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1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15화(315/373)
“아무래도 이상하지.”
검은 마나의 장막. 밤하늘의 별빛을 베어 퍼트린 것 같은 공간.
그 한가운데 마나의 위에 기대앉은 존재가 중얼거렸다.
“이만큼 틀어진 적이 있었나?”
살아 있는 신, 테이트리아는 중얼거렸다.
하나부터 열 가지. 백 가지라도.
자신이 만들어 둔 이 세계는 어느 정도 같은 흐름으로 흘러간다.
아주 같지는 않다. 테이트리아 자신만 해도 기분이 내키는 대로 움직이니까.
그렇다 해도. 이렇게까지 어긋난 적이 있었나.
전염병도, 몬스터도. 하다못해 수인족까지.
인어족의 마지막 로열 블러드를 손에 넣은 이들은 오만방자하게 굴며 남해를 들쑤셔야 했다.
북부에서는 게드만 대공이 아이스 엘프 르쉬올라에게 착취와 이용당하다 카이만 대공과 전면전으로 붙어 불탈 미래를 맞이할 준비를 했을 시기.
카이만은 챠비드의 지력을 빨아먹으며 그 레드드래곤의 반쪽 난 심장을 중화시키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했어야 했고.
그러다 결국 북부에 남은 아이스 엘프에까지 손을 대 르쉬올라가 부추겨 내려온 게드만 대공과 싸우다 그를 불태우며 한 줌 남은 이성도 망가져야 할 텐데.
너무나도 고요하다.
이 세계가 고요했다. 비명과 통한. 분노와 증오. 노여움과 절망도. 전부 희미하다.
전염병이 퍼지고 전쟁이 일어날 거란 두려움에 더해 이미 접경지 한 곳이 무너지고 황실조차 살얼음판으로 그 어느 곳에도 평화는 없어야 했다.
성신교만 제외하면.
자신의 품 안에 들어와야 이 격동의 세상에서 휩쓸리지 않고 안전해지리라 믿는 이들이 더욱 많아야만 했다.
그런데 마치 물길을 틀어막은 호수 위처럼 고요하다.
“분명 그 흐름이 아니야.”
살아 있는 신, 테이트리아가 중얼거렸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모든 속성 비보를 삼킨 뒤 자신의 힘을 분산하여 소모하는 생명들을 거두고 싶었다.
왜냐하면 케인만큼은 확실하게 엿볼 수 있으나 다른 이들은 그럴 수 없었으니까.
이 세계를 마지막으로 기록한 최종 설정에 그런 내용을 넣진 않았던 것이다.
‘힘이 많이 소요되는 데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어서 넣지 않은 건데.’
어차피 냉정하게 따지고 보자면 궁금증 해결용으로나 쓸 것에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너무나 많은 것이 비틀려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거지 테이트리아 자신의 계획이 망가지거나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이 정도로 어긋난 건 지금까지 되찾은 기억으로는 처음이라 너무나 거슬릴 뿐.
“…다시 할까.”
살아 있는 신은 허공에 앉아 중얼거렸다.
살짝 품은 살기만으로도 마나가 유형화되어 사방에 날카로운 칼처럼 일렁이며 바닥과 벽을 훑어내린다.
‘지금이라도 케인을 그냥 죽여 버리고 다시 할까.’
이 세계의 제일 간단한 리셋 버튼은 케인의 죽음이니까.
테이트리아, 테이가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그러다 문득 시야에 들어온 하얗고 고운 손.
“셰인, 네 오라비는 너무 잔인해.”
어찌 너에게 이리도 잔인할까.
한 번만 부러지면 될 것을, 그냥 포기하고 나에게 전부 주면 편했을 텐데.
그 한 번을 꺾지 않아서 이 짓을 몇 번이나 하고 있는지.
망가뜨리고 부러뜨리려고 했는데.
그 처절함 가운데서도 절대 한 가지는 내어 주지 않는 존재라서.
‘하긴 그토록 아끼는 자신의 여동생이 자신을 죽이거나 자신이 여동생을 죽인다 하더라도 망가지지 않는 놈이니까.’
그런 이였으니까 등만 보고 모두가 따라간 것이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가졌으니까.
그것이 나중엔 패착이 되었지만.
“체이서를 불러와.”
테이가 느리게 말했다.
이 세계의 이번 회차는 망가졌다.
