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0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05화(305/373)
“피곤해.”
샤하드가 시종의 시중을 받아 옷을 갈아입은 뒤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다.
무도회에서 계속 여유로운 척 웃고 떠들었으나 오늘 일어난 일이 어찌 가벼울 수가 있을까.
비록 자신의 기사들이나 이옐, 그리고 이트가 광장 주변에서 대기했다고는 하나 세리아의 세력 또한 마찬가지였을 터.
혹시 모를 변수를 계속 대비하는 것과 동시에 이번 일이 몸이 회복된 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외활동이었던지라 샤하드의 신경은 날카로울 대로 날카로웠다.
더욱이 그냥 세리아를 견제하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길었을 텐데 모인 이들의 면면이 대단한지라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기도 했다.
‘이노센트. 도대체 뭐야.’
방 안에서 오롯하게 혼자가 된 이제야 샤하드는 이것저것 떠올리기 시작했다.
저번 회담 때부터 생각했지만 샤하드가 여기기엔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황실도 세 대공가를 한곳에 모으기 힘든 일이다. 황제가 아닌 이상 그 누가 감히 그들을 오라 가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걸 모았단 말이지.’
도대체 누구일까.
마법을 써 목소리를 변조한 덕에 그것으로 나이대나 성별을 추측하기는 힘들었다.
옷도 이노센트의 일원들은 대부분 로브를 입고 있는지라 간단한 체형 정도만 구분되는데 그 또한 옷 안에 무언가를 입었다면 의미 없는 셈.
‘하지만 말투나 그 미묘한 억양 등을 미루어 봤을 때.’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거기에 샤하드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는 어느 정도 이노센트의 수장이 누군지 짐작하는 것인지 혹은 친분이 있는지 수장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는 눈치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아르만.’
유일하게 자신과 연배가 비슷한 아르만이 꽤 미묘한 얼굴로 이노센트의 수장을 바라보던 것을 샤하드는 기억해 냈다.
“이옐.”
샤하드가 중얼거리자 잠시 후 이옐이 노크를 한 뒤 들어왔다.
“오늘 피곤해서 바로 곯아떨어지실 줄 알았더니.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이옐이 편한 옷을 입은 채 하품을 하며 말하자 샤하드가 대자로 누워 중얼거렸다.
“내일 상황 보고 헉슬리 가문의 아르만 대공자에게 연락을 넣어.”
한번 만나자고 해.
그에 이옐이 자신의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샤하드 님. 지금 들어온 초청장이 한둘이 아닙니다. 도움이 될 이들만 골라낸다고 해도 산더미인데 어찌할까요.”
“백작급 이하는 특출난 이가 아닌 이상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세리아 쪽 인사인지. 혹은 양쪽에 줄을 대려고 하는 건지도 알아봐야겠고.”
지금 세리아가 아닌 자신이 잠시 주목받는다고 해도 그동안 세리아가 다진 기반에 비교하면 살얼음 위나 다름없다.
그러니 지금 들어오는 초청장 대부분은 의미 없을 게 뻔한 것이 이미 수도권 귀족의 대부분은 세리아의 세력이다.
보통은 자신을 대접하기 위해 초청하는 척하며 염탐할 세작이란 소리.
그럴 바엔 이렇게 관심이 집중될 때 굳이 밖으로 나돌며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기보단 이미 있는 이들과 내실을 다지는 게 훨씬 도움이 될 터.
예를 들자면 아군인지 적군인지 아직 모호한 이들을 찾기 위해 세리아의 세력이 대부분일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보다.
아군에 더 가까운 이노센트의 일원과 만나는 것이 맞는 선택이겠지.
그리고 거기서 가장 말하기 편한 이 중 하나이자 비슷한 또래인 아르만부터 대화해 보는 것이 나을 터.
“그럼 초청장은 제가 거른 뒤 최종적으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수도에 있는 헉슬리 가의 저택으로 연락을 취해 보도록 하죠.
이옐이 그리 말하자 샤하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먼저 아르만을 만난 뒤.’
아델리안 또한 만나 보는 게 맞겠지.
카이만 대공과는 달리 아델리안은 이노센트의 하위 조직원으로 보이긴 하지만.
크루거 가문의 가주와 더불어 대공자까지 이노센트의 일원이니 아델리안도 무언가 알고 있는 게 있을 터.
