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06)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06화(306/373)
나는 케인과 셰인이 짐을 푸는 동안 이곳을 둘러보았다.
풀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척박한 곳. 이곳에서 얻을 거라곤 모래와 돌 정도라 아인족이 사실상 버린 땅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땅이라 도망친 인간들의 도시가 세워질 수 있었겠지.
그나마 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넉넉해 보이진 않는다.
음식은 쥐와 곤충같이 빨리 번식하는 것과 이끼를 키워서 보충하는 모양이고.
절벽을 파서 만든 공간들을 돌아다니다 난 문득 희미하게 나는 소리에 벽을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죽여야 해. 그 아인족 놈들 전부 죽일 거야…….”
“살람의 풀. 빙하 누수액. 뿔토끼의 발. 마법 회로… 그래, 맞아. 마법 회로로 뇌를 만들어서.”
“좀 더 강하게. 좀 더 강하게.”
누가 봐도 매드 사이언티스트처럼 생긴 마법사, 연금술사들이 모여 중얼거린다.
“인간만 쓸 수 있게 마법을 추가하죠.”
“피로 구분할 수 있게 술식을 이렇게 넣으면.”
“우리가 만드는 것은 절대 아인족들이 쓸 수 없게 할 거니까.”
슬쩍 가서 구경하니 비공정과 비슷해 보이는 무언가의 도면이 보였다.
“이번에 성년이 된 아이 중에 연금술과 관련된 트레잇을 가진 아이가 있었어.”
“그럼 좀 더 빠르게 연구할 수 있겠는걸.”
어깨너머로 확인한 것들을 조합하면 바닷빛 진주로 구동되는 비공정의 초기 모델과 호문클루스 연구로 보였다.
‘저 호문클루스 연구에서 골렘으로 넘어가는 건가.’
인간족이 아닌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나는 요정의 숲에 숨겨져 있던 비공정으로 들어갔을 때를 떠올렸다.
비공정에 들어가기 전 3층 혹은 4층 높이의 문에 새겨진 문양이 우리의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떠오른 걸 케인과 같이 맞추지 않았던가.
순혈 인간만이 볼 수 있었던 그것.
다 짜 맞추니 거대한 드래곤을 제압한 사내의 모습과 함께 최후의 주인이라는 고대어가 떠올랐었지.
아무래도 지금 이 세계는 드래곤이 가장 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드래곤과 타협하지 않는 한 인간족의 처우는 지금 이상으로 나아질 리 없으니.
이들은 모든 아인족을 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긴 지구에서도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 이상의 사람을 먹여 살린다 했던가.’
그것을 미루어 보자면 카이만이 성년이 되어 아인족이 트레잇을 확인 후 죽이기 전에 대륙 각지에서 구해 온 이들 덕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세력이 강해지는 중인 거 같았다.
‘레이첼의 악몽.’
그게 만약 이때의 일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늘을 나는 비공정과 타이탄들, 드래곤을 죽여 드래곤 하트를 강제로 뽑아 그것을 연료 삼아서 다른 비공정을 띄우고.
드래곤 하트에서 뽑아낸 마나로 비공정이 자리 잡고 마치 배럭처럼 타이탄과 골렘을 생산해 내던 모습.
결국 드래곤 로드이자 최강의 드래곤이라 불리던 레이첼마저 추락하던 그 악몽을 미루어 봤을 때 결국 이들이 바라던 미래는 온다는 소리인데.
‘문제는 지금 내가 보는 게 1회 차라고 쳐.’
그리고 내가 소설과 게임으로 본 것을 2회 차라고 일단 가정해 보자.
그럼 1회 차에서는 케인이 아인족을 증오하는데.
2회 차에서는 갑자기 인간을 혐오한다?
원래 내가 아는 케인의 파티는 가디아를 제외하면 전부 사람이 아니었다.
루나는 토끼족이고 리프는 골렘이지. 레이첼은 드래곤이고 파이얀은 요마족에 레비는 인어였다.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아니, 이게 이렇게까지 반대일 수가 있나.
아공간이 열리지 않으니 메모도 못 하고 손으로 모래를 긁어도 긁히지 않으니 답답하다.
일단 난 케인의 곁으로 돌아갔다.
* * *
“이번은 뭔가 이상한걸.”
살아 있는 신이 마나 위에 앉아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검은 실 같은 것이 매끈하게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넘쳤다.
