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2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27화(327/373)
시뮬레이션 게임을 좀 해본 사람 중엔 공감하는 이가 있을 텐데.
게임은 보통 초반이 재미있다.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오르고 나면 뭔가 그 날것의 맛이 없단 소리.
지금 내 상황이 이제 게임도 아니라는 건 당연히 잘 알고 있긴 하다.
하지만 초반에 파티원들과 같이 노숙도 하고 몬스터도 잡고 모닥불에 제로가 끓여 준 잡탕 스튜도 먹고 하는 그때가 조금 그립다는 투정이었다.
“별수 없지…….”
강수호 때도 나는 차라리 발로 뛰는 영업사원이 나은 것 같다면서도 결국엔 사무직을 했던 것처럼.
“종말을 대비하면서 서류가 웬 말이냐.”
그냥 케인 키우기나 하고 싶은데. 초반에나 내가 밀어줬지 이제 알아서 크는 중이라 할 말이 없다.
사실 이런 서류 처리는 카이만이 최고긴 한데, 아쉽게도 그쪽으로 다 몰 수 없는 내용이 많다.
접경지로 돌아간 라인하르트나 라인하르트의 부관인 메이샤와 주고받는 서류만 해도 카이만에게 보여 주기 좀 껄끄러운 내용이고.
수인족 상단인 훌라 쪽엔 이노센트 게임에서 썼던 장비나 물약 조합법을 넘겨준 것도 마찬가지.
“아 서류.”
난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짰다.
‘파이얀이 이제 성녀 활동을 차차 줄이는데 왜 교세가 커지는데?’
물론 파이얀의 성녀 활동만 줄인 거지 원래 하던 구호 활동을 줄인 건 아니다.
그러니 살기 팍팍한 이들이 건빵 한쪽이라도 더 챙겨주는 이노센트교를 믿을 수는 있는데 생각보다 이게 덩치가 커지는 중이었다.
내가 예상컨대 저주받은 몸뚱이인 내가 아니라 케인이 제대로 그 신앙을 받았으면 무슨 업적이나 칭호 한번 떴겠지.
‘파이얀은 뭐 생겼을 만한데.’
이노센트교에 쏠린 신앙은 나와 파이얀, 호문클루스의 알과 더불어 케인까지 넷이서 조금씩 나눠 먹었을 것이다.
개중 나와 호문클루스 알에 쌓이는 신성은 사실상 의미가 없을 테고.
케인에게 쌓이는 신성은 내가 살짝 변칙적으로 얹은 거라 아주 많지는 않을 터.
외견을 바꿨다고는 하나 직접적으로 활동한 파이얀에게 얹어진 신성이 많긴 할 텐데.
‘문제는 종족이…….’
일단 아주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으니 이건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대체해 놓고.
샤하드 쪽에서 이노센트로 몰래 보내온 서류는 이번에 샤하드가 관장하는 도로공사에 관련된 거였다.
지구나 여기나 건설, 혹은 토목 관련된 정보가 이모저모 쓸모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이걸 넘겨준 것 자체가 엄청 무리한 거긴 한데.
샤하드도 그렇고 아르만도 그렇고 왜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뭔가 자꾸 보고하기 시작한다.
알아서 해도 되는데…….
이게 또 흑막 가면을 내가 안 벗은 상태라 보고를 안 받자니 컨셉에 안 맞고 받자니 받은 김에 뭐라도 하게 되니.
‘조만간 기분 전환 삼아 애들이랑 던전에라도 한번 들어갈까.’
이제 어지간한 던전은 목숨에 지장받을 리도 없으니 피크닉 기분으로다가.
잠시 실없는 생각을 하는데 깃펜의 그림자가 흔들린다.
“왜.”
이젠 하도 자주 보다 보니 촛불 때문에 흔들리는 건지 체이서 때문인지 바로 알겠다.
“저에 대한 관심이 너무 크신 것 아닙니까?”
나는 대꾸도 없이 그냥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바라보며 체이서가 나온 김에 환기나 하듯 찻잔을 들어 올렸다.
“나 바빠.”
“도와드려요?”
잠시 솔깃했지만 영 기밀 서류가 많다. 체이서를 이제 안 믿는 건 아닌데 믿음과 떠나서 내가 잡은 서류를 굳이 남 주기 싫은 느낌이라 손사래나 쳤더니 체이서가 웃는다.
“바빠 보이더니.”
내가 잠든 동안 잠시 접속한 것으로 앓아누웠다가 일어나서는 살아 있는 신의 호출도 다녀왔다가.
그거 다녀와서는 기억 전달도 하고 그 이후엔 소르페도 만났지 않나.
뭘 그리하고 돌아다니냐는 듯 내가 바라보자 체이서가 검은 눈으로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바빠도 제가 할 일을 잊진 않죠.”
