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2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25화(325/373)
테이트리아 제국은 거대한 나라였다.
북쪽으로 가면 영원히 녹지 않는다는 설산과 접해 있고 남쪽으로 가면 겨울이 되어도 꽃이 핀다는 남해와 맞닿아 있다.
서쪽으로 가면 사막과 초원이 어우러진 챠비드와 사막 국가인 라데온이.
동쪽으로 가면 숲과 정령의 나라인 아리나이드와 호수의 나라 악튬이 나온다.
거의 모든 나라와 경계선이 닿아 있을 정도.
그 말의 뜻은 비록 겉보기에는 하나이나 그 안에서 여러 세력이 나뉠 수밖에 없단 소리였다.
수도를 중심으로 한 귀족들은 남해 쪽 세력을 야만스러운 남부 촌뜨기라고 부르고.
남부에서는 수도 귀족을 세상 물정 모르는 허영쟁이들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머리가 아프네.’
아르만이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다 마시는 척하며 슬쩍 한숨을 쉬었다.
수도에서야 작위가 아무래도 다른 지역보다 확고한 권력을 가져다주지만 남부는 다르다.
황제가 내려준 공작이라는 이름보다는 가문에 쌓인 돈이. 상단을 비호할 수단이 더욱 힘이 강한 곳.
해적과 해양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만큼 안전한 해로를 차지한 이들의 권력이 때로는 작위를 넘보기도 하는 곳이었다.
“이번에 나온 대형 해양 몬스터를 우리 쪽에서 모신 인어족 전사분들이 바로 잡아주셨지 않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지금 해적 여왕 엘리스가 자취를 잠시 감춘 사이 조무래기 해적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그 뒤를 잇겠다고 난리 치지 않습니까?”
아르만은 자신의 앞에서 알게 모르게 신경을 긁어 대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흠 그래서 말이지, 비밀이지만 말해 주자면 이번에 우리 아버지가 인어족과의 거래를 말이야…….”
“그래서 그 조무래기 해적단의 목을? 하긴 해적 놈들의 목 따위 선수상에 주렁주렁 달아 효시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긴 힘들지.”
인간을 싫어하는 인어족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사실상 굽히고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인 소리인데 그걸 저리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더불어 해적의 목을 잘라 배에 전시하는 것도 남부에서는 제법 흔한 일이지만 다른 지역으로 조금만 넘어가 생활해 보면 그게 얼마나 이질적인 행위인지 알 수 있을 터.
‘이러니 중앙에서 우릴 그렇게 부르지.’
중앙이 무조건 맞다는 건 아니지만 이노센트 쪽이 워낙 피 보는 걸 즐기지 않는 터라 이젠 아르만 자신도 썩 내키지 않는 풍습이었다.
“그나저나 아르만 공자께서는 운이 좋게 해적도 몬스터도 마주치지 않는다 들었는데 맞습니까?”
은근슬쩍 인어족이나 해적을 운운하며 정석적으로 해로의 치안을 관장하는 헉슬리 가문보다 자신들이 더 우위에 있다는 식으로 계속 말하던 이들의 시선이 아르만에게로 향한다.
“뭐 그렇긴 하지. 우리 쪽은 그 어떤 것과 마주치지 않고 해로를 운영 중이네.”
여상스레 대꾸한 아르만이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신 뒤 잠시 바람이나 쐬겠다며 발코니로 향했다.
‘뒤 꼭지가 영 근질거리는데.’
아마 뒤에서 할 소리야 뻔한 일이겠지만.
정치나 사교에는 관심이 없는 대공과 별 볼 일 없이 적당한 트레잇의 후계자.
더불어 해적이나 몬스터는 강력하게 견제하지만 휘하의 귀족들에겐 유독 무르게 구는 남해 군도의 제독 덕에 앞에서는 대놓고 말하지 못해도 뒤에선 오만소리를 다하지.
“아르만 님. 그냥 다 쓸어 버리죠.”
아르만의 부관인 호슈아가 어느새 다가와 속삭거리는 말에 아르만이 웃었다.
“쓸어 버리긴 뭘 쓸어.”
“그렇잖습니까.”
운이 좋다거나 겁쟁이처럼 몬스터와 해적만 나오면 꽁무니를 뺀다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실상은 저희 전력과 화력이 월등히 좋지 않습니까.”
같은 전력이라고 해도 헉슬리가의 해군 병사들이 훨씬 강했다.
경험의 차이.
더불어 바다 위 배를 움직이는 일이다 보니 육지와 달리 배를 조종하는 선장과 조타수들이 중요했다.
