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9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92화(292/373)
“상시 결계 유지조는 이쪽으로. 돌발 상황 대비조는 저쪽으로!”
“탐색 및 수색조 교대!”
“왼발, 왼발. 거기 박자 제대로 안 맞추나!”
“바로 전날에 기강이 해이해지면 쓰나! 전부 연무장으로 가.”
검을 찬 기사와 완드나 스태프를 든 마법사들이 한데 모여 왁자지껄했다.
다음 날이면 축제가 시작되는 터라 전부 신경이 예민해진 듯 웃음기 하나 없이 조장의 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다른 축제와는 달리 황족이 천이 없이 벽도 반만 있는 오픈형 마차에 올라타 수도를 한 바퀴 도는 행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암살 위협이나 기타 다른 안전 문제로 거의 하지 않는 행사이나 이번엔 1황녀 세리아의 추진으로 성사된 일이기에 여느 때보다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것이다.
물론 황족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게 된 이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날일 것이나 안전을 책임진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머리가 아팠다.
한창 혈기 왕성한 나이의 황실 소속 기사들 중 외모가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줄 만한 이들을 따로 선발해 퍼레이드의 앞에 세우는 일부터 그랬다.
실력의 고하를 떠나 당장은 백성들의 사기 진작과 축제의 효과를 위해 하는 일이지만 어디 자존심이 그걸 쉬이 용납하겠는가.
황실 기사는 인품도 물론 중요하긴 하나 대부분 귀족 출신이기에 서로 간의 은근한 알력뿐 아니라 시기와 질투 또한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축제 전날인 지금은 많이 누그러졌으나 축제 일정 발표 직후에는 곳곳에서 소란이 일었었지.
‘제발 더 이상 사고만 생기지 마라.’
이번 축제의 안전을 도맡아 책임지게 된 근위대 단장이 이마를 감싸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바쁘신가요?”
“아. 아닙니다. 부인.”
제1황녀 세리아의 유모가 아공간 주머니를 하나 들고 나타나 말을 건네자 단장이 급하게 맞이했다.
소문에는 황녀가 트레잇을 각성했다던가.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한 말로는 차기 황제에 유력하다는 말이 떠돌았다.
황위는 남들보다 두각을 나타내는 자가 더 유리하긴 할 터.
하지만 결국엔 지금의 황제 폐하께서 정하시는 일 아니겠는가.
그래서 증명된 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황태녀로 내정된 것처럼 구는 세리아 황녀가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그녀를 모시는 유모가 나타난 덕에 괜히 찔렸던 단장이 흠 하는 소리를 내며 헛기침했다.
“먼지와 땀내로 불쾌하실 수 있는 공간입니다. 다들 수련하는 터라 마나도 불안정하니 용건만 간단히 말씀해 보시길.”
단장의 말에 세리아 황녀의 유모가 입을 열었다.
“이번 축제 때 근위대에서 안전을 책임지기로 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미리 인사를 드리면 혹여 저희 쪽 편의를 좀 더 봐달라는 의미로 여기실까 봐 지금까지 찾아뵙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제 축제 전날이니 인사드리러 왔답니다.
그리 말하는 세리아의 유모를 단장이 바라보다 수더분하게 머리를 긁었다.
“굳이 그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저희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니 개의치 마십시오.”
“아닙니다. 그럴 수야 없지요. 듣자 하니 축제의 준비 날과 축제 기간보다 그 이후가 더욱 바쁘다 들었습니다.”
그러니 축제가 끝난 이후 찾아뵙는 것은 더욱 예의가 아닌 듯하여 오늘 왔으니 겸양의 말로 내쫓지 말아 달라 이르며 웃는 유모의 모습에 단장이 별수 없다는 듯 손짓했다.
“이곳은 흙먼지가 많이 날려 오래 대화하기는 힘듭니다. 대화가 길어질 듯하니 자리를 옮기시죠.”