‘그리고 또…….’
샤하드가 무언가 생각하다 눈을 비비더니 이내 잠이 든 듯 느리게 숨을 흩었다.
* * *
“저렇게 막 들여보내도 돼?”
이 폭력드래곤! 저 안에 뭐가 있는 거야? 하며 반항하던 드래곤들을 하나씩 전부 엉덩이를 걷어차 통로로 넣은 레이첼에게 소르페가 물으니 레이첼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죽기야 하겠어?”
레이첼이 씩 웃으며 하는 말에 소르페가 이마를 탑! 소리 나게 짚었다.
“자기 힘으로 빠져나올 이들이 몇이나 되겠어.”
소르페 자신도 하마터면 그 악몽에 잡아먹힐 뻔하지 않았나.
소르페의 말에 레이첼이 무얼 그리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눈을 둥글게 뜨고 대답했다.
“위험한 거 같으면 깨워야지.”
레이첼의 말에 소르페가 찡그리며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힘 조절해. 윗니만 남는 줄 알았어.”
마법으로 치유했으니 망정이지 평생 빵도 이로 못 끊을 뻔했다는 소르페의 말에 레이첼이 낄낄거렸다.
“아, 맞기 싫으면 알아서 재깍재깍 일어나야지, 어?”
난 안 맞고 그냥 깼거든.
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레이첼의 모습에 소르페가 눈가를 찡그렸다.
“그래도 혼자 일어난 건 아니잖아.”
“하지만 맞진 않았어.”
나는 아델리안이 깨워 줬거든! 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레이첼을 바라보며 소르페가 고개를 저었다.
* * *
나는 지금까지 케인이 가장 천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보다 더한 사람이 있었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그래.”
“하지만 난… 내가 누군가를 해치는 상상만 해도 무서운걸.”
케인의 여동생 셰인이 허공에서 마나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아직 케인도 저 정도로 마나 친화력을 보여 주지는 못하는데 셰인은 마나를 마치 찰흙처럼 주물러 그 형태를 빚어내기까지 한다.
‘케인보다 더한 재능을 가졌을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그럼 살아 있는 신은 단순하게 케인의 멘탈을 공격하려는 용도가 아닌 여러모로 생각해서 그런 짓을 한 건가.
잠시 내가 셰인을 바라보는데 케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린 자기방어에 필요한 최소한의 힘은 가지고 있어야 해.”
아직 어린 케인이 동생을 다독이며 이것저것 알려 주는데 대부분 누군가를 죽이는 방법인 게 씁쓸하다.
하지만 이곳은 내가 원래 알던 대륙보다 훨씬 인간에게 위험한 곳이니 어쩔 수 없겠지.
셰인은 케인을 닮은 검은 머리에 황금색 눈동자를 한 채로 케인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난 누군가를 죽이기 싫어, 오빠.”
난 반대로 살리고 싶어.
“엄마나 아빠를… 누군가가 도와줬다면, 구해 줬다면…….”
어릴 때부터 기도했어. 누군가 우릴 구해 주기를.
저 무서운 수인들을 죽여 달라는 기도가 아닌, 그냥 우리를 살려 달라는 기도를.
“그러니 난 열심히 배워서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어.”
어린 나처럼 우는 아이들이 없도록.
셰인의 말에 케인이 바라보다가 셰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내가 할 테니 너는 살리도록 해.”
셰인은 분명 케인보다 강해질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케인이 최소한의 호신술을 알려 주기 위해 목검을 들고 대련하면 처음엔 버거워해도 나중엔 케인과 호각으로 겨뤘으며 체술이나 궁술 또한 막상막하.
셰인에게 부족한 건 독기였다. 만약 독하게 누군가를 죽이겠다 마음먹으면 오히려 케인보다 강해지겠다 확신할 수 있을 만큼.
하지만 셰인은 너무 다정한 아이라 누군가의 급소에 목검이라도 함부로 들이밀지 못했고 대련 때 테이가 맞아 윽 소리를 내면 본능적으로 멈추고 몸을 살폈다.
“하아, 세상에. 매일같이 수련하는 내가 약초만 만지는 셰인보다 약하다니 이건 말도 안 돼.”
테이가 셰인과 대련하다 벌러덩 누워 투덜거리자 셰인이 살짝 미소 지으며 그런 테이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내가 테이보다 강해져서 지켜 줄까?”
