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9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97화(297/373)
술렁거림.
다름 아닌 제국의 황녀가 소개하는 이를 이단이라 선포했다.
세리아 황녀가 자신이 귀족들에게 지지받는 모습을 대중에게 각인시켜 주기 위해 큰 공을 들여 띄운 영상 아티팩트 덕에 그 모습이 수도 전체에 퍼져 나갔음이라.
뒤늦게 세리아 쪽에서 끄려고 신호를 보냈으나 뭐가 어찌 된 건지 영상 아티팩트를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붙어 있던 마법사들이 마나를 끊었음에도 아티팩트가 멀쩡하다.
마치 누군가 이 많은 아티팩트의 권한을 강탈해 마나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곤란하군.’
멕켄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희의 신은…….”
그리고 질문을 받은 주교가 머뭇거리다 대답을 더 이상 미루지 못하는 분위기에 입을 열었다.
감히 살아 있는 신.
그분을 부정하지는 못할 터.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교리가 전파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의 신은 살아 있으며 이 땅에 실존한다 읊으면 득보다 실이 큰 상황.
“대장… 어쩝니까.”
자신과 데이지 말고도 그것을 깨달은 성신교의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것을 보며 멕켄은 지체 없이 마나를 모았다.
“지원 요청을 해. 체이서 집행관 정도라면 우리를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도와줄 수는 있을 터.”
“네.”
멕켄은 마나로 마치 실을 짜듯 허공에서 얽어 자신의 근처가 아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화염구를 만들어 그대로 단상으로 던졌다.
방향을 한번 비틀었으니 마나에 유독 민감하고 예리한 사람이 아닌 한 이곳을 바로 알 수는 없는 일.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돌리는 순간 얼굴이 흐려지는 자.
로브를 쓰고 있었으나 그 황금색 눈동자만큼은 또렷하다.
누군가 자신이 마법을 썼음을 확실히 알고 있다.
“일단 자리를 피하셔야겠습니다!”
“그, 그래요.”
멕켄이 쓴 마법 덕에 단상 위는 소란스러웠다.
꼿꼿하게 서 있는 샤하드나 망할 말을 지껄이던 여인과는 달리 세리아는 주교의 부축을 받으며 급하게 내려간다.
그 모습이 영상 아티팩트로 계속 송출이 되고 있었다.
“곤란한가 봐요?”
그리고 주위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싶더니 체이서가 옆에서 나타나 입꼬리를 올린다.
분명 밝은색의 예복을 입었는데도 온통 검게 그을린 것 같은 사내.
그 꺼림직한 느낌에 멕켄이 잠시 바라보다가 손을 내민다.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도와주시오.”
“뭐, 좋아요. 그런 걸 위해 지원 요청을 받고 온 거니까.”
멕켄이 한 손으로는 체이서가 내민 손을, 다른 손으로는 데이지를 잡자 마치 거대한 뱀의 아가리가 그를 집어삼킨 듯 그림자가 머리부터 덮었다.
잠시간의 암전.
눈앞에서 빛이 사라진다.
반사적으로 긴장하여 마나를 당기듯 하지만 어느 순간 멕켄과 데이지는 광장의 바깥, 인파의 외곽 구석 그림자에 서 있었다.
“멀리 데려다줄 필요는 없겠죠?”
체이서가 낮게 목을 긁듯 웃으며 다시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그 모습에 데이지가 끙, 하며 한숨을 쉬었다.
“젠장. 재수 옴 붙었나 봐요, 대장.”
하며 데이지가 울분을 토하는데 멕켄이 일단 그녀를 잡고 인파를 헤치며 물결을 거스르듯 밖으로 걸었다.
“화나네, 정말.”
지금까지 살면서 꽁무니를 내뺀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 짧은 기간에 두 번이나!
데이지가 질질 끌려가듯 팔을 잡혀가다가 순간 ‘어?’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조용히 벗어나도록 하지.”
보는 눈이 적은 곳까지 가면 바람도 다루는 마법사인 멕켄인지라 금방 아주 멀리까지 도주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데이지가 계속 얼빠진 듯 소리를 흘리다 멕켄을 휙 고개 돌려 바라보았다.
“…대장.”
“왜 그러나.”
“…그 녀석들 어찌 생겼었죠? 동굴에서 우릴 엿 먹인 그들… 얼굴이 기억이 안 나.”
