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9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94화(294/373)
‘이건 말도 안 돼.’
세리아는 순간 웃는 얼굴이 무너질 뻔한 것을 느꼈다.
표정을 망가뜨리지 않고 계속 웃을 수 있었던 건 되레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돌아온 것이다.
“오랜만이네.”
“못 보던 새…….”
“많이 변했지?”
샤하드가 하는 말에 세리아는 찬찬히 그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렸다.
반년도 안 되어 키가 한 뼘은 더 큰 것 같다.
예전엔 세리아 자신보다 팔목이 가늘었으나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을 정도.
누가 지금의 샤하드를 보고 허약하다거나 약골이라거나 하는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뛰는 것은 고사하고 조금만 빨리 걸어도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식기마저도 장식이 많이 달린 종류를 쓰면 식사 후에 손을 떨었지.
그런 샤하드가 지금…….
“다행이야. 너무나 건강해졌네, 보기 좋아. 오늘 퍼레이드를 너와 한다고 해서 걱정했었어. 그래서 미리 신관도 초청해 뒀었는데.”
세리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샤하드를 바라보았다.
배다른 형제자매끼리는 사이가 썩 좋지 않았으나 세리아 자신은 다년간의 이미지 관리로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 몇몇을 제외하면 모두와 사이가 좋았으니까.
“신관? 어느 신전에서 파견 나온 신관인데?”
신관이란 말에 샤하드가 적금색 눈을 빛내며 웃는다.
그에 세리아가 눈을 깜빡거리다 온화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직 만신전에 속한 신을 모시는 분은 아니야. 그렇지만 아주 유능하고 능력 있는 분이셔.”
하고 말한 뒤 방금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가볍게 치며 경쾌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퍼레이드가 끝난 후 제대로 소개시켜 줄게. 성신교라고 하는데 이제 막 활동을 제대로 시작하려 하는 곳이야.”
세리아의 말에 일단 이동하자는 듯 에스코트할 겸 팔을 내밀던 샤하드가 하, 하며 웃었다.
“이단 아니야?”
“무슨 그런 무례한 소릴 하고 그래.”
만신전에 속하지 않는다고 다 이단은 아니잖아 하며 생글 웃는 세리아의 모습에 샤하드가 피식 웃었다.
“그렇지. 만신전에 속하지 않는다고 다 이단은 아니지.”
“이번 기회에 성신교에 대해 알려 볼까 해. 좋은 교리가 많더라.”
“예를 들면?”
“믿음은 보답받는다?”
심지어 소중한 것을 받거나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을 만큼.
퍼레이드용 마차에 올라서며 마차의 뒤에서 같이 움직일 기사들에게 샤하드가 손 흔들어 인사한 뒤 입을 열었다.
“그 정도로 강력한 신을 모시는 종교가 이제야?”
“물어보니 전부 수련하고 신께 기도하는 일에 한동안 전념했나 봐.”
그러니 이제라도.
사람들 앞에 나서려 하는 게 아니겠어?
믿는다면 확실한 보답을 해 준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운명.
트레잇까지도.
인간족이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걸릴 게 없으니. 아무리 빌어도 평생 기적 한 번을 보지 못하고 죽는 신관도 많다.
하지만 성신교는 신 자체가 아직 이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으며 그 힘 또한 강력하니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세를 누리겠지.
“좋은 곳이야. 리저렉션이 가능한 교단 자체도 몇 없는데 그중에서 성신교만큼 많이 쓸 수 있는 곳은 전혀 없을걸. 리저렉션만 해도 그런데 다른 신성마법은 어떻겠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도, 혹은 잃을지도 모르는 사람도.
몸이 아프거나 고된 이들 전부에게 도움이 될 거라며 하는 말에 샤하드가 낮게 웃었다.
“참 좋은 곳이네. 네가 선택할 만해.”
너와 어울려.
그 말에 세리아가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화사하게 웃었다.
* * *
“와아! 황녀님! 여기도 봐 주세요, 제발.”
“꽃을 더 뿌려 주세요!”
“저희 아이. 아이에게 축사를 해 주십시오!”
“샤하드 황자님, 만세!”
선두에는 금과 황금색 술로 장식한 여덟 마리의 하얀 말이 끄는 마차가.
그 뒤로는 기사와 마법사들이 줄지어 행진했다.
샤하드와 세리아가 희고 붉은 꽃을 뿌리고 기사들이 한 번씩 오와 열을 맞춘 그대로 검을 멋있게 뽑아 들었으며 마법사들이 종종 허공으로 불꽃이나 얼음을 피워 올렸다.
황실의 혈통이 건재하며 황실의 기사와 마법사들은 이렇게나 강하고 멋지다는 것을 과시하는 행사.