“무슨 소리야. 넌 치료술에만 전념해. 그리고 내가 너랑 케인에게는 져서 모르나 본데.”
이 훈련소에서 너희 둘 빼고는 내가 제일 세거든? 하며 테이가 셰인의 손에 고개를 비비며 말한다.
그 모습을 나는 아주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 저 가증스러운…….
누가 봐도 풋풋한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모습이긴 한데.
물론 보아하니 이때의 테이는 살아 있는 신이 아닌 정말 1회 차인 거 같긴 한데.
내가 나중 일을 알잖아.
저, 완전 가증스러운 놈 같으니라고…….
내가 팔짱 끼고 서서 쓰레기라거나 개자식이라거나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된다며 중얼거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또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케인과 테이가 교관과 다른 이들을 규합하고 훈련소에서 탈출할 계획을 짜는 사이.
카이만과 가디아는 아인족들의 세계에서 치욕을 겪으면서도 다른 아이들을 격리 마을에서 빼내기를 반복했다.
인간은 아인족보다 멍청하다는 인식이 팽배하기도 하고 카이만을 마음에 들어 하는 아인족이 분위기상 용족인 모양.
그래서 카이만이 그 이름을 팔아 사업을 확장하는데 아인족들이 미천한 일이라고 꺼려 하는 인간족의 이송이나 매매 혹은 관리 등을 도맡아 하게 되니 확실히 돈은 잘 벌리는 모습이다.
물론 대부분은 몰래 뒤로 빼돌려 지원하는 모양이지만.
‘수완이 좋은 건 거기나 여기나 같네.’
이곳의 카이만은 가디아만이 가족인 것으로 보아 아델리안 자체가 원래는 카이만의 부인인 헤레니아와 같이 죽은 게 맞는 모양이다.
그리고 케인과 테이가 훈련소를 탈출하는 날 교관은 카이만이 챙겨 준 주머니를 건넸다.
“이것은 우리 인간족의 자유를 원하는 익명의 후원자께서 준 것이다. 안엔 돈과 식량이 들어 있다.”
이것으로 인간들의 도시를 찾아가.
교관의 말에 케인과 테이가 끄덕였다.
그리고 한동안 이동하거나 밤에만 산에 숨어 쉬는 모습이 보인다.
딱히 귀족에 해당되는 아인족이 아닌 가난한 아인족도 사람을 한둘 정도는 사서 노예로 부리는 세계인지라 가끔은 늙고 병들어 힘이 약해진 아인족을 죽이고 탈출하는 인간들도 있었다.
혹은 반대로 병들어 시체를 처리하기 싫으니 무작정 자유를 주겠다며 아인족에게 쫓겨나듯 풀려난 사람도 있었고.
그리고 그런 이들을 전문적으로 죽이거나 처리하는 인간 사냥꾼도 존재했다.
케인과 테이는 그런 아인족을 처리하고 셰인은 다치고 병든 이들을 치유하며 한참 나아갔다.
‘그나저나 이곳에 꽤 오래 있었던 거 같은데.’
아직도 피곤하거나 졸리거나 지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더불어 밖에서 시간이 많이 지났다면 애들이 어떻게든 날 깨웠을 텐데 아직 이곳에 있는 걸 보면.
‘시간이 다른 건가.’
간혹 긴 꿈을 꾸면 꿈속에서는 시간이 오래 흘러도 깨어나면 몇 시간 흐르지 않으니까.
그거랑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잠시 딴생각하던 와중 정신 차려 보니 사막으로 보이는 대지가 눈에 들어온다.
‘챠비드?’
내가 챠비드에 있었던 것은 잠시라 그곳의 지리를 확실히 아는 건 아니지만.
딱 봐도 척박한 데다 황무지에 사막이 보이고 돌산으로 이루어진 게.
아무리 봐도 챠비드다.
이 척박한 대지는 이곳에선 인간들의 은신처로.
내가 원래 있던 곳에선 수인족이 인간에게 밀려 정착한 정착처로 쓰였던 건가.
협곡을 지나 돌산 아래를 파 들어간, 얼핏 보면 벌레나 작은 몬스터 외엔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케인, 셰인. 우리 도착했어.”
테이가 인간들의 도시 앞에서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