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0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04화(304/373)
“궁정마도사니임! 이익! 궁정마도사님!”
누군가 소리치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옴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책상에서 졸다 말고 고개를 번뜩 치켜들었다.
“무, 무슨 일이냐!”
“지금 졸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 지금 테이트리아 수도 쪽으로 엄청난 마나 파장이 다가오고 있다니까요?”
아니, 이거 무슨 마나 파동만 보면 거의 드래곤급!
제자로 보이는 이가 피처럼 붉은색으로 번쩍거리는 아티팩트를 내밀자마자 마도사가 비명을 지르려는데 동시에 붉은 빛이 툭 꺼졌다.
“어?”
“음?”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한 아티팩트를 보며 마도사와 제자가 잠시 침묵하다 마도사가 아티팩트를 쥐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거참. 고장은 아닌데.”
어지간한 몬스터 이상의, 수도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정도의 마나를 가진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사실 보통의 강자라면 마나를 갈무리할 줄 알기에 말 그대로 이성 없이 마나를 내뿜는 일반 몬스터용 감지기이긴 했으나 미리 방비하기 위한 물건인데.
그게 오작동도 아닌데 빛을 내다 꺼진 것이다.
“…오늘 본 건 너와 나만 알자.”
“네?”
“그토록 진한 붉은 빛인데 갑자기 꺼졌다. 오작동이 아닌 이상 답은 하나이니라.”
엄청나게 강한 존재가 일부러 수도를 뒤덮을 만큼 마나를 뿜었다가 숨긴 것.
“그럼… 큰일 아닌가요?”
“수도에 해를 끼칠 생각이었다면 다시 숨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황실의 그림자들이 있으니.
마도사가 아티팩트를 다시 돌려주며 중얼거렸다.
* * *
“윽. 아파라… 이 폭력드래곤.”
“너야말로 뭐 하는 짓이냐? 어디서 마나를 그렇게 뿜어 대?”
레이첼이 자신이 발로 찬 엉덩이를 매만지며 울상을 짓는 사내에게 윽박지르자 하얀 머리에 하얀 눈동자를 지닌 사내가 입을 꾹 다물었다.
“순수는 무슨. 멍청이겠지.”
“종족 컬러 차별하지 마, 너.”
“푸흐. 몽총이 몽총이.”
“아, 저 녀석 혓바닥 길이 봐, 진짜.”
시끌시끌했다. 얼핏 보아도 스무 명은 되어 보이는 이들.
대부분은 지루하다는 듯 앉아 있었고 몇몇은 오랜만에 본다는 듯 대화했으며 한둘은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그중 푸른 머리칼과 눈을 가진 여인이 다리를 반대로 꼬아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레이첼. 우릴 소집한 이유가 뭔지 말해 줬으면 좋겠어, 이제.”
내가 좀 바쁘거든.
그에 다른 몇몇이 비웃듯 입을 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
“별 내용 아니면 사과해야 할 거야.”
“드래곤의 유희는 같은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망쳐서는 안 된다는 걸 알 텐데.”
그들의 말에 레이첼이 어쩌라고 하는 얼굴로 시큰둥하게 입을 열었다.
“하여간 도마뱀놈들 입만 살아서는.”
자기들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레이첼의 말에 붉은 머리의 몇몇이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나려는데 레이첼이 테이블을 쾅 하고 내려치며 이를 드러내듯 씩 웃었다.
“이 헛똑똑이 머저리들아.”
너희가 그래 놓고 지상 최강의 종족 드래곤이라고 얼굴 들고 다니냐?
레이첼이 빛이 감도는 붉은 루비 같은 눈으로 그들을 훑어보자 옆에서 소르페가 두통이 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그렇게 엉덩이 무거운 놈들이 내가 부른다고 순순히 와? 사실 너희들도 이번에 내가 한 말 때문에 걸리는 게 있어서 온 거잖아.”
다들 기억의 끊김이 있잖아. 그야말로 모순 그 자체.
망각의 축복을 받지 못한 저주받은 종족. 그 어떤 고통스러운 일도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기억이 나야 하는 우리에게.
“종족 단위로 기억이 끊겼다?”
단지 나이만 먹는 것으로도 자연스럽게 반신에 다다를 수 있는 게 바로 드래곤이다.
그런 종족 전부의 기억이 망가진 일.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도 끔찍한 일인지. 불가능한 일인지 다들 알기에 이곳까지 온 것이다.
레이첼이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신이라고 해도 한둘도 아닌 우리 모두를 건드릴 수 없어.”
