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26)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26화(326/373)
체이서를 통해 받은 기억의 전달은 모든 기억을 통째로 넘겨받는 그런 마법은 아니었다.
‘아델리안이 뭐라 했더라.’
2시간짜리 영화를 20분으로 압축해서 리뷰해 주는 동영상 같은 거라고 했던가.
‘동영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어떤 건지는 알아먹었다.
레이첼은 멍하게 허공을 보며 손을 움직였다.
골렘적으로 쿠키를 입에 넣고 골렘적으로 턱을 움직여 씹는다.
한 30개를 먹었지만 고민이 많아서 그런지 배가 차진 않았다.
“에효.”
“레이첼이 한숨을?”
레이첼이 한숨 쉬자 곁에서 같이 쿠키를 먹으며 리프와 대화하던 루나가 깜짝 놀란다.
“뭐 왜 뭐. 나도 한숨 정도는 쉬고 살아.”
“고민 있는 거야?”
괜히 미안함에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루나가 진한 분홍색의 눈으로 걱정스레 바라본다.
그 모습에 어쩐지 레이첼이 눈을 깔며 우물거렸다.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몰라.”
레이첼이 쿠키를 한 주먹 쥐고 등 돌려 반대쪽을 보듯 앉자 루나가 드래곤두 사춘기가 오나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란하네.’
체이서를 통해 받은 아델리안의 기억이 영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아델리안이 그 책 안에서 본 것들을 전부 전달받은 건 아니지만 부분적인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했다.
아델리안의 말대로 자신은 무결한 피해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온전한 가해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날 아델리안이 말했듯, 수없이 반복되는 이 세계에서 살아 있는 신에게 자신이 강제로 부여받은 포지션은 따로 있었다.
정확하겐 자신뿐 아니라 소위 말하는 케인의 파티원 모두가.
‘테이트리아, 이 비겁한 놈.’
처음에 기억의 정보를 받아들인 후 레일에겐 의구심이 들었다.
기억은 다 보았다. 케인과 자신은 처음엔 적이었다. 그런데 왜 세계가 반복되며 다시 쓰여질 때마다 조금씩 어긋나더니 나중엔 계속 동료가 되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레이첼 자신이 아무리 드래곤 하트가 반쪽이 나 있다 하더라도 케인의 짐이 될 정도의 형편없는 실력은 아닌데 어째서.
게다가 그건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니 그 살아있는 신 미친 녀석이 우릴 왜 붙여 둔 거야 그럼?’
도대체 무슨 연유로, 살아있는 신이 오랜 세월 조금씩 이 세상의 인식과 역사를 바꿔 가면서도 케인 곁에 자신들을 붙였을까.
그 질문에 아델리안은 심드렁히 대답했었다.
‘살아있는 신이 원하는 건 케인을 괴롭히는 거니까.’
케인의 영혼을 빛바래게 만들고 닳고 낡고 지치게 만들어 꺾거나 소멸시키는 것이 살아 있는 신이 바라는 바라고.
‘그거랑 내가, 다른 녀석들이 케인의 동료로 합류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때의 레이첼은 당당했다. 아니 자신 하나만 놓고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나.
드래곤이 파티원이면 아델리안이 종종 하는 말로 개꿀이지.
강해. 튼튼해. 멋있어. 도대체 빠지는 구석이 없는 동료 아닌가.
하지만 아델리안은 그런 레이첼을 바라보다 케인을 흘긋 보더니 대답했었다.
‘케인은 원래 아인족을 원망했으니까.’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마지막엔 공존에 대한 의지를 보인 모양이긴 해도.
근본적으로 지금의 케인이 인간을 싫어하는 것보다 더 아인족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평생을 서로 죽고 죽이며 증오스러워 하는 존재니까 붙여 둔 거지.’
그 회차에서 기억은 없어도 영혼은 느낄 테니.
한때 신격을 얻었고 성좌가 될 뻔한 영혼이니 기억은 하지 못해도 영혼에 깊게 새겨진 증오는 존재했을 거란 소리였다.
가장 최초의 삶이 사실상 영적 근본에 해당되므로.
그러니 그 영혼에 상처 입히기 위해 어떻게든 지키려고 했던 인간들에게는 버림받고 이용당하고 학대받게 하고.
적으로 칼을 겨눴던 아인족만을 곁에 붙여 주면서 마치 기만하듯 자신들이 배신자라며 경멸하던 가디아와.
