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21)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21화(321/373)
“이해할 수가 없군.”
레이첼이 아델리안이라는 인간을 따라 다른 방으로 가는 것을 보며 드래곤 중 누군가 나직이 말했다.
“이번에 고분고분한 성격으로 유희하는 건 아니고?”
“그럼 우릴 로드의 이름으로 왜 불렀겠어.”
다른 드래곤들이 한쪽으로 눈동자만 움직여 흘겨본다.
“저 인간 봤어? 트레잇이 특별할지도 모르잖아. 누가 눈을 가졌더라?”
“나, 나. 그런데 완전 쓰레기야, 그쪽으론.”
신체고 정신이고 마나고 오러고 쓸 만한 트레잇은 없어. 하고 누군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면 영혼? 그렇다기엔 좀 육신과 크기가 안 맞긴 하지만 그리 특별해 보이진 않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들을 수 없는, 아니 일반적으로 오러나 마나를 제대로 쓰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듣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소리로 나누는 대화였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크게 말하는 것처럼 다들 불편함 없이 입을 열며 아델리안을 품평하는 것에 소르페가 피식 웃었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렇겠지.”
소르페 자신도 어쩌다 보니 저 무능력하게만 보이는 아델리안에게 계약서로 묶이지 않았나.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말을 떠올리며 소르페가 대꾸했지만 다른 드래곤들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일단 레이첼이 돌아가 있으라는데 그 말 들을 거야?”
“잘 놀던 드래곤 오라고 한 게 누군데. 나는 제국에 온 김에 조금 더 즐기다가?”
“그 전에 소르페. 넌 이번 일에 대해 뭐라도 알고 있나.”
누군가의 질문에 소르페가 금색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정확히 무엇을 알고 있냐 묻는 거지?”
“레이첼이 우리를 통해 깨달은 것.”
그리고 이곳에 굳이 남겠다는 이유?
“더불어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짐작되는 게 있으면 말해 봐, 소르페.”
그 말에 소르페가 조금은 난처한 얼굴로 시선을 던졌다.
“어렵네. 정답은 확실한데…….”
그게 답일 수가 없단 말이지.
소르페의 중얼거림에 다른 드래곤들이 비슷하게 결론을 내린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정답은 확실했다.
다만 그 나온 답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다는 것.
이 자리에 존재하는 드래곤 대부분이 비슷한 악몽을 꾸었다.
인간에게 사냥당하는 꿈.
인간과 아인의 종족전쟁.
문제는 망각 따위 하지 않는 드래곤이라고는 하나 누구의 뇌리에도 남아 있지 않는 기억이란 거였다.
“다들 몇 가지 가정은 금방 생각해 냈겠지만.”
푸른 머리칼과 눈을 가진 여인이 입을 열었다.
“거짓된 환상을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거나.”
“하지만 결국 직감적으로 답을 알 수밖에 없지.”
자신들의 기억에는 없으나 분명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하나 그게 정답이라면 지금 이 세계와는 너무나 모순되는 일이었다.
인간과 아인족의 위치가 뒤바뀐 게 악몽의 세계였기에.
그게 하루아침에 건축물과 문화. 그리고 생활 양식부터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영상석이나 책까지 다 바뀐 뒤.
심지어 존재하는 모든 지적 생명체의 기억까지 완벽하게 조작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문제는 신도 그럴 수는 없을 거라는 데 있었다.
그래서 레이첼이 일단은 그 인간에게 예지몽이니 뭐니 하며 말을 돌린 모양이지만.
“그 인간이랑 말한다고 답을 알 수는 있는 건가. 레이첼이?”
드래곤들이 잠시 소르페를 바라보았고 소르페가 두통이 인다는 표정으로 한 손을 들었다.
“그건 레이첼과 차차 알아봐야지. 그런 의미로 나랑 레이첼에게 남을 드래곤?”
“힘내.”
“굳이 우리가?”
“다들 그럼 결론 내렸지?”
더 있다가는 발목 잡힌다는 표정으로 드래곤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놀고먹을 생각은 아니야. 우리는 소집된 김에 강신이나 신탁 한번 받아볼 테니까 레이첼은 소르페가 책임지기.”
“그러니 우리가 답을 받아오길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가 불러낸 신이 제대로 된 답을 해 주지 못한다?
안 한다가 아닌 못 한다가 되면 일이 아주 커지니까.
차가워진 동족의 눈동자들을 보며 소르페가 양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신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인간만이 신탁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신의 세계에도 그들끼리의 규칙은 존재하는 법.
