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0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07화(307/373)
“전부 죽여! 살려 보내지 마!”
“부상자는 이리로 오세요.”
“시체는 수거해 와! 다 연구 재료이니까.”
전투가 한창이다.
케인은 저 멀리 선봉에 서서 검을 휘두르고 조금 뒤에선 테이가 소리쳐 다른 동료들을 독려한다.
최후방에선 셰인이 부상자를 모으며 뒤따라온 연구자가 몇몇 온전한 아인족의 시체를 마차로 옮기고 있다.
내 체감으로는 한두 시간 전 일 같은데 케인과 셰인. 그리고 테이가 챠비드에 온 뒤로 제법 시간이 흘렀다.
비슷한 나이였던 케인과 테이는 몇 년 전 성인식을 치렀고 두 살 정도 어린 것으로 보이던 셰인도 트레잇을 각성했다.
아인족들처럼 제대로 된 신전에서 트레잇을 확인한 게 아니라 카이만이 구해 낸 이들 중 트레잇을 확인 가능한 이가 확인해 준 것이기에 그 등급까지 세세하진 않았지만 어떤 트레잇인지는 알 수 있었다.
케인은 불굴과 천재를. 테이는 마나의 축복과 강력한 의지를.
그리고 셰인은 패왕의 가능성이란 트레잇을 확인했는데.
‘셰인은 아무리 봐도 공격형이란 말이지.’
재능 자체는 케인보다 더한 패도 스타일이다.
검을 쥐면 바로 검의 달인이요. 활도 한두 번 쏴 보면 영점을 바로 잡는지 그다음부터는 백발백중이었다.
마법 또한 마찬가지.
마법 위주로 수련한 테이가 종종 장난삼아 알려 주면 확실히 보조마법이나 일상 마법은 비교적 자주 실패하는 반면에 공격 마법은 오히려 화력이 증대하는 모습이 보였다.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전투 재능. 셰인이 마음만 먹으면 케인보다도 강할 게 뻔해 보였지만.
‘너무 선량해.’
남이 다친 걸 보면 자신이 다친 것처럼 아파한다. 누군가 속상해하는 걸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자신이 한 번 굶어도 남을 한 번 더 먹이며 누가 넘어지면 잡아 주고 쓰러지면 업어 준다.
검이나 마법보다는 약초술이나 치료술에 전념했다.
한 번 검을 휘두르면 몬스터의 두꺼운 정강이도 뼈까지 쉽게 자를 수 있으면서 마른 약초는 한 번 작두질할 때마다 혹시 베일까 신중하게 입술을 앙다물고 썩뚝 썰어 낸다.
정말 단순하게 효율만 따지거나 혹은 타고난 트레잇만을 보면 분명 셰인은 지금 멍청한 짓을 하는 중이다.
더 잘할 수 있고 더 타고난 재능이 있는 길을 가지 않으니까.
게임 캐릭터였다면 말 그대로 망캐였다.
전사나 혹은 마법사. 암살자를 골라 놓고 스킬은 힐러로만 찍는 거나 마찬가지이므로.
근력과 스피드에 보정이 붙는 캐릭터를 치유력만 올리는 바보 같은 짓인 것이다.
‘하지만 응원하게 되네.’
그렇지만 셰인은 게임 캐릭터가 아니다. 타고난 운명이 있다고 그것을 꼭 받아들여야 하진 않는 법이다.
내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은 다른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셰인을 응원했다. 1회 차는 몰라도 나중엔 셰인이 어찌 되는지 알고 있어서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내가 응원하건 안 하건 정해진 길이지만.”
내가 무언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케인을 응원하고 셰인을 지지했다.
테이는, 살아 있는 신은 지금 보는 내용만 생각하자면 사실 세탁기 돌아가는 기분이긴 한데.
‘그래도 넌 안 돼, 인마.’
용서 못 해.
괜히 테이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는데 케인이 소매로 땀을 닦으며 자신의 몸통만 한 용인족의 머리를 뿔을 잡고 들고 왔다.
“으악 내가 최대한 온전하게 죽여 달라 그랬잖아!”
“깔끔하게 목만 잘랐다.”
케인이 뒤를 흘긋 눈짓하니 다른 동료들이 끙끙거리며 비늘로 뒤덮인 용인족의 몸을 끌고 온다.
푸른 피가 아래로 흘러내리는 모습에 연금술사가 기겁하며 방수포를 들고 뛰쳐나갔다.
“아이고, 아까운 피!”
이걸 한 방울이라도 더 분석해야 용인족에게 더 치명적인 골렘을 만들 수 있는데!
난리법석을 부리는 이를 뒤로하고 케인은 푸른 피에 물든 손을 대충 닦은 뒤 셰인에게로 걸어간다.
