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1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17화(317/373)
그자를 처음 본 것이 언제였던가.
아니, 정확하게는 느꼈던 것이 시작이었나.
어린 날, 아직 그 어느 것도 알지 못했던 시절에 문득 느껴졌던 그 기묘한 위화감.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으나 삶 자체가 고단했던 나날이었으므로.
단지 제 성정이 예민하여 과민한 생각이라 여겼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필시 좋지 않은 연유로 그리 했을 거라 생각했기에.
기감을 곤두세워 은밀히 주위를 확인해 봐도 발견되는 이 없었으니 그저 남들처럼 자신도 미쳐 가는 거였다 생각했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쉿. 아직 밤이 다 가지 않았어. 셰인.”
우는 동생을 품에 가둬 안고 그 여린 온기가 혹 끌려나가 식을까 두려워했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던 날.
힘없던 유년기의 밤.
많은 피가 흘러 집안인데도 비린 냄새에 갇혀 질식할 거 같았던 순간.
밖에서는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얼굴이 기억나는 이들의 비명이.
품 안에서는 더운 체온의 흐느낌으로 가득 찼던 그때.
신이 있다면 인간의 신은 없다고. 온통 저 밖에 괴물들의, 아인족의 신만이 존재할 거라 여겼던 찰나.
고개를 문득 들어 올렸을 때 희미하게 일렁이던 푸른 눈동자와 마주했다.
그것은 희미했다. 얼굴의 윤곽마저 한번 손으로 문지른 듯 희미해서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를 모습이었으나 하나 확실한 것은.
낡은 집의 지붕에서 새던 희미한 빛과 엉킨 금발과 푸른 눈.
사내인지 여인인지. 인간인지 아인족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울 만큼.
겨울날의 입김처럼 흐린 그것이 일렁이며 입을 뻐끔거렸다.
말은 들리지 않았다.
모습이 뭉개져 입 모양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괜찮다고 말해 주는구나 하는 직감만이 존재했을 뿐.
모습은 존재하되 들리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그것은 내 눈에만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잘 버티는 줄 알았으나 아직은 어렸기에 결국 다른 이들처럼 한 가닥 놓아 버렸던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내 빈약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것이 그리도 다정할 리 없었을 텐데.
등 뒤에 닿는 온기는 없었으나 괜찮다는 말을 곱씹으며 셰인을 안고 버틴 날 이후로.
그자가 보였다.
‘오늘은 있군.’
그자는 어느 때엔 며칠 내내 보인 적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짧게만 스치듯 눈에 보였다.
마치 유령처럼.
하지만 자신이 유령을 볼 수 있게 된 거라면 그자 외의 다른 이들도 보았어야 했을 것이나 그렇지 않았고.
처음 생각한 대로 케인 자신이 혹 미쳐 버려 보인다고 하기엔 그것은 원할 때 나타나지도 않으며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뜻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또 시작이네. 나중에 케인에게 찍소리도 못 할 거면서.’
‘아니, 성장기 애들에게 밥은 제대로 줘야 하는 거 아니냐? ’
‘진짜 저 감시자 놈 뒤통수 한 대만 때려 봤으면…….’
분명 입 모양을 읽었을 때 하는 말이라거나, 괜히 채찍을 들고 서 있는 수인족의 뒤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미루어 봤을 때.
케인 자신이 만들어 낸 인물이라기엔 조금 위화감이 있었다.
‘유령도 헛것도 아니라면.’
수호성 같은 거라도 되는 건지.
그렇다 해서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 주거나 무거운 것을 들 때 거들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다만.
한 번씩 눈에 비치면 그것으로도 적당한 안식이 되었을 뿐.
주위에 남은 이들 모두가 공허함과 증오를 품고 있었으니까.
살아가며 그것은 아주 조금씩 진해졌다.
가끔은 집중하지 않아도 표정이, 입 모양이 보일 정도로.
‘케인, 저놈 나쁜놈이야.’
어째서 테이트리아를 나쁜놈이라 칭하는진 모르겠지만.
‘나가는 게 맞긴 한데.’
그렇다면 나가는 게 옳겠지.
그것이 진실이 말하는 것이건 아니건 간에. 그 뜻대로 움직여도 상관없는 일이라면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훈련소를 나가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남아 있어도 혹은 탈출한다고 해도.
케인 자신에게 어느 것이건 큰 의미는 없으니까.
자신이 바라는 것은 부디 셰인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
나머지는 그 부수적인 행위였으므로.
‘다만.’