그때 살짝 말씀드렸죠? 살아 있는 신이 수도에 온다는 거.
체이서가 내 방 한쪽에 놓인 와인병을 잡으며 하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기억을 전달하기 전에 간략하게 듣긴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러고 있잖아.”
수도에서 처리할 거 최대한 처리한 뒤 살아 있는 신이 수도에 오기 전에 게이트 타고 피하려고.
가뮈르나 케인이나 아직 확실하게 루프를 멈추게 할 만한 실마리를 잡지 못한 이상 마주칠 이유는 없으니까.
케인과 나, 그리고 살아 있는 신을 실제로 마주하는 체이서가 판단하기에 분명 전면전으로 하면 승산 자체는 높은 편이었다.
다만 살아 있는 신을 단순하게 쓰러트리거나 죽이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어서 그렇지.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낸 거면, 뭐 언제 온다고 날이 확정되기라도 했나?”
내 말에 잔까지 찾아서는 와인을 따라 한 모금 마시던 체이서가 낮게 소리 내며 웃는다.
“어떻게 아셨어요? 더불어 그것만 알아 왔다 생각하시면 저를 너무 쓸모없다 생각하실까 봐 다른 것도 알아 왔는데 말이죠.”
다른 거 뭐.
루프 멈추게 하는 내용 아닌 이상 필요 없다는 듯 굴자 체이서가 괜히 상처받은 척했다.
“왜 수도에 오는지.”
그에 내가 차를 홀짝이다 말고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긴 단순하게 수도에 볼일이 있는 거라면 교인들을 부리거나 황제의 몸을 쓰면 되는 일.
애초에 살아 있는 신이 황제의 몸이 아닌 셰인의 몸을 입은 그대로 수도로 오는 것 자체가 의아한 일이었다.
체이서와 내가 긁어모은 기억에 의하면 그런 일이 있는 경우는 보통…….
“케인을 찾아오는 건가.”
우리 파티가 너무 깽판 쳤나?
이번 회차는 원래 살아 있는 신이 기획한 시나리오에서 벗어난 게 너무 많긴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수도에 볼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케인뿐이지 않을까요?”
“언제 오는데.”
“한 달 뒤.”
워낙 변덕이 강한 편이라 갑자기 당일에 귀찮다며 안 오거나 혹은 내일이라도 당장 올지도 모른다고 체이서가 덧붙인다.
그에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지금 폭풍우의 구슬을 탈취한 이들 같은 경우 카이만이 계속해서 방해한 탓에 아직 살아 있는 신에게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
더불어 다른 이름있는 속성비보도 얻지 못한 데다 다른 회차의 이 시기와 비교하면 전쟁이나 전염병, 몬스터에 의해 죽어 나간 사람이 적은 편.
다른 회차에서 존재하는 동시대의 살아 있는 신 중 가장 약하다는 소리.
‘그래서 내가 우리 파티 정도면 잡을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만.’
나는 잠시 손가락으로 툭툭 테이블을 치며 고민했고 체이서는 와인을 즐기듯 말없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거 분명 셰인의 모습으로 케인 성질 긁다가 죽이려고 오는 거일 거 아냐.”
굳이 살아 있는 신이 테이트리아의 몸이 아닌 셰인의 몸을 입고 있는 이유는 예상컨대 두 가지다.
하나는 책 속의 기억에서 엿봤듯이 케인을 넘어서는 재능을 가진 몸이 탐나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셰인이니까.
셰인의 손에 죽건 혹은 케인이 반대로 죽이건.
케인이 입을 타격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영혼이 깎여 나가는 셈.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자기 몸이 아니란 소리.
100% 확신은 아니지만 살아 있는 신의 복사체나 다름없는, 책 속의 테이트리아가 그러지 않았나.
나라는 변수로 인해 케인이 희망을 가질 테니 반대로 날 이용해 더욱 절망시키려 기회를 줄 것이라고.
‘도박을… 해야 하나?’
지금까지 도박 운이 늘 좋긴 했는데.
살아 있는 신은 무난하고 안전하게 대비해서는 안 되는 상대이긴 하지만.
까딱 잘못하면 바로 전부 다음 회차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기억 하나 없이.
문제는 난 지금 이 순간, 이곳 아니면 없을 확률이 높고.
나란 존재가 물리적으로 강한 힘을 가졌거나 한 건 아니지만 살아 있는 신이 완성한 이 시나리오에서 유일한 변수이긴 하니까.
나를 올려치기 하거나 자화자찬하는 게 아니다.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루프 속에 잠시 끼어든 이물질인 거지.
다만 어느 톱니에 걸리냐에 따라 기계가 망가질 수도 있는 거니까.
버그라는 게 원래 그런거고.
“체이서.”
