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01)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01화(301/373)
테이라 불린 금발의 아이와 케인의 여동생이 움막인지 누더기를 기워 만든 쓰레기인지 모를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
케인은 조심스레 작은 산으로 향했다.
‘실제 몸이 아니야.’
지금의 나는 반 영체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 한 걸음 한 걸음이 크고 몸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나에게는 내 몸이 보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
바닥을 보니 그림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책에 기록된 과거를 가상현실처럼 체험하는 것일 뿐일까?
나는 케인을 뒤따라갔다. 산은 곳곳에 땅이 파여 있고 풀뿌리는 적으며 나무껍질은 사람의 손이 닿는 곳까지 주욱 벗겨져 있었다.
케인은 껍질이 벗겨져 나무의 진액이나 수액이 흘러나와 굳은 것들을 날카로운 돌로 긁어모으고 누가 봐도 설익어 보이는 열매를 줍기 시작했다.
케인의 손이 닿는 곳의 나무껍질은 대부분 벗겨져 있어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서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신발도 없이 맨발이다. 옷은 삭아 힘주어 빨면 해질 거 같다.
중간중간 뒤나 옆을 바라보기도 하고 작은 소리가 들리면 몸을 바짝 땅에 붙여 숨을 죽이기도 한다.
누가 봐도 이것은 경계가 극에 다다른 상황.
나는 케인이 겨우 손닿는 곳에 껍질이 남은 나무를 찾아 그것을 조심스레 뜯는 동안 뒤를 돌아보았다.
저 아래 보이는 마을은 제법 크다. 얼핏 봐도 100가구는 되어 보인다.
하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있어도 그 크기가 매우 작은 데다 그마저도 얼른 움막 같은 거처로 들어간다.
‘어른은 없고 아이만, 그것도 굉장히 어린아이만 남아 있다.’
아까 케인이 일손으로 차출할지도 모른다고 했던가.
머리가 굵어져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가 되면 데려간단 말인가.
하지만 영영 데려가는 건 아닐 테고, 노역이라도 시키는지 모르겠다.
아이만 산다고 하기에는 마을이 너무 넓은 데다 아무것도 없다.
우물 정도나 있을까. 무언가를 파는 가게도 식당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전부 대충 만든 게딱지 같은 집들 뿐.
거기에 멀리까지 트인 시야로 들어온 울타리 같은 것까지.
‘최저한의 식료품 정도만 배급하나 본데.’
절대 제대로 된 경제가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다.
그냥 단순히 집만이 있다. 흐르는 강도 없어 물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지을 곳도 없는 데다 밭도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풀뿌리를 뜯고 나무껍질을 캐는 것도 몰래 하는 걸 보면 누군가 제한하고 있겠지.
“조금…만… 더.”
앙상한 몸이니 고작 내 손가락 두 개 정도 넓이의 껍질도 제대로 길게 뜯지 못한다.
도와주고 싶어 내가 대신 당겨 보려고도 했지만 내 손은 나무를 통과할 뿐.
그래, 그냥 과거의 기억을 훔쳐보는 중이니까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없겠지.
그걸 아는데. 그건 아는데.
한참 나무껍질과 씨름하던 케인이 뒤늦게 깜짝 놀란 얼굴로 지금까지 모은 것들을 부랴부랴 챙겨 뛰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있었어…….”
껍질을 뜯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나?
하지만 아직 해가 지기 전인데.
급하게 달려가던 케인의 저 앞으로 무언가가 보인다.
서너 명 정도의 무리가 움막 같은 집을 돌아다니며 안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케인이 한참 뛰다 돌 틈에 모은 나무껍질과 뿌리, 설익은 열매의 대부분을 밀어 넣으며 개중 한 줌 정도만 따로 챙기더니 수액과 진액을 모은 나무 그릇과 같이 들고 간다.
“자빠져 잘 시간이 있나 보지?”
“그게… 아니라.”
누군가 등을 돌려 작은 아이의 다리를 툭툭 걷어찬다.
“더러워. 냄새나.”
“그래도 꼴이 우습잖아.”
“알고 보면 이거 인간애호족 아니야? 역겹다면서도 자꾸 지원해서 오는 거 보면 의심스러워.”
“야, 미쳤어? 말 가려서 해라.”
수인족이었다. 곰족으로 보이는 이가 둘. 고양이족이 하나.
코를 틀어막고 있던 고양이족이 투덜거리다 ‘어?’ 하고 케인을 바라본다.
아까 테이라 불렸던 아이를 불러 툭툭 치며 새끼줄 같은 걸 잡고 흔들던 곰족이 어?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하, 이것 봐라. 더러운 인간족 꼬맹이가.”
