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2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22화(322/373)
난 이곳에 와서 흑발도 금안도 많이 봐 왔었다. 하지만 흑발에 금안의 조합은 케인 외엔 본 적 없었는데.
‘확실히 이렇게만 보면… 셰인과 비슷한가?’
나는 혼당 페스츄리를 손에 쥐고 먹다가 이젠 손가락까지 핥아 대는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원작의 원작. 뭐 쉽게 말해서 케인의 1회 차 때 본 얼굴이다.
‘카이자.’
갑자기 그림자가 열리길래 체이서가 출장 갔다가 귀환한 줄 알았더니 카이자가 튀어나왔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손 닦아 줄게요. 포크 있으니까 이걸루 먹어요.”
루나가 아이를 어르는 말투로 속닥거리며 물에 적신 수건으로 카이자의 손을 닦아 준다.
정확하게는 레비의 몸 위에 수건을 문지르면 젖는 거지만.
“피 냄새 장난 아닌데? 저거 그거지?”
악신교단.
레이첼이 속닥이는 것에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좀… 강하긴 하네. 나 대련해 보면 안 돼? 어?”
“안 돼.”
레이첼이 안달 나는 듯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난 모르쇠 하며 카이자를 바라보다가 케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케인은 별 감흥 없는 눈으로 카이자를 바라보다 머리가 아프다며 방으로 들어간다.
저놈이 두통을 앓을 리 없으니 그냥 한 소리일 테고.
―체이서의 연인인가 봅니다. 관리자님.
“…아닐…걸?”
나는 리프의 손에 들린 ‘친구부터 시작해.’라는 책을 보며 대꾸하다가 말을 덧붙였다.
“그나저나 서류는?”
“아, 그거 루나 선배님이랑 제가 정리해서 리프 후배님에게 드렸습니다.”
내 질문에 빵을 더 가져오던 제로가 대답했고 리프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마지막으로 취합해서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 뒀습니다.
“그럼 난 그거 읽고 일 좀 할게?”
페스츄리 하나 냉큼 집어 들고 나도 방으로 들어왔다.
‘어디 정리 좀 해 볼까나.’
나는 의자에 앉아 아공간에서 깃펜과 양피지를 꺼낸 뒤 올려져 있던 서류를 훑기 시작했다.
이제 개개인으로 할 만한 일 중 급한 건 거의 끝났다.
앞으로는 집단전을 준비해야 하는 만큼 흔히 말하는 서류 파티를 나도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카이만에게로 다 밀어 버려서 괜찮긴 한데.
‘아르만의 해상 전력 보충 현황 같은 건 무조건 내가 보는 게 맞으니까’
더불어 샤하드의 계승권 문제도 그렇고.
‘하필 살아 있는 신이 황제라서 조금 애매해졌어.’
본디 강수호로서 알고 있던 원작으로는 1황녀 세리아가 내전을 일으키며 인간 쪽 전력을 많이 까먹는 거였다.
그러니 세리아를 견제하며 세리아가 왕이 되는 대신 내가 미는 샤하드를 왕위에 올리고 훗날 있을 전면전을 대비하는 거였는데.
‘황제가 살아 있는 신일 줄 몰랐지.’
이게 지금 너무 큰 변수로 작동한다.
원래라면 세리아가 황제를 죽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정말 세리아가 죽인 걸까,’
자기 진짜 몸을 그렇게 쉽게 버릴 걸로 생각이 들지 않는다.
원래 살아 있는 신이 황제로서 활동하지 않고 세리아가 내전을 일으키는 이유는 아마 전쟁을 통한 인구수 줄이기일 것이다.
체이서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우리가 내린 결론 자체가 이 땅에 사람들이 많이 살아 숨 쉬는 게 살아 있는 신에게 부담이 된다는 거였으니.
‘그러니 인신공양으로 힘을 돌려받고 전염병을 일으키고 한 거겠지.’
언뜻 보면 인신공양 수백 번보다 전쟁 한 번이 클 거 같은데 왜 그리 인신공양에 열중인지 체이서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뭐 설명이 장황했지.’
나로서는 알아듣기 어려운 마법적 개념도 많았고.
하지만 마법의 ‘마’도 모르는 강수호도 알 수 있게 비유하자면 그거였다.
‘보약? 음료수?’
뭐든. 액체가 들어 있는 걸 하나 떠올려 보자. 마개를 열거나 포장이 손상되는 순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그걸 바늘로 구멍을 하나만 낸 뒤 수천 수만 개를 한 봉지에 담는다면?
구멍이 뚫려서 한 봉지에 담겨는 있지만 고작 바늘구멍 하나라 아주 천천히 내용물이 흘러나오겠지.
