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9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95화(295/373)
악신교단에서 체이서가 지녔던 본래의 지위는 집행자.
이것은 단독으로 많은 것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본디 같은 교인들끼리의 처단은 금지되어 있으며 교단 내에 규율과 치안을 담당하는 이들에게 제소해야 한다.
하지만 체이서는 살아 있는 신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이양받은 상태이기에 단독 판단하에 교단 율법을 어긴 이라면 처단 가능했다.
거기에 자신의 휘하가 없어 세력을 꾸릴 수 없는 대신, 그 때문에 다른 세력과도 공조가 가능했다.
그에 암암리에 교단에서 갈라진 세력은 서로 일이 있을 때 반대쪽 세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체이서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지원 요청을 해 왔는데 이번 일 또한 그러했다.
“어지간히 급하셨나 보군요?”
“체이서 님.”
체이서는 아델리안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 직장 동료의 앞에 그림자를 통해 나타나 차갑게 웃었다.
‘무엇을 꾸미고 있을까.’
아델리안에게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전하니 웃으며 잘 다녀오라 했던가.
올 때 손은 가볍게 머리는 무겁게 오라 명하셨으니 그리해야지.
체이서가 자신의 검은 스태프를 바닥에 박은 뒤 그 스태프에서 이어진 그림자를 늘려 의자처럼 앉곤 다리를 꼬아 내려 보았다.
검은 크리스탈을 뱀 머리 형상으로 깎은 스태프의 아래가 마치 수백 마리의 뱀처럼 그림자로 일렁거렸다.
“다행히도 수도 근처에 계셨군요.”
“살아 있는 신께서 알아보라 하신 일을 쫓다 보니 이곳까지 흔적이 이어져 있어서 말이죠.”
도대체 무슨 일로 저를 불렀죠?
하며 검은 뱀 같은 눈동자로 싱글싱글 웃는 체이서를 악신교단의 교인이 허리를 굽히며 올려 보았다.
“오늘 수도에서 축제가 열립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여 불상사가 생기면 도와주십사 하고…….”
교단 내에서 가장 은밀한 비수로 쓰이기도 했던 체이서라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필요하단 말이었다.
그림자와 피를 이용하여 불순분자가 보이면 보이지 않게 암살하는.
그에 체이서가 짐짓 지루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며 한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다른 손은 좀 더 높게 뻗은 그림자 위에 놓아 턱을 괴면서 입을 열었다.
“실망이네요.”
당신들은 누구보다 교단을 수면 위로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살아 있는 신, 그분의 의지대로 행하자는 파 아니었나요?
“전 또 뭐라고……. 적어도 광장에 이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을 때 분노나 살의 같은 감정마법이라도 써 달라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럼 볼만하지 않겠어요?
제국의 수도에서 일어난 무차별 살인과 학살. 혼란과 공포.
갑자기 사람들이 분노와 살의로 뭉쳐 타인을 공격하고 짓밟고 죽이고.
“그것에서 비롯된 혼란과 공포의 감정을 뽑아 바쳐도 제법 괜찮을 거 같은데.”
어차피 저 겁쟁이들은 냉큼 그러자 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체이서가 도발하듯 말하자 예상대로 사내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무, 물론 그리 해도 좋겠으나 이번은 아닙니다. 세리아 황녀와 손을 잡았습니다. 오늘 황녀가 우리를 대중에게 소개할 것입니다.”
천천히 스며들어 행할 것입니다. 개중 쓸모 있는 이들은 교단으로 깊이 끌어들이고 쭉정이 같은 이들은 필요한 만큼만 쓰다 새로운 세계의 밑거름으로 뿌려야겠지요.
“그동안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혹여 촘촘한 감시의 그물을 빠져나간 물고기나 아니면 눈치 빠른, 정의감에 불타는 치안대원이라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그러니 혹 저희의 행사를 망칠 것 같은 이가 나타난다면 부탁드립니다. 체이서 님.”
체이서가 걸터앉은 그림자가 안개처럼 흩어진다.
탁 하고 가벼운 발소리를 내며 바닥에 발을 딛은 체이서가 느슨하게 팔짱을 끼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나 말고 또 누굴 불렀죠?”
“근처에 있던 제물조를 추가로 호출하였습니다.”
아, 잘됐네.
체이서가 비릿하게 웃었다.
뱀처럼 일렁거리던 스태프의 그림자와 방금 안개처럼 흩어진 척 잘게 쪼개진 그림자가 이 방의 모든 사람들의 구두 아래, 소매 뒤에, 오금 옆에 들러붙은 것을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아무리 나라도 황실의 마법사와 기사들이 너무 많으면 신경 쓰여.
