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3화(33/373)
루비의 트레잇을 보자마자 계획한, 피비린내 나는 함정.
혹시 몰라 목이나 몸같이 절단되면 끝장인 곳은 코덱스의 파츠 실드 대신 마탑표 실드로 케인과 루나 몰래 방비해 뒀으니 강행한 일이기도 했다.
[파이얀―피비린내 나는 악당 모험가]대표 Traits : [매료(A+)] [절단기호(S)]
히든 Traits : [피지배자(C)] [도예(E)]
애초에 이름도 루비가 아니었다. 게다가 매료, 저거 아무리 생각해도 같이 다니는 파티원은 물론인 데다, 그 늪지 트롤도 심증으론 루비의 짓이다.
그래도 마침 시크릿 던전에 걸맞은 트레잇이라 약간 무리하긴 했다.
루비가 절단기호가 없었다면 칼날 함정 등에 맞춰서 계획을 짰어야 했을 테고, 그건 꽤 번거로운 일이 되었을 테니까.
이득을 생각하면 모험할 만했지. 다만.
‘자를 줄은 알았는데 냉큼 다리를 자를 줄은 몰랐네.’
나는 쓰러진 채로 웅크려 속으로 투덜거렸다.
미리 감각 마비 포션을 마신 덕에 심한 통증은 없지만 그래도 살짝 우릿한 잔여감은 드는 데다 무엇보다도.
‘하필 절단 부위가 커.’
다리 하나를 거의 무릎 아래부터 날렸다 보니 지금 피가 빠져나가는 속도가 미친 것 같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 있었지만 날 제압할 겸, 루비의 취향 겸 기껏해야 마법 쓰는 걸 방해하게 손 정도 날릴 거로 생각했는데.
‘응. 안 되겠다. 포션 마셔야겠다.’
루나와 케인에겐 미안하지만 아주 ‘약간’의 충격 요법으로 써먹으려고 기절해서 앓는 모습 좀 보여주려 했는데.
지금 기절한 척하다간 과다출혈로 정말 배드 엔딩 각이 뜰 것 같아서 그건 패스.
케인과 루나를 등지고 쓰러진 상태라 지금 그들이 나를 보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만 혹시 모르니 살살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연기하며 포션을 꺼내 마시곤 몸을 조금 들었다.
저 멀리 날아간 내 다리를 보니 더 현실감이 없네.
포션으로 붙이면 신경이고 뭐고 다 엉망으로 붙어 의미 없을 테니 저건 일단 기어가서 챙겨만 놓고…….
“하아…….”
통증은 없지만 괴로운 척.
미간 좁혀 신음하고서 나는 떨리는 손으로 로브를 쓸어 결합해 뒀던 살아있는 금속을 분리했다.
나름 운이 좋다면 좋았지. 혹시나 하고 챙긴 걸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분리한 살아있는 금속을 잘린 다리에 대곤 의족처럼 모양을 변형시켰다.
스믈스믈 슬라임처럼 움직여 달라붙는 금속.
출혈을 막기 위해 아래쪽을 꽉 조이듯 결합한 후 고개를 드니 케인이 호문클루스를 막는 동안 겨우 이쪽으로 뛰어오는 루나가 보인다.
“도련, 도련님. 허어어엉!”
루나 엄청 험하게 우는구나.
으윽, 양심이… 양심이 아린다.
하지만 진짜 맹세코 가벼운 마음으로 이런 건 아니니까 봐줘라, 정말……. 지금부터 약간씩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나중에 어찌 될지 몰라서 그래, 내가.
나는 엉엉 울면서 내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루나의 손을 잡아 멈췄다.
“루나. 난 괜찮아.”
내 말에 엄청나게 울어서인지 분홍색 눈이 붉게 변해 노려본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하나두 안 괜찮아요! 제가… 제가. 그 사람들 나중에 다 죽여버릴 거예요.”
잠깐, 잠깐. 이거 설마 광분 올라가는 소리 아니지? 그치?
나는 섬뜩해진 기분에 괜히 더 아픈 척하며 고개를 흔들자 눈이 벌겋게 핏기 올랐던 루나가 다시 으앙 울며 나를 안는다.
“일단, 일단 나가요, 도련님. 아까 문이 잠겼다 그랬나? 그럼 저거부터 얼른 해치우고 문을 열기 위한 피를 가지구 올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시겠죠?”
분노한 루나는 말도 막힘없이 잘한다.
나는 먹기 좋게 마개를 뽑은 포션을 내 손에 쥐여주며 신신당부하는 루나를 보며 무언가 기시감을 느꼈다.
‘이거 누나가 조카에게 하던 말 같은데…….’
그렇지만 일단은 아픈 티 팍팍 내며 알았다고 말하자 루나가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뛰어간다.
나는 빠진 피를 조금이나마 보충하기 위해 포션을 홀짝거리며 루나가 호문클루스의 시야를 교란하고 케인이 결국 목을 날리는 걸 구경했다.
