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09)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09화(309/373)
이곳은 내가 원래 알던 이노센트와는 조금 다른 과거를 지니긴 했지만 결국엔 같은 대륙이다.
그 말인즉슨 이 땅에 발 디디고 사는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이들도 존재한다는 소리.
당연히 케인 외에 지금 우리 애들이나 혹은 악신교단 쪽의 베르뷔트, 또는 양면의 신 바사하의 성년인 에리엘 같은 사람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체이서와 카이자를 먼저 볼 줄이야.’
검은 머리와 검은 눈. 그리고 비틀린 미소를 짓는 사내와 그 곁에 선 검은 머리에 황금색 눈을 가진, 자꾸 허공을 보며 웃는 여자.
“당신이 우리의 새로운 희망이라죠?”
책 밖의 세상에서 카이자를 만나 본 적은 아직 없지만 저 색상 같은 게 익숙하다. 더불어 체이서와 함께 있으면 분명하지.
문제는 체이서였다. 원래 내가 알던 체이서와 흡사하나 조금은 다른.
열 손가락은 완전히 검고 반투명했으며 옷 밖으로 드러난 살갗의 곳곳은 흡사 검은 뱀이 기어간 듯 짙게 얼룩져 있다.
단순하게 검은 물감 같은 게 묻은 느낌이 아닌, 살갗의 경계 너머는 반투명한 수정을 보는 거 같다.
마치 그림자처럼.
“저 녀석이? 그럴 리가.”
체이서가 케인에게 말을 던지자 케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고 그 모습에 테이가 끼어들어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아인족을 죽이는 일뿐이지. 나는 테이트리아야. 테이라고 불러.”
테이가 손을 내밀자 체이서가 검은 눈동자로 바라보다 검게 물든 손으로 마주 잡아 흔든다.
“우리에게 아인족을 죽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요?”
대화하는 도중에 카이자가 갑자기 몸을 돌려 어디론가 가려고 움직이자, 체이서가 차갑게 말하다 말고 카이자의 앞에 그림자를 열어 자신의 곁으로 다시 걸어오게 한 뒤 입을 열었다.
“동남부 쪽 늪지대에서 지원 요청하러 왔어요.”
저는 아무래도 다인에게 강하지만 강력한 한 명에겐 약한 편이라…….
“대인전은 카이자가 강하지만 지금 잠들어 있어서 늪지같이 변수가 많은 곳에서는 조심해야 하거든요.”
체이서가 자꾸 자신의 곁을 벗어나려는 카이자를 그림자로 통로를 열어 근처에 맴돌게 하다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는 말에 테이가 물었다.
“잠들어 있다고?”
“오래전부터요. 그 잠을 깨우려고 마법을 하나 깨달았는데 쉽지 않아요.”
카이자는 고집도 세고 주관도 뚜렷해서 억지로 시키는 일은 안 하니까.
하며 체이서가 검은 손가락을 가볍게 허공에서 흔들자 카이자가 갑자기 졸린 듯 하품을 했다.
아마 이곳의 카이자는 이미 넋이 흐려진 모양.
게임이나 원작에서는 광기의 카이자로 먼저 나왔지만 체이서에게 듣기로 원래 정신은 온전했었지.
다만 살아 있는 신이 카이자를 광기로 밀어 넣었을 뿐.
책 속의 세상에서는 모종의 이유로 충격을 강하게 받은 모양이다.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체이서가 정신 마법에 손댄 모양이고.
“오세요. 늪지의 아인족을 처리해 주신다면 저희 쪽에서 중앙 쪽에 이걸 무상으로 넘겨드리죠.”
챠비드에 있는 인간만의 도시를 중앙이라 부르며 대륙 각지에 인간의 세력이 조금씩 나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들키면 안 되는 곳이기도 하고, 한 곳이 아인족에게 들켜 몰상당하게 된다 하더라도 다른 곳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 그동안 지원 요청을 하는 걸 본 적 없었는데.
체이서는 그림자 마법으로 먼 거리를 제법 빠르게, 그것도 은밀하게 이동 가능하니 온 모양.
체이서가 나무껍질을 말려 만든 종이를 잡고 흔들자 테이가 손을 내밀었다.
“무엇인지 먼저 봐도 될까?”
“될 리가요. 한 번 보고 도면을 외우는 것 정도야 우리에겐 쉬운 일이잖아요?”
그 정도 재능은 가진 이들만이 지금 살아남았으니까. 하며 체이서가 피식 웃었다.
“마나엔진의 도면입니다. 우리 쪽에 이런 방면으로 꽤 괜찮은 사람이 있거든요.”
설계도는 완벽하게 디자인할 수 있으나 구상한 것을 실제로 만들 자금과 인력은 중앙뿐이니.
“그것을 감안해서 싸게 넘겨드리는 겁니다.”
당신들의 지원 한 번에, 지금 한참 설계 중인 비공정의 엔진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죠.
“이것을 바탕으로 좀 더 개량해서 써도 상관없어요.”
