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2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24화(324/373)
무릇 신이라 하면 떠받들어지는 존재이다. 누군가의 기도나 감정을 먹고 힘을 키우는 법.
그러니 신의 힘이란 곧 따르는 자 혹은 종속된 자에 의해 결정되는 법이요, 그들로 인해 얻은 것들을 허투루 쓰지 않아야만 자신의 격을 조금씩이라도 더 높일 수 있다.
그렇기에 기적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신성력과 신성 마법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기적에 소모되는 힘보다 그 기적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여 되돌아오는 힘이 더 많을 테니.
“태양신 칼다라 님을 비롯해 많은 신들이 계시는데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어?”
태양신의 대주교. 하미드의 질문에 하미드를 보좌하던 이가 입을 열었다.
“어떤 생각 말씀이십니까.”
하미드가 오랜만에 입는 치마가 불편한 듯 밑단을 발로 툭툭 차며 의자에 앉아 턱을 괴었다.
“분명 믿음으로 신들께서는 힘을 얻으실 텐데.”
왜 신의 수가 부족할까.
“예를 들어 태양의 신은 있으나 왜 달의 신은 없을까. 바람의 신은 있으나 물과 불의 신은 없잖아.”
질서나 정의 같은 신도 있을 법하지 않나?
하미드가 중얼거리자 보좌가 입을 열었다.
“그런 개념은 너무 강대하여 신으로 강림하기에 믿음이나 기도가 조금 부족한 건 아니겠습니까.”
“뭐 질서나 생명 이런 건 그렇다 쳐도. 태양이 있으면 달도 있을 법하지 않냐?”
하미드의 질문에 보좌의 입이 꾹 다물렸다.
그리고 그 순간, 하미드가 멈칫하더니 몸을 일으키며 보좌를 바라보았다.
“나가.”
“네?”
“나 목욕할 거니 나가라고.”
하미드의 말에 천천히 보좌가 물러가며 문을 닫았다.
그에 하미드가 뒤늦게 숨을 몰아쉬며 코랄색 머리칼을 흩었다.
“뭡니까.”
―…….
그것은 의지였다. 말이라기엔, 언어라기엔 너무나 추상적인 무언가.
색과 맛, 감촉까지.
마치 기억이 스며든 천을 한 번 쥐여 준 거 같았다.
“신탁이 이런 식으로 내려오는 건 처음인데.”
좀 무리하는 거 아니세요?
하미드가 손끝부터 찌릿한 감각에 자신의 손을 주무르며 웃었다.
신탁이라 함은 사실상 신과 인간의 직접적 소통이다.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대가를 지불해야 가능한.
그것도 단순한 언어나 꿈 같은 게 아닌 동기화된 것 같은 감각 정도라면 태양신 칼다라의 신격이 살살 녹고 있을 터.
하지만 그 덕에 하미드는 깨달았다. 칼다라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누군가 보면 불경하다 하겠으나 그만큼 하미드는 흔들렸다.
도플갱어가 된 덕에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본질이 제로에게 연결되어 있기에 이성을 잃지 않았다.
인간 그대로의 하미드였다면 아마 미쳐 버렸겠지.
도플갱어는 제로를 통해 하나이되 여럿이고 여럿이되 하나인 의식 군집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미쳐 버린다 해도 근본적인 정체성이 변하지 않기에.
신조차 함부로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
모든 신은 믿음을 삼킨다. 그리고 그 믿음이라 함은 부정적인 것이건 긍정적인 것이건 가리지 않는다.
단지 그 의지를 받는 신을 인지하고 있느냐가 중요할 뿐.
정확하게 신으로 믿고 기도하느냐가 얼마나 영향이 큰지 알고 있다.
그 말인즉슨. 만약에 누군가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달의 신을 지운다면.
실제로는 존재해도 달에게 빈다는 생각을 굳이 하지 않게 된다면?
대륙엔 신이 많다. 만신전에 등록된 신만 수백인데 확실히 존재하는 신이 아닌 불확실한 개념을 굳이 추종할 필요가 있을까.
이 시점에서 사실 달의 신이 정말 존재하느냐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누구도 빌지도, 생각하지도, 기억하지도 않는다면.
결국 신도 소멸할 것이므로.
신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신살자라는 개념 또한 존재했다.