아쉬운 것은 언제나 그 존재는 말을 걸려고 하면 사라지는 것이었다.
말을 걸지 않는다 해도 일정 시간이 흐르면 사라졌으나 무언가 아는 체를 하려 하면 바로 그 모습이 흩어졌지.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는 눈앞에 있다 하더라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피했지만.
‘이상하군.’
세계가 잠시 일렁거리는 것 같다.
마치 너무 고요해 파문 하나 없는 물속에 있었기에 그 저항을 느끼지 못하다가 누군가 돌을 던진 것처럼.
몸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이질감이 든 아주 찰나의 시간.
검은색의 연기 같은 형체가 언제나 보이던 이의 앞에서 흔들렸다.
마치 데려가려는 것처럼.
서로 실랑이를 하듯 연기 같은 그것들의 몸이 늘었다 줄었다 흔들리더니.
검은 것이 히죽 웃는다.
마지막 입 모양만이 읽혔다.
‘명을 받듭니다.’
그 뒤로는 사라진다. 지금은 물러간다는 듯.
이곳에서 사라질 것인가. 지금까지 그랬듯 언젠가 다시 나타나겠지 하는 생각조차 지워지도록.
완벽하게?
자신도 모르게 다시 그곳으로 걸었다.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돌아갈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말을 건넨다면 언제나 그러했듯 사라지겠지.
케인은 검을 꾹 쥔 채로 보이지 않는다는 듯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 * *
‘또 사라졌군.’
불안정한 유년기, 혹은 어린 날의 환상으로 치부하기엔 그것은 대중없이 나타나면서도 꾸준히 일렁거렸다.
한동안 같이 있는다 싶으면 사라졌다가. 이번엔 정말 영영 사라진 건가 하면 되돌아온다.
그러면서 자신의 곁에만 있는 게 아니라 어딘가를 돌아다니며 바라보기도 하고 가끔은 테이트리아의 정강이를 차는 시늉도 하지.
유독 테이트리아에게 적개심을 지닌 것 같았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테이트리아가 아인족에 대한 증오심이 깊긴 하나 그건 사실 인간족 대부분의 특징이었으므로.
“나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게 맞나.”
“예. 그러합니다. 그 어떤 간섭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언젠가 관련된 트레잇을 발현한 이에게 영혼 잠식 같은 감정도 해 봤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
이 세상에서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
하지만 그것은 헛된 망상도 아니요, 누군가의 찌꺼기도 아니라면.
‘그냥 위안이로군.’
영혼도 헛것도 아니라면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제 눈에만 오롯한 것은 그냥 두면 되는 법.
그 어느 것도 도움되지 않는 존재이나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편한 이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때론 그런 존재이기에 더욱 와닿는 말도 있는 법.
‘잘 지내려면 잘 지낼 수도 있잖아.’
언젠가 입 모양으로 중얼거렸던 그 말.
그것은 역시 아인족들을 말한 거였나.
붉은 비늘을 두른 짐승을 가르고 그 심장을 쥐자 인간의 몸보다 거대한 것이 손아귀에서 주먹만 한 크기로 줄어든다.
얼마나 강한 드래곤인지 하트가 반으로 잘려도 죽지 않고 불꽃을 뿜어냈다.
막 줄어든 크기의 반쪽 심장을 꺼내는 순간, 터지는 불꽃 너머로 그것이 보였다.
‘안 돼!’
무엇이.
이 붉은 비늘의 짐승이 숨을 거두는 것이?
왜 저리도 간절하게.
“어째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연 순간 모습이 사라진다.
그래. 어느 것도 물을 수 없지. 하다못해 이름마저도.
알려고 하면 사라지는 그 존재는
‘잘 지내려면 잘 지낼 수도 있잖아.’
인간과 아인의 공존을 꿈꾸는가.
거대한 드래곤의 몸 위에 서서 사방을 바라보았다.
서로 죽고 죽이고. 수많은 피가 범람하고 죽은 몸이 산처럼 쌓인다.
혹 공존할 수 있다면.
서로 죽이는 데 몰두하여 그 방향을 서로에게 겨누던 이 힘을 미래로 방향을 튼다면.
이 세계는 좀 더 괜찮아질까.
언제나 아인족들과 인간족은 공존할 수 없다 여겼지만.
때론 아인족이, 때론 인간족이.
상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모습을 한번씩 보고 있자면 결국 생긴 것은 달라도 어차피 이 세계를 이루는 것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아인족의 대부분을 죽인다면 세계의 균형도 망가질 거란 직감 또한.