외곽을 거의 다 돈 마차가 천천히 중앙 광장으로 향할 때쯤 세리아가 하늘에 뜬 자신의 모습을 곁눈으로 흘긋 바라보았다.
영상으로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데다 귀족이 가장 많이 기다리고 있는 광장 근처.
‘지금이야.’
세리아가 새로운 꽃잎 바구니를 손에 들고서는 하늘 높이 힘차게 던졌다.
그리고는 자신의 트레잇.
[마나친화력]을 사용해 마치 봄의 민들레 홀씨처럼. 겨울의 눈송이처럼.사방으로 꽃잎을 퍼트리며 일부러 손을 움직여 그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꽃잎들이 바람처럼 쓸고 가게 하자 모두가 깜짝 놀란 얼굴로 세리아를 바라보았다.
“황, 황녀님이!”
“세상에… 이번 황실에서는 발표를 안 해서 다들.”
“큼, 흠!”
모두가 말을 아꼈다.
이번 황실의 혈통 중 제대로 된 트레잇을 타고난 이들이 없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으나 그것을 대놓고 입에 올리는 이가 지금 있을 리 없었다.
‘성공이야.’
이것으로 인해 다른 누구도 아닌 세리아 자신이 뛰어난 트레잇을 가진 황족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퍼지게 될 것이다.
누구보다 황제라는 자리에 정통성 있는 존재.
제1황녀. 황제와 가장 흡사한 금발.
그리고 트레잇까지.
일부러 힘을 써 영상을 띄운 보람이 있는 반응들.
이 광장뿐만이 아닌 영상이 띄워진 모든 곳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에 세리아가 성공의 기쁨으로 전율하는데 또다시 탄성이 터졌다.
“상처가 나아!”
“제가 압니다. 이 힘은……! 신성력입니다.”
“아니, 신성력이 아니라 신성 그 자체예요!”
신성? 세리아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 자신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샤하드!’
샤하드가 뿌리는 하얀 꽃잎.
그것이 은은한 빛을 뿌렸다.
바람에 산들산들 날아간 그것이 누군가의 이마에 닿자 찢어진 눈썹이.
어린아이의 까진 무릎이.
나이 든 노인의 허리 통증이.
그 꽃잎에 깃든 신성으로 말미암아 치유되고 회복되고 경감한다.
“나도! 나도 아파요!”
“이쪽도 뿌려 주세요! 샤하드 황자님, 여기요, 여기!”
그에 세리아의 붉은 꽃잎을 양손으로 받던 사람들이 그것을 내팽개치고 손을 들어 이곳을 보라는 듯 소리쳤다.
“내가 잠시 네 곁에 서도 될까?”
그 모습에 샤하드가 세리아에게 속삭였고 세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질근거리다가 얼른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세상에, 언제 트레잇을 각성한 거야?”
“글쎄… 아마 너와 비슷하게?”
샤하드가 쿡쿡 웃으며 몸 돌려 사람들에게 신성이 담긴 꽃잎을 뿌렸고 그에 세리아가 남몰래 웃으며 이를 뿌득 갈았다.
‘더 빨리 죽였어야 했는데…….’
가장 신경 쓰이던 아리아나 다른 이들이 아닌.
곧 죽을 거 같아 최소한의 감시 정도만 붙였던 샤하드가 세리아 자신의 대항마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성신교에서 정보를 줄 때 바로 암살자를 보냈어야 했어.’
보기에 불쌍하고 처량해 보일 만큼.
그 타고난 육신이 너무나 하찮아 술로 지새우며 남은 수명도 깎아 먹던 샤하드였다.
검술을 배우지 않은 세리아라도 있는 힘껏 팔을 잡고 비틀거나 꺾으면 그 뼈가 분명 부러졌으리라.
그야말로 겨우 숨만 붙어 있던 게 샤하드였는데.
어느 순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거처에만 있더니 훤칠하게 성장하고 몸은 근육이 붙었으며.
‘신성이라니…….’
자신이 봉인한 트레잇 중 가장 까다로운 것까지 해방하지 않았나.
20년이 넘게 봉인된 트레잇이었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 동안 저리 능숙해졌다는 건 거의 매일같이 피를 토하는 정도의 훈련을 거듭했다는 것.
‘독한 자식.’
하지만 그래도 세리아 자신이 유리했다.
어차피 둘 다 트레잇이 있다면 그 부분에서 점수는 동일.
하지만 세리아 자신은 그동안 빈민 구제 활동이나 예술가의 후원 등으로 쌓은 이미지가 있다.
누구보다도 대중에게 얼굴을 많이 비췄을 뿐 아니라 인지도 또한 높은 편.
그러나 샤하드는 타고난 몸의 상태가 미천한지라 대외 활동은 거의 전무.
몸을 회복한 뒤에도 눈에 띄는 행각은 없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저 신성의 힘 때문에 사람들이 환호하더라도 상관없지.