할 수 있다면 모든 신들의 힘을 하나로 합친 것만큼이나 전능해야 하겠지.
그런데 그게 일어났다면.
“그래, 그러니 정말 그게 가능할 정도의 전능함을 지닌 신이 있단 소리인데.”
그게 누군지 아는 도마뱀. 손?
레이첼이 한 손을 올려 까닥거리며 시범을 보이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말이야, 내가 얼마 전에 바다에서 아주 재미난 걸 봤거든.”
나조차도 이유와 근원을 알 수 없는 악몽.
단순하게 무의식으로 그린 허상이라기엔 너무나도 또렷한 그 꿈.
레이첼이 바쁘다 말했던 푸른 머리칼과 눈을 가진 여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바쁘다며? 너부터 하자.”
“무, 뭘 하자는 거야, 레이첼?”
내가 아델리안이라는 인간을 아는데 걔가 뭐만 하면 적고 정리하고 그러더라고.
“인간에게도 보고 배울 점이 있단 소리지.”
레이첼이 싱글싱글 웃으며 어깨를 잡지 않은 다른 손을 까닥거리자 소르페가 다가왔다.
“금방 끝나.”
나도 해 봤거든.
소르페가 손가락을 퉁기며 워프게이트를 열자 훅 하고 짠 비린내가 풍기기 시작했다.
“바다마녀의 던전. 다들 잘 다녀와.”
그리고 너희가 꾸는 악몽을 전부 알아야겠어, 내가.
* * *
카이만과 가디아가 케인을 넣은 곳은 훈련소 같은 곳이었다.
뭐, 말로는 훈련시켜 아인족들의 경비로 쓴다는 핑계로 돌리는 곳이지만.
‘나는 진상을 아니까.’
이곳은 눈속임이다.
아인족도 이곳에서 훈련을 받는 이들도 전부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후 아인족에게 봉사하기 위한 곳이라고 여기지만.
실상은 최소한의 실력을 키워 주기 위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훈련을 돕는 이들 중 몇몇이 훈련생에게 탈출하고 싶냐고 접근한다.
카이만과 아인족을 증오하는 이들은 당연하게 탈출을 하려 들고 그 과정에서 아주 은밀하게 낙인을 지우는 법과 인간들의 낙원에 대한 소문을 흘리는 것이다.
개중 배신의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피해 인원을 모은 뒤 카이만이 일부러 눈감아 주는 날 탈출을 하는 거지.
‘참 우습네.’
어떻게 보면 허술함이 많은 일이다. 금방이라도 들킬 수 있는 일.
한두 번도 아니고 꾸준하게 인간들이 사라지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 아인족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성공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인간은 그 지위가 너무나도 낮아서 한 번에 수십 명 사라지는 거야 그냥 너무 흔한 일이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더불어 카이만이 하는 일도 하찮은 인간이 하는 일이라 굳이 감찰 같은 걸 보내지 않는다.
카이만이 더러운 일을 전문으로 처리해 주기 때문에 많은 돈이 오가도 누군가 의뢰했거니 하고 다른 아인족의 명예를 위해 넘어가는 거지.
너무나 하찮게 여겨지기에 견제 대상도 아니라 최소한의 방비만으로도 이 일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최초는 카이만의 외모를 마음에 들어 한 아인족이 뛰어난 트레잇을 각성한 카이만을 살려 놓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장난삼아 투기장에 내보내고 다른 아인족들에게 물건을 자랑하듯 내보이고.
그 과정에서 아인족의 신뢰를 얻고 더 좋은 눈요기를 위한답시고 카이만은 쉽게 말하면 노예 상인 같은 일을 한 거지.
그러면서 뒤로는 재능 있는 사람들을 빼돌린 거다. 그 당사자도 모르게.
‘분명 카이만의 히든 트레잇 중에 풍랑이 있었지.’
풍랑은 마법적 트레잇. 이곳의 카이만은 금력과 위엄, 계산적과 모략이라는 트레잇 대신 살기 위해 풍랑이라는 트레잇이 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미 재능이 판별된 성인은 불가능하니 도박하는 심정으로 풍랑이라는 트레잇의 힘을 아주 희미하게 써서 그것에 조금이라도 반응하는 이들을 찾아낸 거겠지.
하루 이틀 정도 마을에 머물며 누가 어떤 트레잇을 나중에 발현할지 알 수 없으니 적어도 마나를 느낄 수 있거나 기감이 예민한 이라도 골라내야 했단 소리.
