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3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32화(332/373)
솔직히 레이첼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악몽을 통해 케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기억은 있어도 반대로 핍박한 기억은 없을 테니까.
다만 내가 한 말로 짐작만 할 뿐이겠지.
그래도 따지고 보면 기억에도 없는 일로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했다고만 한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그걸 알기에 나중에 기분도 풀어주고 할 겸 따로 대화하며 사과도 할 생각이긴 했는데.
“내 손에 들린 게 뭔 줄 알아?”
레이첼은 신경도 안 쓴 모양이네…….
케인을 미끼로 드래곤들의 사인이나 지장을 받은 계약서가 몇 장이야 저거.
레이첼이 으스대며 내 앞에서 종이를 흔들어댄다.
“필요해? 물론 필요하겠지. 하지만 나 레이첼, 너와 함께 다니며 배운 것이 있어.”
레이첼이 종이를 든 손은 자신의 몸으로, 빈손은 나에게 손바닥을 보이며 내민다.
그리곤 까닥 까닥 흔드는 것이.
내가 못 알아먹은 척 손을 올려 드니 레이첼이 무슨 참새 쫓아내듯 탁탁 손을 흔들어 밀며 다시 까닥거렸다.
“정 없네.”
“어허. 아델리안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나는 소리 내어 웃은 뒤 아공간에서 금괴를 몇 개 꺼내 레이첼의 손에 올리기 시작했다.
하나당 1KG은 될 텐데 10개를 올려도 손이 미동도 안 하는 걸 보니 드래곤의 근력이란 대단하다.
“이걸로 편하게 놀다 와. 이왕이면 루나나 리프도 같이. 파이얀도 시간 되면 부르고 해.”
하지만 레비는 안 된다.
내가 웃으며 말하니 레이첼이 금괴를 챙기며 끄덕인다.
그러면서도 계약서의 반만 테이블 위에 올리고 반은 다시 내 앞에서 흔들며 레이첼이 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델리안. 그나저나 너도 좀 놀아야 해. 나도 들어서 지금이 바쁘고 중요한 시기인 건 아는데”
네가 예전에 이렇게 말한 적 있잖아 하며 레이첼이 입을 열었다.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진짜 단 1주일도 쉴 시간 못 빼는지. 정말? 진짜? 확실해?
레이첼이 큰 키로 나를 내려보며 말할 때마다 고개를 숙여 들이민다.
부담스럽다. 옆머리로 내 이마를 누르듯 미는 게 이거 드라마에서 본 일수꾼이나 사채업자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어딜 가고 싶은데.”
그에 내가 항복한다는 듯 양손을 들어 보이며 묻자 레이첼이 히히힉 하고 웃는다.
아무래도 날 빼고 놀러 가려니 조금 찔렸던 모양.
드래곤의 감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마침 급한 부분은 얼추 마무리된 상황이다.
더불어 같이 진행하던 일 같은 경우 원래라면 레이첼의 동생인 레피드나 가뮈르, 소르페나 체이서를 좀 들볶으려고 했는데.
‘딱 맞춰서 가져온 것도 있고.’
나는 레이첼이 흔들던 드래곤들의 계약서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고 싶은데.”
내 물음에 레이첼이 붉은 루비 같은 눈동자를 빛내며 대답한다.
“저번에 제로 친구가 말해준 건데.”
그 아이스 엘프 말이야 하며 레이첼이 기분 좋게 목소리를 울렸다.
“북부 쪽에 온천 있대.”
온천은 남부에도 있다.
더불어 카이만과 가디아가 있는 본가 라베스 근처에도 잇는 것으로 안다. 더불어 수도 근처에도 아마 찾으면 있을 것이다.
“거기에만 있는 거 아니잖아.”
내 말에 레이첼이 뭘 모른다는 듯 한심하단 얼굴로 본다.
와, 레이첼에게 업신여김을 받는 날이 올 줄이야?
“더운 날 더운 물에 몸 넣는 게 무슨 재미야.”
한국인은 그걸 시원하다고 하거든. 이열치열을 드래곤이 알 리 없었다.
“찬 바람 부는데 딱! 뜨거운 물에 어? 거기 가면 몸을 못 담글 정도로 뜨거운 물로 중탕해서 만드는 요리가 있다던데.”
술도 뜨겁게 마신다잖아. 그러면 안 그래도 추운 곳이라 독한데 뜨거워서 한 잔만 마셔도 꽥.
레이첼이 뒤로 넘어가는 시늉을 한다. 그런걸 급성 알콜 중독이라고 하는 거 아니냐…….
