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1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14화(314/373)
표표표표표표표표.
체이서는 조금 희게 질린 얼굴로 마치 가면에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루나를 바라보았다.
“이건… 뭐죠?”
“녹즙.”
체이서는 분명 방문과 침대라는 물리적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을 격침하는 향기에 한 손을 올려 코와 입을 가리며 다른 손으론 그림자를 움직여 창문을 열었다.
저것이 무엇인지 안다.
종종 아델리안이 직접 만들어 무려 워프 게이트로 크루거 가문에 배달시키는 그것 아닌가.
그 카이만 대공이 세이렌을 통해 안 보내도 된다고 해도 꾸역꾸역 보내 주던 그거.
게다가 자신에게도 먹어 보겠냐길래 그냥 지하 감옥에 침대를 놓겠다고 거절했던 물건.
그것을 만드는 시간엔 아델리안을 그렇게나 귀찮게 구는 레비도 반지로 쏙 들어가 버리는 물질.
“저 환자예요. 루나.”
“알아. 그래서 주는 거야.”
몸에 좋아.
하고 배싯 웃는 루나의 뒤로 어쩐지 체이서는 검고 긴 낫을 든 무언가를 본 것만 같았다.
“저, 내장이 상했는데요?”
“포션 마셔서 상처는 치유되구 회복만 하면 되잖아.”
그렇긴 한데…….
“그냥 좋은 거 먹고 며칠 푹 쉬면.”
“좋은 거.”
표표표표표푯!
루나가 한 걸음 다가오니 투명한 유리컵에 든 녹즙이 흔들리며 마구 기포를 뿜어내는데.
‘저건 분명 음료인데 왜 마물의 짖음같이 들리죠.’
체이서는 이러지 마세요 하는 듯 양손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침대 헤드 쪽으로 몸을 구겼다.
“저 이거 못 먹어요, 루나. 식중독은 사람도 죽인답니다?”
“아냐. 안 죽어.”
다 경험해 본 거야.
왜 하필 유리컵에 담아 왔나.
머그컵이면 그 기포를 뿜어내는 표면만 보였을 텐데 유리컵이다 보니 안에서 스멀스멀 움직이는 것 같은 잔상이 보이지 않는가.
체이서는 조금이라도 오래 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잘못했습니다……?”
“뭐가?”
루나가 다시 귀엽게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지만 체이서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주인님을 제가 모시고 왔어야 했는데……?”
“얼른 마시구 몸 나으면 다시 가자.”
역시 그것으로 루나에게 찍혔구나.
노력하였으나 마시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음을 깨달은 체이서가 단념한 얼굴로 컵을 쥐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거 아델리안 님이 만든 것보다 좀 더…….”
살아 있는 거 같은데요?
체이서가 난처하게 웃는 얼굴로 루나를 바라보자 루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도련님은 차를 끓여도 별맛이 안 나시거든.”
맛이 없다는 게 이상한 맛이라거나 못 먹을 맛이라는 의미가 아닌.
말 그대로 맹물같이.
“얼른 마시구 나아야지.”
그래야 도련님을 빨리 모시구 오지.
루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체이서가 자신이 든 녹즙을 바라보았다.
‘아… 그래서.’
표표표표!
이건 ‘맛’이 더 존재하겠구나.
체이서는 왜 평소 자신이 미각을 마비시키는 포션의 존재를 망각하고 살았는지 참회하며 녹즙을 마셨다.
* * *
“하하하.”
“너무 즐겁게 웃는 거 아닙니까?”
제로.
하는 말에 제로가 보석안으로 체이서를 응시하다가 다시 웃었다.
“그러게 왜 아델리안 님을 두고 오셨어요.”
참고로 녹즙 재료 제가 다시 사 온 겁니다. 유독 파릇하고 신선한 걸로.
하는 말에 체이서가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다가 억울한 얼굴로 외쳤다.
“아델리안 주인님께서 그냥 두고 가라고 명령하셨다니까요?”
여기서 그거 무시할 수 있는 분? 손 들어보실래요?
하니 제로가 손은 못 들죠 하다가 그와 체이서의 눈이 케인에게 향했다.
그에 케인이 뭐. 하는 눈으로 둘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현재 상태를 듣고 싶은데.”