‘게다가 귀족들은 거의 다 내 편이니까.’
이제야 몸이 회복된 샤하드다.
거기에 샤하드의 외가는 수도가 아닌 지방의 대귀족.
이미 수도의 귀족 대부분은 세리아나 세리아의 외가. 혹은 유모의 가문과 손을 잡은 상태.
그 기반 자체가 다르지.
“역시 세리아 황녀.”
“기품이 남다르구려.”
“저만한 군주의 자질이 또 있겠어요?”
광장에 도달해 천천히 마차에서 내리니 광장 주변에 마련된 무대 옆 객석에 앉아 있던 귀족들이 바람잡이처럼 한마디씩 툭툭 내뱉는다.
이번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축사를 읊기 위해 단상에 오르며 세리아가 먼저 놓인 양피지를 손에 들었다.
“어느덧 봄이 지나고…….”
‘어느덧 봄이…….’
‘어느덧…….’
원래 소리가 없이 영상만 띄우던 아티팩트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마정석이 소요되는지라 축사를 읊을 때만 소리를 전송하여 저 멀리까지 희미하게 메아리처럼 울렸다.
“한동안 많은 일이 있었으나 테이트리아는.”
그리고 더불어 세리아 말고 샤하드도 축사를 읊기 시작했다.
서로 주고받으며 테이트리아의 안녕과 황제의 강녕을 기원하는 축사를 내뱉은 뒤 양피지에 써져 있던 마지막 문장을 다 읽어 갈 때쯤 세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와 함께 빈민을 구제하고 병자를 도우며 약자를 보호하던 이들이 있습니다.”
아직 만신전에 속한 이들은 아니나 신에 대한 진심만큼은 거짓이 없는 분들입니다. 하며 세리아가 자신의 마르는 입술을 살짝 핥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저와 함께 계속 사람들을 위해 힘써 주시길 바라며 이 자리를 빌려 성신교의 교인분들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잠시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시겠어요?”
세리아가 화사하게 웃으며 보드랍고 하얀 손을 내미니 누군가 군중들 속에서 단상 위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영광입니다. 저희가 하는 일이라고는 살아 있는 신, 그분의 뜻에 따라 힘든 이들을 평온으로 이끌어준 것뿐입니다.”
“살아 있는 신을 위하여 그분의 뜻대로 모두에게 안녕을…….”
중년의 사내와 중년의 여인이 나와 하는 말에 세리아와 샤하드가 동시에 웃었다.
그리고 세리아가 성신교라 부른 그들에 대해 한마디 더 하려는데 순간 저 앞쪽에서 웅성거리며 인파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분들은……?”
천천히 바람이 불었다.
저 멀리서 여기까지.
인파가 파도처럼 갈라지는 그 끝에서 밀려온 바람이 세리아를 스쳐 등 뒤로 지나간다.
그리고 그 바람결에 희미하고 은은한 꽃향기가 묻어 번졌다.
종일 꽃잎을 뿌려 코에 익숙한 그 향기가 아니었다.
은은하고 우아한 은방울꽃 향기.
긴 은보라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연녹색의 어린잎이 돋아난 하얀 나뭇가지 티아라와 하얀 레이스 안대.
몸의 곡선을 따라 흘러내린 옷은 바람에 따라 날개처럼 흔들리며 마치 하늘에서 방금 강림한 여신처럼 보였다.
한 발 한 발 내딛으나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더러움이 그녀를 거부하듯 발끝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한쪽에는 유백색의 거대한 알을 안고.
다른 손에는 노란색 꽃을 들고 그리 걸어오는 여인을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길을 비켜 주고 있었다.
“고귀하신 테이트리아의 핏줄이시어.”
당신 앞에서 감히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 있나이다.
큰소리로 외치지 않았으나 모두의 귀에 들릴 만큼 또렷하고 청아한 목소리.
살짝 내리는 손끝에 쥐여 있던 노란 꽃에서 꽃잎 하나가 떨어지더니 마침 분 바람에 실려 사람이 많아 멀미라도 하는 듯 안색이 새파란 이에게 떨어진다.
이내 옅은 빛이 감돌며 안색이 밝아지고 표정이 환해지는 그 모습에 누군가 중얼거렸다.
“성녀님…….”
“성녀다. 성녀님이야…….”
만신전. 그 많은 신을 모시는 이들이 모인 곳에서도 성녀를 배출한 곳은 한 손에 꼽힐 정도.
모두 그 여인을 바라보며 성녀라 중얼거리는 모습에 세리아가 입술 안쪽을 질근거렸다.
“…하고자 하는 말이 있나요?”
세리아의 말에 성녀라 불린 이가 꽃으로 세리아 옆에 선 이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당신, 이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