그리고 그 뒤를 테이가 바짝 붙었다.
“저기 완전 토끼에 가까운 토끼족이 있는데 셰인 보고 죽여 보라 하자.”
사람을 닮을수록 거부감 느끼는 거 같으니 동물에 가까우면 덜하지 않겠어?
하는 말에 케인이 고개를 젓자 테이가 미간을 찌푸린다.
“케인, 단호해져야 해. 이 세계는 호락호락하지 않아. 지금은 너나 내가 셰인을 지켜 주고 있지만 사람 일은 모르잖아.”
우리가 힘이 있어서, 검과 마법을 쓸 수 있으니 가축보다 못한 삶에서 벗어난 거야.
“지금도 격리구역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지금도 인간족이란 이유만으로 학대당하고 이용당하는 사람이 이 세계에 많을 텐데.
테이가 중얼거렸다.
“셰인도 알아야 해.”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는. 우리가 잘나서 얻은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자유로울수록, 이렇게 아인족들을 죽이고 다닐수록.
아인족이 재산처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처우는 더욱 잔인해지는 중이라는 걸.
“셰인이 연고나 약이 아닌 검을 손에 쥐면.”
우리는 부상자 한두 명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더 많이 구할 수 있어.
테이의 말에 케인이 걸음을 멈추고 그 짙은 황금색 눈으로 테이를 바라보았다.
“셰인이 원하지 않는다. 강요하지 마.”
“하지만!”
“테이.”
셰인도, 나도 원하지 않아.
케인이 단호하게 말하며 몸을 돌리자 테이가 바르르 떨며 이를 갈았다.
“…이기적이긴.”
아인족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고 한 무리라도 더 불태우면 당장 다친 사람 한둘보다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데.
누구보다도 강해질 수 있는 셰인이 마음먹기만 하면 지금보다 더 빠르게 아인족들을 몰아낼 수 있을 텐데.
그 재능을 헛되게 쓰는 중이다. 자신이 재능을 가진지도 모르고, 어떤 트레잇인지 본인은 알지도 못한 채.
어쩌면 셰인과 케인만큼 강해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더라도 아인족에 의해 성인이 되는 날 죽고 있을 텐데.
운 좋게 배신자들에게 팔려서 도망친 우리가 운 나쁘게 학대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데.
테이가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너무해.”
케인도 나도. 우리 모두 부모가, 형제가. 친척이, 이웃이.
그렇게 개죽음당하는 걸 보면서 자랐음에도 왜 어째서.
“나만 간절해……? 나만 그들이 증오스러워?”
테이가 느리게 중얼거리는 걸 보며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 * *
그것은 재앙이었다.
“미천한 벌레놈들이!”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온순하며 순수하다 불리는 화이트 드래곤이 내뿜는 아이스 브레스가 일자로 길게 뻗었다.
닿는 모든 것들이 얼었다가 이내 터져 나간다.
단단하게 얼은 파편이 사방으로 날리다 불타오르는 대지에 의해 녹아내렸다.
우글거리는 골렘의 중앙이 일자로 잠시 비었다가 다시 꾸역꾸역 차며 몰려든다.
양산형 골렘 따위야 하늘을 나는 기능도 없기에 날아오르면 그만이지만 지금 쇠뇌와 타이탄에 의해 날개에 구멍이 난 상태라 그것도 여의치 않다.
화이트 드래곤 아이샤는 자신의 몸을 타고 오르는 양산형 골렘을 털어 내며 몸을 비틀어 꼬리로 쓸어 내고 마법을 발동해 주위의 골렘을 수도 없이 파괴했으나 끝이 없었다.
마치 바닥에 떨어진 고깃덩어리로 모이는 불개미들 같다. 폴리모프로 몸집을 줄이면 그 위로 수백 대의 골렘이 엉겨 붙고 본체로 현신하면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비늘 새로 칼을 밀어 넣는다.
마법과 브레스로 없애는 만큼 주위에서 몰려들었다. 이 정도의 골렘을 이만큼이나 물량을 뽑을 수 있다니.
‘그게 하찮은 인간족에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화이트 드래곤 아이샤에게 양산형 골렘만 몰려드는 것은 그야말로 천운에 가까웠다.
최상급 골렘을 포함한 정예전력은 화이트 드래곤보다 무력적으로 강한 레드나 골드 드래곤을 먼저 사냥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말 그대로 사냥이었다.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하며 완벽한 종족이라던 드래곤이 가장 미천하고 불완전한 인간족에게 사냥당하는 중이었다.
아득바득 붙은 양산형 골렘이 뜯어내는 비늘은 바닥에 내려앉은 비공정으로 들어가 다시 골렘이 되어 나온다.
