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31)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31화(331/373)
육신이란 주기적인 조율을 필요로 한다.
특히 마법사나 정령사 같이 직접적으로 몸을 쓰지 않는 부류가 아닌.
검이나 무투를 중심으로 한 신체적인 능력을 중심으로 전투를 구사하는 이는 팔의 길이가 달라질수록 키가 커질수록 세부적인 조율이 필요했다.
1년도 되지 않아 키는 한 뼘 가까이 자라고 체중은 노예로 경매장을 떠돌 때보다 거의 20kg 이상 증가한 케인의 경우는 더했다.
천부적인 재능과 동물적인 감각으로 변경된 리치와 더불어 힘을 싣는 방법을 금세 신체에 맞게 바꾸기는 했으나 숙달하는 것은 또 다른 일.
심지어 영혼의 일부를 유리시켜 전생의 전생을 거슬러 올라가는 감각으로 기억을 되찾고 뒤섞인 덕에 뇌리와 육신의 감각이 살짝 비틀려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였다.
자신에게 덤벼드는 드래곤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상대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무력을 이만큼이나마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은 흔치 않으므로.
“제대로 날 상대하라 인간!”
푸른 머리를 가진 용인족 소녀가 이마에 곧게 뻗은 단 하나의 뿔로 마나를 모으며 노려보았다.
뿔과 양손에 파지직하고 뇌전이 흘러넘친다.
주위의 공기가 뇌전의 힘으로 달아오르듯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가운데 몸의 주위로 강한 정전기가 흐르듯 파직 파직하고 허공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케인은 단순히 전투만을 위해 만들어낸 황무지와 다름없는 공간에서 숨을 흩었다.
“나를 능멸하느냐.”
그 검에 오러를 더 농축시킨다면 내 손톱뿐 아니라 육신이라 해도 쉬이 가를 수 있을지언데.
감히 인간이 드래곤을 상대로 자비를 보이는가.
푸른 눈에 분노가 일렁였다.
“네가 강함은 이제 인정하나 그렇다 해도 나를 제대로 꿇려야 할 터.”
케인은 자신에게 살기를 내뿜으며 대지를 박차고 눈 깜빡할 새 곁으로 붙는 용인족의 손톱을 검으로 쳐냄과 동시에 몸을 숙였다.
푸른색 비늘로 뒤덮인 꼬리가 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쳐 지난 뒤에야 뒤늦게 공기 찢어지는 소리가 쉭 하고 울린다.
용인족으로 폴리모프 한 저 블루드래곤이 원하는 대로 단순히 오러의 출력만 끌어 올린다면 산이라도 어렵지 않게 벨 수 있는 상태.
하지만 움직인다는 감각 자체를 성장한 몸에 다시 재입력하겠다는 본래 목적과는 멀어지는 일.
그래서 케인은 일부러 자신의 공간으로 데려오는 드래곤과 거의 엇비슷한 정도로 실력을 맞춰 움직였다.
뇌전의 마나가 용인족의 뿔과 손톱, 그리고 꼬리에 집중적으로 덧씌워진다.
본래라면 상대의 무기나 몸과 맞부딪칠수록 몸에 쌓여 결국 경직과 마비를 유발해야 할 일.
하지만 눈앞의 저 인간은 몸 전체에 얇게 오러를 두른 덕에 뇌전의 마나가 몸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고 흩어진다.
‘저런 게 인간일 리 없지.’
용인족으로 폴리모프 한 블루드래곤 세이카나는 뾰족한 이를 빠득 소리를 내며 갈았다.
한번 손톱을 휘두르거나 꼬리로 내려치면 땅이 갈라질 정도의 위력이나 저 인간 사내는 숨소리 하나 변하지 않고 검으로 흘리거나 쳐낸다.
뿔을 이용해 뇌전을 쏘거나 라이트닝 볼을 띄워 시간차로 날려도 전부 검으로 갈라 소멸시킨다.
마투사이기에 육체적으로도 몰아세우며 동시에 마법적인 공격을 곁들일 수 있어 정신없는 공방을 주고받음에도 케인의 옷깃 하나 찢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세이카나가 마나를 더욱 끌어올렸다.
“그래, 나를. 우리를 이용하는 중이라면 제대로 어울려주지 인간.”
세이카나는 저 인간 사내의 목적이 무엇인지 짐작했다.
단시간에 너무 강해졌다.
격도 높아졌다.
강한 힘은 공격을 단순하게 만든다.
수많은 시간 동안 누적된 경험으로 만들어진 검술이, 체술이 아무 소용 없어지는 것이다.