인간을 닮았으되 인간이 아닌 리프 정도만이 아인족이 아니어도 곁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루나는 아마도…….’
레이첼은 쿠키를 먹었는데도 어쩐지 쓴맛이 도는 느낌에 입맛을 다셨다.
아마 루나는 레이첼 자신 때문이겠지.
아델리안의 기억상 레이첼이 마법으로 루나를 골렘들과 공명시켜 대화 창구로 써먹은 모양이니 유독 케인과 자주 맞닥뜨렸을 터.
그에 미운털이 박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쪼잔스러운 놈. 치사한 놈.’
하지만 감탄이 나올 만큼 치밀한 놈이다. 살아있는 신은.
케인 정도의 격을 쌓았던 영혼이라면 그냥 죽었을 때 몇 번 환생한 후 다시 성좌에 도전할 자격을 얻을지 모른다.
영혼을 소멸시키는 것은 서로의 영혼이 엄청난 격차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과자 더 줄까?”
레이첼은 귀여운 얼굴로 방실방실 웃으며 자신에게 쿠키 그릇을 건네는 루나를 흘긋 바라보았다.
‘어쩐지 내가 말을 잘 듣게 되더라니.’
아마도 영혼 깊숙하게는 알고 있었나 보다.
내가 미안하다고.
“아앙.”
레이첼은 루나가 입에 밀어주는 쿠키를 씹으며 드러누웠다.
* * *
“무슨 꿍꿍인지 원.”
나는 침대에 누워 중얼거렸다.
체이서 덕에 정보 공유가 제법 편해지긴 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본 것을 주관적인 시점으로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사기적인 일이다.
더불어 제로가 가뮈르의 수업을 받으며 떠올린 기억을 나 또한 공유받았고.
그거까지 한 체이서는 좀 쉬다가 소르페나 보러 가야겠다며 도주했었다.
‘이 김에 케인의 기억도 갈취했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건 체이서의 마법이 케인에게 통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긴 했다.
케인 쪽에서 순순하게 머릿속을 오픈해 줄 리 없으니까.
‘의뭉스러운 놈.’
내 질문에도 대답 안 하고 체이서의 마법에도 안 걸려 주고.
정확하겐 대답을 안 했다기보단 그냥 아무 말이나 한 것과 다름없었다.
‘너, 나에게 왜 굽혔냐.’
여동생을 입에 올렸다고 통할 녀석이었으면 살아있는 신이 진작 성좌에 앉았을 거다.
그때야 나도 단편적인 정보만 있어서 케인이 동생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만 알고 시도한 거였는데.
돌이켜보면 그 협잡이 통한 게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케인에게 물었더니 돌아오는 말이 뭐였더라.
‘글쎄.’
글쎄는 무슨 얼어 죽을 글쎄냐고. 그냥 대답해 주기 싫단 소리지.
“그나저나 레이첼이 좋은 질문을 했었지.”
나는 그때의 대화를 복기하며 몸 돌려 엎드렸다.
체이서를 통해 공유된 기억은 1회 차의 압축이다.
나머지 수많은 회차는 기억이 아닌 일종의 정보 파편으로 받았기에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다.
그냥 말로 풀어 말한 정도.
그러니 레이첼이 의문을 가질 만한 부분은 확실히 의아할 내용이긴 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뻔하지.”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고집불통 케인에게서 어떻게든 성좌의 격을 받아야 한다고 치자.
아무나 끌고 와서 시켜도 비슷하겠지.
케인을 모르는 사람이야 처음에 그냥 곱게 달라고 해보겠지만 좀 아는 사람이면 어떨까.
더불어 선량하지 않다면?
협박과 고문이 들어갈 것이다.
그게 테이트리아가 케인을 쉽게 죽일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가진 뒤 처음으로 한 방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고문하고 심지어 여동생을 눈앞에서 죽인다고 해도 성좌의 가장 가까운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더불어 그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살할지언정 악착같이 잡고 있는 이유가 결국 아인족과의 공존이라는 거시적인 대의라면.
차라리 개인적인 욕망이면 낫다. 그런 자기 보신적인 정신 상태로는 얼마 못 버틸 게 뻔하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자신 스스로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케인은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끝에 다다른 격을 가진 영혼이란 것이다.
그 영혼이 본능적으로 대의를 위한 선택을 하는 상황이라면 별수 있나.
영혼을 소멸시켜야지.