어디서부터 뒤틀렸는지 감도 오지 않아. 그러니 차라리 빠르게 재시작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다만 케인만 죽여 다시 시작하는 것은 지금까지 품을 들인 것에 비해 너무 적은 성과가 아닌가.
케인과 관계된 모든 이들을 죽이고 재시작하는 게 효율적이지.
그게 더 케인을 괴롭게 하는 일일 테니까.
기억은 하지 못하더라도 이미 별의 옥좌에 앉기 직전이었던 영혼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오롯하게 케인 하나만을 망가뜨리기 위한 연극 무대임을.
그러니 자신도 모르는 새 아주 조금씩.
바람이 바위를 갉아 먹듯이 그렇게 무너지는 거겠지.
“체이서 말입니까.”
조금 늦게 되돌아온 답에 허공의 마나 위에 앉아 있던 테이트리아가 짙게 웃었다.
“잠시 외출을 할 생각이니까.”
이 몸으로 직접 힘을 쓰는 건 아무래도 셰인이 방해하거든.
‘누군가를 살리는 것만큼은 순순하게 뜻대로 움직이지만.’
자신의 오라비를 찾아가려는 것에 힘을 쓰면 극렬하게 저항할 테니.
테이트리아는 체이서를 떠올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
* * *
백금발에 푸른 눈.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에 살짝 걸쳐진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리던 카이만이 느리게 눈동자를 움직였다.
“요약해서 보고하도록.”
“신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을 한 이가 몸을 바짝 낮춰 부복한 상태로 대답하자 카이만이 깃펜을 잠시 잉크병에 꽂았다.
“물류 흐름의 변동은 오차범위 내로 보고받았다만.”
“갑작스러운 변화입니다.”
신전, 얼핏 들으면 만신전을 말하는 것으로 들리겠으나 카이만과 사내가 말하는 신전은 자기들을 성신교라 부르는 단체였다.
아델리안의 말을 빌리자면 이 세계의 멸망을 당기는 존재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다. 사람인 이상 먹고 입고 소비하는 것을 전부 자체 생산만으로 굴리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법.
신전에서 무엇을 주로 사는지, 혹은 어떤 것이 부족하고 넉넉한지.
그리고 그 살림을 꾸려가는 자금이 어디서 나오는지 파악하고 있다면 대략의 상황을 짐작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철이나 황동 같은 금속을 가공된 물건이 아닌 가공 전의 덩어리로 구한다면 무기를.
마정석이나 속성석의 가루 혹은 기타 촉매제가 들어가는 양이 늘어난다면 포션이나 스크롤의 제작을 늘리는 중이겠지.
하지만 카이만이 지금까지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전부 오차범위 내.
아예 그 지역이 포함된 도시 몇 개를 전부 감시 중이니 어디서 몰래 들이는 것도 힘들 텐데.
“어떤 것이 급격하게 변했지.”
카이만이 쓰고 있던 안경을 천천히 벗으며 묻자 복면의 사내가 대답했다.
“문을 닫고 있습니다. 물류의 흐름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마치 웅크리는 것처럼.
“더불어 수도에 파악한 신전의 안가에서 대대적으로 고급 식료품이나 마정석의 구입이 늘었습니다.”
“수도에 누군가 오는 모양이군.”
카이만이 여상스레 말하자 복면의 사내가 더욱 고개를 숙였다.
“그런 것으로 사료됩니다.”
복면의 사내가 무릎으로 기어 올린 서류를 몇 장 넘긴 카이만의 푸른 눈이 좀 더 짙어졌다.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
모든 것이 최상급으로만 구매되어 들어가지고 있다.
수도에 포착해 둔 그들의 비밀 안가는 총 세 군데.
그런데 그 세 곳 모두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투어 물건을 아주 은밀히 사들인다.
모든 대륙의 물류 상황을 감시하는 크루거 가문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정도로.
그리고 악신교단 쪽이 이렇게 굴 정도의 인물이라면.
‘아무래도.’
그자일 확률이 높겠지.
카이만이 가볍게 손짓하자 복면의 사내가 방에서 사라졌다.
그 누구도 없이 고요해진 집무실에서 카이만은 손을 뻗어 책상 한편에 놓여 있던 술병을 들어 올렸다.
호박색의 술이 잔을 조금 채운다.
그 약간만으로 아주 진한 주향이 번졌다.