그리고 피범벅이 된 케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이건 눈을 안 깔 수가 없다…….’
나는 더 아픈 척하며 벽에 기대앉은 채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일단 상황이 상황인지라 들킬 것 같진 않지만 혹시나 케인이 의심을 품는 순간 어찌 될지 모르니 몸을 사려야지.
“일단 신전으로 가야 해요! 도련님 조금만 참으세요.”
“그전에 저걸…….”
루나와 케인이 나 때문에 당장 퇴각하려는 듯 서두르는 모습이라 나는 고통스러워 하는 척하면서도 급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은근슬쩍 더 언질 주기도 전에 케인이 문을 열기 위한 혈액을 호문클루스의 머리를 챙기는 것으로 충당함과 동시에 루나가 나를 번쩍 안아 든다.
세상에.
케인도 아니고 루나에게 대롱 안기니 약간 정신적 데미지가…….
“얼른 갈게요. 제발 도련님… 괜찮을 거예요…….”
루나가 애처럼 엉엉 울며 귀에서 웅웅 하고 바람 소리가 들릴 만큼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거사의 성공을 위해 남자의 자존심을 버리고 나는 나보다 작은 루나에게 구겨지듯 안겨있었다.
‘하지만 루나. 우린 아직 못 나가…….’
시크릿 던전은 깨야지.
내 다리값에 케인과 루나가 누더기 호문클루스까지 잡았는데 별 소득 없이 나간다?
‘게이머 본능이 참을쏘냐.’
“도착했어! 케인 얼른 문을 열어야 해.”
얼마나 빠르게 내달렸던지, 몬스터를 잡으며 천천히 이동했다 해도 족히 한 시간은 이동한 거리를 금세 넘어와 문 앞에 도달했다.
그에 나는 케인과 루나 모르게 옅게 웃어버렸다.
이제 시크릿 던전을 여는 준비물은 모두 모였다.
‘될 놈 될’이란 소리는 여기서 쓰는 거지.
둘 이상의 파티와 호문클루스의 머리. 그리고 노멀 던전의 보상을 아직 받지 않은 시간.
내가 파리한 안색으로 루나에게 안겨 있음에, 케인 또한 급한 손놀림으로 호문클루스의 머리를 문에 가져가 아직 굳지 않은 피를 바닥에 떨군다.
그에 맞춰 나는 신음하는 척, 게임에선 타이핑이었지만 지금은 낮은 목소리로 이 실험체의 던전을 만든 이의 이름을 혀끝으로 굴렀다.
“아이쉬…….”
* * *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던데 그 토끼년.”
“덕분에 속성석을 캘 시간을 벌었지만.”
단검을 주로 쓰던 칼도, 건틀릿을 끼고 있던 할스도 지금 만큼은 선한 모험자였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신나게 웃으며 들고온 도구로 던전의 끝에 매장된 속성석을 캐기 시작했다.
“그러게 말이야. 당황하며 비명 지르는 꼴이라니!”
“아아, 짜릿해.”
그 둘의 모습을 보며 루비, 아니 파이얀이 깔깔대며 웃었다.
검은 머리의 남자. 그리고 황금색 머리의 남자.
둘 다 처음 볼 때부터 가지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나중에 목만 잘라 장식하면 얼마나 예쁠까?
‘뭐,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여자에겐 원래 자신의 매료 트레잇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남자 둘도 이상하긴 했다.
보통 지능이 낮은 몬스터는 단박에 넘어오지만 사람이나 아인족은 저 칼이나 할스처럼, 약간의 호감 정도만 생겨서 그것을 굴리며 간접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데 말이지.
그런데도 그 둘은 그렇지 않았다.
은근히 눈을 마주하며 웃어 보였음에도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굴던 금발 머리의 남자와 무감정해 보이던 검은 머리의 남자.
파이얀은 자신의 트레잇이 통하지 않음에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외형을 보니 돈이나 아이템은 꽤 있을 것 같아서 인적이 드물 때 트롤로 정리하려 했더니 은근히 실력이 좋았던 게 계획을 돌리는 변수가 되었다.
“뭐, 그렇지만 애매하게 강한 초보 모험자가 더 쉬운 거 아니겠어?”
나 정도면 하는 마음으로 굴다가 잡혀먹히는 거라니까?
애초에 실력이 없었다면 모르지만, 꽤 괜찮았으니 그 지긋지긋한 덩어리 괴물의 발목이나마 붙잡아 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역시나!
이곳에서 파이얀과 남자들이 속성석을 캐서 나갈 때 즈음, 그 덩어리 몬스터는 이미 그들을 잡아먹고 배가 불러 우리로 들어갔을 테고.
“오늘은 마탑에 팔면 얼마가 나올까?”
“우리는 또 술이나 한잔하며 새로운 제물을 찾는 거지!”
파이얀이 장미향이 풍기는 붉은 머리카락을 틀어올리며 웃는 그 순간.
쿠르릉―
“어?”
“뭐야! 속성석이……!”