노련한 선장 하나가 일백의 병사보다도 나은 게 뱃일이다 보니 상대보다 적은 전력으로도 비견될 수 있었다.
거기에 마린을 통한 정찰이나 해류를 일시적으로 바꾼다든지 하는 일도 가능했다.
마린이 아무리 어리다 하더라도 해룡이다 보니 어지간한 몬스터는 접근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제대로 알기만 알면 선망하며 어떻게든 헉슬리 가문에 줄이라도 대보려고 안달일 텐데.
그동안 고지식하게 정직하게만 굴어 손해 본 게 얼마였던가.
호슈가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투덜거렸다.
“저도 압니다. 저희가 하는 일들이 전부 비밀이란 걸,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도.
하지만 전부는 아니라도 조금은 말해도 되지 않습니까.”
적어도 우리가 희생해 가며 저들을 지켜 주는 것을 저들도 알아야죠.
자기 가문의 전력만으로 누리고 있다 생각하지 않습니까.
호슈아가 한숨 섞어 말했다.
무려 남해군도 전부를 아우르는 가문이다.
본디 강력한 힘과 뛰어난 해군 전력을 보유한 공작가이니 원래라면 저들이 마음 깊이 감사함만을 지니고 올려봐야 할 터.
‘하지만 가주께서 너무 우직하시고 아르만 님도 저리 태평하시니…….’
정치나 견제. 그런 것보다 한 마리의 해양 몬스터를 더 신경 쓰는 분.
심지어 모든 해안가의 치안은 물론 타국과의 교류를 위한 해로 청소 등에 평생을 바쳤다.
그 덕에 상대적으로 희생 없이 안전만이 보장된 다른 가문에서 힘을 키워 저리 안하무인으로 나오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너무 열 내지 말라고 호슈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아르만이 피식 웃었다.
“나도 한동안 아버지를 원망한 적 있긴 한데.”
힘을 가지고 뱃길을 어느 정도 누벼 보니 알겠더라고.
“저들이 누리는 평화는 언제라도 우리가 거둬들일 수 있다는 걸.”
제대로 해군 전력을 운용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부분이다.
돈을 주지 않아도 치안에 도움이 되는 용병 취급이나 받는 헉슬리 가문 해군의 실상이 어떠한지.
“경계받지 않고 어느 가문의 해로든 다 이용할 수 있으며 다년간의 전투 노하우를 가진 전력.”
다만 그 수가 적은 게 가장 큰 단점이었으나 세이렌의 판매액 일부로 몰래 증강 중이었다.
“지금 평화로운 시대라서 다들 모르는 거지.”
아르만이 발코니 창 너머로 안쪽의 파티 홀을 흘긋 바라보았다.
“헉슬리 가문에서 마음먹으면 어디까지 가능한지.”
그리고 어쩌면 그리 머지않은 시간에 그걸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도.
* * *
“아니 당분간이라면서요. 당분간만 부탑주로 운영하라 하셨잖아요.”
흑염소 수인 히핀이 소르페에게 고개를 들이밀며 하는 말에 소르페가 대답했다.
“그래 당분간이지. 길어야 뭐 삼십 년 넘겠어?”
그 뻔뻔한 대답에 히핀이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스승님. 스승님이야 오래 사시겠지만 전 고작해야 100년 전후로 살거든요?”
그런데 삼십 년이나?
히핀이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쓸어올리자 소르페가 웃었다.
“7서클 마법사만 되어도 수명이 배는 늘어날걸.”
“그게 쉽냐고요.”
“걱정 마. 죽으면 용아병으로 살려 줄게.”
됐어요 하며 히핀이 문을 쾅! 닫고 나가자 소르페가 고개를 저으며 마법책 하나를 꺼냈다.
“안 달래 줘도 되겠어요?”
마법책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체이서가 허공에서 뛰어내리듯 나와 테이블에 걸터앉으며 말함에 소르페가 눈동자만 움직여 체이서를 바라보았다.
“저러다 맛있는 거 먹고 혼자 풀고 올 거야.”
그 말에 체이서가 착한 아이네요 하며 그림자를 뻗어 소르페가 쥐고 있던 마법서를 제 손으로 가져왔다.
“계산은 해 보셨나요?”
“저번에 말한 그 마법 전염병?”
체이서가 마법서를 펼쳐 가볍게 차르르 넘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내용이었으나 외도 마법을 쓰는 체이서에겐 필요 없는 내용인지라 따분한 얼굴로 탁 덮었다.