세계가 분명 이상한데 그 어느 신도 관련된 신탁을 내린 적도 없으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이만 먹어도 반신 급에 이르는 드래곤이 두 자리 숫자가 이곳에 모였다.
각자 조금씩 희생하면 하급신 하나 정도는 궁지에 몰 수 있겠지.
그런데 대답을 듣지 못한다면.
“수습은 레이첼이 알아서 하겠지.”
세계를 부수든가 말든가.
소르페는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를 부정하고 싶진 않았기에 부디 일상을 그대로 누릴 수 있는 대답을 듣고 오길 기도해 주며 손을 흔들었다.
* * *
말을 할까 말까. 꽤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레이첼에게는 말하는 게 맞겠지.
“예지몽이 아니면 말이 더 안 된다니까.”
“왜 말이 안 돼.”
내 앞엔 차를, 레이첼의 앞엔 술을 놓아 주며 묻자 레이첼이 진지한 얼굴로 일단 술병을 잡았다.
“우리 종족이 뭔데. 드래곤이야. 그런데 분명 과거의 기억엔 없으니까.”
레이첼이 한 컵 가득 술을 따른 뒤 원샷하고는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더불어 그게 정말 본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를 느끼는 기억이라면 더 말이 안 돼”
뭐 정말 말도 안 되게, 어찌 모든 드래곤들이 같은 부분에 기억상실이 걸려서 기억을 못 한다고 치자?
“그런데 딱 그 부분에만 공포를 느낀다? 기억도 못 하는데?”
아무리 드래곤이 오만하며 자존심으로 뭉쳤다 해도. 자신이 사냥당하는 것이 치욕스럽다고 해도.
그 한 번의 치욕을 공포로 각인한다?
“한둘도 아닌 대부분이?”
레이첼이 고개를 저었고 나는 그것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 번 아니야…….’
살아 있는 신을 내가 치터나 모더라고 하긴 했지만 누군가는 그런 의문이 들 것이다.
이 세계는 분명 유일신 세계관도 아니고 더욱이 원래 인간이던 테이트리아가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권능을 가질 수 있는가.
‘뭐, 너무 사기 아니냐 하고 생각이 들 만하지.’
정답은 이 세계가 루프하기 이전에 있었다.
살아 있는 신은 처음부터 세계를 역전시킬 정도의 힘을 가진 건 아니었다.
처음엔 단순하게 자신 혼자만의 회귀 정도만 가능했던 모양.
루프도 아니고 회귀라서 아주 조금을 제외하면 쌓인 격도 거의 없는 일반 인간이니 중간에 실수로 죽었으면 그대로 끝이었을 텐데도 되돌아갔다.
살아 있는 신은 자신의 삶을 다시 살면서 케인의 친구로, 셰인과는 친구도 연인도 아닌 관계로.
1회 차와 똑같이 어린 시절을 견디고 탈출하고 가끔은 원래 죽었어야 할 이는 살리고 졌어야 하는 전투는 이겨 가면서.
아주 조금씩 1회 차와는 다른 전쟁을 하며.
똑같이 케인을 배신했다.
그리고 케인을 죽임으로써 얻은 격으로 다시 회귀하고.
또다시 시작하고.
‘그러다 케인보다 강해져 보려고 시도는 해 본 거 같지만.’
케인보다 먼저 별의 옥좌에 앉을 격을 쌓아 보려고 시도는 해 봤지만 수십 번을 회귀해도 처음에 지니고 시작하는 재능의 벽은 깰 수 없었던 모양.
‘그래서 셰인의 재능을 강탈하기 위해 그 몸에 자신을 덧씌우는 모양이지만.’
회귀하며 아주 조금씩 쌓는 격을 모아서 인식 개변을 하고 역사를 바꾸고.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신은 한 땀 한 땀 노가다로 지금의 세계를 만들었다.
초반 수천 번은 루프가 아니라 말 그대로 회귀로 버텼으니 그때부터 정신이 비틀렸을지도.
결국 이 말은 무슨 의미냐면.
‘드래곤의 영혼에, 무의식에 각인될 만큼 케인이 죽여 댔단 소리지.’
살아 있는 신이 루프가 아닌 회귀를 할 때마다 레이첼을 필두로 모든 드래곤이 케인에게 썰려 나간 것이다.
나중에 살아 있는 신이 야금야금 세계를 고쳐 인간이 아인족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세계선을 만든 뒤에나 그게 끝이 난 것이고.