내가 우리 애들 복수하려고 똑똑히 기억해 뒀는데.
아시잖아요, 저 은근히 기억력 좋은 거.
데이지의 말에 멕켄이 낮게 한숨 쉬며 바라보았다.
“그걸 왜 기억을…….”
멕켄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다 문득 바삐 움직이던 걸음을 멈췄다.
아주 잠시.
한 걸음 정도 내디딜 시간 동안 멈췄던 발이 빠르게 다시 움직인다.
“…말이 안 되는군.”
“이게 무슨… 뭐지. 이게 뭐야.”
분명 그 사건은 기억난다.
그 피비린내와 열기.
그리고 결국 자신들을 원망하며 죽었을 조원들까지도.
그들이 무엇을 먹었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그런 소소한 것들도 기억나는데 어째서.
그들의 생김새가 기억나지 않지?
그들이 했던 말도, 공격 방식도 기억나는데.
아니, 정확하게는 기억이라기보다는 어렴풋한 그 느낌.
너무나 오래되어 흐려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선명한데 그들만이 흐릿하다.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멕켄은 뛰어난 마법사.
지금 자신과 데이지에게 벌어진 일이 어찌 된 것인지 감이 잡혔다.
그래서 더 충격이 몸을 휩쓸었다.
이렇게 누군가의 기억을 주무를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기억 및 감정을 다루는 체이서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
만약 체이서가 기억과 감정 마법을 걸었다면 자신이 바로 알았을 것이나 이것은 마치 가랑비처럼 어느 순간 그렇게 된 이후였다.
‘도대체 우리의 적이 무어란 말이지?’
누군가 성신교를 가로막고 있다.
그 직감에 멕켄이 데이지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 * *
“지금이라도 돌아가셔야…….”
“이미 늦었어! 이게 뭐야, 말도 안 돼. 그동안 해 온 게 다 망가졌어.”
세리아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고작 화염구 하나에 겁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만으론 크게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 불덩이 하나가 아닌 더 많은 것이 쏟아졌다면?
그러다 우연하게 옷이 찢기거나 조금 타 버리기라도 했다면.
아님 물에 관련된 마법을 맞아 색을 바꿔 둔 피부가 지워져 나타났다면?
세리아가 자신의 어깨를 꽉 쥐며 손톱을 세우자 까득 하고 소리가 났다.
“이건 언제까지 달고 있어야 해!”
점차 몸에 크게 번졌다.
혼자 어떻게든 처리하려 했지만 부위가 커지자 결국 유모에게 말했다.
그 뒤로 은밀하게 주술사며 신관이며 마법사를 데려왔었지.
처음엔 전부 자신은 할 수 없다 말하는 그들을 말할 때마다 죽여 버리지 않았나.
하지만 그래서는 연구도 분석도 되지 않았기에 몇 명은 살려둔 채로 신의 계약서에 서명시킨 뒤 몸을 돌릴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고…….”
“유모!”
날 봐… 나를 봐.
“점점 더 커지고 많아져.”
결국 칼을 들고 비늘을 뽑아 봤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며칠 안에 다시 비늘이 나고 다시 나면 더 튼튼하게 난다.
분석한 마법사의 말로는 용린에 가깝다는데 그런 게 왜 황녀인 세리아 자신의 몸에 난단 말인가.
“이게 다 그들 때문이야…….”
그들이 부작용 없을 거라며. 없게 해 준다며?
눈 감은 성녀상에게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을 꼭 비틀어 들어준다고 했다.
소원 하나에 저주가 하나.
하지만 그 반동을 성신교에서 대신 져 준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몸에 이런 게 나지?
왜 더 시력이 좋아지고 후각이 뛰어나지고.
빵보다 핏기가 흐르는 스테이크가 더 맛있어지고.
가끔은 핏물이 흐르는…….
세리아가 고개를 한 번 흔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소개도 해 줬잖아. 그런데 그 이상한 여자가 하는 말에 제대로 대답도 못 해?”
난 할 만큼 해 줬으니 약속을 지키라고 해!
악을 쓰는 세리아를 보며 유모가 세상천지에 가장 서러운 것을 보는 눈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세리아를 끌어안았다.
“그럼요. 그들이, 성신교가 감내할 일이에요. 황태녀님은 기다리기만 하세요.”