제대로 한판 붙을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 퍼레이드 행렬이 광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딱 그 전까지 혹여 발견되는 불순한 것들을 내가 처리해 주겠어요.
“그 정도면 괜찮죠?”
체이서의 말에 상대가 연신 감사하다며 허리를 굽신거리는 것에 체이서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멍청한 것들.’
아델리안의 계획은 퍼레이드 행렬이, 세리아가 광장으로 들어선 이후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이 말 한마디로 체이서는 이들에게 자신이 배신자라는 그 어떤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생색은 낼 수 있는 거지.
더불어.
‘소르페와 연구한 마법이 생각보다 금방 쓰이게 되었군요.’
특정한 누군가에 대한 기억 조작.
악신교단의 제물조가 만난 루나와 리프, 레이첼의 정보를 지우기 위한 마법.
그것을 체이서와 소르페는 결국 완성했었다.
그리고 방금 그것이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들러붙었으니 루나와 리프. 레이첼을 만난 이들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 루나 일행의 얼굴이, 그 일이 희미해지다 결국은 지워지겠지.
그것은 마치 전염병처럼 만나는 이들마다 숙주 삼아 퍼지게 되리라.
그 후 그들이 도움을 요청했다던 그 제물조부터 시작해 오늘 일을 돕고 본단으로 돌아가는 이의 몸에 들러붙어 본단의 다른 이들에게도.
그리고 본단에서 각 곳의 지부에, 지부에서 또 다른 소규모 점조직으로.
‘게다가 한 가지 장난질을 쳐놨거든요.’
악신교단뿐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퍼질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다면 내뿜는 최소한의 마나를 양분으로 삼아 악착같이 버티겠지.
곰팡이의 포자처럼, 전염병의 그것처럼 단순하게 사람에게 묻어만 있다가 언젠가 소르페와 체이서 자신이 원하는 날.
그날이 혹 도래한다면 발아하게 될 것이다.
* * *
성신교의 62번 제물 수색조와 의식조의 통합 관리자.
멕켄이 늘 입던 로브 대신 고급스러운 일상복을 입고 안쪽에 연한 음각으로 교단의 심벌이 새겨진 금속 팔찌를 손목에 차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때 이후 살이 조금 더 내렸는지 뺨이 들어가고 눈은 더 형형해졌다.
‘그 무리.’
동굴에서 만난, 수인족이 끼어 있던 이들 덕에 자신의 손으로 생때같은 부하들을 죽이지 않았나.
그러고 끝났다면 속이 이렇게 타들어 가진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본단에 난 화재와 살육.
그 근간에 자신이 버리고 온 수하의 배신이 있었지 않았던가.
그 덕에 명목상으로 주어지는 순번이나 멕켄 자신이 맡은 조가 60번 대까지 밀리는 일까지 일어났다.
말로는 그냥 붙인 숫자라고는 하나 좀 더 세력의 입맛에 맞출수록, 혹은 조가 강할수록. 그도 아니면 수완이 능란하거나 조를 이끄는 대장의 힘이 강력할수록 앞번호를 가지는 편이니.
원래 30번 대 안에 있었던 멕켄으로서는 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데이지를 제외한 제물 의식조를 다 날려 버린 대가이니 어쩔 수 없지.’
일단은 수도에서 자리를 채워 달라던 일을 마치고 내려간 뒤 다시 괜찮은 인재를 찾아 보충하는 수밖에.
그새 까슬하게 올라온 수염을 손으로 매만지며 멕켄이 거울을 바라보던 그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대장. 아직도 준비해요? 뭐 그리 늦어. 얼굴에 적당히 바르세요.”
“헛소리는.”
“이야― 옷을 그렇게 입으니 진짜 귀족 같네, 가 아니고 귀족이긴 하지.”
말단 귀족 작위를 교단에서 돈 주고 많이 샀잖아요.
그중 하나 받으셨다며.
“성은 뭐로 정하셨는데요.”
데이지가 실실 웃으며 하는 말에 멕켄이 고개를 한번 저었다.
“어차피 세리아 황녀의 지지 세력을 부풀리는 용도로 주어진 거다.”
우리가 할 일은 광장에서 세리아 황녀가 말할 때마다 박수를 친 뒤 누군가 바람을 잡으면 그것에 동조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할 필요 없지.”