아시다시피 우리는 하나이자 여럿이죠. 한 곳에 모든 전력을 몰아넣었다가 그곳이 아인족에 의해 멸망하면 남은 인간족의 해방은 영영 물 건너가는 일이니까.
사실상 협력하되 각자 생존을 도모하기도 해야 하는 관계.
“그러니 이 도면의 가치가 얼마인지, 이것을 제가 이리도 쉽게 내주는 게 얼마나 큰 희생인지.”
우리는 전부 이해할 수 있는 재능을 지니고 있잖아요?
하며 체이서가 웃으니 테이가 양손으로 물 없이 세수하듯 얼굴을 매만지다가 손을 내밀었다.
“선수금으로 먼저 줘.”
“좋아요.”
체이서가 건넨 도면을 보던 테이가 고개를 기울이다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건…….”
“아인족의 가장 위에는 드래곤이 있죠.”
그들과 겨루려면 결국 공중전도 감행해야 하기에 개발하던 비공정은 동력으로 엄청난 양의 마정석을 요구할 겁니다.
“중앙에서 협조차 내려온 공문을 미루어 보자니 지금까지 저희가 모아 온 마정석으로는 사실상 장거리, 장시간 운행이 불가능할 거라 판단했죠.”
그러면서 체이서가 느긋하게 시선을 던졌다.
“그런데 우연하게 저희 쪽에서 이번에 속성 비보 하나를 얻었습니다.”
그걸 저희 쪽 사람이 보더니 마나를 한 번 소모하면 돌멩이가 되어 버리는 마정석보다 강한 속성 비보로 동력을 쓰는 엔진을 개발하는 게 맞다더군요.
그래서 나온 게 그 도면입니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
물론 한 번에 무리해서 뽑아 쓰면 아주 오랫동안 재충전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단 한 번이라도 드래곤을 사냥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거대한 마나의 집약체인 드래곤 하트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때부터는 도미노처럼 연쇄작용으로 드래곤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테이가 도면을 다른 사람에게 준 뒤 입을 열었다.
“그래서, 늪지 어디라고?”
* * *
늪지에서는 늪지 인어족과 악어족. 거기에 그들이 가축으로 부리는 몬스터 리자드맨이 무리를 짓고 있었다.
“전부, 죽여. 전부.”
“카이자. 마른 땅만… 아니… 그래요. 편하게 놀아요.”
아인족을 보자마자 멍하던 눈이 번뜩이더니 팔에 마나를 두르고 뛰쳐나가는 카이자를 보면서 체이서가 고개를 한 번 젓는다.
“자잘한 것들은.”
체이서가 누군가 날린 화살로 푸른 피가 흐르는 리자드맨을 바라보다가 검은 나무 완드로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그 피에서 가시나무가 피어나듯 갈라지더니 옆의 리자드맨을 찌르고 거기서 나온 피로 또다시 다른 리자드맨을 뚫으며 사방으로 피로 이루어진 가시나무 숲이 퍼지기 시작했다.
“제가 처리할 테니 당신들은 저들만 부탁드려요?”
팽창하던 가시나무가 단단한 비늘에 튕겨 상처 내지 못한다.
물로 된 마나에 녹듯이 사라지기도 했다.
체이서의 마법으로 죽기 전에 비명을 지르는 리자드맨 때문에 악어족과 늪지 인어족이 나오자 테이가 고개를 돌렸다.
“맡겨 줘.”
테이의 몸에 마나의 힘이 깃들더니 양손에 금세 수십 개의 마법이 휘몰아친다.
‘확실히 강하긴 강하네.’
괜히 신이 된 자가 아니다.
분명 내가 본 사람 중에서 재능은 셰인이, 일반적인 무력은 케인이 가장 강하지만 테이도 이미 일반적인 인간을 넘어선 강함이었다.
케인이 거의 공룡처럼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는 악어족에게 몸을 용수철처럼 튕겨 날아가 검을 휘둘렀다.
“인간이 트레잇을?”
그에 악어족이 놀란 소리를 내며 양손을 교차해 오러를 둘러 막는다.
동시에 등과 꼬리까지 돌기처럼 오러가 치솟아 갑주를 형성했다.
“저는 혹 빠져나가는 이들이 없는지 볼 테니.”
전부 몰살을.
체이서의 말이 신호탄이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캐스팅하던 늪지 인어족에게로 테이가 마법을 날렸다.
인간족의 반란 세력은 그 인원수가 굉장히 적었다.
이곳에서는 인간이 제대로 된 트레잇을 각성하면 바로 솎아 내기를 당한다.
그러니 성인이 되어 트레잇을 받기 전에 카이만이 구출해 내지 않는 이상 강력한 트레잇을 가진 이가 살아 있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인간족은 대부분 소수 정예로 움직였다. 인원은 적은데 습격해야 하는 곳은 많으니까.
그런데 자칫 잘못해서 아인족의 무리에서 탈출하는 이가 생기면 그만큼 정보의 유실이 생기니.
