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0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03화(303/373)
카이만은 짧은 머리에 조금 마르긴 했지만 원래 보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가디아는 마치 골렘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런 표정이 없이 곰 수인의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한 번 더 말하지만 너무 많이는 안 돼.”
저번에 너무 많이 죽여서 한동안 어린것들을 키워야 하거든.
곰 수인이 금화를 세며 하는 말에 카이만이 부드럽게 웃으며 여부가 있겠냐고 대답한 뒤 몸 돌려 나온다.
처음으로 질 좋은 옷에 깨끗한 사람을 이곳에서 발견했다.
‘그게 카이만과 가디아라는 게 어처구니가 없지만.’
거기에 배신자라니.
같은 인간을 팔아서 영위하는 건가. 조금 입 안에 쓴맛이 도는 기분이 든다.
“하기 싫어요…….”
“쉿. 아인족은 기본적으로 귀가 좋으니 조심해서 말하거라.”
가디아가 중얼거리자 카이만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가디아가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차가운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하고 싶지 않다구요. 매번, 매번 그들이 저에게 어떻게 하는데.”
무표정하던 얼굴에서 혐오감이 비친다. 그에 카이만이 가디아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어깨를 도닥였다.
“…미안하구나.”
“어차피 아버지는 저보단 그 일이 더 우선이겠죠. 하지만 전 싫어요.”
오늘까진 도와드리겠어요. 하지만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중얼거린 가디아가 몸을 돌려 카이만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다.
나는 카이만과 가디아를 번갈아 바라보다 가디아를 따라갔다.
카이만은 솔직히 무엇을 하건 잘 하겠지 하고 걱정이 안 되는 편이니까.
‘거기에 가디아가 가는 쪽이 채석장 쪽이기도 하고.’
가디아는 복잡미묘한 얼굴을 하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아주 차갑게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는 부채를 하나 꺼내 얼굴을 부치며 천천히 걸었다.
마치 오만한 악역 같은 모습인데. 썩 어울리지는 않았다.
“배신자…….”
“친아인파.”
“매인노.”
채석장에서 일하던 이들이 가디아를 보며 수군거린다. 그러면서도 대놓고 욕을 하거나 윽박지르지는 못하고 자신을 감시하는 수인족의 눈치만 보았다.
아마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카이만과 가디아는 소위 말해서 2등 시민 정도 되는 모습.
가디아는 자신의 귀에 들리는 말들을 무시한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주위를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쓸 만한 것들이 이리도 없어서야.”
그러면서도 천천히 무언가를 찾는 듯 시선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순간 케인이 돌을 나르다 말고 문득 가디아를 바라보더니 곧 눈을 돌린다.
“…어?”
그리고 한참 후 테이도 돌을 나르고 돌아오는 길에 가디아를 문득 바라보더니 ‘착각인가?’ 하고 다시 걸어간다.
가디아가 그 둘을 한 번씩 바라보다 비스듬하게 서서는 부채로 찍듯이 가리켰다.
“너랑 너. 이리 와.”
그에 테이는 대놓고 얼굴을 구겼고 케인은 못 들은 척 다시 헉헉거리며 돌을 나른다.
그에 가디아가 미간을 찌푸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검은 머리랑 노란 머리.”
이리 오라고.
가디아가 부채로 자신의 앞을 가리키자 테이는 입 모양으로 욕지거리를 뱉으며 걸어왔고 케인은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는 듯 일을 계속하자 가디아가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감시하던 수인에게 건넸다.
“케인! 당장 와!”
그러자 채찍을 들고 있던 수인이 바닥을 짝 소리 나게 휘갈기며 하는 말에 케인이 돌을 내려놓고 손등으로 턱까지 흐른 땀을 훔치며 걸어오는데.
그 눈빛이 흉흉하다.
뭣 모르는 이들이 보면 오금이 저릴 만큼.
그에 가디아가 멈칫하고는 떨리는 손을 감추려는 듯 부채를 꽉 쥐고 차갑게 말했다.
“…따라와.”
그에 케인과 테이가 가디아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묵묵하게 가디아를 노려보며 걷는 케인에게 테이가 속삭였다.
“동족을 팔아먹는 게 꽤 쏠쏠한가 봐. 잘 챙겨 먹고 좋은 걸 두른 꼴이라니.”