멕켄의 말에 호위기사로 꾸민 듯 몸에 딱 맞춘 튼튼한 가죽 갑옷을 옷 위에 입은 데이지가 으쓱거렸다.
“재미없네요. 그냥 박수나 치다가 수도에서 내려가야 한다니.”
그나저나 그거 들으셨슴까?
“체이서 집행관이 온답니다.”
그에 멕켄이 흠, 소리를 내며 작은 그릇에 수액을 담아 나무 솔로 저어 거품을 내기 시작했다.
“너무 과한 이까지 부르는군.”
그에게 대가를 지불하려면 적지 않을 텐데. 하는 말에 데이지가 흐흐 웃었다.
“어차피 우리가 지불할 게 아닌데요, 뭘.”
감정마법을 마음껏 써 볼 생체실험용 인간을 내어 주건 혹은 골드를 한 아름 안겨 주건 우리 주머니에서 나가는 게 아니니 상관없죠.
하는 데이지의 말에 거품 낸 것을 수염 위에 바르며 멕켄이 말했다.
“아쉬운 일이야.”
“무엇이 말입니까, 대장?”
“그도 나도 넓은 곳에서 많은 이들을 상대할 때 가장 효율이 좋으니.”
멕켄은 바람과 화염술사.
바람은 불을 더 크게.
불은 바람을 더 강하게.
넓게 펼쳐진 공간에 태울 것이 많을수록, 바람이 더욱 강해지는 골목이나 갈림길이 많아질수록 멕켄은 강해진다.
그는 단 하나를 상대하는 것보다 광역 마법에 주특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체이서 또한 마찬가지니까.
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정마법을 걸어 부추긴 후 서로가 서로를 죽이며 흐르는 피로 또다시.
더불어 밤이면 세상 전부가 그림자요.
밝은 낮이면 내 발 바로 아래가 짙은 그림자이니.
체이서는 살아 있는 신이 직접 공들여 키운 성신교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황실과 전면전이 일어나도 좋을 일이지.”
이렇게 사람이 모인 데다 황족이 거리에 나오는 건 흔치 않으니.
오늘 나오는 이가 교와 손잡은 세리아 황녀가 아니었다면.
‘하긴 그래도 겁쟁이들은 다른 선택을 했겠지.’
조금 더 양의 탈을 쓰고 사람을 지배해야 한다는 이들이니.
면도칼로 거품에 젖은 수염을 사각사각 깎는 멕켄을 보며 데이지가 대답했다.
“뭐, 나중에 오지 않겠습니까?”
교가 결국 대륙을 지배하고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을 어느 정도 솎아 낼 시간이 오면.
쓸모 있는 것들만 남기기 위해선 조금 거친 방법도 필요하니까.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성신교가 널리 퍼져야 했다. 어차피 당분간은 무혈 전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세리아 황녀를 등에 업고.
그런데 준비해서 광장에 참석한 멕켄과 데이지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예상치 못한 거였다.
“무, 뭐? 뭐라고 하셨죠?”
당황했는지 제대로 표정 관리를 못 하고 얼빠진 얼굴로 되묻는 세리아 황녀와.
“저자는 이단이라 아뢰었습니다.”
당당하게 단상 위에 올라간 성신교의 주교 중 한 명을 손으로 가리키는 여인.
누가 보아도 성녀의 표상이다.
그 본신에서는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으나 들고 있는 알과 꽃에서 번지는 신성력이 확실히 성녀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데이지가 그걸 보며 입을 가리고 푸흡 웃었다.
“이단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주교 얼굴은 볼만하네요.”
진짜 이단, 이도교가 누군데.
데이지가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살아 있는 신을 모시지 않는 불경한 것들이 감히.
주교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반문했다.
“내가 왜 이단이라는 것이요.”
“만신전의 신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신들은 우리를 굽어살피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기 신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천상의 어느 곳에서.
여인이 우아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덧이었다.
“그대의 신 또한 저 높은 곳에 계십니까.”
그 말에 멕켄과 데이지의 눈이 가늘어졌다.
“알고 말하는군.”
“죽일까요?”
“지금은 보는 눈이 많아.”
성신교의 가장 근본적인 믿음은 살아 있는 신.
죽어 저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며 개에게 먹이를 던져 주듯 한 번씩 신성력과 기적이라는 이름의 사료를 던져 주는 신이 아닌.
이 땅에 강림하여 두 발로 땅을 딛고 살아 숨 쉬는, 말 그대로 살아 존재하는 신.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믿음이기에.
그것을 부정할 수 없는 주교의 얼굴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