단순한 주먹질 하나, 발차기 하나가 하늘을 울리고 땅을 갈라지게 할 만큼 강한데 왜 동작을 섞어 쓰겠는가.
검술이건 체술이건 동등한, 혹은 자신보다 강한 이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맞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단 한 번의 칼질로 죽일 수 있다면 빠른 검이나 무거운 검, 변화가 많은 검 따위의 나눔이 무슨 소용인가.
칼의 모양이, 손잡이를 잡는 방법이. 기수식의 모습도 발 딛음의 방식도 아무 의미도 없지.
더 나아가서 검이 왜 필요한가.
그 압도적인 무력이라면 단 한 번의 주먹질로도 상대를 분쇄할 수 있을 텐데.
‘무서운, 괴물 같은 인간.’
그런데 눈앞의 저 사내는 그 압도적인 강함을 단시간에 쌓아 생긴 폐해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쉽고 편한 길이 아닌 피곤하고 까다로운 길을 지금 걷고 있는 거였다.
감히 드래곤을 상대로.
자신의 기술을, 경험을 더욱 갈고닦는 데 이용하다니.
세이카나가 분노에 찬 얼굴로 케인을 바라보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용당해주마.”
나를 이용해 너를 더욱 날카롭게 벼릴 수 있도록.
자존심이 상하지만 있는 힘껏 맞상대할 이가 생긴 것 자체는 반길 일이므로.
마투사란 원래 지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지 못함을 더욱 분해하는 족속들이기에.
그것에 매료되어 마투사로만 살지 않았던가.
세이카나가 뇌전의 마나를 강하게 몸에 둘렀다.
순간적으로 둘러싼 수분과 마나가 전기 분해된다.
세이카나는 작은 폭발과 불안정한 마나를 몸에 감아 대포의 탄환처럼 케인에게로 쏘아졌다.
푸른 손톱을 세워 공기와 함께 케인의 몸을 찢는다.
하지만 그건 허상이었다는 듯 흐릿해지며 허공이 드러났다.
긴 꼬리를 반원 그리듯 휘두르며 그 원심력으로 몸을 비틀어선 땅을 박차고 오르자 세이카나가 서 있던 공간으로 케인의 스카가 스쳐 지나간다.
허공에서 꼬리를 이용해 축을 바꿔 발로 케인의 머리를 내려찍었으나 케인이 그새 몸을 피한 덕에 대지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나갔다.
작은 크레이터가 생겨난다.
반구형으로 터진 공간의 중심에서 세이카나가 뿔에 모으고 있던 뇌전의 마나를 직선으로 쏘았다.
빛은 소리보다 빠르다.
푸른 섬광 같은 뇌전이 케인에게 공간을 찢듯 쏘아져 나갔다.
그것을 스카에 오러를 둘러막자 그제서야 소리가 뒤늦게 쫒아 와 굉음이 울린다.
강한 전류의 흐름으로 옷과 머리카락이 바람도 없이 나부낀다.
뇌전을 막느라 잠시 자리에 멈춰선 그 틈을 노리고 세이카나가 다시 쇄도했다.
* * *
“언제까지… 이렇게 도망쳐 다녀야 합니까 쿠미나 대장?”
볼과 눈이 푹 패이고 입술이 허옇게 일어난 사내가 중얼거렸다.
“벌써 대원들 대부분이 죽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저희 셋뿐…….”
다른 사내 또한 중얼거리다 말라버린 입술을 억지로 움직인 덕에 찢어져 흐르는 피를 혀로 핥는다.
그 모습에 마찬가지고 곯은 듯 비쩍 마른 여인이 가늘어진 손목에 겨우 걸쳐진 팔찌를 쥐고 숨을 골랐다.
모두가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자지도 못한 상황.
30분 정도 졸다가 작은 기척이라도 느끼면 잔뜩 날 세워 주위를 살핀다.
남해의 군도에서 푸른 사막이라 불리는 정글까지 도망쳤다.
살아있는 신, 그분을 위한 비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멀리 돌아가는 것이나 매한가지지만 조금씩 지부와 가까워지곤 있다.”
폭풍이 휘감고 잇던 섬에서 이상한 생물이 안고 자던 속성 비보.
폭풍우의 구슬을 탈취하여 퇴각하던 것도 잠시.
어느 세력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복면인들이 따라붙은 덕에 본단에 귀환하지 못하고 몇 달이나 도망치고 있었다.
본디 교단 내에서 이름을 붙일 만큼 강한 속성 비보를 구하러 가는 이들은 전부 강한 자들.
