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1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10화(310/373)
노을이 진다.
챠비드의 사막은 초목 없이 그 붉은 빛을 그대로 반사해 하늘도 대지도 붉게 보였다.
그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던 예언자의 몸 주위로 바람이 스친다.
하반신은 네 발 달린 하얀 사슴의 몸에 상반신은 아직 앳된 아이의 모습을 지닌 챠비드의 예언자.
‘아로’는 노을보다 붉은 눈으로 서서히 높게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았다.
“수십, 수백 년이 지나도 하늘은 같은 날이 없다고 하죠.”
이 바람과 빛의 퍼짐, 구름의 모양과 별의 빛남.
늘 같아 보이는 풍경이라도 사실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는 하늘이라고는 하나.
아로는 이 하늘을 몇 번이고 보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꿈을 꾸고 그 꿈에서도 이 하늘을 바라보는 예지를 또다시 꾸고.
꿈속의 꿈.
두 개의 거울을 마주 보게 세우면 끝없이 이어지는 세계처럼.
분명 아직 닿지 않은 나날을 이미 수도 없이 꿈에서 보고 그 꿈 안에서도 예지하여 꿨던 순간들.
지금의 나는 이 모든 것이 처음이나 결국엔 참으로 많이 겪었음을 예지했을 때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이제야 열다섯이 된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만큼 성숙한 정신을 이룬 것은 그 탓이 크리라.
모든 예언자는 성숙하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마저도 먼저 겪으니.
동시에 모든 예언자는 미성숙했다. 결국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엿보았다 해도 사실 그것은 직접 겪지 않은 경험이므로.
그래서 아로는 지금 이 순간이 특별했다.
어느 순간부터 눈앞에 보이는 미래가 흔들렸기에. 한 번도 겪어 보지도 미리 내다보지도 못한 일들이 펼쳐질 테니까.
“데제브.”
아로가 중얼거리자 산의 바위 뒤에서 으뜸 부족 중 호랑이 부족의 족장이 느리게 걸어 나왔다.
“말하시오.”
“새로 들인 제자는 어떠한가요.”
호랑이 수인인 데제브가 노란색과 검은색이 섞인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아직 어린 데다 두려움이 많소.”
소심한 데다 겁이 많고 어깨는 늘 웅크리고 다니면서 그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날은 세우되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하고 나무 뒤로 숨기를 반복하오.
하는 말에 아로가 낮게 웃자 하얀 뿔에 달린 나무 장식이 잘게 흔들렸다.
“예언 하나 해 드릴까요?”
아로의 말에 호랑이족의 족장인 데제브가 흠 하고 콧바람을 내었다.
“그 아이가 결국 강해질 거란 말을 할 거라면 넣어 두시오.”
그건 나도 알고 있으니까.
“토끼족과 표범족의 하이브리드라서 그런지 경계심이 극도로 강하기는 하나.”
전사에게는 그런 경계심마저 재능이지.
소심하다는 것은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거요.
겁이 많다는 것은 무모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소리지.
어깨를 웅크리고 다니는 건 자신의 실력을 모르기 때문이오.
자존심이 있다는 건 부정한 짓을 하지 않는단 소리지.
날을 세워도 그마저도 얼마 가지 않는다는 건 적어도 남을 계속하여 배척하지 못하는 성정이지.
“잘 키우면 어딜 가서도 내 제자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아이가 될 거요.”
데제브의 말에 아로가 붉은 눈을 가늘게 접듯 웃었다.
“예언은 절대적이라 하죠.”
사실 신이 성녀에게 보여 주는 미래시도 예언자가 보는 광경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일 뿐.
“하지만 1만 번의 미래 대부분이 같은 모습이라면 그것을 말한 예언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겠죠.”
언제나 챠비드는 불타고 수인족은 비명을 지르며 결국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 가는 형제자매들을 견디다 못해 피로 물든 길을 가는.
흩어진 수인족을 전부 모을 수인왕.
그리하여 인간들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다가 결국 종말의 시간을 맞이할 우리들.
아로가 붉은 눈을 깜빡거렸다.
쉬이 입 밖에 낼 수 없다. 그런 것들은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확고해질 뿐이니까.
‘하지만.’
종결자나 나타났으니까.
책으로 치면 마지막 장을 넘기자마자 다시 첫 장으로 이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넘겨도 넘겨도 끝나지 않는다. 다시 처음으로 끝으로, 아득하게도 원처럼 도는 미래.
그런데 언제나 이어지던 종말의 미래는 그자가 얽히는 순간 끝이 났다.
정확하겐 마치 가위 자른 듯 그 이후가 사라졌다.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는 것처럼.