게다가 전부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안에 고여 있는 게 더 많을 터. 그마저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냥 사라진다.
그런데 인신공양은 바늘구멍이 아니라 아예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거나 다름없다.
안에 든 액체가 전부 나오겠지. 빠른 시간 안에.
수만 개의 바늘구멍 하나만 난 것들보다 수천 개의 전부 파손된 것들에서 흘러나오는 양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런데 이번에 내전이 일어나기 힘들어졌지.’
그 말인즉슨 샤하드가 황위를 잇기 전에 살아 있는 신이 황제의 몸으로 다른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
그냥 본인이 미친 척 내전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일단 살아 있는 신 쪽은 아직 내 존재를 모른다.
체이서의 언질로 미루어 봤을 때 케인의 상태도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닌 상황.
즉, 실컷 암살자 양성소에 끌려가서 학대받고 훈련받다가 뛰쳐 나와서 레이첼 등과 돌아다니는 중이라고 생각할 테고.
‘그럼 뜬금없이 내전으로 생명 소모를 하기보단.’
나는 한동안 언데드를 수거하러 다닌 것을 떠올렸다.
파이얀의 패밀리어가 된 까마귀 필 덕에 흑마법사의 것을 좀 털다가 나중엔 하수도에 숨긴 걸 다 옮겼는지 못 찾아서 그만두긴 했지만.
‘전염병은 사라졌지만 챠비드 쪽은 아직 살아 있는 신이 흔들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언데드 준동은 내가 꽤 망쳐 놓았다고는 하나 흑마법사를 죽인 건 아니니 시간대만 달라졌을 뿐 나중에라도 발동 가능한 인카운터다.
속성 비보도 자잘한 건 카이만의 돈으로 내가 족족 사고 있지만 이름이 붙은 것들이나 아주 강력한 건 직접 얻어야 하는 곳에 있으니.
나는 양피지에 군대. 언데드. 수인 등을 적어 둔 뒤 아티팩트와 비보도 적었다.
그리고 무언가 더 적으려는 순간 깃펜의 그림자가 악령의 손처럼 변하며 일렁인다.
그에 나는 양피지와 더불어 잉크병과 깃펜을 아공간에 던지며 입을 열었다.
“어서 와, 체이서.”
“한 번 정도는 놀라셔도 되는데요.”
체이서가 가볍게 귀족식으로 허리를 숙이며 느리게 웃었다.
* * *
살아 있는 신은 대부분의 기억을 흩어 놓았다고 했던가.
‘이유는 알겠군.’
영혼과 정신을 분리. 그리고 역행.
더불어 그것으로 얻는 정보 중 중복된 것은 거부하는 것과 동시에 최대한 기억이 아닌 사실관계와 더불어 지식 정도만 뇌리에 남기는 것도 꽤 큰 부담이다.
케인은 조금 지끈거리는 머리에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모든 것이 확실히 정리되어 마치 서랍처럼 필요한 부분의 기억만 여닫을 수 있도록 된다면 이 두통이 가라앉을 것이다.
지금은 공간과 시간의 트레잇을 상시, 그것도 비틀린 방법으로 유지 중이라 정신력이 계속해서 깎여 나가는 중일 뿐.
‘하지만 덕분에.’
꽤 많은 것을 기억해 냈다. 이 세계와 더불어 그 전의 것들마저도.
“내가 별로 인내심이 좋진 않아서.”
케인이 낮게 음색을 흘리자 방의 귀퉁이에서 누군가 한 꺼풀 벗겨 낸 듯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 주제에 꽤 하네?”
“애초에 그냥 인간이 아닌 걸 알잖나.”
“머리는 나 주면 안 돼?”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을 한 여인이 한 명. 붉은 머리칼에 붉은 눈을 한 노인이 한 명. 그리고 녹색 머리칼에 녹색 눈을 한 소년이 한 명.
그 셋을 바라보다가 케인이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날 죽이러 왔나.”
케인의 질문에 여인이 피식 웃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어.”
“자네는 기억을 못 한다 해도 우리는 확신한다네. 이유는 아직 정확하진 않지만 자네가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한 일이 있더군.”
“하여간 넌 말이 많아. 그냥 죽어.”
노인의 말에 소년이 핀잔을 주더니 손을 뻗어 그대로 마법을 날렸다.
그리고 그것은 순간 방이 아닌 황무지로 변한 풍경 저쪽으로 날아간다.
눈 깜짝할 새 변해 버린 풍경에 여인이 양손을 들어 화염구를 더블캐스팅하며 이를 갈았다.
