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3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30화(330/373)
“간지러워.”
파이얀이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등을 살살 긁었다.
요즘 들어 한 번씩 등이 간지러웠다. 그걸 본 부하들이 ‘날개라도 나려는 모양입니다.’하며 장난칠 만큼.
‘애초에 마족이라 날개는 있는데 말이지.’
지금 모습이 아닌 본래의 모습. 이라고 하기엔 파이얀 자신에게도 꽤 낯선 모습이긴 했다.
아델리안의 앞에서 까마귀 필을 자신의 권속으로 받아들이며 각성했을 때 한 번.
그리고 나중에 자신의 방에서 혼자 한 번.
그렇게 단 두 번 본 진정한 모습.
파이얀은 워낙 자신의 외향을 자주 바꿔가며 살았던지라 진정한 모습이라고 해봐야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낯설었지.’
은은하게 붉은빛이 도는 피부에 여러 가지 색이 섞인 머리칼은 그렇다 쳐도 등에 달린 박쥐 같은 피막 날개가 너무 느낌이 이상했다.
팔이 더 생긴 느낌? 혹은 손가락이 더 늘어난 느낌?
각성하기 전에는 없이 살다가 날개를 달고나니 실제로는 거의 무게가 없는데도 어쩐지 등이 결렸다.
더불어 방에서 한번 변해서 움직이니 이리 치고 저리 찍고 옷 입기에도 불편해서 그 뒤론 빼본 적이 없지 않았던가.
‘그나마 안개화는 편하기라도 하지.’
서큐버스로 각성해서 생긴 변화 중 제일 별로인 게 날개였다.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정말 새처럼 밖에서 날아다니며 살고 나무 위에서 자면 모를까.
인간이나 아인족의 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건물에서는 여러모로 불편했다.
원래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신체 말단도 뇌가 한 번씩 존재를 잊는 듯 군다.
새끼발가락이 어디 붙어 있는지 인지도 못 하고 지나가다가 모서리에 찍는다거나 손을 흔들며 걷다가 손가락만 친다거나.
그런데 바짝 몸에 붙여 접어도 가방을 멘 듯 튀어나오는 데다 어깻죽지부터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기장의 날개?
그것으로 굳이 날지 않아도 안개화 쓰면 일단 공중으로 이동 가능한데 굳이 꺼낼 필요가 있을까?
“아 간지러워.”
파이얀은 한 손으로는 서류를 다른 손으로는 등을 만지다가 문득 생각했다.
‘설마 너무 안 꺼내서….’
곰팡이 같은 게 슨 건 아니겠지.
레이첼과 너무 술 마시러 다녔는지 사고방식이 조금 옮은 기분에 파이얀이 고개를 젓는데 세이렌이 울렸다.
<파이얀, 바빠?>
“왜? 한잔할까?”
루나의 목소리에 파이얀이 느리게 웃었다.
* * *
요정과 정령의 핏줄을 지닌 이들이 주를 이룬 나라인 아리나이드.
그리고 그곳에 존재하는 정령의 숲 깊은 곳에서 가뮈르는 녹음이 짙게 피어오르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상아빛의 긴 머리칼과 노란색이 조금 섞인 녹색의 보석안.
마치 깎은 조각같이 보이는 손끝으로 찻잔을 어루만지는 가뮈르를 바라보며 바하디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세계수의 잎을 더 이상 농축시킬 순 없어요.”
차라리 예전처럼…하고 중얼거리는 바하디의 말에 가뮈르가 느리게 웃었다.
“이번엔 순리를 따르고 싶군요, 바하디.”
세계수의 잎을 말려 차로 우린 것은 강대한 마나 회복을 보장한다.
어지간한 마법사라면 모든 마나를 소진했다 하더라도 가뮈르가 마시는 저 녹음의 차 한 모금에 마나가 크게 차오를 터.
하지만 가뮈르는 그것을 한잔 다 마시고도 부족한 듯 다시 잔을 채웠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몸을 마나로 유지하는 것엔 한계가 있습니다.”
길어야 5년에서 10년 정도.
얼핏 들으면 긴 것도 같은 시간이나 엘프의 기준에선 5년이나 10년이나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바하디의 눈으로 보자면 지금 가뮈르는 하루하루 죽어가는 중이었다.
농축된 세계수의 잎으로 우린 차를 두 잔.
그만큼 마신 뒤에야 가뮈르의 몸에서 새어 나오던 마나가 조금 갈무리된다.
