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0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02화(302/373)
“세 대공가가 한곳에 있는 걸 보다니…….”
“별일이 다 있죠. 그리고 카이만 대공은 여전하군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조금 마른 듯 수척한 게 더 위험하달까요.”
사교계에서 유명한 이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여 수군거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파티며 티타임을 가지면서 이만큼 화젯거리가 만발한 날이 드물다 할 정도로 다들 할 이야기가 많은 듯이 굴었다.
화제의 중심은 대부분 세 대공가와 샤하드 황자의 일이었다.
종종 세리아 황녀의 이야기도 나왔으나 오늘만큼은 그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릴 수밖에.
아주 오랜 시간 북부에서 아이스 엘프와 전쟁을 하고 화친 이후에는 토벌에 전념한다며 황제가 불러도 오지 않던 북부 대공 게드만.
그리고 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부유한 도시로 유명한 향락 도시 라베스를 다스리는 주인이자 그 금력이 황실과 맞먹는다는 크루거 가문의 주인인 카이만 대공.
거기에 대공 본인은 아니나 원래 붙박이처럼 남해에서 나오지 않는 제독 대신 수도로 올라온 아르만 대공자까지.
“이번에 접경지에서 라인하르트 변경백이 돌아온 것도 대단한 사건이죠.”
“다시는 수도로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이제 와서 권력 구도를 바꾸려는 건 아닌 듯하지만…….”
“하필 저들이 전부 황녀 저하가 아닌 샤하드 황자 저하를 지지하는 거 같아 께름칙하군요.”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니지 않나요.”
무도회장에서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그리고 대체 무슨 공통점이 있길래 저 세 대공가와 라인하르트 변경백이 샤하드 황자와 술을 나누는 것인지 다들 아는 바도 짐작되는 바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요정과 정령의 나라인 아리나이드에서 하이엘프, 그것도 대장로가 온 것도 이변입니다.”
“그것만 이변이겠습니까.”
“제국 전역에서, 그것도 전부 다른 분야에서 정상을 차지한 이들이 모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기회입니다.”
세리아 황녀의 추종자들이 와인을 마시며 수군거렸다.
“황제 폐하께서는 예전부터 후계 문제엔 큰 관심이 없었으니 한 명에게 저울추가 기울면 대세를 따르실 게 분명합니다.”
“이번 축제 일로 조금 악재가 끼긴 했으나 그동안 쌓아둔 게 있으니 큰 타격은 아니죠.”
오히려 지금이 기회이니 다들 이번 무도회가 끝나면 발에 불이 나도록 수도의 저택을 방문할 준비를 하세요.
저 멀리서 목소리를 낮춘 덕에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듯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말에 게드만이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피곤해요?”
그에 아이스 엘프 르쉬올라가 게드만의 뺨을 손등으로 어루만지며 푸른 빛이 도는 새벽밤 같은 머리칼을 살짝 쓸어 주자 게드만이 눈을 맞추고는 웃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당신과 지금 이리 함께 있는데.
게드만이 자신의 뺨을 스치던 손을 잡아 손등에 입술을 누르며 하는 말에 옆에서 와인잔을 기울이던 아르만이 슬쩍 눈을 돌렸다.
“공자는 아직 약혼도 하지 않았던가.”
그 모습을 보던 카이만이 시린 푸른 눈으로 응시하며 묻자 아르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아직입니다.”
“늦군.”
그렇게 말한 카이만이 가디아와 아델리안의 약혼을 진행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가디아야 남성을 꺼렸고, 아델리안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보통 귀족들의 약혼은 빠른 편이었다. 개중에는 태중 약혼도 있을 정도로.
그에 아르만이 멋쩍게 웃었다.
“남쪽은 정략혼보다는 연애혼이 흔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어 조금 자유롭죠.”
그리고 아르만은 자신의 트레잇이 어정쩡한 데다 남쪽의 귀족들 대부분 헉슬리 가문을 견제하는 터에 늦었다는 말을 덧붙이는 대신 화제를 돌리는 것을 택했다.
“조금 의외이긴 합니다. 대공 각하께서 그러실 줄은.”
아르만은 이노센트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대신 적당히 얼버무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만은 이해한 듯 눈을 느리게 한 번 감았다 뜬 뒤 아르만을 바라보았다.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희망이 있다면 잡아야 하지 않겠나.”
그에 아르만이 무슨 의미인지 그 안에 숨은 말을 찾아보려 눈을 슴벅이는데 카이만이 느리게 웃었다.