고대의 인간, 폭룡. 강력한 존재가 약한 신을 죽이고 신살자의 격을 얻어 반신에서 완전한 신으로 거듭날 수도 있는 세계.
그러니 반대로 격 높은 신이 추락하고 소멸하는 것도 가능한 세계인 것.
주신은 없다. 만신전에 등록된 모든 신은 표면적으로는 동등하다.
태양신 칼다라의 영향력이 크다는 건 믿는 이들이 많아 내리는 소소한 기적과 더불어 신성력과 신성 마법이 강하다는 소리.
하지만 만약 주신이라 할 정도의 아주 높고 강한 격을 지닌 신이 있다면.
모든 인간의 뇌리에서 특정한 신에 대해 굳이 떠올리지 않는 정도로만 힘을 쓸 수 있다면.
“수많은 신들이 사라졌군요, 이미. 그런데… 왜죠?”
왜 굳이 그래야만 하는가. 왜 굳이 신들을 지웠을까.
그리고 왜 지금 칼다라는 자신의 격을 녹여 가며 알려 주는 건가.
“신들은 우리를 사랑하니까.”
영혼을 끔찍한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는 악신 또한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을 믿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만 비틀렸으니 악신이라 불리는 것일 뿐.
모든 신은 자신을 믿는 이들을 사랑했다. 지키려 하다 소멸되어도 좋을 만큼.
혹은 납작 엎드려 죽은 듯이 모른 척하며 때를 기다려도 좋을 만큼.
그러는 이유까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칼다라는 이때를 위해 믿음과 신앙을 모아 왔음을 알았을 뿐.
하미드는 자신과 아니, 칼다라와 연결된 모든 이들의 깊은 곳에서.
영혼의 더욱 안쪽에 심어져 있던 무언가가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칼다라를 믿는 모든 신자들은 아마 드높으며 추악한 누군가가 심어 둔 명령을 거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까지 깨달은 하미드는 칼다라와의 연결이 끊기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 * *
“갔지?”
“가다 못해 지금 자는지 안 느껴지는데.”
“이때가 기회 아니겠는가.”
드래곤 셋이 중얼거렸다. 무릎을 꿇고 팔을 드는 것이 드래곤에게 뭐 그리 어렵고 힘든 일이겠는가.
다만 자존심이 상하지.
자존심으로 먹고사는 종족이니 레이첼이 그런 벌을 내린 것은 알고 있으나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에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는 차였다.
“우리… 아직 그 던전 안 아닐까?”
녹색 머리와 눈동자를 한 소년이 중얼거리자 검은 머리의 여인이 짜증 난다는 듯 뾰족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건 무슨 헛소리야?”
“아니 그렇잖아. 이 자체가 완전히 악몽인데?”
소년이 제법 진지하게 대꾸했다.
“인간에게 죽는 과거를 봤어.”
뭐 그건 그렇다고 쳐. 그래서 화풀이할 겸 그 인간에게 덤볐는데.
“드래곤 셋이 본체로 현신해서 브레스 갈겨도 안 죽는 게 말이 돼?”
무슨 인간이 공기에서 마나를 지 마음대로 분리해.
“설탕물에서 설탕만 바로 분리할 수 있냐고.”
물 탄 오렌지 주스에서 물이랑 오렌지 주스를 바로 나눌 수 있냐니까?
소년이 바락바락 대들 듯 하는 말에 여인이 이마를 짚었고 붉은 머리칼과 눈을 가진 노인이 허허 웃었다.
“그거 인간 아니라니까?”
“그럼 무엇인 것 같은가.”
노인의 질문에 소년이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모르겠고, 아 일단 인간은 아니야.”
“다 집어치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여인이 팔짱을 끼고 표정을 굳히며 소년과 노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중요한 건, 우리만 당할 순 없단 거야.”
레이첼은 그렇다 쳐.
그런데 다른 놈들이 알아봐?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인간에게 드래곤이 진 게 말이 되냐고.
“우리 셋을 아주 머저리로 알 거야.”
그에 소년과 노인도 살짝 찡그렸다. 분명 그 케인이란 인간에게 자신들이 완벽하게 눌린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과 이건 다른 문제였다.
“그 인간이 얼마나 강한지 우리만 알잖아.”
드래곤의 눈을 속일 정도의 경지이다.