한동안은 저 무너지는 몸을 고정해 주겠지.
모래처럼 허물어지기 전에 섞은 물처럼 당분간은 단단하게.
원래 수명이 긴 하이엘프들 중에서도 가뮈르는 가장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왔다.
세계수의 뿌리를 자르지 않고 넝쿨처럼 감아 만든 의자에 앉아 아주 오랜 시간 일어나지 않고.
마치 기생목처럼 세계수의 힘을 삼켜서 원래의 수명보다도 더 오랫동안.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듯 그리 지내던 가뮈르가 아델리안이란 인간을 만난 뒤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리고 세계수와의 연결이 끊어진 덕에 가뮈르의 수명은 채 10년이 남지 않았다.
그마저도 계속해서 마나를 보충해야만 이루어질 일.
지금이라도 다시 세계수의 도움을 받는 게 어떠냐는 말에도 가뮈르는 순리를 따르겠다고 말을 했다.
바하디는 이제 그 말이 무엇인지 안다.
뒤틀린 미래 덕에 10년도 되지 않아 가뮈르가 허물어진다면 바하디가 그 뒤를 걸어야 했으므로.
바하디에게만 가뮈르는 자신이 비틀어본 진실을 말해주었기 때문에.
“전 아직도 의문스럽습니다.”
“무엇이 말이죠.”
마나를 채워 조금 편해진 듯 가뮈르가 한결 부드러워진 눈으로 바라보자 바하디가 입을 열었다.
“굳이 비밀로 해야 하는 일인지. 모두가 분노하며 도울 겁니다. 당장은 아니라도 10년 뒤 20년 뒤면 충분한 힘이 모일 겁니다.”
더불어 실패한다 한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시 내가 나로 태어나 의지를 행할 수 있다면 두려움 또한 없을 겁니다.
그리 말하는 바하디를 바라보며 가뮈르는 잠시 침묵했다.
어쩌면 이것이 직접 보고 기억해낸 자와 전해 들은 자의 차이일지도 모르지.
가뮈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바하디는 엘프의 선함을 너무나 믿고 있다.
이 세계의 비밀을, 진실을 알려준다면 선지자가 이끄는 대로 그들이 거짓된 미래를 타파하기 위해 움직일 거라 믿는 저 선량함.
이용당한 삶에 분노하고, 그러면서도 죽음 뒤를 알고 있으니 두려움 없는 희생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가뮈르는 단편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은 아마도 단 한 명을 제외한다면.
누구나 한 번 이상 지독한 가해자가 된 적 있음을.
그것은 엘프라 해도 다르지 않다.
그것은 엘프 또한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바하디.”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을 부르는 가뮈르의 모습에 바하디가 시선을 마주하자 가뮈르가 말을 이었다.
“혹 제가 이 자리에서 당장 바하디를 죽이고 나가 다른 엘프들을 죽이고 더 나아가 이 나라.”
아리나이드를 멸망케 한다면 어떨까요.
가뮈르의 말에 바하디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게 무슨…….”
“제가 나쁜가요?”
“당연한 말씀 아니십니까.”
“왜죠?”
왜라니. 바하디는 가뮈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단순한 농담이라기엔 진지했고 더불어 그 끝은 비록 가뮈르도 자멸하겠으나 가뮈르에게는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으므로.
“어차피 제가 바하디를 죽이고 다른 엘프들을 죽여도.”
그들은 죽은 뒤 다시 바하디로, 또 다른 자신으로 기억 없이 회귀해 무한하게 살아갈 텐데요?
“모든 삶을 누리고 죽으나 중간에 죽으나 다시 삶을 시작하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이번 삶이 마지막이 아니면 지금 죽이는 게 뭐가 나쁘죠?
“역시 전부 다 죽이는 게 싫으면 이건 어때요.”
갑작스런 사고로 다친 이와 병든 이. 혹은 남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르는 난폭한 이.
“그런 이들을 말이죠.”
‘다음번 회차’로 보내주면 이번 회차의 나머지 사람들이 편하게 살다가 넘어가지 않겠어요?
가뮈르가 웃으며 하는 말에 바하디가 조금 창백해졌다.
“그것도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럼 뭐 내가 죽죠, 뭐. 어차피 이번은 삶도 얼마 안 남았고 제가 계속 살아서 좋은 게 뭐 있어요.
지금 죽어서 새롭게 시작하죠, 뭐. 기억은 없지만 뭐 괜찮아요. 죽음이 끝이 아니니까.