“앞으로 저도 알 수 없는 일이 벌어날지도 모르니까.”
무엇이든 준비해 두면 좋겠죠. 그것이 사용되지 않는다 해도 결국 우리들에게 이로울 테니.
아로가 중얼거리다 문득 스쳐 간 영상에 눈을 깜빡거렸다.
“5분 후 헤쉬가 데제브의 보물 창고에서 땅벌의 꿀을 빼내는 게 보이네요.”
그에 데제브가 깜짝 놀란 듯 밧줄 같은 꼬리가 바짝 섰다.
“그건 장기 숙성된 꿀이라 입에 넣으면 너무 쫀득해 이에 쩍쩍 붙어 다 녹여 먹을 때까지 말도 못 하게 될 텐데.”
꿀이 이를 잡은 덕에 입을 벌리지도 못하고 뺨을 부여잡은 채 안으로 비명 지르는 헤쉬의 미래가 보여 아로가 깔깔 웃었다.
* * *
“차가워!”
“마린, 안 돼요!”
적막이 돌았다.
밖에서는 물대포 소리와 아르만의 부관인 호슈아, 샤하드의 보좌관인 이옐의 비명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아르만과 샤하드가 있는 이 공간은 고요했다.
샤하드는 뭔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이 공허했으며 아르만은 자신의 입을 꾹 누르고 반성하는 중이었다.
‘아델리안이… 아델리안이?’
‘실수했다… 실수.’
들리는 것이라곤 온통 헛된 것들뿐이었다. 아델리안의 용모만 조금 핥아 댈까. 대부분의 귀족들, 거기에 대다수의 평민들까지.
전부 크루거 가문의 수치니 뭐니, 재능 따위 가지고 태어나지도 못한 비루먹은 것이니 뭐니 하는 말들.
그 추문들.
진실을 아는 아르만에게는 꽤 답답한 일이었다.
신의를 지키기 위해 입은 다물었으나 본디 아르만은 자신은 낮출 줄 알아도 자신이 믿음을 준 이를 낮추는 건 참지 못했다.
입이 근질거렸지.
본질을 아는 사람이 궁했다. 자신의 부관인 호슈아나 이노센트에서 붙여 준 골렘인 이본 외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이가 없었다.
그런 와중 이노센트의 회담에서 유일하게 연령대가 맞는 샤하드가 반가웠던 건 당연한 일.
자신들보다 조금 어린 아델리안이 뒤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한번씩 얄미운 구석은 있어도 그 희생을 알아 주는 것도 친우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황자께선 몰랐을 줄이야.’
도대체 그럼 샤하드 황자는 이노센트의 무엇을 알고 가담한 것인가.
아르만이 자신의 은색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동안 샤하드도 샤하드 나름대로 혼란을 정돈 중이었다.
‘그 아델리안이 이노센트의… 그렇다면 카이만 대공은 무어란 말인가. 그라면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힘이 있었을 텐데.’
샤하드가 엉망진창으로 떠오르던 상념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그럼 카이만 대공이 이노센트의 수장이 아니라 아델리안인 이유가 뭐지.”
“그건.”
아르만이 샤하드의 질문에 눈동자를 마주했다.
“영지로 내려오기 전 잠시 독대할 기회가 있어 저도 여쭈어보았습니다.”
카이만 대공께서 그러시더군요.
“이노센트는 오롯하게 아델리안이 구축한 세력이라고.”
자신은 뒤늦게, 마치 선심 쓰듯 얼굴마담이나 하라며 알려 주었다고.
“예상하건대 대공가 셋을 한 번에 불러 놓는 게 조금 더 전황에 유리하다 판단했을 거라 여기셨습니다.”
물론 더 적극적으로 크루거 가문을 비롯하여 카이만 대공을, 소위 말하자면 편하게 부려먹기 위해.
아델리안의 성정을 생각하면 그것에 가깝다고 아르만은 판단했지만 그것까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과연 몇이나 나처럼 몰랐을까.”
“많지는 않을 거라 여깁니다.”
샤하드가 적금색 머리칼이 흔들리는 자신의 시야를 잠시 묻듯 눈 감았다 떠 냈다.
“나를 믿지 않았군.”
아무리 생각해도 아델리안이 아직까지 샤하드 자신에게 본인이 이노센트의 중심임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이다.
샤하드를 완전히 믿지 않았으므로.
물론 이해는 했다. 그 누구보다 치열한 게 수도고 황실이므로.
그 협잡과 모략, 더불어 많은 권모술수까지.
친구는 가까이, 하지만 적은 더욱 곁에.