하지만 영혼 소멸은 보통 격이 차이 나는 상대여야 가능하니까.
남은 것은 단 하나, 지치고 힘들어 다 놓게 하여 스스로 없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케인이 사랑했던 이들에겐 비난을.
증오했던 이들만이 곁에 남도록.
‘괜히 메인 파티 멤버 대부분이 잊힌 회차 속에서 인류 멸망이랑 관계있던 게 아니야.’
루나는 레이첼과 함께 가장 근원에 가까운 적대 세력이었다.
제로는 악몽에서 본 것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존재로 몇 번의 회차에서 멸망의 이유였고.
리프는 내 생각엔 조롱에 가까운 이유다.
곱게 돌려서 말하자면 케인이 지키려던 인간족의 불완전한 형태만 곁에 놓고 영혼의 근원이 괴로워하길 바란 거겠지.
가디아는 초반 시점에서는 인간족 최고의 역적 중 하나니까 파티원이 되게 손썼을 테고.
레비 또한 인어족을 주축 삼아 해수면 상승을 기반으로 한 대멸종, 대종말의 이유일 테고.
파이얀은 마족이 침공할 때 선봉장으로 선 모양.
‘웃긴 건 전부 패널티를 주고 시작했다는 건데.’
단신으로, 혹은 주축이 되어 멸망의 원인이 되는 멤버들은 결국 그 격이 높다는 소리다 보니까.
손쉽게 운명을 인위적으로 붙여 주기 위해서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 전부 패널티를 심어 뒀다.
‘어디 보자, 루나는 소심함이 원래 없었고…….’
제로는 제일 컨트롤이 어려웠는지 아예 파티원으로 붙여 줄 생각도 하지 않고 미궁에 가둬 뒀지.
레이첼은 반으로 갈라진 드래곤 하트를 다른 곳에 봉인했고.
레비는 폭풍우의 구슬을 빼앗아 각성을 막았으며 파이얀은 온전한 요마족이 아닌 상태로 미궁 도시에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케인과 파티를 맺게 시나리오를 짠 건 역시 케인이 그들과 한 번씩 전부 적대한 적이 있어서인데.
얼핏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내가 책으로 본 원작에 따르면 케인은 마왕, 즉 살아있는 신과 동귀어진 하는데 그럴 필요가 있냐는 것.
그것은 케인의 격을 조금 더 높여 주는 행동일 뿐 아니라 살아있는 신의 격은 깎이는 일이다.
그런데 왜 꼭 그 엔딩을 최대한 고집하는 걸까.
‘이유는 셰인 때문이지.’
살아있는 신의 진짜 몸, 즉 테이트리아는 황실에서 황제로 존재한다.
그럼 체이서가 아는, 신전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신의 육체는 누굴까.
살아있는 신은 케인의 영혼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위해 수많은 루프를 할 만큼 독종이었다.
그러니 셰인의 몸으로 들어가 셰인의 강력한 재능으로 케인에게 맞설 생각을 할 수 있었겠지.
더불어 영혼을 부수는 행위마저도.
케인은 계속해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동생을 죽여 가며 루프 중인 것이다.
살아있는 신은 케인이 자신을 죽여 격을 좀 더 쌓는 것 따위 상관없는 것이다.
견디지 못한 케인이 포기하는 순간 어차피 쌓인 격은 아무 의미도 없어지는 거니까.
더불어 파티를 만들어 주는 이유 또한 그것에 있었다.
사람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라고 했던가.
아예 살아있는 신과 대적할 가망성이 없으면 쉽게 포기할 텐데 포기하는 것은 그다지 격이 깎이거나 영혼이 망가지는 일이 아니니까.
살아있는 신은 알고 있었겠지. 케인이 아무리 인간 혐오증에 걸렸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족을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그런데 혼자라면 기억을 되찾는 회차가 아닌 이상 결국 신을 상대할 의지 자체를 갖기 힘들겠으나 동료가 있다면 케인은 계속해서 노력할 테니.
대의도 동료도 없다면 아무리 어린 시절의 원수라고 해도 악신교단과 무수한 적을 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케인 자신은 인간을 싫어하더라도 결국 멸망이 눈앞에 닥치면 가장 앞에 서서 인간족의 방패요 검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게 타고난 영웅이겠지.
그러니 살아있는 신도 자신의 시간을 바쳐가며 케인의 영혼이 지쳐 자연 소멸하길 기다리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