“지금까지 돌아온 기억 중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모든 기억을 되찾은 것은 아니다. 그랬다간 아무리 신의 가호와 축복을 몰아넣은 신체라 하더라도 견디지 못했을 터.
살아 있다는 것은 육신을 입고 있다는 것.
육신을 버리고 정신체나 다름없는, 말 그대로 완전한 신이 된다면 그 수많은 기억을 가져도 뇌에 부담이 되지 않겠지만.
지금 육신은 아직 아슬하게 인간의 범주에 속해 있다.
그래서 그 많은 기억을 모래알만큼 잘게 쪼개어 놓지 않았던가.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많이 쪼개 뒀다고 해도 보통은 그 맥락이 비슷한 법.
물론 이렇게 세계가 안정화되기 전, 과도기 때는 변수도 돌발 사건도 많았다.
때로는 케인이 초반에 이상함을 알아채고 세계의 비밀을 파헤치려 해서 예상보다 일찍 세계를 리셋한 적도 많았었지.
‘하지만 분명 지금은 안정화된 이후일 터.’
그런데 이렇게 시나리오가 망가진 적이 있었던가.
‘전염병도 제대로 퍼지지 않았지.’
샤하드가 이렇게 대두된 적도 없었다.
남해 쪽에서는 해적이 통합되고 있었고 인어족이 헉슬리 가문이 아닌 다른 가문과 내통하여 세력을 불리고 있지도 않다.
더불어 신전이 습격당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지?
레이첼의 혈육인 레피드가 마룡 행세를 하며 몬스터를 모아 슬슬 침공 준비를 하고 있지도 않다.
더불어 챠비드로 몰아넣은 수인족들이 잠잠하다.
노예 사냥과 전염병, 그리고 그 전염병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탄압당하는 것을 견디다 못해 지금은 그 내부가 화산처럼 들끓고 있어야 할 텐데.
황제로 잠시 돌아가 확인한 문서에서는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
‘그 외에도 이것저것.’
한 번의 삶에서 몇 가지가 뒤틀릴 수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것들이 한 번에 뒤틀린 적이 있었나.
‘이상해.’
너무 이상하단 말이지.
살아 있는 신은 잠시 생각하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케인, 케인.”
아무래도 이상했다. 이 뒤틀림이 대륙 어디에서, 자신이 제어하지 않은 곳에서 시작된 거면 상관없다.
하지만 케인과 관계가 있다면?
‘그럼 곤란하지.’
살아 있는 신이 느리게 케인의 이름을 되뇌었다.
비록 지금은 육신이 있는 데다 권능을 전부 되찾은 것이 아니라 제약이 따르지만.
아주 잠시 엿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한두 번만 엿봐도 케인은 그 대단한 재능으로 살아 있는 신. 자신의 시선을 알아챈 다음 이 세계에 의문을 품으니 거의 쓰지 않는 방법이나 지금은 확인이 필요한 때.
“케인 레이너스.”
말에는 힘이 실리는 법. 그리고 신의 의지는 공간을 뛰어넘는 법.
케인을 부르며 그를 보자 하면 신의 눈엔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살아 있는 신의 감은 눈 너머로 무언가 일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케인. 너 진짜 이건 아니지 않냐?.’
‘맞아. 너무 했어. 그리구 무자비했구.’
‘하아, 정말 실망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케인이 레이첼과 루나. 그리고 파이얀과 리프에게 둘러싸여 비난받는 모습.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무언가를 만지며 묵묵하게 있는 케인의 모습이 일렁거린다.
“…그래, 넌 그게 어울려.”
비난받는 케인은 흔한 모습이지.
아주 잠시 훔쳐본 것으로도 무언가 느낀 듯 케인의 눈이 짙어지다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이 마주치려는 순간.
살아 있는 신은 얼른 눈을 떠 어둠의 마나가 일렁이는 공간을 바라보았다.
“케인 쪽에서 비틀린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다른 동료가 보이거나 혹은 케인이 행복해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더불어 무언가 큰일이 진행되거나 색다른 공간이 보이지도 않았지.
제법 화려한 저택 안으로 보였지만 이때는 아직 케인이 아닌 척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지닌 나이이니.
그 얼굴에 홀린 귀족들이 자주 초대하여 식사에 무언가를 타거나 하는 경우가 잦았던 시기다.
그런 일을 몇 번 더 겪은 뒤에야 그냥 사람 없는 마을이나 돌아다니지.
‘꽤 빨리 그 더러운 아인족들을 모두 만난 건 의외지만.’
그건 아주 없던 일은 아니니.