공격을 감행하는 순간 도망치는 이 없이 감시해야 하는 사람도 꽤 중요했다.
보통은 케인이 날뛰면 테이가 이 역할을 도맡아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체이서가 있으니까.
그래서 온전하게 화력에 집중한 테이는 대단했다.
“어떻게 인간같이 열등한 것들이… 어떻게.”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피거품을 물던 인어족의 몸이 터졌다. 갈라졌다. 무너졌다.
케인이 공룡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악어족 전사와 싸우면서 중간중간 틈이 보이는 이들의 머리만 깔끔하게 날리는 것과는 반대로.
테이는 최대한 참혹하게 인어족들을 죽이기 시작했고 늪지는 온통 푸른 피로 가득하게 물들었다가 체이서의 혈마법에 빨려 들어간다.
늪지 위로 가시나무숲이 생겼다.
망가진 육신을 가시덩굴이 칭칭 감아 늪지 안으로 깊게 당겨 흔적을 지우기 시작한다.
결국 몸에 두른 오러 갑주의 힘이 달려 살짝 일렁인 순간 케인이 악어족 전사의 머리를 날리는 것으로 전투가 끝났다.
“흔적은 제가 정리할 테니 두 분은 돌려보내 드리죠.”
체이서가 덕분에 이곳을 깔끔하게 정리했다며 인사를 하자 묵묵하게 검을 닦던 케인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곳은 인간족이 없던 것 같은데.”
간혹 인간족을 노예로 부리거나 장난감으로 치부하지 않는 아인족도 있긴 했으니까.
그게 걸린 듯 케인이 하는 말에 체이서가 피실 웃었다.
“늪지잖습니까.”
일반적인 네 발 가축은 살기 힘들거든요. 물고기도 마찬가지고.
“고작해야 개구리나 도마뱀 정도나 여기서는 리자드맨의 먹이가 되죠.”
인간은 의외로 먹을 게 없어요. 흔히 말하는 고깃덩이의 수율이 굉장히 낮죠.
“하지만 장점이 있는데.”
아무 데서나 일단 잘 자라거든요.
“인간족은 어딜 가서도 살긴 사니까.”
아시겠죠?
체이서가 그림자의 통로를 열며 하는 그 말에 케인이 고개 돌리고는 먼저 들어간다.
“…더 갈갈이 찢어 죽였어야 했는데…….”
그리고 테이가 중얼거리며 막 그림자의 통로로 들어간다.
‘나도 들어가야지.’
내가 그 생각을 하며 문이 닫히기 전에 발을 내딛는 순간.
푸른 피로 이루어진 가시나무숲을 파괴하며 누군가 이곳으로 난입했다.
“어?”
그에 나는 나도 모르게 발을 멈췄고 그대로 그림자 포탈의 문이 닫힌다.
어차피 케인은 내가 이름을 부르면 곁으로 갈 수 있으니까.
“한참 뒤쫓았어. 이상했거든.”
요즘 이렇게나 피에 굶주렸나 하구 생각했지만.
“흔적두 거의 남기지 않을 만큼 서로 몰살하는 전쟁은 일어난 지 오래니까.”
어깨에 살짝 닿는 분홍색 머리칼과 늘어진 하얀 귀, 그리고 조금 더 붉은색이 감도는 핑크빛 눈동자.
루나가 발끝으로 늪지를 톡톡 치다가 무른 땅에 괜히 발로 고랑만 만들며 체이서를 바라보았다.
“네 짓이었구나? 찾았다.”
너 때문에 내가 귀찮아졌잖아.
루나가 다리에 오러를 감아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들며 반원을 그리듯 발로 차자 체이서가 낮은 침음을 흘리며 그림자로 숨었고 카이자가 양팔에 오러를 둘러 그것을 쳐 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무른 바닥에 원형으로 파동이 일었다.
“윽. 아파.”
“이런, 강하네요.”
카이자가 양팔이 저리다는 듯 흔들며 말하자 체이서가 그 옆에 나타나 중얼거렸다.
“트레잇을 가진 인간이라니… 어느 가문이 키운 사냥개일까.”
취향두 이상하지.
루나가 중얼거리며 아까의 충돌로 멀어졌던 카이자에게 빠르게 접근한 뒤 오러를 감은 다리를 움직여 몸을 비틀어 원심력을 포함해 카이자를 내려찍는다.
동시에 발끝으로 오러를 날린 듯 반원 모양의 오러가 체이서에게로 날아가자 체이서가 다시 그림자로 피한 뒤 루나의 내려찍기에 팔에 두른 마나가 깨진 카이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런, 너무 강하시네요.”
너무 빨리 보냈나.
하고 중얼거린 체이서가 웃었다.
“아쉽게 됐어요.”
처음으로 살아 있는 아인족을 그냥 놓고 가게 되었으니까.
그대로 카이자와 함께 늪에 가라앉듯 그림자로 사라진 체이서에 루나가 어? 하고 늪지 쪽으로 오러를 터트린다.
“…도망갔어.”
루나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