그냥은 아무리 유심히 보아도 적당히 쓸 만한 정도의 재능과 무력을 지닌 것으로만 보였다.
그러니 셋이서 좀 가지고 놀까 싶었던 거지.
“특히 그 녀석. 그 녀석이 날 놀리는 꼴? 죽어도 못 보지.”
여인이 자신과 앙숙인 드래곤을 떠올리며 이를 바득바득 갈자 노인이 다시 허허 웃었다.
“그렇다고 속여서 케인이란 인간에게 밀어 넣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겠나.”
우리가 괜히 귀찮게 한다고 도리어 이쪽이 화를 입을지도 모르네만.
노인의 말에 소년도 끄덕였다.
“우릴 실컷 패고 하는 말이 귀찮게 하지 마라. 이거였잖아.”
누군가의 표정을 따라 하듯 급격히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림에 여인이 물끄러미 둘을 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 집 주인 있잖아. 그 제일 쓸모없는 인간.”
“아델리안이라고 하더구나.”
노인의 말에 여인이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려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델리안이란 인간이 그 괴물, 케인의 주인이야.”
뭐, 호위기사라고는 하는데. 이게… 말이 안 되지만 일단…….
하며 여인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이게 아무리 봐도 그 괴물처럼 자신의 정보를 거짓으로 보이게 해 둔 건 아닌 거 같거든.”
진짜 마나도 없고 체력도 없고 뭐도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라 그런 쭉정이 인간은 처음 본다는 듯 여인이 이마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래도 일단 괴물을 호위기사로 둔 주인이니 걔 말은 듣지 않겠어?”
안 들어도 당장 변할 건 없고.
하는 말에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럼 그 인간에게 보물이라도 쥐여 주고 말해?”
“혹은 레이첼을 통해 뭘 좋아하는지 먼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네.”
소년과 노인의 말에 여인이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저 멀리를 바라보듯 깊은 눈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보단…….”
다른 걸 알려 주는 게 나을지도?
입술로 호선을 그리듯 웃으며 하는 말에 소년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어떤 거. 뭐 알고 있는 게 있어?”
“블랙 드래곤은 아무래도 사기를 좀 더 잘 느끼는 편이지.”
드래곤 자체가 마법의 종주이자 마나의 축복을 받았다고는 하나 개체 차이와 종족 차이가 있는 법.
레드 드래곤이 불의 마나를 다른 드래곤보다 더 잘 다루듯.
블랙 드래곤은 마기나 사악한 기운에 다른 드래곤보다 조금 더 민감한 편이었다.
거기에 지금 마법사로 유희 중이었으니 본체로 현신한 드래곤이 없음을 감안하면 이 정도 사악한 기운은 자신 외엔 느낀 이가 없을 터.
블랙 드래곤이 수도 전체를 훑어보듯 방 안에서 고개를 돌리다 입을 열었다.
“아주 강력한 흑마법사가 너무나 신중하게 움직이는 중이야.”
지금을 위해 모두의 기억에서 잊힌 듯 움직인 것처럼.
“흑마법사? 하지만 네가 말을 해도 난 안 느껴지는데?”
“나도 마찬가지네.”
소년과 노인의 말에 여인이 웃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럼 당연히 레이첼도 못 느끼겠지?”
그러니 이걸 빌미로 한번 말해 보자.
“그 괴물에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그냥 다른 드래곤 돌아가며 한 대씩 쥐어박는 거.
“사실 레이첼에게 말하면 신나서 하자고 할 거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
선물도 주자, 이거지.
“이 제국의 아래에 언데드들이 잠들어 있음을.”
마치 누군가에게 도둑이라도 맞은 적 있는지 흑마법사가 집착적으로 언데드들을 이차원 공간에 숨겨 물리적인 방법으론 찾을 수도 없을 테니.
“그 정보만으로도 나름 괜찮은 대가가 아니겠어?”
미리 알고 수도를 버리기만 하면 큰 뒤탈은 없을 것이다.
여인의 말에 소년과 노인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 얼른 다른 놈들도 무릎 꿇고 팔 들면 좋겠다.”
“원래 고통은 나눌수록 적어지는 법일세.”
“그럼 잠든 레이첼의 기척이 깨어나면 말하자고.”
잠시 그 아델리안이라는 인간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