주어가 없지만 체이서는 저 현재 상태가 자신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케인은 대다수의 것에 무관심하니까.
‘레이첼은 다시 지하로, 루나와 리프, 레비는 아델리안의 곁에.’
거기에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은밀하게 쳐진 마나의 장막.
체이서는 케인이 듣고자 하는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아마도 당신이 기억 못 하는 어느 순간에 서 계신 거 같아요.”
저번에 아델리안을 납치했을 때 해 놓은 정신적 연결.
그 덕에 아델리안이 진짜 누구인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엿보지 않았던가.
이번도 마찬가지.
‘알아서 끊어졌겠거니 생각하신 건지.’
강력하게 말하지 않아 그냥 그대로 그 라인을 살려 두었다.
‘혹 나처럼 누가 납치할지도 모르니까.’
그럴 때 찾기 편하거든.
그리고 그걸 이번에 잘 써먹지 않았던가.
책의 권능으로 이 세계와 유리되어 단절된 아델리안과 유일하게 맞닿을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에 있었다.
“저 책은 예상하다시피 그런 물건인 거 같아요.”
체이서가 침대에 앉아 손 하나만 올려 펼치자 그림자가 어느 책 형상을 그렸다.
아델리안이 들고 다니던 코덱스보다 더 작고 얇고 낡은.
읽을 수 없는 언어로 된 그것.
“여러 가지를 조합해서 나온 결론인데, 그거 말이에요.”
역사서인 거 같더라고요.
다만 누군가가 담긴.
“한 사람이 자신이 아는 것을 썼다기보단.”
체이서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이 세계 영원히 돌고 돌잖아요? 그것의 파편이라고 해야 하나.”
단지 가장 원류에 가까운 파편.
“자, 생각해 봐요. 우리.”
체이서가 손뼉을 짝 치며 히죽 웃었다.
“과연 이 세계가 루프되고 있다는걸, 지금 이 순간 우리만이 알아차렸을까요?”
그 많은 가능성의 시간 동안?
“당연히 지금이 아닌 예전에도, 그 전에도.”
케인, 혹은 저.
아니면 제3의 누군가라 할지라도.
돌고 도는 시간 동안 진실을 알아차린 이는 있을 터.
이 세계의 정점에 가까워질수록. 종족과 재능의 벽을 넘어 결국 초월자가 되어서야.
그런 격과 힘을 얻은 뒤에 이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된 이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거짓된 세계에서 으스대던 자신이 한심했을까.
아니면.
영겁 같은 시간을 만들어 낸 이를 증오했을까.
“뭐, 그런 이들이 모여 만든 거겠죠.”
“누군가 진실을 알 수 있게.”
제로가 중얼거렸다.
최초의 기억을 남겼을 정도면 그 영혼조차 찢겨 루프하는 세상에서 지워졌겠지만.
“아마도 그 누군가는 케인이겠지만.”
다른 이가 그것을 본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으랴.
원래라면 케인의 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안배를 했겠지만 모든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
결국 도박쟁이 발부스의 손에 들어가 영원히 세상 빛을 볼 수 없게 되었겠지. 지금까지의 시간대로라면.
“그리고 그걸 아델리안이 보는 중인가.”
“그런 거 같더군요. 분명 주인의 곁에 너도 있었으니까.”
체이서가 케인에게 말하자 케인이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아마도 한 번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물건일 테니 주인이 잠에서 완전히 깨면 책은 바스라질 테고.”
본디 알았어야 하는 진실은 그때야 들을 수 있겠네요.
그런데 주인이 전부 사실대로 말을 해 줄까, 과연?
하고 체이서가 말하자 케인이 황금색 눈으로 체이서를 바라보았다.
“그것만이 방법은 아니지.”
어차피 거의 다 끝나가기도 하고.
케인이 중얼거렸다.
* * *
“아이고, 허리야.”
“돌아오셨습니까.”
이사장님.
아카데미 키미슈트리의 이사장 제노윈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내에게 제노윈이 시선을 던지며 푹신한 의자에 앉아 몸을 돌렸다.
“나 없는 동안 별일은 없었고?”