“마법 전염병이라고 하니 조금…….”
사악한 마법 같지 않나요?
장난스레 웃으며 하는 말에 소르페가 헛웃음을 흘렸다.
“사악하고 사이한 마법 맞잖아.”
우리가 만든 그거.
아델리안이 필요하다 하여 만든, 악신 교단의 뇌리에서 루나와 리프, 레이첼의 모습을 지우는 마법.
“정신에 1차 간섭, 영혼에 2차 간섭을 하는 데다 한 번 발동해서 사라졌다곤 해도 다른 사람에게 금방 옮아 다시 마법의 핵이 자리 잡지.”
그런 마법이 사악하지 않으면 뭐가 사악하단 거야?
소르페가 한 말에 체이서가 검은 뱀 같은 눈을 휘어 웃었다.
“칼 말이죠. 요리사가 쓰면 사악하지 않지만.”
흑마법사나 고문 기술자들이 쓰면 그만큼 또 사악한 물건이 없을 텐데.
“도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쓰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뭐, 너처럼?”
소르페가 가볍게 대꾸했다.
“하여간 그 아델리안, 그 고용주도 참…….”
아무리 대의가 있다곤 하나 불길한 것들을 내치지도 않는다니까.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본능적으로 살짝 껄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제로도 그렇도.
저렇게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가볍게 구는 체이서지만 그 본질은 외도 마법사다.
정신과 피, 그리고 그림자를 이용하는 마법사.
듣기만 해도 꺼림칙한 존재.
“모아도 어찌 그리 모았는지.”
본디 큰 뜻이 있어 모은 이들일 테니 다들 강력하긴 하나 전부 한군데씩 문제 있지 않은가.
소르페가 생각하다가 손을 뻗어 마나를 이용해 체이서의 손에 들려 있던 책을 빼앗았다.
“그 마법 전염병, 계산은 해 봤지.”
이 대륙의 모든 인간에게 이 마법 전염병이 퍼졌다고 했을 때.
기억에서 누군가를 지우는 것처럼 정소의 삭제가 아닌.
반대로 정보를 주입하는 행위를 할 때 발생하는 마나의 소모량.
“세상의 모든 마정석을 끌어모아도 힘들어.”
그렇게 끌어모은다고 해도 고작해야 십여 초도 안 되는 장면이나 가능할까.
하며 계산해 본 내용을 복기하던 소르페가 잠시 무언가 생각난 듯 체이서를 바라보았다.
“무슨 꿍꿍이인진 모르겠지만 이 마법은 너와 나. 둘이서 한 번에 구현해야 발동하는 식으로 그때 만들었다는 걸 기억해.”
혼자 아무리 난리 쳐도 외도 마법사인 체이서의 한계상 이런 수식언과 계산으로 떡칠 된 마법은 절대 혼자서 발동하지 못한다는 듯 소르페가 으름장을 놓았다.
“알죠, 알죠. 그냥 궁금해서 물은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소르페의 반응에 체이서가 앗, 무서워라 하듯 양손을 들어 보이다가 히죽 웃었다.
“외부의 마나만을 이용해 마법을 발동시키는 것 말고 다른 방법도 있잖아요.”
“그게 무슨… 아니. 그거 설마…….”
“네, 마법에 잠식된 사람, 즉 숙주의 생체 마나를 이용해서 발동할 수도 있지 않나요?”
굳이 시동자의 마나와 마정석만을 자연 마나와 연동하여 마법을 구현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하고 체이서가 말하니 소르페가 아주 질린다는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이거 완전 악마 놈이네.”
체이서가 한 말은 마법사도 기사도 아닌 일반인의 마나를 쥐어짜 마법을 구현한다는 소리였다.
“우리가 맨 처음 뿌린 건 애초에 마법을 만들 때부터 확실하게 소거할 기억의 종류가 있었고 기간이 정해지지 않아 적은 양만으로 가능했던 거야.”
그냥 그 마법이 사람에게 들러붙어 적은 양의 마나를 길게 흡수한 다음 발동해 루나나 리프, 레이첼이 동굴에서 날뛴.
말 그대로 확실한 표적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난이도가 낮았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반대라면, 강력한 현기증과 두통, 구역질이 최소한의 부작용이고 심하면.”
“뭐 죽진 않을 거 같은데. 엄청난 양의 정보만 아니면요.”
그리고 개량하기에 따라 또 다르지 않겠어요?
체이서의 말에 소르페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원하는 게 따로 있구나.”
소르페의 말에 체이서가 말없이 웃으며 시선을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