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9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90화(290/373)
아르만은 낮게 숨을 쉬었다.
아델리안이 가진 세이렌의 전매권을 받았던 그날 이후 당분간 수도에 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축제를 즐길 만한 시기는 아닌 거 같은데 말이지.’
세이렌의 남부 전매권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가히 어마어마한 수준.
일부분을 아버지인 남부 제독 몰래 유용하여 이노센트에서 연결해 준 해적 여왕 엘리스를 사략 해적으로 부림과 동시에 해군 전력을 몰래 강화 중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거기에 해룡인 마린이 하루하루 커 가며 슬슬 사춘기가 오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치는 통에 그것을 수습하는 것에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요즘이었다.
당연히 황실과 수도 귀족을 중심으로 권력의 추가 기우는 축제에 굳이 참여할 생각이 없었는데.
‘정식으로 초대를 하니 안 올 수도 없고.’
마린에게는 사정하듯 제발 사고 치지 말고 딱 1주일만 자유롭게 지내라고 했는데 말이 통할지.
게다가 이본은 어떤가.
‘생각보다 호전적이었지.’
해양 몬스터와 해적을 왜 때려잡지 않냐며, 그러고도 바다를 수호하는 가문이라 할 수 있냐며 글을 써서 보여 줄 때마다 얼마나 난처했던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타이밍의 문제였다. 다만 그것을 이노센트의 사람인 이본에게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
한참 사춘기가 온 마린과 은근히 호전적인 이본.
거기에 수도에 오자마자 몰려든, 야만스러운 남부 촌뜨기라고 뒤에서 욕은 하면서도 몇 안 되는 대공가라서 친하게 지내겠단 의도가 뻔히 보이는 편지들이라니.
아르만이 어쩐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파란색 로브를 입는데 부관인 호슈아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준 뒤 후드를 꾹 눌러 씌워 주며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아델리안 공자와 그 로브를 입은, 엘프로 추정된 수상한 자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이노센트의 다른 일원을 만나는 날 아닙니까.”
거기서 어떤 이가 나올지 어찌 아냐는 말에 아르만이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걱정할 필요가 있겠어? 우리 가문과 적대적인 이들이 있진 않겠지.”
있어도 이노센트의 이름하에 모이는 거니 큰 상관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당장은 로브를 입고 후드를 쓰고 모인다 전달받지 않았는가.
중간에 후드를 벗고 서로의 진실한 정체를 나누는 시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서로가 서로를 끝까지 모르는 채 의견만 교환하는 자리일 수도 있는 법.
“제 생각엔, 아르만 님보다 어린 사람은 없을 거 같은데요.”
그래도 기죽지 마셔야 합니다? 하고 너스레를 떠는 호슈아를 보며 아르만이 웃었다.
“아델리안도 있지 않을까? 아델리안 공자가 나보다 살짝 어린 것으로 아는데.”
“하긴 그것도 그렇죠. 그나저나 어디서 모이는지 말도 아직 없고. 시간이 될 때까지 자택에서 대기하면 데리러 온다더니.”
이노센트에서 마차를 보내 주는 걸까요?
하고 부관인 호슈아가 묻자 아르만이 스스로 팔짱을 끼며 고개를 기울였다.
“글쎄, 지금 축제날이 다가온 터라 수도에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몰렸어. 그런데 마차를 통해 이동한다? 너무 눈에 띌 거 같다만.”
아니면 이노센트이니 그 희귀하다는 공간마법을 통달한 마법사가 나타날지도 모르지.
하는 아르만의 말에 호슈아가 아, 그러려나요? 하는 웃는 소리를 흘리던 순간 아르만과 호슈아 사이로 드리워진 창문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슈욱 하고 한 사람의 그림자가 몸을 내비쳤다.
“으악!”
그에 호슈아가 비명을 지르자 그림자로 된 이가 일렁거리는 손을 들어 검지 하나를 입가에 대더니 쉿. 하고 웃는다.
어느 순간 검은 로브를 입은 사내가 과장된 모습으로 인사하며 낮게 웃는 소리를 흘렸다.
“이노센트에서 아르만 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아르만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본가에 비해 두른 마법 방어막이 약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대공가의 저택이다.
침입이나 암살 등을 방지하기 위한 마법 및 주술, 그리고 신성 마법으로 둘러진 곳.
그런데 이렇게 쉽게 누군가가 침입이 가능하다?