‘그럼 무엇부터 뒤틀린 거지.’
살아 있는 신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몸이 완전히 제어되지 않는 시기에서 권능을 너무 끌어쓰면 강제로 리셋해야 하는 일이 생길 때가 있으니까.
‘…어차피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리셋할 수 있으니까.’
단지 기분 좋게 진행되지 않을 뿐, 원한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케인의 격을 깎으려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르지.’
너무 같은 패턴으로만 절망한다면 익숙해지지 않겠는가.
비록 케인이 인지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루프했던 대부분의 세계와 이번이 다르다는 건 무의식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케인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영혼의 무의식이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 그것마저 망가뜨리는 것이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살아 있는 신, 자신이 못 할 것은 없으니.
“조금만 더 두고 볼까.”
살아 있는 신이 황금색 눈동자를 어둠 속에서 빛내며 느리게 웃었다.
* * *
“와, 진짜 너는 동료애도 없냐?”
레이첼이 바들바들 떨며 말을 하지만 케인은 무자비하게 주사위를 굴렸다.
4. 4를 띄운 뒤 한 번 더 3. 6을 띄워 마지막 말까지 통과시킨 다음 케인이 묵묵하게 테이블 위에 올라온 사탕을 전부 챙기자 레이첼을 주먹을 꽉 움켜쥐었고 루나는 울상을 지었다.
리프는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고 파이얀은 입술을 씰룩거렸다.
“오늘 무슨 날 잡았나 봐?”
열심히 모은 사탕을 오늘 반이나 날린 파이얀이 날카롭게 말하자 케인이 병에 다 들어가지 않는 사탕을 하나 입에 넣는다.
“저, 저 아까운 사탕을!”
“사탕은 먹는 게 아니야, 케인.”
―정확하게는 먹는 것이나 우리에게는 화폐나 마찬가지입니다. 케인 님!
“선 넘네…….”
그 모습에 레이첼이 울분을 토하고 루나가 단호하게 말했으며 리프가 딴지를 걸었고 파이얀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분명 방해하면 봐주지 않겠다 했을 텐데.”
그러게 누가 수련하는 걸 방해하라 했냐는 듯 차갑게 말하는 케인의 뒤로 제로가 국자를 들고 나타났다.
“식사 다 만들어 가는데 지하에 있는 레이첼 후배님의 손님들은 언제 올라옵니까?”
“어?”
그에 레이첼이 잊고 있었다는 듯 깜짝 놀란 눈을 하다가 세이렌을 꺼내 쥐고 소리쳤다.
“소르페! 어찌 되어 가?”
“별로 안 급하면 다 올라와서 식사하라 전해 주세요.”
일부러 넉넉하게 만들었는데 하며 제로가 다시 주방 쪽으로 사라지자 루나와 리프가 맛 좀 먼저 보자며 따라간다.
“아니, 진짜 아직도 거의 안 깨어났어? 자력으로 나오는 놈들이 없네.”
몇몇은 초반부터 거품 물길래 후려쳐서 깨웠고 나머지는 안정적이길래 슬쩍 올라와 놀고 있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아직 그대로라고? 하며 레이첼이 투덜거리다 케인에게 손가락질하며 일어났다.
“밥 먹고 한 판 더 해. 이번엔 다른 게임으로.”
“새벽까지 하자. 나 길드 업무만 보고 새벽 전에 다시 올 테니까.”
나중에 저녁 먹고 보스에게 사탕 대출 받을 거야 하며 파이얀도 일어났다.
“아델리안 피곤한지 종일 안 보이던데 밥 먹자고 깨워, 알았지?”
걔는 비실비실하게 마나도 몸에 못 돌리니까 밥이라도 챙겨 먹여야 한다며 레이첼이 신신당부한 뒤 어어, 지금 내려가 하고 세이렌을 잡고 걸어간다.
“그리고 너도 수련한다고 자꾸 틀어박히지 말고.”
치사하게 더 강해지지 말고. 내가 강해질 때까지 기다려.
그리고 누가 최측근인지 승부하자.
파이얀이 케인에게 장난스레 말한 뒤 안개로 변해 창문 틈새로 스윽 빠져나간다.
케인은 한참 시끄럽던 사방이 조금 조용해짐을 느낀 뒤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렸다.
아델리안의 방.
숨소리도 마나의 흐름도 고요하다. 다만 아델리안은 방 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 깃펜 소리가 한 번은 났던 것을 감안하면 너무 조용한가.
케인이 아델리안의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