자신들을 수면 위에 올리는 것과 동시에 만신전의 다른 종교에 잠입시킨 이들로 하여금 세리아를 같이 지지할 테니까.
그럼 세리아는 수도권에서 입김이 강한 귀족들과 더불어 강력한 신흥 종교뿐 아니라 검증된 만신전의 종교에서도 지지를 받는다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샤하드가 아무리 다른 귀족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한다지만.
‘세리아는 더 오래전부터 준비했으니까.’
시작점부터 다른 거지.
트레잇은 샤하드가 조금 더 좋기는 하나 압도적일 정도는 아닌 데다 뒷배가 부족하니.
공식적으로 작위를 받은 대공은 단 셋.
하지만 그 셋 다 황실을 견제하는 포지션이었기에 반대로 황실과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여 영향력만큼은 거의 대공가 급의 힘을 휘두르는 가문이 있었다.
그게 바로 세리아의 외가인 크론틴 후작가.
그들은 황실만큼 오래된 가문인 데다 학자와 마법사를 많이 배출하였다.
‘게다가 대평야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지.’
너르고 비옥한 땅과 자원이 많은 영토. 거기에 마법사와 학자가 많은 핏줄이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가문의 교육을 도맡아 하기도 했지.
방계는 유모나 가정교사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지라 다른 가문보다 사교계에서 입지가 강하다.
전반적으로 인맥에서 나오는 힘은 어느 가문보다 우월할 터.
‘당장 세리아의 유모만 해도 그 가문의 방계이니.’
사교계에서 강력한 입지를 다진 크로틴 공작가가 중립 대신 세리아를 지지한다면 굉장히 큰 힘이 될 거다.
‘하지만.’
그건 뭐 세리아의 꿈이고.
나는 싱글싱글 웃었다.
“최대한 샤하드, 널 지지할 인물들을 모아봐. 물론 나도 도울 생각이지만.”
그냥 무턱대고 밀어줄 수는 없다는 듯 여상스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일을 좀 해 줘야겠어.”
“그게 뭡니까.”
나는 이제 파이얀의 권속이 된 말 많고 엄살 많은 까마귀를 하나 떠올렸다.
* * *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제법 오랜 대화 끝에 샤하드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내가 한 말들이, 그 약속이 진짜인지 가늠하듯 숨을 몰아쉬는 걸 바라보며 일어섰다.
그에 샤하드가 인사하려는 듯 몸을 일으키길래 손짓으로 앉으라 시늉하는데 문득 비리디안 색의 눈동자가 나와 마주했다.
“잠시 나 좀 보지.”
내가 이트에게 말하자 그 눈동자가 기쁨으로 일렁거린다.
나를 보자마자 관리자라 부르며 반기는 것을 일부러 들키기 싫어서 막긴 했는데.
저렇게 좋아해 주니 좀 찔리네.
나는 이트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불편한 건 없고?”
「없습니다.」
탁하고 긁는 듯한 쇳소리.
예민한 이라면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로 이질적인 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이트만이 이런 식으로라도 소리를 내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비공정의 골렘들은 그 목소리를 아무리 내어도 등록된 순혈의 인간만이 들을 수 있으니까.’
유일하게 등록된 인간이 아닌 다른 이들과도 대화가 가능한 비공정의 골렘.
나는 손을 뻗어 손끝을 까닥였고 이트가 고개를 숙였다.
“힘들거나 곤란한 점이 생기면 언제든 말해 줘. 그리고 샤하드는 중요한 사람이니 잘 부탁해.”
나는 골렘을 누군가에게 보낼 때 단 두 가지만을 염두에 두고 선정했다.
성별이 같을 것.
그리고 가장 시너지가 높을 것.
같은 최상급 골렘이라도 그 특수한 능력과 파라미터가 조금씩 다르다.
기본적으로 일반 골렘이나 초급 오러 유저들보다는 강하지만 각자 특색이 존재한다는 소리.
‘예를 들자면.’
이제 상인으로 활동 중인 훌라에게 보낸 로사리나는 두뇌파다. 계산과 더불어 흐름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지.
리프는 재생력이 매우 높아 몇 가지 조건만 갖춰지면 잠시지만 거의 불사에 가까워질 수 있다.
아르만에게 보낸 이본은 물과 바람의 마법사. 해상에서 그 능력을 가장 높게 끌어올릴 수 있으며 감각이 예민한 리지는 파이얀에게 조금 부족한 색적 및 기습에 강하다.
그리고 라인하르트와 함께 있는 페오는 몬스터가 많은 접경지에 큰 도움이 될 광역 공격이 가능하지.
‘그리고 이트는.’
강하다. 재생 능력은 지휘관 개체 중 가장 낮은 데다 마나를 쓰지 않는 덕에 광역 공격도 힘든 편.
하지만 대신 공격력 자체가 높아 포위당해도 한 점을 뚫고 나갈 수 있으며 재생력은 낮지만 강한 오러로 방어력 또한 높으니 누군가를 지키는 데도 나쁘지 않지.
사실상 최상급 골렘 중 가장 강한 게 이트라 차기 대선주자, 아니 황위 계승권자인 샤하드를 지키라고 붙인 거였다.
「분부대로.」
샤하드를 잘 부탁한다는 말에 이트가 낮게 소리를 긁었다.
비록 코 아래부터 보이는 금속 마스크 덕에 확실하지는 않으나 눈빛은 부드럽게 보이니까.