드래곤의 비늘과 피도, 주위의 암석과 나무도. 아인족의 시체마저도.
모든 것을 재료로 써 양산형 골렘을 미친 듯이 찍어 낸다. 저 멀리서 그린 드래곤 하나가 다시 하늘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위로 까맣게 보일 만큼 골렘들이 올라타고 하필 검은 머리의 인간 근처로 떨어진 터라 바로 드래곤 하트가 꺼내진다.
‘이건 악몽이야.’
긍지 높은 드래곤이, 지상 최강의 종족인 드래곤이.
고작 인간들의 반란에 무너지는 건 말이 안 돼.
화이트 드래곤 아이샤는 비늘이 반쯤 벗겨진 채로 용혈을 흘리며 몸을 뒤틀었다.
몸에 박힌 쇠뇌와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다 파바박 하고 터진다.
크게 울부짖었다.
드래곤 피어를 터트린 덕에 근처의 골렘들이 잠시 움직임을 멈춘 동안 회복한 마나로 오늘의 마지막 브레스를 길게 내뿜었다.
“하루 두 번, 맞지?”
드래곤 브레스 말이야.
황금색 머리에 검은 눈을 한 사내가 눈에 광기를 두르고 양손에 마법 그 자체를 두른 채 다가왔다.
푸르고 하얀빛이, 붉고 검은빛이 그자의 양손에 교차로 빛난다.
수십 개의 마법이 즉발 직전의 상태로 도식화되어 손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마법의 종사라 불리는 드래곤들 중에서도 극소수나 가능할 법한 제어력.
“유일하게 브레스만이 내 마법을 방해할 수 있거든.”
금색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사내가 그리 중얼거린 뒤 양손을 교차했고 그 순간 몇 개의 마법이 융합, 분열하더니 그대로 아이샤의 시야가 핑그르 돌았다.
‘저기에 왜 내 몸이?’
하얗게 빛나는 비늘로 덮여 매끈하던 몸이 온통 흉하게 비늘이 뽑혀 나가고 날개가 부러졌으며 피막이 찢겨 나가 붉게 물들었다.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용혈 새로 몸을 내린 사내가 피에 젖은 하얀색 드래곤 하트를 꺼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아이샤의 의식이 끊겼다.
그리고 잠시.
“주인님. 로드 레이첼께서 평야로 집결하라 하십니다.”
인간들의 군세가 곧장 이곳으로 향하고 있으니 미리 평야에서 몰살시켜 수도에 존재하는 건물의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함이라 전하셨습니다.
화이트 드래곤 아이샤는 자신이 집사로 부리던 황금 갈기 사자족을 바라보다가 그 무슨 재미없는 농담을 하냐는 듯 웃었다.
다시 악몽이 시작된다.
머리로는 도망치라 하는데 몸은 의지를 배신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버러지 같은 인간들이 수만 마리 몰려오는 게 그 무슨 일이라고.”
우리를 전부 소집하는 게 말이 돼?
하며 코웃음 치는 자신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아니야, 그것들은 그냥 인간이 아니야. 도망쳐, 얼른!
아이샤가 내지르는 비명은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 고통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그 순간.
강력한 고통이 아이샤의 몸을 덮쳤다.
“일어나!”
“흐어억, 으어?”
마치 자던 와중 찬물이라도 뿌려진 듯 몸서리치며 눈을 뜬 아이샤의 앞에 레이첼이 미간을 좁히고는 불량하게 쪼그려 앉아 말했다.
“어휴, 지 혼자 깨지도 못하고.”
날 귀찮게 하기로 다들 짰어?
아이샤가 턱이 으스러진 채로 어? 어 하다가 양손으로 뺨을 감싼 뒤 회복마법을 걸었다.
“…방금 뭐야?”
“뭐긴 뭐야. 악몽이지.”
그리고 우리가 잊은 기억일지도 모르고.
레이첼이 심드렁하게 말한 뒤 쪼그려 앉았던 몸을 길게 늘려 일어났다.
“일단 나와.”
밥은 먹어야지.
“난 마저 깨우고 갈 테니 소르페 따라가.”
아이샤가 짠 냄새가 나는 바다마녀의 던전 안에서 멍하게 회복된 턱을 부여잡고 있다가 이리 오라는 듯 손짓하는 소르페를 바라보았다.
주위에는 아직 깨지 못한 듯 보이는 다른 드래곤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으으 하고 괴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런 그들을 레이첼이 발로 톡톡 치다가 쪼그려 앉아 머리를 움켜쥔다.
퍽!
“으어억!”
아이샤는 이제 회복되어 매끈한 턱을 얼른 움켜쥐고 소르페를 따라 포탈을 타고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다른 드래곤들도 멍하게 턱을 잡고 식당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