그 말이 진리처럼 내려오는 것이 샤하드가 딛고 선 세계니까.
다음 대 황제를 위해 비록 배는 다르다고는 하나 피를 나눈 형제의 트레잇을 봉인하고 암살자를 보내는 누이가 있지 않은가.
권력은 부모 자식도 제대로 나누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오래 살고 싶으면 정부는 만들되 정인은 만들지 말고 친교는 나누되 친구는 갖지 말라 하지 않던가.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심장은 부정했다.
“조금 억울한데.”
신의 계약서도 썼는데 말이지.
샤하드 자신도 알고 있었다.
나날이 쇠약해지던 몸은 손에 낀 반지의 무게마저 족쇄 같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몸에 걸친 금붙이마저 버리지 않았던가.
술과 물마저 한 번 삼킬 때 의식적으로 목을 열어야 했다.
그것들의 의미가 무엇인가.
결국 샤하드 자신은 그렇게 쇠약해지다 어느 순간 그 나약한 몸뚱이를 감당하지 못한 심장이 멈춰 버렸겠지.
그것을 지금 이렇게 바꿔 준 사람에게 샤하드는 아주 많은 감사함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자신의 성정이 그리 온화하지도 유하지도 않음은 알고 있다.
세리아는 물론이고 황녀를 따르며 테이트리아를 좀먹는 것들을 처참하게 피로 숙청해도 꿈자리가 사납긴커녕.
그 꿈을 무엇보다도 달콤하다 여길 잔혹함이 샤하드 자신에게 존재하지.
하지만 별개의 일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을 사람은 아니라 자신했는데.
‘그래, 믿지 못하였단 거지.’
샤하드 자신이 황제가 되고 나면 언제 도움받았냐는 듯 외면하리라 여겼을까.
혹은 다음 대 황제라는 달콤한 꿈을 꾸게 한 뒤 나중에 목을 자르고 크루거 가문이 찬탈하려고?
‘그럴 리가 없지.’
다른 건 몰라도 후자를 바란다면 이런 행보를 구사할 리가 없지.
‘믿음과 더불어, 내 가치가 아르만보다 못 한 거였군.’
신뢰란 서로를 위함이다.
서로의 손을 잡고 같이 가기 위해 내보이는 것.
중간에 놓고 갈 것에까지 주진 않는 일이지.
샤하드가 짙게 웃었다.
“불붙이네.”
“네?”
자신의 입이 너무나 가벼웠음을 반성하며 아델리안에게 당장에라도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아르만이 되묻자 샤하드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델리안에게 오늘 우리 둘의 대화는 넘기지 않도록 하지.”
“왜입니까.”
“원래 실수는 선물과 함께 말해야 무마가 되니까.”
이노센트의 근본적인 목적은 대륙의 평화, 그리고 그 끝에 악신교단의 견제 및 처단이 있는 법.
“이번 축제 때 내가 뭇 귀족들의 눈도장을 받았지. 그 덕에 약간의 권력이 생겼거든.”
축제가 끝난 후 조만간 있을 타국 사신들과의 회담.
대륙에서 가장 큰 제국 테이트리아는 다른 자잘한 모든 나라와 국경을 같이한다.
그 말인즉슨 대륙 물류의 중심이기도 하다는 소리.
하지만 그 강대한 힘을 지니고도 꽤 보수적으로 운용되는 나라기도 했다.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힘 중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는가.”
아르만이 그 말에 눈을 빛냈다.
“설마, 길을 여시려는 겁니까.”
각국 사신들은 다른 나라와의 교역이 사실상 막힌 상태.
소규모 보따리 장사라면 모를까.
대규모 마차 행렬이 필요한 상행이라면 대부분 테이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번 거쳐야만 가능할 정도였다.
거기에 통행료를 붙이기 위해 굳이 가까운 길 대신 먼 길만 허용해 주기도 했지만.
“길 몇 개만 틔워줘도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늘어날 테고.”
더불어 길을 열어 주는 대신 치안 문제에 한마디 얹을 수 있다면 몰래 돌아다니며 공양하는 악신교단의 활동 범위가 줄어든다.
게다가 타국은 힘들게 물자를 운반하여 통행세가 붙은 비싼 물건들이 점차 싸지게 될 테고 그것은 서민의 부담을 줄여 줄 뿐만 아니라 국고에도 이득이 된다.
나라가 조금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셈.
원래는 그것을 경계해 나라의 혈관이라 할 수 있는 도로를 강제했던 거지만.
“덕분에 얻은 자리이니 보답해야지.”
결국 모두가 강해져야 이노센트, 아니 아델리안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