“완전 맛있겠지. 응? 우리 북부 안 가봤잖아.”
거기에 빙벽 근처 가면 희귀한 몬스터도 많아. 아이스 트롤이 얼마나 손맛이 좋은지 알아?
이게 차가운데 살면 탄탄함이 다르다니까.
나는 레이첼에게 어깨를 잡혀 탈탈 털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북부로 놀러는 가고싶은데 혼자 가긴 싫고 다 같이 가자니 내가 수도에서 자꾸 일을 하고 있으니 신경이 쓰였다 이거네.
나는 몸이 흔들리는 동안 가볍게 고민했다.
사실 수도에서 일 처리 하는 건 대륙 곳곳에 뚫린 게이트를 사용하기 편해서인 것도 있으니까.
그리고 계획하는 일이 잘 되건 혹은 잘못되건 그 일을 치른 이후엔 당분간 수도가 아닌 다른 곳을 돌아다니려 한 것도 있었다.
‘더불어 북부면 봉인 후보지기도 했고.’
“아델리안아, 얼른 대답해 얼른!”
“그래, 가자.”
“안된다고 하지 말고!”
레이첼이 내 어깨를 흔들다 보니 조금씩 몸이 움직였나.
이런걸 벽쿵이라고 했던가.
레이첼이 내 몸을 벽에 누르며 붉은 눈을 번들거렸다.
‘술, 고기. 술, 고기.’
그 눈동자에 글자가 적혀있다면 저런 글이 적혀있었을 것이다.
“안된다고 안 했어. 가자니까.”
내가 웃으며 내 어깨를 잡은 레이첼의 팔을 밀며 대답하니 레이첼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는 내 몸을 놓고 한번 부르르 떨더니 날 다시 잡고 방에서 나간다.
아니… 나 아직 서류 몇 장 더 남았는데.
“얘들아! 허락 맡았다!”
레이첼이 마치 개선장군처럼 소리치며 날 잡지 않은 한 손을 주먹 쥐고 들어 올린다.
그에 루나가 진짜? 하며 웃고 리프는 무표정하게 박수를 친다.
그리고는 레이첼이 날 놓고 루나를 한번 꽉 끌어안더니 놓고 나서 리프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케인은 각도 잘 맞춰서 터트릴 듯 안는데 저건 분명 감정이 실린 포옹이었다.
‘아쉽게도 핑크빛은 아니지만…….’
보란 듯 책을 읽던 케인을 내 앞에 데려와서 안더니 여행갑니까? 하며 튀어나온 제로도 안고 소르페도 안고 체이서도 안으려는데 체이서가 웃으며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훈훈하네.”
원래 오타쿠는 착즙의 달인이지.
나는 애써 필터 낀 눈으로 바라보며 웃었다.
* * *
“북부에서 하실 건가요? 원래 다른 후보지가 있었잖습니까.”
직장인들은 공감할 텐데, 휴가 가려면 최대한 일을 처리해놓고 가야한다.
안 그러면 잘 놀고 와서 일이 몰아치는 게 다르다.
하나라도 마무리를 더 해놔야 나중의 내가 덜 죽는 법.
‘죽는다는 게 난 실제로 죽을 수도 있는 게 문제지만.’
나는 체이서의 질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접경지 깊은 곳을 생각하긴 했지.”
내가 계획하던 일 중 하나는 장소 선정이 꽤 중요한 문제였다.
‘아무래도 살아 있는 신의 힘이 조금이라도 덜 미치는 곳이 좋으니까.’
아예 육신이란 제한이 없는 신도 자신의 힘이 유독 강해지는 곳이 따로 있다.
자신의 성역이나 신도가 많은 곳, 혹은 자신이 축복을 뿌려둔 곳.
그런데 테이트리아는 육신이 있는 신.
그게 강점이자 약점이나 다름없다.
더불어 지금 입고 있는 몸은 진실된 자신의 몸도 아니지.
원래라면 자기 자신이 가장 큰 신의 영토나 다름없겠지만.
‘그 몸은 셰인의 몸이니까.’
다른 능력은 몰라도 신위 같은 건 좀 반감될 터.
내가 예상컨대 라비린의 대미궁은 테이트리아의 영역이다.
‘제로가 거기 갇혀 있었으니까.’
더불어 이노센트 사가를 플레이 할 땐 미궁이 99층이었고 그곳엔 검이 한 자루 있었다.
‘그것도 에고 소드.’