“네.”
가위바위보.
내가 갑자기 그리 말하며 손을 내자 체이서가 얼결에 대응한다.
“아, 제가 졌네요.”
“도박이나 해봐야겠다.”
솔직히 드래곤 브레스에도 구워져 보고 사이클롭스를 만나서도 살아나 보고.
악운이건 뭐건 난 운이 강한 편이었지.
“나중에 식사하고 다 모여서 대화 좀 할까?”
더불어 태양신의 대주교 하미드의 경우는 세이렌보다 제로 쪽을 통하는 게 남들 눈에 덜 띌 테니 준비시키고.
“뭐 하시려고요?”
“셰인의 몸, 돌려받자.”
체이서의 물음에 나는 식어 버린 찻잔을 내려놓았다.
* * *
레비는 리프가 자신의 앞에 놓아준 그릇 세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생크림과 꿀, 그리고 초콜릿 소스가 담긴 그릇.
그러다 아델리안에게 받은 마정석 주머니를 열어 신중하게 하나를 골라 고심하더니 꿀에 마정석을 폭 찍어 입에 쏙 넣었다.
“…귀여워.”
[귀여워.]그 모습을 바라보던 루나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리프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다 둘이서 양쪽으로 레비를 꽉 끌어안았다.
말랑한 몸이 젤리처럼 @모양//(삭제) 일그러지다 통통하게 잡힌다.
매끈하고 촉촉한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안겨선 레비가 냠냐 하고 마정석을 오독 씹어 먹었다.
“뚱땡이.”
지나가던 레이첼이 방금 씻고 나온 듯 목에 수건을 걸고 지나가며 술을 물처럼 벌컥벌컥 마시다 한마디 한다.
그에 레비가 입을 쩍 벌려 물총처럼 레이첼에게 물을 쏘니 레이첼이 덤비라며 자세 잡곤 수건을 빙글빙글 휘둘러 물을 쳐 냈다.
“레이첼 바닥에 물 다 튀잖아.”
[얼른 닦아.]“씨이…….”
그에 루나와 리프가 메모장까지 열어 한 소리 하자 레이첼이 곱게 쪼그려 앉아 바닥을 닦았다.
“그나저나 마력은 많이 채웠구?”
레비가 루나와 리프의 품 안에서 꾸물떡 나가 바닥 닦이를 레이첼의 머리를 끌어안듯 감아서 슬쩍 입으로 깨물다가 끄덕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계승 의식도 가능할 거 같아.”
[조금 있으면 같이 놀러 갈 수 있겠네.]리프의 메모에 레비가 고개를 끄덕하며 히히 웃었다.
어쩌면, 아델리안이 아닌 다른 사람과 계약했다면 벌써 마나 필요치를 채웠을지도 모른다.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아델리안이다 보니 현신하는 마나부터 종종 쓰는 회복이나 정화 같은 힘에 들어가는 마나도 전부 레비 본신의 힘을 쓰는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정석을 간식처럼 먹는 호사를 누리긴 했지만.
그래도 한동안 수도에 있으며 큰 전투나 부상이 없다 보니 힘을 축적할 시기가 길었던 덕에 텅 빈 사막에 바다를 만든 것처럼 마나를 몸에 채울 수 있었다.
이제 방법은 셋.
일반적인 인어로 개화하려면 그대로 각성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조금 더 정령에 가까운 몸을 가질 거라면 계승 의식을 불완전하게라도 치르면 되는 일.
‘하지만…….’
레비가 눈을 껌뻑였다.
‘그거만 있으면 온전한 계승이 가능한데.’
본디 레비는 인어족의 유일한 로열블러드.
불완전한 계승만으로도 성장만 하면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기는 하나.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계약자에게 갈래.”
레비가 신경질적으로 휘두르는 레이첼의 손을 피해 아델리안 쪽으로 뛰어가자 루나가 뒤늦게 산발이 된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왜 애를 괴롭히구 그래.”
[레이첼 반성해.]“하지만 타격감이 좋단 말이지. 이게 손으로 안 두드려도 맛이 있다니까?”
루나와 리프의 핀잔에 레이첼이 당당하게 말하니 루나가 고개를 젓다 웃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루나를 레이첼이 물끄러미 보다가 슬쩍 고개를 돌린다.
“숨기는 게 있는 거 같지.”
리프가 루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루나가 레이첼의 옆구리를 치며 얼른 말하라는 말에 레이첼이 아닌데? 없는데? 하며 마시던 술도 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수상해.”
―완전히.
그에 루나가 진한 분홍색 눈을 흘기듯 뜨며 레이첼의 방문을 바라보다 세이렌을 쥐었다.
“파이얀, 바빠?”
그 모습을 리프가 바라보다 장난스레 메모장에 웃는 얼굴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