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299)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299화(299/373)
인식 저하 마법 배지를 찬 나와 케인, 루나를 세리아 측 사람이 어찌 특정 지었는지 처음엔 몰랐다.
하지만 인식 저하 마법 자체가 굉장히 쓰기 까다로운 마법이니 그것을 상시 적용 가능한 아티팩트라면 더욱 적은 것은 자명한 사실.
더불어 그런 아티팩트를 축제 기간 동안 쓰기 위해 샤하드를 통해서 황실에 신고를 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결국 인식 저하 마법을 쓴 세 명 이상의 무리를 쫓으면 나 외엔 없었던 거지.
“황녀께서는 밤부터 시작되는 무도회에 참석하실 줄 알았는데.”
굳이 나를 당장 부를 필요가 있었냐는 듯 말을 건넸지만 안내하는 이는 묵묵부답.
그냥 나를 데려가는 것이 자기 할 일의 끝이라는 듯 대꾸도 없이 걷는다.
나는 더 이상 말 걸기를 단념한 뒤 인식 저하 마법을 풀기 위해 5X5 랜덤 외형 큐브를 쓴 케인을 흘긋 바라보았다.
일부러 모든 면을 다 맞추지 않은 덕에 굉장히 다채로운 얼굴이 된 케인을 루나도 흘긋흘긋 바라본다.
눈길을 잡아끄는 못생김이야.
그건 우리를 안내하는 이들도 같은 마음인지 주위를 포위하듯 서서 따라오던 이들이 연신 케인을 바라보다 문득 루나에게 시선이 닿으면 살짝 찡그렸다.
역시 종족 차별의 도시라니까 여기.
나는 그 시선을 가로막듯 루나 옆에 붙어 서서는 황성이 아닌 어느 귀족의 별장으로 보이는 건물로 안내하는 이를 따라 들어갔다.
아마 세리아 황녀를 지지하는 누군가의 별장인 모양.
이미 사람은 물린 듯 고요한 복도를 지나서는 큰 문 앞에 다다르자 우리를 안내하던 이가 잠시 멈춰 뒤를 돌았다.
“이 문 뒤로는 아델리안 공자만 들어가야 합니다.”
“그건 곤란해요. 도련님께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그에 루나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눈앞의 사람이 표정을 구겼다.
“어딜…….”
뒷말은 내 눈치를 보며 삼켰지만 할 말이야 뻔하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에 대한 반감이 왜 이리도 심한 것일까.
유독 수도와 귀족들에게서.
나는 가볍고 멍청한 표정을 애써 지으며 실실 웃었다.
“맞아, 이런 곳에서 어찌 나 혼자 저 안에 들어가겠어.”
누굴 믿고? 뭘 믿고? 그냥 다 같이 들어갈게.
하며 억지를 부리는 척하자 살짝 경멸에 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황녀 저하의 부름입니다. 그분께서 안전을 보장하신 것이니 믿으셔야 하는 게 맞습니다. 감히 황실의 혈통 앞에 함부로 검을 든 자를 들일 수는 없습니다.”
정 그러면 바로 옆방에 대기하는 것 정도는 허락해 주겠다며 아주 선심 쓰듯 말하는데.
누가 보면 진짠 줄 알겠어?
아델리안의 기억을 못 찾았으면 모를까. 나름 귀족으로 제대로 교육을 받았던 몸이다.
아무리 황실이라고 하더라도 정식 초대장도 없이 초대하는 것은 강제성이 없다.
게다가 황제가 아닌 일반 황실의 혈통을 공식 석상이 아닌 곳에서 만날 때는 호위기사를 최대 둘까지는 대동할 수 있는 게 제국법에 있는데 무슨.
하지만 재능도 트레잇도 없이 멍청하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망나니 아델리안이 그런 말을 하면 컨셉에 어긋나지.
더불어 케인과 루나면 벽을 부수고 바로 올 수 있다.
“그럼 옆에서 기다려 줘.”
“네, 도련님.”
내 말에 루나가 잘 다녀오라는 듯 양손을 쥐고 바라보고 케인은 다채로운 얼굴로 고개만 까닥인다.
사실 눈치를 보아하니 저 옆방에서 보통의 호위기사였다면 약간의 고초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세리아의 기사들에게 묵념.’
나는 손 한 번 흔들고 살짝 열어 주는 문 사이로 들어갔다.
등 뒤에서 문이 쿵 하고 닫히는 소리.
상대적으로 어두운 방 안은 제법 컸고 소파에는 세리아가 앉아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며 그녀의 유모가 소파 뒤에 서 있었다.
“이렇게는 오랜만에 뵙습니다. 세리아 황녀님. 안녕하십니까.”
내가 예법을 갖춰 인사하자 세리아가 웃음기도 지운 채 입을 연다.
“별로 안녕하지 못해요.”
“몸이 역시 안 좋으십니까.”
내 물음에 세리아가 눈꼬리를 높게 치켜뜬다.
“지금 저에게 몸이 안 좋냐 물었나요? 이 뻔뻔한…….”