이노센트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에고 아티팩트는 미궁 도시 라비린에 있는 대미궁의 99층에 존재하는 에고 소드 뿐.
솔직히 게임에서는 그거 뽑아봐야 종결 무기라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어서 굳이 시간이 많이 드는 미궁 탐험에 몰두하진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뭔지 한 번 확인은 해봐야겠어.’
지금 우리 파티면 99층 따위 그냥 걸어가는 시간이 아까운 정도다.
“북부도 척박하긴 매한가지니까.”
나는 잠시 잠겨있던 생각을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신의 힘이 강한 곳은 보통 어디일까.
반대로 신이 버렸다고 하는 곳은 어디일까.
전자는 보통 성지를 떠올릴 테고 후자는 보통 버려진 땅을 떠올릴 터.
더불어 테이트리아는 이 별의 옥좌, 즉 성좌의 자격을 일부 얻은 거지 성좌는 아니다.
다른 신격들이 왜 대립하지 않는지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확실한 건 마족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마족은 이 대륙에 거의 살지 않고 마계라는 이차원에 사니까. 마치 정령처럼.
“그리고 사실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게 있잖아.”
나는 체이서와 대화하다 말고 케인을 흘긋 바라보았다.
“자신 있어?”
“네가 말한 것 자체는.”
케인이 낮게 목소리를 울린다.
마치 제일 아니라는 듯, 다만 내가 말을 했기에 한다는 것처럼.
‘하지만…….’
셰인과 관계된 일이다. 보이는 게 다는 아니겠지.
“형 믿지?”
내가 장난스레 말하니 케인이 대꾸는커녕 시선을 돌린다.
이번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건 케인이다. 그래서 케인의 능력과 경지를 몇 번이고 확인했었다.
‘그러니까 할만해.’
충분히 가능성 있다. 테이트리아와 셰인을 분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테이트리아가 셰인의 몸을 입고 있는 게 상대하기는 더 쉬울 테지만.’
테이트리아가 남겨준 기억을 토대로 미루어 보자면 무조건이다.
셰인이 아무리 케인보다 뛰어난 육신을 지녔어도 결국 사람으로 죽었으니까.
신격을 받고 종을 초월해 그에 맞게 육신의 격까지 오른 테이트리아의 본래 몸보다 소위 말하자면 신성의 출력이 떨어지는 거다.
그러니 단순하게 신이 아닌 상태로 싸우는 거면 셰인의 몸이 더욱 강력하겠지만.
신위를 두른 신을 상대로 하는 거면 살아 있는 신이 본체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게 더 맞는 공략법인 것이다.
즉 살아 있는 신만 생각하면 황성에 잠들어 있을 황제의 몸을 가루로 만들어버려서 강제로 셰인의 몸에 묶어두는 게 베스트라는 소리.
‘하지만.’
사람이 늘 효율만 따지고 살 수 있나.
“북부로 갈 때 필요한 물품 다 계산되면 카이만에게 목록 넘겨줘.”
“그나저나 왜 저희 셋만 이런 궁리를 하죠?”
체이서가 하하 웃는데 살짝 짜증이 섞였다.
그야. 다들 휴가 전에 일하기 싫어하니까.
케인은 자기 일이고 나야 계획 주체자고 체이서는.
‘네가 제일 막내잖아.’
나와 계약서를 쓴 뒤 내 파티로 같이 다니는 이들 중 체이서보다 후배가 없다.
소위 말하는 선배들의 짬 처리 당한 거지.
회의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내가 빼고 대화한 건 아니고 애들이 우릴 이 방에 버린 거다.
노는데 옆에서 일 이야기 하면 노는 맛이 안 난다며 레이첼이 힘으로 몰아넣었다.
더불어 사실 이번 계획에 케인 다음으로 큰 지분을 가지고 있고.
내가 체이서를 써봐서 아는데 너무 편하다.
살아 있는 신도 분명 체이서를 쓰려고 할 테니까 그걸 이용할 생각이었다.
체이서가 자신은 도구가 아닌 사람이라며 뱀의 비늘처럼 반질거리는 검은 눈으로 입을 연다.
“다 좋아요, 좋은데. 저도 노는 거 좋아하거든요.”
대충 말 다 하셨죠? 하더니 체이서가 그림자에서 사탕 통을 꺼내며 날 본다.
그리고 다시 케인을 바라보니 케인도 으쓱였다.
“거기에 이번에 새로 만든 게임 아티팩트도 왔고요.”
체이서가 그리 말하며 나와 케인의 몸을 그림자로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