그들을 압박해서라도, 아니면 연구에 시달리는 주술사와 마법사. 신관들을 쥐어짜서라도 되돌려 드릴 테니…….
유모가 안고 도닥이며 속삭이자 그제야 세리아가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으로 눈물을 글썽였다.
“유모… 나 무서워…….”
나 괴물이 되면 어떡해?
그래서 손가락질당하면? 탑에 유폐되거나 쫓겨나면?
모두가 날 미워하면 어떡하지?
난 이 나라의 황제가 될 건데.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그들을 어여쁘게 보고 다스릴 의무가 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역시 성신교 그들이? 아니면, 아니야.
“애초에 눈 감은 성녀상만 아니었어도…….”
다른 루트로 트레잇을 얻으려 하고 있었잖아.
나 마법과 정령술 공부도 계속했어.
혹시 알아? 조금만 더 있었으면 스스로 깨우쳤을지?
“이게 다 성녀상 때문이야. 괜히 아델리안이 그걸 줘서!”
아델리안!
아델리안……?
세리아가 자신을 안고 있던 유모를 밀치고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지루하단 얼굴의, 얼음으로 빚은 것 같은 사내가 차가운 눈동자로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크루거 가문에서도 이번에 샤하드 황자의 의견에 일부 동의하는 바.”
영상은 그의 미려한 목소리까지 울려 내고 있었다.
샤하드 홀로 단상에 서 제국의 대공가 셋에 동의를 받고 동시에 저명한 인사들.
인망 높은 라인하르트 변경백부터 타국의 황족이나 다름없는 하이엘프 대장로에, 게드만 대공의 반려이자 저 북쪽을 제국과 양분한다는 아이스 엘프의 대표 르쉬올라.
명망을 떨치는 아카데미의 이사장 제노윈과 지금 바로 저 자리에서 새로운 종교로 공언된 이노센트교의 성녀까지.
원래라면 자신이 저기 서서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들과 성신교가 있어야 하는 곳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게 다 그 성녀상과 더불어 중간에 샤하드의 입지에 힘을 실어 준 카이만 때문 아닌가.
게드만이야 그 성정에 지루하다 할 수 있지만 그 말을 놓치지 않고 은근슬쩍 흐름을 잡아 이번 행사를 모두 샤하드가 단독으로 마무리하게 만든 건?
세 대공가 중 유일하게 후계자만 참석한 헉슬리가와 원래도 과묵하기로 유명한 게드만 대공은 그렇다 쳐도.
능구렁이를 수백 마리 잡아먹었단 소문을 들으며 그 입놀림 한 번에 대륙의 골드가 들썩인다는 카이만이 자신의 입지를 모를까.
마치 모든 것을 조종하는 것처럼 광오하게 앉은 카이만을 바라보다가 마찬가지로 언제나 오만하기 그지없는 아델리안을 떠올렸다.
“…아델리안을 만나야겠어.”
애초에 성녀상이 내 손에 들어온 거부터 이상하잖아. 그렇지 않아?
아델리안이 카이만의 명령을 받은 게 아닐까?
유력한 차기 황제인 나를 끌어내리고 저 허약하고 금방 망가질 게 뻔했던 샤하드를 올린 것은 카이만인 거지.
그게 아니면 말이 되지 않아.
“크루거 가문이잖아. 샤하드를 잠시라도 멀쩡하게 만들 약물을 어떻게든 구했을 거야.”
마약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 샤하드를 황제에 올린 뒤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하려고 드는 걸지도.
“유명하잖아.”
카이만이 자신의 아내를 살리지 못했던 일. 그 일로 황제에게 왔던 것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몰래 퍼진 사실이잖아.
“그러니 아델리안을 만나야겠어.”
내 생각이 맞다면, 아델리안이 카이만의 사주를 받아 나를 이 몰골로 만들었다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예전보다 어쩐지 충동적으로 구는 세리아를 유모가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자수정색 눈동자의 동공이 아주 조금 길어진 것 같아서 유모가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니 착각이었다는 듯 보라색의 깊은 눈동자만 보였다.
“그들이 아무리 수를 쓴다 해도 결국 황제의 자리는 세리아 황태녀님의 것이니까요. 그러니 진정하세요.”
유모가 그리 말하며 세리아를 끌어안고는 이제 드레스 위로도 실루엣이 보이는 비늘을 가리듯 손을 덮어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