그 누가 이 수도에서 편히 잠을 잘 수 있을까. 이 정도로 간단하게 이곳에 들어왔는데 과연 황궁이라고 안전할까?
‘게다가 강해…….’
아무리 아르만 자신이 검술이나 마법 등의 것들에 재능이 없다고는 하나 분명 오러는 깨우친 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 힘이 쉽사리 가늠되지 않았다.
‘저번에 그 엘프도 그렇고.’
어디서 저런 괴물들로만…….
“이곳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검은 로브를 입은 이노센트의 안내인이 허공에 손짓을 하자 마치 그림자가 일렁거리는 듯한 통로가 하나 만들어졌다.
사악한 기운이나 음기가 뿜어져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영락없는 죽음의 문과 같은 형태.
그에 호슈아가 불안한 얼굴로 꼭 가야 하냐는 듯 아르만을 슬쩍 잡는데 아르만이 그 손을 도닥이며 입을 열었다.
“금방 다녀올게.”
그리고는 심호흡 뒤 허리를 펴 꼿꼿한 자세로 일렁이는 그림자 속으로 들어섰다.
고작 한두 걸음.
한두 걸음이었다.
그 검은 로브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가 열어낸 그림자 안으로 몸을 묻어 움직인 거리는.
그런데 눈을 뜨니 어느새 다른 공간이다.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지하로 보였다. 그 어디에도 창문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넓고 공기는 맑으며 은은한 풀과 나무 냄새가 난다.
빛은 초나 횃불이 아닌 마정석으로 구동되는 마법 등을 썼는지 보다 밝고 색이 일정하다.
바닥재부터 보이는 문의 재질까지 전부 단단하고 매끄러우며 흠집 하나 없었다.
공들여 만들고 꾸민 공간.
이런 것 하나에도 조직의 저력이 나오는 법.
아르만이 작게 침을 삼켰다.
“들어가시지요.”
이곳으로 그림자를 열어 이동시켜 준 사내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문을 연다.
아르만은 긴장되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문 너머에는 저런 사내조차 일개 안내인으로 쓸 정도로 대단한 이노센트의 일원이 있겠지.
문 안으로 들어가자 제법 넓은 공간과 더불어 원형으로 된 테이블과 둘러앉은 사람이 보였다.
자리가 하나 빈 것으로 보아 아르만이 맨 마지막이었던 모양.
‘하나, 둘, 셋, 넷…….’
지금 보이는 이들은 총 12명.
아르만 자신을 포함하면 13명.
자신도 모르게 묵례하기 위해 굽혀지던 목을 억지로 세우며 아르만이 말없이 빈 자리로 가 앉자 가장 안쪽에 앉은 이가 손뼉을 짝 쳤다.
“모두 모였네.”
문과 가장 먼 곳, 그리고 등 뒤에 로브를 입은 두 명의 인영을 세운 자.
‘문밖의 그 사내를 생각하면 도합 셋.’
이곳에 저자를 제외하면 누구도 호위를 데려오지 않았다.
게다가 변조되었으나 웃음 섞인 기괴한 목소리.
‘저자가 바로…….’
이노센트의 수장인가.
그리고 아르만을 제외한 나머지 13명 중에 아델리안이 있을까.
잠시 아르만이 침묵하던 가운데 누군가 입을 열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네.”
“성격도 급하시지.”
이 쿠키와 차가 아주 일품인데 말이죠 하며 이노센트의 수장이 히죽 웃고는 고개를 기울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 서로가 궁금하겠지만 마음의 거리감이 좀 줄어야 얼굴을 보았을 때도 좀 더 친근감이 생기지 않겠어?”
변조되어 탁하나 유들유들한 어조.
일단 이것부터 보라며 그가 손끝으로 바로 앞의 서류를 툭툭 쳤다.
모두에게 나뉘어져 있는 그 종이 뭉치들.
아르만은 그 손짓에 따라 시선을 내린 뒤 종이를 가볍게 훑어보았다.
‘이건…….’
알고는 있는 일이었다. 이노센트 안에서 악신교단이라 불리는 집단을.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이단.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며 그들이 말하는 살아 있는 신이 정말로 세상에 강림해 있는.
즉, 육신을 가진 신인 것과 동시에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세상이란 지금 이 세계의 파멸 그 이후를 말한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많은 것이 적혀 있었다.