산의 자원을 도둑질했네.
곰족 하나가 이죽거리며 다가가 수액 그릇을 빼앗더니 검은 손톱으로 긁어 맛본다.
그리곤 얼굴을 찡그리며 그릇에 퉤 하고 뱉었다.
“완전 최하급이잖아. 이런 건 내가 키우는 개도 안 먹는 건데 이런 것도 좋다고 가져온 거야?”
“이런 짓을 할 기운이 있으면 너도 다른 인간족 성체처럼 밖으로 나와야 할 거 아냐.”
뒤에 서 있던 다른 곰족이 와서는 그대로 퍽 소리가 나게 손으로 케인의 얼굴을 후려친다.
몸이 그대로 옆으로 날아가듯 바닥을 구르는데 그것을 뒤따라간 곰족이 케인의 배를 발로 찼다.
나는 나도 모르게 코덱스를 열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이건 그냥.
과거일 뿐이니까. 이미 있었던 일을 보여 주는 중이니까.
“컥, 쿨럭…….”
케인이 침을 흘리며 바들거렸다. 귀를 잘못 맞았는지 귓구멍에서 피가 흐른다.
X발, 저거 고막 찢어진 건가. 그럼 나중에 회복 안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케인이 쓰러지며 놓친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수인족들이 일부러 잘근잘근 흙더미에 비비듯 밟는다.
“적당히 해. 어차피 노역장으로 데려가 봐야 돌 하나 제대로 못 들 텐데. 재미 봤으면 좀 가자.”
냄새나! 역겹다고!
고양이족이 양손으로 코를 막고 경멸하는 눈으로 케인을 바라보자 그제야 곰족들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웃으며 돌아간다.
그 모습을 케인이 곁눈으로 노려보다가 시야에서 수인족들이 사라진 후에야 천천히 일어났다.
“괜…괜찮아?”
“…좀 먹먹하지만 괜찮아. 셰인은.”
“안쪽에 짚 더미 속에 숨겨 뒀어…….”
어차피 밤에 밧줄도 만들고 할 텐데 왜 괴롭히는지 모르겠어…….
마찬가지로 바짝 말라 갈비뼈가 보이는 테오가 웅크리고 울먹이며 하는 말에 케인이 손등으로 입가의 피를 닦고 바닥에 흩어진 풀뿌리와 그릇을 들었다.
“울지 마. 울면 금방 지치니까. 수액이나 다른 건 씻으면 괜찮아. 난 숨겨 둔 걸 가져올게.”
“더 있어?”
“전부 숨기면 더 의심했을 테니 일부만 들고 왔어. 내가 몰래 먹을 것을 찾으러 간 걸 뻔히 알 텐데 빈손이면 분명 더 귀찮아졌을 거야.”
케인이 배를 매만지다 절뚝거리며 산으로 간다.
나는 케인을 한 번, 그리고 바닥에서 수액이 담긴 그릇과 흙투성이가 된 것들을 줍는 테오를 한 번.
그리고 저 멀리 사라진 수인족들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들의 옷은 질이 좋은 천인 데다 손톱도 털도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더불어 가죽신발도 신고 있었지.
‘그리고 인간족을 더러운 것을 보는 눈으로 보았던가.’
내가 알던 대륙과는 다른 곳이었다.
* * *
시간의 흐름이 이상하다.
아주 잠깐새 여러 날이 지날 때도 있고 저번처럼 체감상 현실과 비슷하게 시간이 지나갈 때도 있다.
잠을 자거나 먹지는 않았지만 피곤하거나 배가 고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냥 생생한 꿈을 꾸는 거 같았다.
시간이 제법 흐르는 동안 이곳에 있으며 알게 된 건 이곳은 아인족이 인간족을 노예로 부리고 있다는 것.
성인이 되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끌고 나가 벌목이나 채석 혹은 농사나 채집 같은 일을 시킨다.
나는 영체나 다름없기에 걷듯이 혹은 날듯이 이곳을 벗어나 먼 곳도 가 보았다.
일만 시키는 곳은 차라리 낫지.
풀어 놓고 사냥을 하거나 맹수의 먹이로 주거나 실험체로 쓰기도 하고.
‘가장 역겨웠던 건.’
잘 먹이고 허드렛일 하나 시키지 않고 곱게 키워 머리칼부터 피부까지 깨끗한 인간을 이용해 물건을 제작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가축 이하의 삶.
아인족은 기본적으로 인간족보다 신체적 능력이 강하다. 거기에 트레잇을 확인할 수 있는 권리는 아인족에게만 있었다.