“한 가지 가정을 해 보지.”
아르만 공자, 그대가 어느 날 너무나도 강력한 힘을 얻게 된 후 이 세계를 바라보니 곧 종말이 올 것임을 깨닫게 된다면.
그 종말은 내가 아무리 강한 힘을 지녔다 하더라도 절대 바뀌지 않고 피할 수 없으며 거역할 수 없는 힘이라고 한다면.
“그럼 공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카이만의 말에 아르만이 잠시 생각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말입니까?”
“내 힘으로는 절대로.”
“그렇다면…….”
막을 수 있는 이를 찾겠습니다.
아르만의 그 말에 카이만이 와인잔을 흔들었다.
“그리고 마침 눈앞에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물론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 해도, 유일하게 그 사람만이 아주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다면 믿어야 하지 않겠나.
카이만의 말에 듣고만 있던 르쉬올라가 입을 열었다.
“정말 멸망이 다가온다 생각하시나요?”
도플갱어인 르쉬올라는 그런 대의와는 상관없이 제로의 명에 따라 협력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게드만과의 미래를 그리던 와중 카이만이 가정이라 하기엔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게 이상하여 끼어들어 물었다.
“적어도 자료는 같이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자료라고 해 봐야 이단 종교의 참혹한 공양 자료일 뿐.
그들이 아무리 강하고 특별한 힘이 있다고 한들 정말 이 세상이 멸망하면 얻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무언가를 누리려면 그것을 뒷받침해 줄 사회가 존재해야 하는 법.
그 전에 테이트리아 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까지 전부 그들이 상대가 가능하단 말인지.
그 의문스러운 얼굴을 본 카이만이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아주 잠시나마 신의 자리에 섰다. 그 자리까지 올라가야만 보이는 것이 있다.
카이만은 입을 열었다.
“무언가를 만들 때는 이미 만들어진 것에서 더하고 빼며 억지로 그 모양을 비트는 대신.”
부수고 새로 만드는 게 더 쉽지 않겠나.
그 말에 아르만과 르쉬올라. 게드만이 잠시 침묵했다.
그 말이 맞지만 말 그대로 그럴 이유가 없다 생각할 터.
‘그게 더 쉽다 속이는 것이지.’
어차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약속이니까.
아무 의미 없는 맹세일 뿐.
카이만은 지금은 보이지 않는 이 세계의 진실을 뇌리에 덧그리듯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거대하고 정교한 아티팩트일수록 티끌만 한 흠 하나로 망가지는 법이니까.
그리고 자신이 유일하게 아는 변수는 단 한 명뿐이므로.
‘아델리안.’
카이만은 그 이름을 떠올렸다.
* * *
“큰일이네.”
뭔가 빨리감기 혹은 점프라도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사건을 놓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케인은 성년이 다 되어 간다.
그 말인즉슨 아인족 쪽에서 케인의 트레잇을 확인할 날이 멀지 않았단 소리.
‘사용자의 눈.’
나는 사용자의 눈을 떠올리며 채석장에서 노역하는 케인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이때의 케인은 불굴과 천재 등을 들고 있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천재가 붙은 이상 지금까지 봐 왔던 것처럼 아인족이 바로 끌고 가 죽일 게 뻔한 일.
‘하지만… 주인공이잖아.’
이때 죽었으면 이 모든 일이 시작도 안 되었을 게 뻔하다.
그렇지만 그동안 봐 왔던 게 있어 불안했다.
지금의 케인은. 내가 알던 케인과는 꽤 다른 상태니까.
‘더 심해.’
내가 알던 케인은 인간 혐오자였지.
마을 주민과 부모님이 악신 교단에 의해 공양당하고 동생은 끌려갔으며, 본인은 흑마법사에게 끌려가 실험당하고 고문당하다 도망쳤다.
그 이후에도 케인이 봐 온 인간들은 전부 케인을 이용하려 들고 학대했지.
처음엔 잘해 주고 진심을 보여 주는 듯해 결국 마음을 열게 되면 꼭 배신당했다.
그래서 원작의 케인은 인간을 불신하고 혐오하고 경멸했지.
그런데 이곳의 케인은…….
“빨리 움직여, 이 버러지들!”
“굼뜨네. 어느 세월에 나를 거야?”
피가 먼저 튄 다음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채찍을 얼마나 강하게 휘두르면 소리보다 먼저 등이 터졌다.
그리고 한 대만으로 보통은 고꾸라져 그날은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
살점이 찢기고 뼈가 부러진다. 아무리 돌을 열심히 캐고 날라도 그냥 본보기로 한둘씩 맞았다.