감정에 대해 많이 알게 된 리프가 마정석에 담아 건네준 것들 덕분인지 조금씩 표정이 보이는 거 같다.
「부디 다음에 또 뵙기를.」
“생각보다 금방 다시 볼 거야.”
나는 이트가 가슴에 손을 얹고 몸을 숙이며 하는 말에 가볍게 말했다.
* * *
촛불의 일렁거림이. 열린 문의 그림자가.
마치 거대한 짐승의 입, 혹은 밤의 한 자락을 베어 낸 것처럼.
어디선가 다시 나타난 가면의 사내가 떨어진 손수건을 들 듯 손끝으로 가볍게 그림자 그 자체를 잡아 흔들었다.
그늘과 그림자가 바람 부는 날의 커튼처럼 흔들리더니 로브를 입은 거구의 사내와 다른 사내를 집어삼켰다.
“그럼 부디 즐거운 시간이셨기를.”
이내 가면을 쓴 사내 또한 마치 수면에 떠 있다가 그 아래로 가라앉듯 사라졌고 그제야 샤하드의 보좌관 이옐이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분명 위협을 가하지는 않지만 늘 살 떨리는데요.”
이옐이 지친다는 듯 고개를 한번 흔들며 남은 와인으로 떨리는 손을 뻗자 이트가 병을 쥐어 건넸다.
그것을 통째로 쥐고 마시는데 샤하드 또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동의해. 분명 우리는 동맹인데도 이 정도 압박감인데.”
다른 이들은 어떨지. 하듯 샤하드가 고개를 뒤로 꺾듯 소파에 기댔다.
그 거구의 사내가 마치 허튼짓하지 말라는 듯.
혹은 돌발 행동 따위 생각하지도 말라는 양 늘상 뿌려대는 그 기운. 그 압박감.
살기가 아니라 다행이지, 살기였다면 심약한 자는 이토록 오래 그 기운을 받다간 정신이라도 나가 버릴 거다.
‘대단한 건 그 사내지.’
거구의 사내가 아닌 다른 로브의 사내.
그 압박감이 분명 자기를 향한 것은 아니라고는 하나 그래도 가장 가까이 있는 이상 못 느낄 리는 없는데도.
‘그토록 편안한 모습이라니.’
얼마나 강한 건지.
너무나 강하면 오히려 일반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은 그냥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으나 이제는 믿는다.
“…그나저나. 그게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이옐의 말에 잠시 샤하드가 침묵하다가 난처하게 웃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 로브의 사내가 한 말들, 귀에는 달지만 과연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
하지만.
“그러나 이노센트니까. 워낙 신비로운 집단이니…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여겨지는 일도 가능할지 모르지.”
샤하드는 자신의 말에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 이트를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적어도 한 곳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크루거 대공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샤하드는 잔을 채운 뒤 처음으로 맛보는 와인을 한입에 털어 넣으며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일단… 그 아델리안이 이노센트의 일원이긴 하니까.”
비록 내놓은 자식이란 소문에 망나니, 무능력자라는 타이틀을 덕지덕지 붙이긴 하였으나.
아델리안 수호 크루거.
그 또한 크루거 가문의 계승자인 것은 확실하니.
‘한동안 어딜 갔는지 도통 보이지 않던 카이만 대공이 하필 이맘때 돌아온 것도 이상하긴 하고.’
오랜만에 열리는 거대한 축제라고는 하나 대공이라는 지위는 특수하다.
테이트리아가 워낙 거대한 나라였기에 그들의 직할령만 해도 아주 작은 나라에 버금가는 정도.
마음만 먹으면 독립하여 공국을 만들 수도 있는 지위 아닌가.
하지만 세 명의 대공 전부 황실을 견제하며 남아 있는 상태.
“아무리 아델리안 공자가 이노센트의 일원이라 하지만 카이만 대공이 축제에 참석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긴 하지. 거기에 그 로브를 입은 자가 하는 말로는 날 지지할 거라니 솔직히 믿기 힘든 일이야.”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나라인 제국 테이트리아.
그리고 그곳에서도 단 셋밖에 없는 대공작.
그런 카이만이 온다면 확실히 엄청난 전력이 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카이만, 그자가 수도로 직접 오는 건 너무나 큰 리스크가 있지 않습니까.”
이옐의 말에 샤하드가 끄덕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공 본인이 황제의 강력한 명도 받지 않았는데 황권을 강화하기 위한 축제에 온다?
그런 일은 드물겠으나 혹여 누군가 암살이라도 시도한다면.
모든 방비를 다 마친 본인의 영지와 성이 아닌 제국의 수도에서는 그 누구도 안전을 장담하지 못한다.
‘하다못해 나나 세리아도 100% 안전하다 할 수는 없으니.’
그런데 여러모로 적도 많은 카이만 대공이 축제에 참석한다라…….
아무리 샤하드 자신이 황제가 된 뒤 크루거 대공가와 원만하게 사이를 꾸려 나간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대공가 넷과 황실은 서로 견제하는 자들.
사실상 샤하드 본인은 이득을 볼 수 있으나 크루거 가문에서는 큰 이득을 보기는 힘든 게 사실이었다.
‘…생각할 만한 건 몇 가지 안 되지.’
지금의 황제가 아닌 다른 이가 황위에 올라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가능한 행보.
그리고 샤하드는 지금의 황제를 떠올렸고 순간 돋은 소름에 샤하드가 손바닥으로 팔을 매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