얼마 전 퍼진 전염병이나 챠비드에 들끓는 노예사냥꾼, 그리고 수인족인 척하며 국경 근처를 휘젓는 이들은 물론이고.
악랄하기로 유명한 해적부터 귀족에까지 잠입한 세력은 물론이거니와 신전의 신관들까지도 악신교단의 사람이 퍼져 있었다니.
그뿐인가. 운명의 신 르웰르의 성녀 마리안느.
찾으려야 쉬이 찾을 수 없어 죽은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떠돌던 존재가 신의 문양을 걸고 맹세하며 적은 계시록엔 결국 그 악신교단으로 인해 이 대륙이 혼돈에 휩싸일 것이라 적혀 있었다.
그 외에도 소문만 무성했던 접경지의 괴물.
사이클롭스의 수면기조차 일부러 방해한 것이 어느 흑마법사와 더불어 악신교단의 의지였다는 관계자의 증언과 함께 온갖 것이 적혀 있었는데 꾸며내었다기엔 이미 아르만 자신이 지닌 정보와도 일치하는 것이 많았다.
즉, 여기 이 종이 뭉치에 적힌 것은 이노센트가 지금껏 수집한 자료이며 대부분 사실이라는 소리.
그리고 맨 뒷장에 적힌 글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게 사실이야?”
조금은 어린, 아르만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이 낼 법한 목소리.
장갑을 껴 피부색조차 가린 사내가 맨 뒷장을 두드렸다.
“세리… 아니, 테이트리아의 제1황녀가 이들과 손을 잡았단 것이?”
“당연히 사실이지, 더불어 악신교단. 그들이 세리아 황녀를 지지하여 황제로까지 옹립한 뒤 테이트리아의 국교로 지정될 야심을 품고 있어.”
물론 국교로 지정된다고 지금까지 해 오던 그 모든 것들을 단박에 그만둘까?
이노센트의 수장이 피실 웃었다.
“그들의 목표는 대륙의 혼돈, 그리고 멸망.”
그 이후에 열릴 자신들의 세계.
이 부분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가 중얼거렸다.
“그러니 국교로 지정되는 순간 더한 패악질을 부리겠지.”
예를 들면.
성전.
이노센트의 수장이 그리 말하는 순간 아르만이 침음을 흘렸다.
너무나 참혹한 미래가 그려졌기에.
이미 지금도 사람을 인신공양하며 잔혹한 짓을 일삼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보다 더한 힘을 가진 채로 이루어지는 성전이라니.
대륙인의 대부분은 만신전에 등록된 종교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악신교단은 인간만을 교도로 받는 순간 아인족은 전부 적으로 대하겠지.
생각보다 그 깊이도 크기도 거대한 비밀이었다.
아르만이 야금야금 모으던 자료는 이에 비하면 새의 발에서 뽑아 낸 핏방울이나 다름없다.
어떻게 이 대륙에 이런 집단이 이 정도로 거대해질 때까지 눈치챈 이들이 없었을까.
아니, 단 하나 있지.
이노센트.
아르만이 턱을 괴고 웃는 소리를 흘리는 이노센트의 수장을 바라보았다.
“일단 우리 쪽에서는 이 정도의 정보까지 이번에 공유하기로 했지. 그리고 이다음은 선택이야.”
얼굴과 이름을 내보인 뒤 각자의 힘을 합칠 것인가.
혹은 단독으로 움직일 것인가.
“누구인지 말하는 게 부담되는 사람도 있을 테고…….”
하며 이노센트의 수장이 말하는데 거칠고 투박하며 살짝 주름진 손을 가진 이가 먼저 쓰고 있던 후드를 벗어던졌다.
“날 알고 있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군. 나는 접경지를 지키는 변경백이요. 이름은 라인하르트라고 하지.”
그에 아르만이 차를 마시려다 말고 멈칫했다.
지금 무언가를 마시면 목에 걸릴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군. 라인하르트 경.”
“꽤 예전에 알현실을 박차고 나간 것이 기억나네. 그때 퍽 감명스러웠는데 말이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후드를 벗는 이가 둘.
백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유난히도 차가워 보이는 사내와 푸른 빛이 도는 새벽 밤 같은 검은 머리에 보라색 눈동자를 지닌 무척이나 단단해 보이는 사내.
‘…카이만 대공과 게드만 대공.’
아르만은 차를 마시지 않았는데도 사레가 걸린 것처럼 가슴이 뻐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