“제가 시간을 너무 빼앗으면 쓰나요. 오늘은 단지 이것을 전해 드리려 왔을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운다는 느낌으로 단장이 말하자 세리아의 유모가 들고 있던 아공간 주머니를 건넸다.
“끝나고 나서 안전을 지켜 주신 모든 단원들이 음식이라도 잘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술도 한잔하고요.”
물론 이런 일을 맡게 되면 후에 사기 진작 명목으로 급여 외의 수당이 나오기는 하나.
한창때의 남녀가 나라를 위해 고생했는데 술과 고기라도 한껏 즐겨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단장이 살짝 짙어진 시선을 던졌다.
“뭐 주시는 거니 받겠습니다만. 다른 하실 말은 없으십니까. 부인.”
“뭐가 더 있겠어요. 황녀 저하를 잘 지켜 달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정말 그뿐이라는 듯 아공간 주머니를 넘긴 뒤 살짝 묵례하듯 고개를 까닥인 후 돌아서는 모습에 단장이 주머니를 만지다 팔짱을 끼었다.
‘무슨 생각이지.’
세리아 황녀는 대외적으로 마치 성녀와도 같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구휼에도 앞장서며 빈민에게 잘해 주기로 유명했기에 외모도 뛰어난 데다 성품마저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나 하급 귀족들은 어차피 모든 황족이 특별한 트레잇이 없다면 황녀 세리아가 다음 대 황제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할 정도.
하지만 상위 귀족들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세리아의 궁에서 아주 가끔이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시녀들.
그리고 테이트리아의 수도에서 장사나 혹은 물건을 팔려면 알게 모르게 세리아 쪽에게 세금을 내지 않는 한 어려움이 따랐다.
분명 황실의 법도로는 황제 폐하께서 자유 경쟁을 위해 어느 황족과 손을 잡아도 상관없다 하셨다지만.
이상하게도 세리아가 아닌 다른 이와 손을 잡으려고 하면 일이 생기기 일쑤.
한마디로 대놓고 드러난 일도, 증거도 없지만 몇몇 상급 귀족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세리아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퍼져 있었다.
단장 또한 마찬가지.
물론 그렇다고 세리아의 명을 거부하거나 배척할 생각은 없다.
사실 조금 꺼림직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황족들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고.
어차피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이 없다면 위선이라도 부리는 이가 난 법.
다른 귀족이야 자신의 이득을 계산하겠지만 근위대는 다르다.
누가 황제가 되든 간에 최선을 다해 모시면 될 뿐.
“단장님, 그거 뭡니까?”
근위대 단장이 아공간 주머니를 허공에 던졌다 받았다 하며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다가온 누군가의 말에 단장이 입을 열었다.
“세리아 황녀 쪽에서 술이나 사 마시라고 주고 가던데.”
“술이야 뭐 틈틈이 잘 얻어먹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밥도 그렇고.
샤하드 황자 쪽에서 아예 이 근처 주점이나 레스토랑을 전부 대여해서 제공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단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뭐 우리야 양쪽에서 받아먹으면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러다 둘 중, 혹은 다른 이라도 황제가 된다면 그분에게 충성을 다하면 되는 법.
단장이 들고 있던 아공간 주머니를 넘기며 으쓱거렸다.
* * *
“…그게 사실입니까.”
“그래.”
샤하드의 보좌관 이옐이 샤하드의 말에 믿기 어렵다는 듯 표정을 짓다가 얼굴을 굳혔고 샤하드는 와인을 한 모금 삼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노센트 쪽에서 황실 근처의 주점과 레스토랑을 전부 빌린 후 내 이름으로 제공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엄청난 자금력을 지닌 곳임은 진즉에 알았지만.”
그 뒤에 크루거 가문이 있을 줄이야.
그뿐인가. 이번 이노센트의 회담 때 참석한 이들 면면이 전부 놀랍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 꼬장꼬장하기로 유명한 라인하르트 경까지 있었다니.’
샤하드는 분명 단맛이 도는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입안이 쓴 것 같았다.
대등하다 생각했다.
자신은 대제국 테이트리아의 황족이며 다음 대 황제가 될 수도 있는 몸.