“공간 분리?”
“이건… 마법보다는 특수한 트레잇에 가깝군.”
“하여간 넌 레드치고 말이 많다니까. 그냥 죽이자.”
쳐죽이면 공간 분리고 뭐고 풀리게 되어 있다니까?
소년이 허공에서 활을 만들어 날리자 녹색의 마나 화살이 빠르게 날아 케인의 바로 앞에서 터지며 호랑이와 닮은 녹색 정령수로 변했다.
동시에 그것이 앞발을 휘두르는 것을 케인이 스카로 쳐 내며 바로 지척까지 날아온 화염구를 디스펠한 뒤 붉은 머리의 노인이 휘두른 검을 피했다.
“적당히 하는 게 어떤가.”
케인의 말에 여인이 코웃음을 친다.
“적당히는 무슨, 그나저나 인간 기준으로 잡은 유희용 몸뚱이론 한계가 있네?”
여인이 재미있다는 듯 그리 말하며 웃는데 소년의 동공이 파충류처럼 길게 찢어지더니 입을 열었다.
“이 정돈 버텨야지.”
셋은, 아니 다른 드래곤들도 직감했다.
자신들이 그 던전에서 본 악몽은 분명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실이라고.
미래인지 과거인지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른 드래곤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레이첼은 명색이 드래곤 로드라 그 폭급함도 누르고 무언가를 알아보느라 저 벌레 같은 인간을 그냥 둔 모양이지만.
이 셋은 달랐다.
굳이 유희를 더 이어서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저 벌레 같은 인간이 제 몸을 가르고 하트를 빼 간 기억이 이리도 생생한데 굳이 레이첼을 기다려야 할 이유가 있나?
고작 인간 하나 죽였다고 어찌 되거나 레이첼이 동종을 내치기야 할까.
저 인간이 뭐라고.
“분명 그때는 바라보는 것만으론 얼마나 강한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있었지만.”
“지금은 자네가 얼마나 약한지 눈에 보이는군. 이 공간에 우릴 가둔 트레잇이 아까울 정도구나.”
“쉽게 죽이진 않을 거야.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인 뒤 머리를 잘라 줄게.”
케인은 자신을 향해 이를 드러내는 정령수를 피해 달리다 낮게 한숨을 쉬었다.
“손님 대접은 그만해도 되겠지.”
아델리안이 친척집 어쩌고 하며 시끄러운 걸 참는 것처럼.
최소한의 예의는 여기까지.
케인은 정령수의 공격을 피하는 것을 멈춘 뒤 그대로 오러를 스카에 실어 정령수를 베며 동시에 검을 휘두르던 노인을 발로 차 멀리 떨어트렸다.
본래라면 베였던 정령수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시 뭉쳐 나타나야 할 터.
하지만 케인은 이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마나를 또다시 공간 격리 시켜 정령수를 강제 역소환시킨 뒤 외부의 마나를 이용하는 마법을 원천 차단했다.
“이 무슨? 컥!”
소년이 마법 화살로 지원하다 정령수가 역소환된 것과 동시에 외부 마나와의 공명이 끊어짐에 마나 역류로 내장이 찢기며 피를 토했다.
“뭐, 이 무슨… 말도 안 돼.”
마법을 캐스팅하던 여인도 마찬가지. 자신의 내부에 있던 마나와 외부의 마나가 공명하다 망가짐에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으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노인이 걷어차인 배를 만지다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다른 이들은 하필 외부 마나와 공명 중에 끊긴 터라 회복에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자신은 아니었으므로.
그대로 케인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 우릴 속였군.”
아무리 자신이 만들어 자신의 지배하에 놓은 공간이라고 해도 마나 자체를 이렇게 빠르게 격리할 수는 없는 일.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을, 천재라고 해도 긴 시간을 공들어야 할 텐데.
전투 중에 바로 그게 가능한 정도라면 지금 눈에 보이는 정도의 경지가 아닌.
인간으로서는 쉽게 닿을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므로.
노인의 말에 케인이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언제.”
내 힘이 보이는 수준 그대로라고 한 적 있던가.
너무 강하면 강한 대로 너무 완벽하게 숨기면 숨긴 대로 귀찮아지는 법.
그렇다면 타인의 기준에 적당한 수준으로 강하게 보이는 게 덜 귀찮아지는 일일 터.
그 말뜻에 노인이 느리게 웃더니 검을 버리고는 동공을 길쭉하게 찢으며 대답했다.
“본디 드래곤은 심장에서 나오는 마나만으로도 강한 법이지.”
거대한 레드 드래곤이 허공 높이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