원래라면 웃으면서 살짝 가면을 쓰고 날 대해야 하는데 지금 상태를 보니 확실히 멘탈에 금이 간 모양.
하긴 지금까지 고대했던 그 모든 것이 망가지기 시작했으니 그럴 만하지.
하다못해 게임 한 판도 내가 생각한 흐름대로 안 흘러가면 샷건 치는 사람이 널렸다.
그런데 그 오랜 시간을 공들인 일이 천 단추부터 몇 개가 어긋났는지 모를 정도로 비틀렸는데 심기가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지.
‘하지만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살짝 어두운 실내다 보니 세리아의 눈에 빛이 도는 것이 보인다.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뻔뻔하다뇨.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내 말에 세리아가 벌떡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온다.
“…오늘 일. 카이만. 그자가 다 꾸민 짓이지?”
“그자라뇨. 말씀이 지나치십니다만.”
“황녀님. 진정하세요.”
카이만이 배후라고 확신한 듯 나를 노려보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세리아를 유모가 잡는데 그 손마저 뿌리친다.
“유모는 나서지 마.”
세리아의 말에 유모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일단 멈춰 서고 나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어색하게 웃는 척하며 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단상 위에서 있었던 일 덕에 많이 놀라신 건 알겠지만…….”
그래도 샤하드 황자께서 마무리를 잘 하신 덕에 별 탈 없이 축제가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하며 슬쩍 도발하니 세리아가 나에게로 훅 고개를 들이민다.
그에 아주, 아주 옅게 무슨 비린내 같은 것이 꽃향기와 엉켜 풍겼다.
“샤하드? 맞아, 샤하드부터 이상했어.”
어떻게 샤하드가 그렇게 건강해질 수 있지?
카이만이 샤하드에게 무엇을 지원한 거야.
“오늘 그 모습을 보고 다들 뭐라고 생각했을 거라 여겨? 아델리안 공자.”
갑작스러운 화염구의 등장과 폭발.
그럼 2차 테러를 대비해서 사람들을 내보내고 황족은 대피하는 게 맞잖아.
내가 대응한 게 틀린 방법이 아닌데.
“샤하드는 알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 그 이후로는 공격이 없다는 걸.”
왜냐면 그 화염구는 카이만 쪽에서 준비한 퍼포먼스니까.
하며 세리아가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데.
다 틀렸다.
그 화염구는 악신교단의 누군가가 던진 공격이고 샤하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지.
다만 오랜만에 크게 열린 축제를 망칠 수 없어 샤하드가 남아 수습한 거고.
나는 가까이 온 덕에 옷을 편하게 입은 듯 목이 느슨한 세리아의 목덜미를 볼 수 있었다.
분칠이 되어 있긴 하지만 확실히 도드라지는 비늘 모양.
나는 저번에 확인했었던 세리아의 트레잇창을 떠올렸다.
[세리아 폰 테이트리아_용혈의 축복을 받은 자.]대표 Traits : [마나친화력A+] [성실함B-]
히든 Traits : [악식C] [중독D] [용인D]
봉인 Traits : [봉인SS] [교만S] [잔인함A-]
용혈의 축복, 용인. 더불어 생기는 비늘과 지금 빛이 어스름하게 담기는 눈동자.
그리고 자세히 바라보니 동공도 조금 타원형인 거 같은 게.
‘…아, 그래서.’
이곳에서는 끝났지만 원래 게임 이노센트에서는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카이만이 적으로 나타난다.
붉은 뿔과 뺨에 붉은 비늘이 돋은 상태로 화염계 마법을 쏟아내는데 가디아가 파티에 없으면 상대하기 꽤 까다로웠지.
지금 생각하면 불의 정수.
즉, 레이첼의 심장을 결국 인간의 상태에서는 제어하지 못하니 몸이 마나를 제대로 제어하기 위해 심장의 힘을 빌려 용족화가 되는 상태였던 것.
그리고 그건 세리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눈 감은 성녀상에 마나친화력을 빌었고 원숭이 손처럼 절대로 곱게 들어주지 않는 성녀상은 친화력을 그냥 주는 대신 세리아를 용인화한 것이다.
드래곤류의 특징이 마나 친화력이나 제어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그러니 말이 용혈의 축복이지 점점 모습이 파충류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 세리아의 입장에서는 크나큰 저주일 것이다.
왜냐면 테이트리아 황실은 순혈의 인간만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리아는 황제의 후계 자리를 굳히기 위해 소원을 빌었지만 그 소원대로 마나친화력을 얻은 대신 영원히 정통성 있는 황제는 될 수 없겠지.
지금의 황제와 형제들의 목을 전부 날리면 모를까.
“그러니 아델리안! 널 이용해 나에게 그런 망할 것을 준 거 아니야? 그 성녀상. 그거 알고 있었지. 그게 일반적인 조각이 아니라는 걸.”
그걸로 함정을 판 거야.
자신이 생각한 것이 진실이라는 듯 확신에 차 세리아가 계속 말을 이었다.