“…….”
“역겹네.”
케인은 묵묵부답이었지만 테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디아가 들으라는 듯 계속 입을 열었다.
“어떻게… 같은 사람을 팔아서 살 생각을 하지. 어떻게.”
가디아는 들리지 않는 듯 계속 걸었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듯 차갑게 굳었다.
수치심과 분노. 그리고 약간은 억울함이 보이는 얼굴.
“이렇게 두 명을 반출하겠습니다.”
가디아가 그리 말하니 의자에 앉아 육포를 뜯던 곰 수인이 케인과 테이를 흘긋 바라보고는 일어나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냈다.
금속으로 만든 도장 같은 그것은 마법 아티팩트였는지 무언가를 눌렀더니 머리 부분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어, 저거.’
내가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지만 그것은 내 손을 통과해 케인의 어깨에 낙인을 찍었다.
“큭…….”
“으아악!”
테이가 어깨를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좋아. 반출품으로 도장 찍었으니 나갈 때 가지고 나가라고.”
“네, 감사합니다.”
가디아가 곰 수인에게 공손하게 인사하자 곰 수인이 하품을 하며 좀 자야겠다는 듯 방을 나선다.
그리고 그 열린 문으로 카이만이 들어왔다.
“두 명?”
“네, 아버지.”
가디아가 데려온 케인과 테이를 확인한 카이만이 차가운 푸른 눈으로 둘을 바라본다.
그러자 테이가 갑자기 통증에 눈물이 고인 눈으로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두 명이 확실한가.”
“네.”
카이만이 천천히 걸어 케인의 앞에 선다.
그리고는 턱을 움켜쥐고 얼굴을 바라보자 케인이 그 손을 탁 쳐 내고는 짙은 황금색 눈으로 카이만을 응시했다.
“…그래, 둘이로군. 너희는 바로 나와 함께 다른 구역으로 갈 것이다. 이리 따라오도록.”
카이만이 그리 말하고 몸을 돌리는데 곧장 뒤따라 움직이던 테이와는 달리 케인은 그 자리에 서서 입을 열었다.
“동생과 함께 가겠다.”
“그건 곤란하군. 이번에 반출 허가를 받은 개체는 셋이라. 무리다.”
이미 나도 한 명을 고른 상태이니.
카이만이 안되었지만 어차피 지금까지 같이 산 것도 기적에 가깝다며 따라오라는 말에 케인이 대답하지 않고 카이만을 노려본다.
“저기… 그냥 한 명 더… 안 됩니까?”
그에 테이가 눈치 보다가 하는 말에 카이만이 품속에서 버튼 같은 것을 하나 꺼냈다.
“이곳의 문양이.”
이것이로군.
카이만이 무언가를 꾹 누르자 케인과 테이의 어깨에 찍힌 낙인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테이가 어깨를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군다.
“아악! 그, 그만!”
하지만 케인은 고통에 얼굴이 질리면서도 이를 으득 갈며 카이만을 노려보았다.
“혼자 갈 바엔 안 가겠다.”
그에 카이만이 바라보다가 버튼에서 손을 뗀다. 테이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바닥에서 웅크리는데 케인은 여전히 숨을 몰아쉬며 눈으로 사람을 찢어 죽일 듯 카이만을 바라보았다.
“지금 한 명을 더 반출하려고 돈을 쓰게 되면 다른 마을에서 살 수 있는 세 명을 버린다는 말이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 모든 것은 네가 갚아야 할 것이다.
카이만이 느리게 말한 뒤 몸을 돌렸다.
* * *
‘이상해.’
나는 짐승을 수송하는 것처럼 우리가 달린 마차를 탄 케인의 옆에 앉아 생각했다.
‘뭔가 이상한데 확실한 걸 모르겠어.’
가디아가 케인과 테이를 고른 것은 분명 무언가 기준이 있다.
채석장에서 노역하던 이들은 적지 않은 수였으니까.
그런데 딱 그 둘을 골랐단 말이지.
겉모습만 따지면 케인보다 더 근골이 괜찮은 사내가 있었다.
그렇다고 케인이 협조적인 성격도 아니고. 오히려 또래보다 강해 보이는 편도 아니지.