결국 한두 번이 아니니 악몽으로 그게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소리.
“레이첼, 우리 계약 기억하지?”
“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나는 레이첼이 가자미눈으로 날 보면서 술병째로 마시는 걸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뛰쳐나가거나 하지 말 것.”
나는 레비의 입에 마정석을 넣어 주고는 반지로 들여보낸 뒤 마나장막을 쳐 달란 손짓을 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더불어 진실의 눈으로 날 볼 것.”
레이첼이 내가 또 무슨 허튼짓을 하려고 이러나 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다가 턱을 괸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적당히 둘러댈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 그건 레이첼이 케인에게 가지는 근본적인 의혹 해소에는 도움되지 않는다.
더불어 레이첼에게 알려 주지 않으면 나에게 준 사용자의 눈이나 혹은 이곳으로 데려올 수 있었던 방법의 유추마저도 할 수 없다.
그럴 바엔.
나는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예지몽이 아니라는 것. 실제 있었으나 잊힌 역사이며 동시에 없었던 일도 맞다는 것.
결국 이 세계는 만들어진 역사를 계속 다시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난 레이첼이 중간에 말이 안 된다거나 당장이라도 살아 있는 신을 죽이러 가겠다거나.
혹은 케인을 어떻게 해 버리겠다. 하는 식으로 화를 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충분히 분노하며 믿을 수 없을 만한 말이었으므로.
하지만 세상에는 차가운 분노도 있는 거지.
“진실의 눈을 왜 말했나 했더니… 그러니까 일단. 그 새끼가 문제인 거잖아. 그렇지?”
앞뒤 다 자르고 어? 누가 먼저 잘못했네 안 했네 집어치우고.
레이첼이 이를 뿌득 갈았다.
“그 책 줘 봐, 책. 나도 혹 봐지나 보게.”
레이첼이 차가운 얼굴로 손을 까닥거린다.
내가 아공간에서 기억이 담겨 있던 책을 꺼내니 레이첼이 파라락 넘겨 본 뒤에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분명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 있었는데 사라졌네. 일회용이구나.”
레이첼의 붉은 눈이 무언가 생각하듯 허공에서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책을 꽉 움켜쥐었다.
“나 제대로 좀 알아야겠어. 그래야 설명이 될 거 같거든.”
아델리안, 네 말대로라면 내가 영혼을 쪼개서 이 망할 세계 밖으로 내보냈단 말인데.
“그거 내 힘으로 불가능해.”
그리고 이 망할 세계에서 이미 신으로 존재하는 놈들은 도대체 뭐 하는데. 하고 레이첼이 중얼거린다.
글쎄다… 내가 신관도 아니고 아는 신이 있는 것도 아니라 잘 모르겠네.
레이첼이 문득 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거 누구누구 알아.”
모두에게 말할 거야?
레이첼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케인이 세계를 멸망시키네 마네 하니까 말해 준 거지.”
더불어 네가 상황을 알아야만 물을 수 있는 것도 있고.
체이서는 내 기억을 엿봐서 좀 아는 거고 제로나 케인도 전부 아는 건 아니나 나머지 일행은 아예 모른다.
그렇다고 당장 루나나 리프, 파이얀과 레비에게까지 다 알릴 생각은 없었다.
“알려 줘서 당장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기분만 더럽혀질 것이다.
이 세계가 허상임을 지금 안다고 무엇을 할 수 있나.
고작해야 이미 일어난 일을 반추하며 근거와 과정을 정리하는 정도일 뿐.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닌 거 같다. 아델리안.”
알아서 기분만 나쁘지. 나도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데.
레이첼이 투덜거리며 잔을 비운다.
어차피 살아 있는 신을 완전히 죽이거나 소멸시키거나.
혹은 루프인가 뭔가를 망가뜨리기만 하면 그대로 이 세계는 흘러 새로운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굳이…….”
케인 때문에 영혼이 이용당하는 중이라고 할 필요 없지.
내가 말을 삼키자 레이첼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알아서 득 되는 건 원망과 분노로 인한 파워 상승?”
뒤늦게 농담이었다는 듯 웃으려던 레이첼이 그냥 입술을 꾹 다문다.
“하지만 이미 알게 된 놈들은 확실하게 아는 게 맞겠지? 아델리안. 공유해 줘, 기억.”
체이서 족쳐서 할 수 있잖아.
레이첼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하는 말에 나 또한 작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