“이번에는 꼭 보여 드려야 한다며 이사장님의 가문에서 보내신 화첩이 들어온 것 외엔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그에 제노윈이 허, 하고 소리를 내자 사내가 피식 웃으며 품에서 손바닥만 한 화첩을 꺼내 들었다.
“최소 20세는 어린 남성 귀족들뿐이던데 말입니다.”
“노친네들이 노망났나, 진짜.”
제노윈은 강력한 마법사이기에 젊어 보이긴 하지만 나이가 이미 60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혼담이란 말인가.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 이들과.
‘하여간 귀족들이란.’
‘진짜’ 제노윈이라면 경멸했겠지만 ‘지금’의 제노윈은 비웃었다.
원래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는데. 단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이 종주, 제로에 대한 충성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
가문을 경멸하면서도 결국 버리지 못하고 화첩을 일단 받아는 들었을 예전과는 달리 지금의 제노윈은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태워 버려.”
“오, 어인 일이십니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까.”
본디 제노윈에겐 가문과 자신의 마법적 소양을 높이는 일이 가장 중요했지만.
지금은 그 우선순위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아카데미의 교수들과 면담을 시작해야겠어. 더불어 탄원서가 들어온 게 있다면 심각한 건 나에게 넘겨.”
제노윈이 짧은 민트색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하는 말에 제노윈의 비서가 눈가를 살짝 늘렸다.
“수도에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원래라면 저와 이런 대화할 시간에 마법 수식을 더 연구해야 한다며 연구실로 들어가실 분이?
하듯 사내가 중얼거리자 제노윈이 으쓱였다.
“글쎄. 삶을 새롭게 시작한 기분이랄까.”
제노윈을 전부 삼킨 것은 수도로 떠나기 직전.
그러니 그때와 지금의 감정은 하늘과 땅 차이지.
예를 들면, 그래.
그것은 해방이란 감정과 비슷했다.
나 자신이 변하진 않았다. 성격과 가치관. 기억마저도.
‘다만 집착을 조금 줄였을 뿐이지.’
제노윈에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사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나 마법사이기에 진리를 탐구하는 제노윈에게는 그것이 더욱 피부에 와닿은 모양.
사람은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영혼 상태로도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 영혼마저 소멸하면, 진실된 죽음 후에는 무엇이 남는가.
나라는 존재의 의미와 이유. 이 땅에 내려온 사명이 있는가.
하지만 지금은 두렵지 않다. 죽으면 자신의 주인이 되살려 줄 것이기에.
나 혹은 너로.
단지 그것 하나만이 달라졌다. 많은 것도 아니었으나 전부이기도 했지.
그러니 제노윈은 일 년이면 일 년. 십 년이면 십 년.
아카데미는 후 순위로 두고 자신의 마법 경지를 높이는 일에만 신경 쓰던 것에서 벗어나 아카데미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잘되었군요. 아무래도 교수진 몇몇이 횡령 및 편애를 하는 거 같았는데 말입니다.”
저번에 말했을 때는 수식을 알아내는 데 바쁘니 알아서 하라 하셨지만 제 몸은 하나니 계속 늦어졌는데.
“이제야 썩은 곳을 좀 편하게 도려낼 수 있게 되었군요.”
제노윈의 비서가 짙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수도에서 무슨 일을 겪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보다 지금이 좋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앓던 문제를 풀다 못해 벗어던진 것 같아서.
“이제야 제가 충성을 맹세한 분 같군요.”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을 능히 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그 말 말입니다.
비서의 말에 제노윈이 피식 웃었다.
“언제적 이야기인지. 뭐, 그 말이 나온 김에 하는데.”
크루거 가문과 협약을 맺을 거다.
제노윈의 말에 사내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이사장님의 본가도 아닌 크루거 대공 가문 말입니까.”
그동안 중립을 지키던 곳이 아닌가.
탐을 내는 승냥이 같은 가문은 많았으나 협약을 맺어 자금 등을 지원받으면 그만큼 인재를 내어 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 거절해 온 지 오래인데.
이제 와서, 그것도 황금거머리라는 크루거 가문과?
사내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수도에서 약점이라도 잡히셨습니까?”
“아니. 단지 세상이 많이 변할 예정인 거 같아서.”
그분들이 원하니까.
자신의 주인도, 그 주인의 주인께서도.
제노윈이 느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