던전이 무너질 것 같은 소리가 나며 바닥이 흔들리더니 미처 캐지 못한 속성석이 던전의 벽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에 칼과 할스가 무기로 벽을 치지만 불똥만 틔우더니 심해진 진동에 칼과 할스. 파이얀과 조비가 나동그라졌다.
“무, 무너지는 거 아니야?”
파이얀이 조비를 당겨 제 위로 올리면서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는데 웅웅 거리는 파동음과 함께 진동이 멈추더니 살짝 어두운 던전을 밝히듯 누군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나는 이 던전의 마스터.
양손의 손가락을 서로 맞댄 체 허공에 유유히 떠오른 인영.
실체가 아닌 마법으로 만들어낸 영체이거나 아티팩트에 녹화해 어디선가 틀어 둔 것 같이 흐릿한 모습. 게다가 서로 맞댄 손가락 중 한쪽은 전부 금속으로 된 의수를 낀 마법사.
그 기이한 모습에 나동그라져 머리가 잔뜩 흐드러진 파이얀과 얼굴이 더러워진 할스가 입을 벌렸다.
“던전… 마스터?”
“그, 저기… 살려주십시오! 캐낸 속성석은 전부 두고 가겠습니다!”
정말 그가 던전 마스터이건 아니건, 이 큰 던전을 진동시킬 정도의 강자라면 납작 엎드리는 게 맞을 터.
‘히든 던전에 마스터가 아직 남아 있었단 말이야?’
이 무능한 던전 관리자 놈들!
파이얀은 매료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한 푼도 깎아주지 않고 자신이 쥐여준 뇌물만 배 터지게 먹던 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부득 갈았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나가기만 한다면 쥐여준 돈을 죄 빼앗아야지.
―감히 쥐새끼처럼 내 던전에 들어왔음은 고얀 일이나, 내가 미처 다 처리하지 못했던 실패작을 처리해 줬으니 몇 가지 살 길을 알려주마.
“그게… 무엇이죠?”
모습이 흐릿한 와중에도 비릿하게 올라가는 한쪽 입꼬리가 똑똑히 보임에 파이얀이 불길한 눈빛으로 시선을 올렸다.
―첫 번째.
던전 마스터가 금속으로 된 손가락 하나를 펼치며 입을 열었다.
―나의 실험체가 되어 1년을 버티면 나가게 해주마.
“미친.”
그의 말에 할스가 조그맣게 지껄인 욕지거리가 파이얀의 귀를 찔렀다.
그리고 다시 펼쳐지는 은색의 손가락.
―두 번째. 내가 펼치는 손 위에 신체 일부를 헌납하거라. 그리한다면 그 무게의 십 분지 일 만큼. 마정석을 내어주지.
마정석?
그 세 글자에 칼과 할스. 그리고 파이얀의 눈이 번들거렸다.
단 1kg짜리 마정석만 얻어도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셋의 눈빛이 서로 긴박하게 오고 가기 시작했다.
* * *
―두 번째. 내가 펼치는 손 위에 신체 일부를 헌납하거라. 그리한다면 그 무게의 십 분지 일 만큼. 마정석을 내어주지.
고작 그걸로 누구 코에 붙여?
나는 루나의 품에 안겨 있다가 이내 손짓으로 날 내려달라 이른 뒤 코웃음을 쳤다.
한 1kg짜리 얻어봐야 내가 저번에 케인 앞에서 부숴 먹은 마정석보다 가벼울 것이다.
‘어딜 돈으로 매수하려고.’
나는 심드렁해지는 얼굴을 억지로 다잡았다.
흉흉한 얼굴로 나와 루나를 바라보던 케인의 입이 열려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얼른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1년을…….”
“다른 제안은 없나?”
“도련님! 그게 무슨 안일한 말씀이세요. 당장 나가야 해요. 차라리 제가 제 귀랑 꼬리라도……!”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화들짝 놀라 달각 소리를 내며 의족으로 바닥을 디딘 뒤 손을 뻗어 루나의 입을 막았다.
내가 그러려고 저놈을 깨운 줄 아나.
나는 슬쩍 눈동자만 움직여 아이쉬의 홀로그램 같은 것과 시선을 마주했다.
―얼마나, 혹은 어떤 부위를 올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군.
게임에서는 일반 사람으로 파티를 짜서 이 던전을 여는 경우엔 파티원 한 명이 실종되어 돌아오거나…….
‘영구적으로 HP가 줄어서 왔지.’
하지만 단 한 명, 외팔 검사 카멜이라는 NPC를 넣어서 보내는 경우엔 달랐다.
모든 파티원이 돌아올 뿐만 아니라 HP도 그대로, 게다가 내가 얻으려던 그 아이템까지 추가로 들어왔으니까.
‘아마도 그 이유는.’
나는 대답 후 여전히 재수 없게 입꼬리만 올려 웃고 있는 아이쉬의 손에 천천히 살아있는 금속을 내 다리에서 분리해 올렸다.
‘이 던전의 정식 명칭이 결손의 던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