격을 넘은 이후로 이런 직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시간을 들여 인간과 아인족의 오랜 원한을 누그러뜨리고 싶었지만.
“우리가 더 약하고 위태로운데 왜 자비를 베푸는 거야. 케인. 그들을 더욱 쥐어짜도 우리가 불리하다는 거 알잖아.”
“하지만 그들이 태생부터 악했을까. 테이트리아.”
세계가 지금껏 그리 움직였기에 그것이 당연한 진리라고 여겼을 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인간도 아인족도 서로에게 절대적인 원망을 느끼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 생각했건만.
“…널 증오해. 케인.”
“어째서…….”
평생을 함께한 친우였다. 누구보다 인류를 위해 헌신하며 자신의 수명을 소멸시키는 방법을 써서라도 전쟁을 도운.
자신이 저항하기 위해 오러를 끌어 올리면 그 힘이 그대로 셰인의 목을 옥죄는 마법까지 써 가면서.
어째서.
“아인족을 용서하자니. 너도 인류의 배신자야.”
“…나는.”
결국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고 생각했으므로.
그 연쇄를 끊고 싶었던 거였을 뿐.
“네 세계를 부정한다.”
테이트리아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
그래서 테이트리아를 싫어했던 걸까.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결국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그 존재는 영영 사라졌나.
이대로 죽으면 그렇겠지.
“옥좌에는 내가 앉는다.”
별의 옥좌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세계의 신이 되는 것도. 성좌에 앉아 절대적인 룰을 만드는 것도.
그리고 그 이후의 일도.
다만 이 삶을 올바르게 끝내고자 하였기에 미루었던 가치 없는 것들.
그러니 네가 옥좌를 포기해.
하지만 테이트리아가 별의 옥좌에 앉는다면 모든 이들이 고통받겠지.
결국 인간과 아인족이 뒤바뀔 뿐.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직감했다.
영혼 깊게 영속된 별의 옥좌에 대한 자격은 자신이 진정으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사라지지 않음을.
그렇다면 자신이 포기하지 않고 죽는다면?
그렇다면 테이트리아도 이 세계를 고통으로 지배하진 못하겠지.
그러다 흐려지는 곁눈으로 무언가 일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적막했다.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바람도 공기의 흐름도 멎었다. 저 멀리 날아가는 새와 구름도 깃 하나 움직이지 않고 그 형상 하나 무너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세계가 움직이지 않는 시간.
그리고 그제야 언제나 느끼던 위화감의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은 파편의 파편일 뿐이란 것을.
세계와 이어질 정도의 격을 쌓은 뒤에야. 이곳이 멈춘 뒤에야 알게 된 사실.
단지 기록된 존재일 뿐.
하지만 지금 이렇게 자신의 의지대로 행할 수 있다는 건.
결국 살아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한낱 기록에 깃든 상념이라 할지라도 이곳이 자신의 세상이라면 부정하고 탓할 이유는 없는 거지.
본디 진실된 자신은 따로 있겠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나임을 부정할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원래라면 이대로 숨을 거두어야 하는 시간일지라도.
본디 그것이 맞는 역사일지라도 이미 그것은 몇 번이고 지나간 사실이니.
한 번 정도는 부정해도 나의 세계가 망가지지는 않겠지.
원래라면 케인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격을 얻어 세계의 신. 그 직전에 올라선 테이트리아만 인과관계를 뒤틀어 움직일 수 있었겠으나.
케인은 죽음을 거절했다. 원래 이어져야 하는 운명을 자르고 멈춘 기억의 세상에서 거스르듯 움직였다.
“나는 널 죽일 순 없지만.”
조금 고통스럽게 할 수 있거든.
이제는 이 세계의 신이 된 테이트리아의 손목을 움켜쥐고.
이제는 완연하게 보이는 금발과 푸른 눈을 지닌 사내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번에도 사라질까?
“이름.”
자신의 관통된 심장을 확인하던 이가 눈을 마주한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히 끝나기 직전이란 소리겠지. 다음은 없다는 의미겠지.
“뭐?”
“이름 말이다.”
지금까지 그 어떤 질문도, 대답도 허락되지 않던 것이 허락되었다면.
대가는 영원이겠지.
결국 자신은 파편의 파편일 뿐이니.
“강수호.”
그리고 아델리안.
하지만 어쩌면.
나는 나보다 먼저 이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끝낼 시간이다. 이곳은 단순한 기억의 저장고.
살아 있는 이가 죽어 있는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이곳에 오래 있을 필요는 없는 법.
케인은 손을 그것의 어깨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