황제가 되기 전에 잠시 손을 잡아 도움을 얻는 처지지만 제대로 된 계승자의 자리를 얻게 되면 반대로 이노센트가 원하는 바를 쉽게 들어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즉, 관계의 역전이 가능하다 생각했으나 회담 때 본 것만 따지면 오히려 이노센트 쪽에서 자신을 허수아비 황제로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견제란 서로 그 세력이 비등해야 가능한 법.
지금의 황실이 세 명의 대공가와 견제 중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미 이노센트는 그 셋의 대공가를 전부 휘어잡고 있었다.
물론 남부의 방패라 불리는 헉슬리 가는 대공 본인이 아닌 후계자가 참여하긴 했으나 그게 그거 아닌가.
결국 모든 이들이 세대교체가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이노센트에서 세 명의 대공가와 더불어 자신과 손을 잡고 있다.
그뿐인가?
테이트리아로 치면 황족이나 다름없는 하이 엘프. 그것도 대장로의 위치에 올라선 이가 하나.
비록 수인족은 부족제 국가라 단 하나의 왕은 없다 하더라도 발언권이 강한 으뜸 부족의 부족장이 하나.
거기에 만신전 소속 중에서도 무려 태양신의 대주교에, 황실에서 관리하지 않기에 치외법권인 키미슈트리의 이사장이 있지 않나.
‘게다가 황족을 나 말고 엘윈까지.’
비록 엘윈은 계승권을 포기하고 나갔다고는 하지만 그도 황실의 일원인 것은 당연한 일.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노센트의 일원이란 말입니까.”
그렇게 무력으로도 권력으로도 강한 이들이 무엇을 위해 모였단 말인가.
회담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옐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정도 사람들이 모였다고 말하면 백 명의 사람 중 아흔아홉은 내전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제국을 뒤엎을 정도의 일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가 그들을 한데 모아 일을 도모할까.
하지만 남은 한 명의 사람에 샤하드가 들어갔으므로 입을 열었다.
“꾸준히 하는 말이 있잖아.”
대륙의 평화.
그 뜬구름 잡는 거 같은 목표가.
그 허황된 말이라 일축할 수 있는 그 말이.
원래도 거짓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으나 정말 그들을 모은 이유가 악신교단을 상대하기 위함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더불어 그런 이들을 끌어들이고도 전면전은 할 수 없다 말하는 이노센트의 말에 더욱 짙어지는 의문이 있었다.
그럼 악신교단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이들이 모인 곳인가.
북부의 방패. 남해 군도의 지배자. 그리고 황금의 크루거 가문에 수도의 권력층과는 사이가 좋지 않으나 그 강직함과 청렴함으로 이름이 드높은 라인하르트까지.
‘이런 생각을 하긴 무엇하지만.’
그들이라면, 그들이 원한다면 황실이라도 교체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이들.
‘그런데도 부족하단 건가.’
악신교단. 단순한 자료만 보았는데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사악한 집단.
그들은 인간이 나머지 모두를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라 믿는 광신도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세리아와 손을 잡았다면.
세리아는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가.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세상에 세리아가 지배하는 나라 또한 포함이 되는 것인가.
“내일 긴 하루가 될 거 같아. 이옐.”
샤하드의 적금색 눈이 번들거렸다.
아마 피는 흐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전쟁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샤하드 자신이 지금까지 겪었고 버텼던 그 모든 괴로운 순간들. 하루하루 죽어 가던 나날.
술잔보다 무거운 것은 들지 못했고 느리게 걷는 게 아닌 뛰는 일은 그야말로 각오를 해야 했던 순간들.
자신이 타고난 트레잇을 봉인당해 노력해 볼 기회조차 빼앗겼던 시간들.
샤하드 자신뿐 아닌 다른 형제자매들까지도.
모두가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알지 못한 채 세리아의 발아래 밟히고 있었다.
하지만 내일 이후로 모든 게 바뀌겠지.
곧 축제의 시작이 도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