가디아도 아마 빙하로 그렇게 썼을 테고.
혹여 누군가 카이만과 가디아가 일부러 사람들을 빼돌리고 있다고 단 한 명이라도 아인족에게 말했다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카이만과 가디아는 계속해서 악역을 자처하여 오해를 풀지 않고 자신들이 풀어주는 게 아닌.
이 훈련소에서 탈출이라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내보내는 것이었다.
거기에 아인족들은 카이만과 가디아가 정말 자신들의 편인지 확인하려고 불쑥 나타나 다른 사람들을 죽이거나 매질하라는 명령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어느 요정족이 가디아에게 케인의 여동생인 셰인의 뺨을 힘껏 치고 매로 때리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때 케인이 그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지…….
‘이곳의 케인은 가디아를 용서하기 힘들겠는데…….’
그 뒤로 케인이 가디아를 살기를 담아 바라보는 듯 가디아가 케인만 보면 얼굴이 허옇게 질린다.
“케인…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탈출하자. 교관이 서쪽에 아인족을 피해 인간끼리 도시를 이룬 곳이 있대.”
테이가 검을 휘두르다 말고 다가와 속삭였다.
“곧 성인이야. 지금 우리는, 특히 너는 분명 강력한 트레잇을 받을 거야.”
또래 중 교관을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은 너뿐이니까.
“그런데 그걸 아인족이나 저 빌어먹을 배신자들이 알아봐.”
보나 마나 곤봉으로 머리를 터트려 죽이겠지.
“만약 셰인도 우리는 모르는 강력한 재능이 있다면 어떡할 거야, 케인.”
테이의 속삭임에 케인이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셰인이 있을 약초학 강의실을 바라보았다.
“인간들의 도시라…….”
“그곳에서는 반란군을 조직해 용족이 없는 도시는 그래도 타격을 주고 있다더라.”
나도 내 손으로 아인족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어.
테이가 중얼거리며 이를 간다. 어릴 때는 워낙 비쩍 말라 확신하지 못했지만 이제 곧 성인이 되어 가는 시점으로 뛰어넘은 후라 알 수 있었다.
금발과 검은 눈동자. 황제의 모습이다.
즉 테이는 미래의 살아 있는 신.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원래 살아 있는 신은 케인의 소꿉친구였던 걸까.
아니면 그냥 이 세계가 이상한 걸까. 나는 한숨을 쉬었다.
“케인, 저놈 나쁜 놈이야.”
괜히 케인의 어깨에 팔을 올려 속삭였지만 들릴 리는 없지.
나는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린 케인의 눈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가는 게 맞긴 한데.”
내가 중얼거리는데 케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 이곳에서 나가도록 하지.”
“좋아. 잘 생각했어, 케인. 내가 교관에게 말할게.”
셰인도 데리고 갈 거지?
황제놈, 아니 테이의 말에 케인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여기서 나가면 우리 강해져서 모든 아인족을 죽여 버리자.”
우리를 가축 취급하며 짓밟고 살아가는 저들을 용서하지 말자.
테이가 섬뜩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말이지.”
힘이 생긴다면 똑같이 되돌려 주고 싶어. 어째서 우리가 손톱이나 발톱. 큰 귀나 부리. 날개나 꼬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당해야 하는 거지?
“그들도 짓밟히고 고통당해야 해.”
아인족이 인간보다 좀 더 튼튼하고 기본적으로 강하다고 하지만 우리도 강한 트레잇을 지닌 이들만 죽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충분히 대등할 텐데.
아니, 인간은 수가 더 많잖아. 아인족은 기본적으로 번식력이 낮으니까.
“인간이 아인족에게 죽지만 않으면 우리가 언젠간 이 세상을 차지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테이가 묻자 케인은 말없이 다시 검을 쥐었다.
“케인. 그렇지? 너도 증오스럽잖아.”
나의 부모님도, 너와 셰인의 부모님도. 아니, 우리 중에 단 한 명도 가족이 비참하게 죽지 않은 이가 있어?
“얼마 전 야외 훈련 나갔을 때 말이지.”
인간의 몸에 줄을 감고 씨서펜트 낚시를 하고 있더라고.
다른 곳에서는 피 냄새가 나야 몰려온다고 몇몇을 죽여 짓이겨선 바다에 뿌리고.
“우리 그렇게 되기 전에 강해지자, 케인.”
테이가 먼 곳을 보는 것같이 공허한 눈으로 중얼거리자 케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 강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