“카이만은 가장 유력한 나를 내리누르고 샤하드를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우면 자신이 이 제국을 지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본데.”
절대 그렇게는 안 될 거야.
하며 중얼거리는 세리아의 눈이 조금 더 빛난다.
‘…게임에서 왜 카이만이 공격 일변도인가 했더니.’
카이만도 그렇고 세리아도 그렇고.
레이첼을 기본으로 생각해 보면 아마 용혈이 섞이는 순간 이성은 낮아지고 더 충동적이며 파괴 본능이 강해지는 모양.
게임에서 카이만은 극도로 강한 공격력에 낮은 방어력이 특징인 데다 절대 회복이나 방어하는 턴 없이 무조건 공격턴만을 잡았다.
어설프게 키운 유닛은 카이만의 공격 한 번에 터질 만큼.
그리고 세리아는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지금 충동적으로 나를 질책하며 몰아세우고 카이만을 비난하는데 이건 꽤 위험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카이만은 대공이니까.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카이만의 직계 혈통인데 내 앞에서 이런 소리를?
어찌 감당하려고?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 척 아공간을 열어 아이기스를 꺼내선 등 뒤로 손을 돌려 허공으로 던졌다.
“아델리안 공자. 오늘 당신은 실수했어요.”
실컷 쏟아 낸 세리아 황녀가 마치 이성을 되찾은 것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지만.
보라색의 눈 위로 뭔가 진득한 녹색 빛이 감도는 것이 이미 이성 수치가 낮음을 예고한다.
“어떤 실수를 말씀하십니까?”
“첫 번째. 인식 저하 마법 아티팩트를 쓰고 돌아다닌 것.”
그 덕에 아무도 당신의 오늘 동선을 모르잖아?
하며 세리아가 손가락을 곧게 펴며 웃었다.
“두 번째. 크루거 가문이 날 망신 준 것도 모자라 샤하드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 것. 그리고.”
날 보자마자 무릎 꿇지 않은 것!
순간 세리아가 그리 말하며 한 발 뒤로 물러나자 아이기스가 내 앞으로 이동하며 실드를 펼치고 내리치는 검을 몸으로 막았다.
캉! 하는 금속음과 더불어 실드가 쯔즈즛 하며 찢기는 소리가 터진다.
그리고 동시에 마치 모든 것이 멈춘 듯 천장에서 숨어 있다 아래로 뛰어내리며 검으로 날 베려던 사람도.
마법을 쓴 거 같은 세리아도.
그리고 놀란 표정을 한 유모도 그대로 굳었다.
시간이 멈췄나.
아니, 촛불이 일렁이며 그림자가 가늘게 떨리는 것은 그대로.
게다가 내 앞에 서서 검을 든 누군가도. 뒤쪽의 세리아도 점점 안색이 새파래지기 시작한다. 유모는 선 채로 기절한 듯 흰자가 보인다.
뒤에서 파스슥 하고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벽 한쪽이 마치 모래 위에 물을 부은 것처럼 가루로 내려앉았고 그 덕에 생긴 공간으로 루나와 케인이 걸어 나온다.
“이럴 줄 알았어. 도련님, 우리 돌아가요.”
“아니, 그렇다고 벽을.”
나는 부유감 덕인지 혹은 케인과 루나가 나를 빼고 힘을 쓴 것인지 아무 느낌 없지만 다른 이들은 마치 중력에 눌린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루나와 케인 뒤로 바닥에 쓰러진 기사들이 보이는 걸 보니 조용하게 놀고 있었구나, 너희들도.
“그냥 이번 기회에 정리하는 게 어떤가.”
케인이 원래의 얼굴로 돌아와 배지를 차며 하는 말에 나는 세리아를 흘긋 바라보았다.
“이곳이 원래 없었던 곳인 듯 만들 수 있다.”
그러시겠지. 그러고 보니 공간이라는 트레잇도 생겼다 했으니 어떻게 하면 아예 이 건물 자체를 분리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추는 기울었고 슬슬 내가 힘을 드러내더라도 살아 있는 신을 제외하면 견줄 상대가 없는 상태.
게다가 무엇보다도 케인은 몬스터 외 특히 사람을 죽인 수가 일정 이상 올라가면 안 된다.
게임에서만 적용되는 히든피스일지도 모르지만 혹시 모르니 어쩔 수 없이 붙게 되는 악신교단 쪽이 아닌 이상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지.
“누가 믿겠어, 이 일을.”
내가 그동안 해 둔 게 있는데. 황녀가 그 망나니 아델리안 하나 어찌 못 했다며 모든 세력을 집결시키지는 못할 터.
카이만 쪽으로 화풀이한다면 더 좋지. 카이만이 알아서 할 거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부정 타.”
이제 돌아가서 나는 책을 읽어야 하거든.
내가 고개를 젓자 케인이 그냥 몸을 돌렸고 그 뒤로 겨우 서 있던 이들이 풀썩풀썩 쓰러졌다.
돌아가자. 할 거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