‘살아 있는 신.’
지금은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몸 상태가 되었으나 카이만은 그 자체로 강한 마법사였다.
그리고 그런 마법사가 드래곤의 심장을 자신과 융합해 격 자체를 높였을 때 보았던 것이 있지 않은가.
이 세계의 비밀.
이 세계의 거짓.
‘너무나 적나라해 모를 수가 없었지.’
마치 그것은 기다렸다는 듯 찰나의 순간으로 머릿속에 욱여넣지 않았던가.
수없이 돌아가며 망가진 이 세계의 기억을 누군가 한 점 한 점 모아 정리한 것들이 일종의 깨달음처럼 뇌리에 달음박질했다.
‘그것은 아마도.’
소멸을 피하기 위해 숨죽인 신들의 몇 안 되는 배려.
누군가 격을 뛰어넘으면 진실을 알려 준다.
다만 그뿐이었다.
이 세계는 사실상 살아 있는 신의 장난감이나 다름없으므로.
만신전의 신들조차 숨죽일 수밖에.
신은 신앙을 먹고 자란다. 자신을 믿어 줄 이가 없다면 결국 도태되고 소멸할 뿐.
그것을 뛰어넘을 방도야 있겠지.
‘예를 들면 별의 옥좌.’
하지만 살아 있는 신마저도 별의 옥좌를 아직 차지하지 못했고 그 막대한 힘을 지탱하기 위해 강력한 신앙과 더불어 속성 비보를 삼키지 않는가.
‘테이트리아.’
신앙이란 신의 힘, 그리고 신앙을 높이는 방법은 그것을 믿고 기대고 지지하는 이들을 늘려야 하는 법.
대륙의 가장 거대한 제국.
그리고 그 제국의 수도가 누군가의 이름이라면 그것으로 모이는 신앙이 얼마나 클 것인가.
카이만은 인간이나 반신의 격에 닿았었고 그 순간 인지한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뇌리에 담은 적이 있었다.
마법사란 탐구하는 존재들.
천천히 공들여 자신의 기억을 비틀어 열었고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세계는 너무나도 많이 반복되어 그 농축된 기록의 일부분만으로도 카이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제나 나쁜 아비였겠지.’
하지만 그마저도 거의 마지막에 도달했다.
영속되거나 혹은 반전되거나.
아델리안은 유일한 변수, 크고 넓게 볼수록 결국 큰 굴곡 없이 굴러가던 세계에 던져진 돌.
‘이번 변화는.’
알려 주는 것이 도움될 것이다.
악신교단에서 이 정도로 신경 쓸 인물은 살아 있는 신. 그자뿐일 테니.
그자가 심경에 무슨 바람이 불어 본단이 아닌 수도로 올라오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은 기회 혹은 위기.
“가주님.”
노크 소리와 더불어 울리는 알카이도의 목소리.
카이만이 잠시 상념을 걷어내며 들어오라 이르자 문이 열리며 알카이도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가주님, 아델리안 도련님의 기사 중 하나가 뵙기를 청합니다.”
내부적으로 아델리안의 기사라 부르는 이들은 몇 있으나 그중에서 단독으로 자신을 보고자 하는 이가 있다라.
‘하나뿐이군.’
“케인을 이리로 부르도록 하지.”
그에 알카이도가 묵례하고 나간 뒤 이윽고 노크 소리가 울린다.
“들어오도록.”
아델리안을 통하지 않고 자신에게 직접 단독으로 면담 요청할 자는 하나뿐이지.
카이만은 자신의 눈앞에 선 사내를 바라보았다.
훤칠한 키에 검은 머리칼, 황금색 눈을 지닌 자.
그리고 한때 이제는 지워진 과거 속에서 모든 인간의 희망이자 숙원을 결국엔 이뤄냈었던 사내.
“케인, 그대가 날 왜 보자 청했지.”
카이만의 말에 케인이 무심한 얼굴로 카이만의 시린 눈동자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사과할 일이 있어서.”
“어떠한 연유로.”
카이만이 곧은 그 시선을 마주한 채로 피하지 않고 묻자 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가디아에게도.”
그 말에 카이만이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가.”
“그럴 테지.”
그래. 본디 저런 사내지.
카이만은 다시 물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지.”
그런 카이만의 질문에 케인은 느리게, 하지만 명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