집행자인 체이서도 정령계 아인족과 엘프의 나라인 아리나이드에 파견되어 바닷빛 진주를 노리지 않았던가.
교단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였던 쿠미나였기에 지금까지 그 정체불명의 복면인들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십수 명에 달하던 대원들 대부분이 죽어나가고 쿠미나와 남은 이들 또한 하루하루 사는 게 아닌 죽어가는 중이나 마찬가지인 상태.
“대장… 차라리 비보를 우리가 씁시다.”
“그분에게 바쳐야 하는 것은 알고 있으나 이러다 우리가 다 죽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살아서 돌아가면 스스로를 공양 의식에 바쳐서 남은 비보의 힘이라도 짜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원들의 말에 쿠미나가 침음을 흘렸다.
아공간 아티팩트인 팔찌에 넣어둔 폭풍우의 구슬을 떠올렸다.
바람속성라던 바닷빛 진주와는 달리 수 속성인 폭풍우의 구슬은 대지 속성이 강한 쿠미나와의 상성이 썩 좋진 않겠지만.
‘…그래 우리 전부 죽어 빼앗기는 것 보다.’
한 사람이라도 살아나간다면 제물 공양으로 한 줌의 힘이라도 바칠 수 있을 터.
콰직.
쿠미나는 지나가던 독벌레를 입에 넣고 씹는 대원을 바라보았다.
결국 굶어서 죽거나 붙잡히는 것보단 나은 일.
“좋아… 발악은 해봐야겠지.”
쿠미나가 푹 꺼졌으나 그 눈빛만은 형형한 얼굴로 대원들을 바라보다 팔찌를 쥐고 마나를 흘려보냈다.
이윽고 푸른 심해를 그대로 떠낸 것 같이 깊고 투명하며 짙은, 주먹 만한 구슬을 아공간에서 꺼내 든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파괴적인 흐름을 취하려는 순간.
하얀 화살이 날아와 쿠미나의 손을 관통하는 것과 동시에 얼려버렸다.
“아악!”
“적이다!”
대원 둘이 몸을 급하게 일으키며 연달아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다.
분명 기척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나무와 넝쿨이 빽빽한 정글에서 누가 저 멀리서부터 화살을 날리겠는가.
서리 화살이 관통된 덕에 팔을 타고 오르는 냉기가 끔찍하다.
가시 바늘을 핏줄 속에 넣어 혈관을 찢어가며 올리는 감각.
쿠미나가 급하게 단검을 들어 손을 다 얼리고 손목까지 침범하는 서리를 피해 팔뚝의 중간까지 잘랐다.
그새 잘린 단면까지 냉기로 얼렸던지 바닥에 떨어진 쿠미나의 손이 퍽 하고 부서진다.
그에 손가락만 붙은 폭풍우의 구슬이 정글 바닥에 굴렀다.
“막아!”
탐색 능력의 바깥에서 잠복하고 있던 복면인들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걸 확인한 쿠미나가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동시에 아직 멀쩡한 다른 손으로 폭풍우의 구슬을 쥐려다가 지척까지 쏘아진 냉기에 급하게 손을 거둔다.
푸른 빛의 서리 화살이 쿠미나가 움켜쥐려던 폭풍우의 구슬을 쳐냈다.
허옇게 얼어붙어 울퉁불퉁해진 폭풍우의 구슬이 힘에 밀려 저 멀리 튕겨져 나가는 것을 쿠미나가 손짓으로 일으킨 대지가 퉁겨 다시 쿠미나 쪽으로 날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다시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폭풍우의 구슬을 쿠미나가 낚아채려는데 허공에서 서리 화살이 다시 구슬을 때려 방향을 비튼다.
멀리서 보면 나무 사이로 틈이 거의 없는 이 정글에서 이 정도 화살을 날리는 자라니!
쿠미나는 몸을 돌렸다.
이렇게 된 이상 구슬을 쟁취하려 자신이 발이 묶이는 것이 더욱 손해.
대원들이 먼저 저들에게 처리당하기 전에 합류해 복면인과 궁수를 처치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리 생각한 쿠미나가 대지에서 창이 솟아오르듯 지형을 바꾸며 전투에 합류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쿠미나와 다른 잔당들을 처리한 복면인들이 진흙으로 더러워진 폭풍우의 구슬을 수거해 손에 쥐었다.
옷으로 정성스레 닦아 올리는 그것을 움켜쥔 가디아가 차갑게 목소리를 흘렸다.
“이제 돌아가도록 하지.”
이것의 주인은 따로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