아인족은 인간족이 성년이 되면 의무적으로 트레잇을 확인한 뒤 너무 강력하거나 타인의 트레잇을 확인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이들이 있다면 전부 죽여 버린다.
그야말로 먹이사슬의 최하층.
더불어 그 가장 위에는 드래곤이 있었다.
“인간족은 흉측하지. 귀도 둥글고 털 없는 몸에 손톱도 송곳니도 연약하며 피부 또한 왜 두르고 있는지 모를 만큼 부드러워.”
아인족은 그 강인함이 몸 밖으로 나올 만큼 영혼이 야생적이며 원초적이고 근본에 가깝지만.
인간족은?
아무런 특성도 발휘하지 못한 밋밋하기 그지없는 덜 만들어진 종족일 뿐이야.
이곳의 기본 상식이 저것이었다.
참 우스운 일이지.
테이트리아에서는 인간족이 모든 종족의 근원이고 아인족은 태생부터 흠이 있어 동물의 영혼이나 식물, 혹은 자연의 힘으로 그 틈을 메꿨다며 차별하더니.
이곳에서는 반대로 인간족이 그 어떤 모습도 하지 못하기에 미성숙한 것으로 치부된다.
육체적 능력이 뛰어나며 어떤 아인족이냐에 따라 더욱 강한 특성이 발휘되니 아인족은 고등한 종족.
그리고 인간은 육체적 능력도 부실한 데다 종족적인 특성도 제대로 없는 저열하고 하급한 종족.
드래곤이나 다른 수명이 긴 종족이 이 세계의 권력 상층에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은 머릿수가 많은 것 외엔 아무런 장점이 없지.
아인족은 종족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과 비슷한 수명의 종족도 있으나 장생종도 많다.
기본적으로 엘프 같은 요정계 아인족은 몇백 년 이상.
하이엘프면 천 년도 우습지.
거기에 이곳은 드래곤이 황족이나 다름없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인간은 짧게 사는 데다 약하고 번식력만 좋은 종족일 뿐이니 다른 아인족이 인간들을 소모품으로 쓰는 것에 제재가 없는 것이다.
“케인 레이너스.”
나는 발 닿는 만큼 돌아다니다 느리게 케인을 불렀다.
그리고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니 움막의 안이다.
이곳은 과거를 기록한 곳.
하지만 그 중심은 케인인지 그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어디에 있건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밤이다. 제대로 된 나무 창문도 없어 구멍만 뻥 뚫린 벽의 틈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온다.
“흐윽… 오빠… 오빠아…….”
“쉿. 아직 밤이 다 가지 않았어. 셰인.”
그리고 그날은 살육의 밤이었다.
한 격리 마을에 아이들이 늘어나면 1년에 한 번 나이 많은 인간을 솎아 내 배급하는 식량을 줄이고 노동력의 노화를 막는 날.
그리고 대놓고 아인족들이 인간을 죽이며 즐기는 날.
뚫린 벽의 틈으로는 매캐한 냄새가 난다.
아이들은 집 안에.
어른은 밖에.
밤새 도망쳐서 산다면 1년을 더 살 수 있다.
하지만 개중에는 난폭한 아인족도 있는 법.
아직 어려 세상을 잘 몰라 두려움에 목이 찢어져라 울던 아이는 집 안에 있었어도 끌려 나갔다.
시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집은 낡아 벽의 곳곳에 틈이 보였다.
그것으로 밖의 모습이 일렁거리듯 비친다.
때론 붉거나 노란 눈이 벽의 틈에 붙어 안을 바라보다 낄낄거리며 지나갔다.
케인은 우는 자신의 여동생, 셰인을 가슴으로 끌어안아 소리를 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냥 지금은 보는 것만 가능해서.
크루거의 반지는 있지만 돌아는 갈 뿐 아공간이 열리지 않는다.
레비를 불러도 나오지 않는다.
코덱스는 꺼낼 수 없고 아이기스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냥 케인을 뒤에서 안았다.
어차피 의미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문득 고개를 하늘로 든 케인과 내 눈이 마주했다.
케인이 보는 건 내가 아니겠지만 나는 지금 케인을 보고 있다.
“…다 괜찮아.”
결국 너는 강해지고 강해져서 신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되니까.
절대로 꺾이지 않으니까. 넌 불굴을 가질 만큼 강인하니까.
오늘 일은 결국 과거로 지나갈 거야.
그날 케인의 아버지는 목만이, 어머니는 한쪽 팔이 없이 아침에 귀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