물론 못 먹고 자란 것치고는 외모가 뛰어나지만 굳이 그것으로 골랐을까?
‘게다가 전부 미성년자들.’
이 우리 마차 안에는 카이만과 가디아가 지나온 마을에서 데려온 건지 사람들이 더 있었다.
성별도 남녀 고른 편인 데다 외모 또한 중구난방.
굳이 미형을 골라서 데려온 건 아니란 소리.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면 아주 어린 아이는 있지만 성인은 없다.
누가 봐도 미성년자거나 성인에 근접했으나 성인식은 치르지 않은 사람들뿐.
그것을 어찌 아냐면 아인족들은 성인식날 인간들의 트레잇을 확인한 뒤 특별한 트레잇은 죽여 버리고 평범한 트레잇은 그것을 나타내는 기호를 낙인찍기 때문이었다.
보통 이마나 뺨같이 바로 눈에 띄는 곳에 찍어 자기들이 식별하기 편하도록 해 둔 덕에 나도 알아본 것이다.
전부 어깨를 제외하면 다쳐서 난 흉터 외엔 낙인이 없었다.
나는 자신의 동생인 셰인을 안고 다독이고 있는 케인을 흘긋 본 뒤 슬쩍 몸을 이동했다.
카이만과 가디아가 있는 곳은 앞쪽의 마차.
마치 유령처럼 벽을 통과해 들어서니 카이만은 무언가를 적고 있었고 가디아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디 보자…….’
카이만이 적는 것을 훔쳐보니 우리 마차 안의 사람들을 정리하는 문서다.
간단하게는 이름과 외형. 그리고 특기 정도.
“왜 그러셨어요.”
내가 카이만의 문서를 훔쳐보는데 가디아가 입을 열었다.
“무엇을 말이냐.”
“아시잖아요. 저들은 우리에게 절대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요.”
그런데 그 큰돈을 들여 왜 여자애 하나를 굳이 더 반출하신 거예요?
하는 가디아의 말에 카이만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누가 들을지 모른다.”
“마을에서 한참이나 벗어났어요. 그리고 인간들의 마차를 그 고귀하신 아인족들이 탈 리 없으니 마부도 우리가 데려온 사람이잖아요. 그 누가 듣는단 말이에요, 아버지.”
가디아가 창문을 보다가 고개를 팩 돌려 카이만에게 소리쳤다.
“왜 우리는 늘 욕을 먹어야 하죠? 어차피 욕을 먹고 그런 눈초리를 받을 바에 정말 양심을 버리면 차라리 낫겠어요.”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얼마나… 얼마나 우리를 미워하는지 알아요?
“이제는 숨 막혀……. 우습지 않아요? 아인족은 우리를 겉으로나마 인정해 주는데 같은 동족인 사람들은 우리를 욕하기에 바쁘잖아요.”
그들을 때리고 죽이고 고문하는 건 우리가 아닌데.
정작 아인족에겐 아무 말 못 하면서!
그에 카이만이 서류를 덮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싫다면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한다.”
“아버지가 아인족들 밑에서 더러운 짓을 하며 버티는 이유를 다들 알지도 못하잖아요. 차라리 인정이라도 받으면……!”
“비밀은 아는 이가 적을수록 안전하지.”
“…어차피 저들도 전부 우리를 증오할 거예요.”
아인족들을 속이려면 계속 가혹하게 굴어야 하니까.
가디아가 중얼거리듯 한 말에 카이만이 대답했다.
“그래도 너와 나의 트레잇에 조금이나마 반응한 이들이니.”
정확히 어떤 트레잇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능은 있을 터.
“증오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사랑하는 이는 두고 죽을 수 있어도 증오하는 이는 두고 죽을 수 없으니.
“아인족은 너무나 방대한 증오라 인간들끼리 모여 학대받지 않는 곳에선 옅어질 뿐이지.”
우리가 잘해 준다면 당장은 저들이 행복하겠지. 하지만 그리해서는 우리가 구하지 못한 다른 인간 모두가 계속해서 불행해질 뿐.
그러니 우리가 눈앞의 목표가 되어야지.
카이만은 가디아에게 미안하다며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서쪽에서 연락이 왔더구나.”
인간들의 도시를 드디어 완성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