어차피 수없이 전 죽고 다시 이 삶을 살고 있는데.
“지금 좀 멋대로 살다가 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또 기회는 있을 텐데. 어쩌면 다음번 가뮈르는 조금 더 잘할지도 몰라요.
아주 조금씩은 삶이 달라지니까.
가뮈르가 웃으며 하는 말에 바하디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거기까진 생각 못 했습니다.”
바하디의 말에 가뮈르도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엿본 진실 중 하나니까.”
살아 있는 신의 루프는 너무 많이 반복되어 너덜너덜하다.
그 말인즉슨 가뮈르처럼 이 세계의 진실을 알아낸 이가 이전에도 계속 있었다는 소리.
그중 누군가는 살아 있는 신을 멈추기 위해 노력했고.
누군가는 이용했다.
진실을 깨닫게 되면 눈앞의 사람이, 사람이 아닌 몇 번이고 반복된 연극의 인형처럼 보이기도 하는 법이니까.
망가뜨리고 죽이고 눈물 흘리게 하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어차피 살아 있는 신이 리셋하면 처음부터 다시 했던 말을 하고 살아왔던 삶을 살고.
그렇게 죽었다가 다시 또 이 세계를 구성할 부속품이니까.
늘 좋은 사람만이 진실을 깨닫진 않는 법이지.
“굳이 알릴 필요 없지.”
10년 뒤건 20년 뒤건 의미가 없는 일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뮈르와 바하디가 엘프들을 규합하려는 일의 목적은 있었다.
이곳은 신이 존재하는 세계. 그리고 의지라는 것이 단순한 정신력만이 아닌 무언가의 힘으로 남아있는 곳.
완전한 진실은 모르되 훗날 살아 있는 신에게 검을 겨누려면 저항할 의지를 품고 있어야 하므로.
그것을 기다려야 했다.
* * *
레이첼은 생각했다.
‘아, 씨……. 사탕 많이 잃었는데.’
근래 연패한 대가였다. 사탕 병의 반도 아닌 바닥에 몇 알이 굴러다닌다.
게임과 내기로 따려고 해도 원래 자금이 넉넉해야 따는 액수도 넉넉한 법.
하지만 설거지나 자기 방 청소, 수건이나 옷 개키기 같은 일로 주는 사탕으로 병을 채우기엔 한참 걸릴 게 분명했다.
이렇게 된 이상 아델리안이 종종 착한 아이 스티커인가 뭔가 중얼거리며 주는 사탕이라도 받아야 하는 법.
‘어차피 맞고 찍으나 미리 찍으나.’
그러니 이건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자 다음 용 새끼. 지장 찍어.”
“후, 내가 저 인간 놈에게 주제를 알려주도록 하지.”
실버 드래곤으로 보이는 사내가 자신의 은발을 쓸어 넘긴 뒤 레이첼이 내민 잉크에 손가락을 넣고 옆에 든 신의 계약서에 지장을 찍었다.
케인은 강하다. 그리고 잘생겼다. 신이 공들여 만든 듯 보인다.
무슨 신이냐 물으면….
‘손재주의 신이 있나?’
일단 모든 신이 합세해 공들였을 게 틀림없을 거라 레이첼은 생각했다.
그리고 드래곤은 아름다운 것과 희귀한 것, 반짝거리는 것에 약한 종족이었다.
이 말인즉슨 케인은 드래곤에게 악몽에 나오는, 신경 거슬리는 인간임과 동시에.
아주 탐나는 존재라는 이야기였다.
박제를 하건 계약을 해 가디언으로 쓰건, 혹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노리개로 굴리더라도 좋은.
그래서 레이첼은 당당하게 말했다. 가지라고, 악몽 덕에 기분 나쁜 것도 풀 겸 케인을 전투로 굴복시키면 소유권을 넘겨주겠다고.
대신 지면 소원 한가지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물론 케인을 팔아먹는 것에 아델리안의 허락은 받지 않았다.
케인의 허락은 아예 생각도 안 했다.
‘어차피 케인이 저놈들을 패는 거 자체는 아델리안이 허락했으니까.’
거기에 레이첼 자신이 드래곤 자유 이용권을 찍어내는 것으로 스푼 하나 더 얹은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것들은 안전자산인 케인의 승리에 걸었으니 그대로 아델리안의 주머니에 들어갈 터.
‘그럼 내 사탕도 더 생기고.’
레이첼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 드래곤, 도장 찍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