심심하다고 채찍을 휘두르다 누군가의 눈이 터진다.
돌을 들고 걷는 모양새가 마음에 안 든다고 다리를 후려갈긴 덕에 뼈가 보였다.
그러다 숨이 넘어가면 돌을 너무 파내 깊어진 구덩이로 밀어 넣어 버린다.
심심하면 몇 명을 불러 빵 한 덩어리를 상품으로 놓고 싸우게 만들기도 했다.
빵 하나 얻어먹으려고 방금 캔 돌로 상대를 찍어 죽이고 피 묻은 손으로 허겁지겁 빵을 먹으면 그 모습이 웃기다며 낄낄거리다 가끔은 이겼어도 빵을 주지 않았다.
혹은 결국 둘 다 죽이거나.
케인은 그런 나날에서 매일 살아 돌아왔다.
노역을 끝내면 주는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것을 억지로 위에 밀어 넣고 돌아오면 다른 이들은 쓰러져 자는데 케인은 눈빛이 형형했다.
그러니 불안하지. 저거 사고 칠 게 지금 눈에 보이는데.
이곳의 케인은 인간이 아닌 아인족을 혐오했다. 아니, 증오라고 해야겠지.
“케인, 그거 들었어?”
황금색 머리에 검은 눈동자, 테이가 노역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절뚝거리며 다가와 속삭였다.
“무엇을.”
“배신자들이 내일 우리 마을에 온대.”
그에 테이의 말이 들리는 거리에 있던 다른 인간들이 욕지거리를 뱉었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이.”
“종족의 배신자. 거머리 같은 게. 아인족에게 빌붙어 애완동물 노릇이나 하는 수치스러운 놈들.”
“그런 것들은 돌로 다 쳐죽여야 하는데.”
말을 듣자 하니 아인족이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하며 이런 마을이 아닌 아인족들의 거주지에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어느 정도 권한도 지닌 인간들이 있는 모양.
그들이 각 인간 마을을 돌며 아인족의 취향에 맞는 인간을 뽑아 바치기도 하고 팔아먹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번엔 케인이 지내는 이 마을에 오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돌을 캐다 죽으면 죽지. 거기에 뽑혀 가 저놈들의 발이나 핥으며 살고 싶진 않아.”
테이가 이를 갈며 하는 말에 케인이 무언가를 생각하듯 잠시 금색 눈동자가 짙어진다.
“오빠들. 왔어?”
집으로 돌아오니 케인의 동생 셰인이 웃으며 반겼다.
케인을 닮아 마르고 더러워도 얼굴이 빛난다. 케인과 같이 검은 머리에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셰인을 나는 지그시 바라보았다.
“둘 다 배고프지? 저기 스튜를 조금 얻어 왔어.”
셰인은 노역장 근처에 감시 겸 해서 지내는 아인족의 하녀로 차출되었던가.
나는 문득 셰인의 이마에 보이는 식은땀에 느리게 몸을 훑어보았다.
‘이런.’
내가 발견하여 시선이 멈춘 것과 동시에 케인이 성큼 다가와 셰인이 뒷짐 지고 있던 손을 확 잡아 올렸다
그 손은 물집이 잔뜩 잡힌 채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셰인. 아니 너 손이 왜 이래.”
그에 테이가 기겁해서 말하니 셰인이 머뭇거렸고 케인이 얼른 말하라는 듯 짙게 응시했다.
“손으로… 스튜를 푸는 만큼 들고 가도 좋다고 해서…….”
“그럼 안 한다고 했어야지!”
“하지만… 둘 다 배고프잖아. 고기 많이 건져 왔단 말이야.”
테이가 속상한 듯 가슴을 치며 보는데 케인이 손을 놓는다.
“약초를 찾아올 테니 기다려.”
그리고는 그대로 뒷산 쪽으로 걸어가는데 어둑해지는 거리에서 케인의 황금색 눈동자만 불이 붙은 것처럼 보였다.
그에 나는 이마를 탁 치듯 짚었다.
도대체 이곳은 뭐란 말이야…….
그리고 내 의문은 다음 날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여기 왜 있어.’
“몇 명까지 데려갈 수 있겠습니까.”
“뭐, 이 정도면 서너 명? 더는 안 돼. 우리도 돌 캐고 나무 캐야 중앙에서도 한소리 안 한다고.”
카이만이 가디아와 함께 허리를 굽히며 곰 수인에게 돈을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