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36)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36화(336/373)
딱딱.
치아를 강하게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흑마법사가 뼈만 남은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입꼬리를 있는 대로 올리고 싶었으나 이미 리치로 변한 몸으로는 고작 턱뼈를 움직여 웃는 소리를 낼 뿐.
“아쉽구나.”
흑마법사가 자신의 이마에 박힌 보석을 매만졌다.
원래라면 아주 고순도에 마나에 민감한 큰 보석이 박혀있어야 한다.
하지만 케인이 제대로 된 의식을 하지 못하게 검을 찌른 덕에 급한 대로 쓴 보석은 미리 구해둔 것보다 품질이 매우 낮았다.
그 덕에 아주 긴 시간 동안 오염된 마나 샘에서 요양했어야 했지.
―까아악
―까악!
―깍깍깍
패밀리어들이 소리를 낸다. 그에 흑마법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구나.”
시간을 줄이기 위해 미리 지하수로에 숨겨둔 언데드들을 도둑맞은 덕에 오히려 시간이 더 걸렸다.
그래서 이번엔 언데드를 만들 때마다 수로가 아닌 음차원 공간에 따로 숨기며 진행한 덕에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니…….”
본디라면 축제 때를 노리려 했으나 흑마법사와 상극인 태양신의 대주교가 갑자기 참여하지 않나.
거기에 성녀라는 이가 나타나지 않나.
북부의 지배자. 북부의 방패라 불리는 게드만 대공까지 참여할 줄이야.
한창 언데드들이 창궐함과 동시에 이 도시에 어둠의 마나가 짙게 깔린 뒤라면 모를까.
시작부터 그들이 있는 상태로 할 수는 없었기에 좀 더 숨죽여 참았지만.
‘오늘부터는 그러지 않아도 되느니.’
축제가 끝난 지 한참이다. 여운을 즐기기 위한 무도회도 파티도 끝난 지 오래였다.
이 대도시.
수도 테이트리아를 떠난 그들이 다시 돌아온다 한들 이 밤이 지나면 그들이 자신을 쉬이 대적할 수 없으리.
이 도시의 생명력을 전부 짜내어 흡수하면 이마의 보석을 영혼석으로 바꿀 수 있을 터.
그 뒤에는 이곳을 거점으로 전 대륙을 집어삼킬 수 있을 것이다.
흑마법사가 낮게 웃자 입에서 어둠의 마나가 흘러나왔다.
“나의 영속들이여…….”
천천히, 거미줄처럼 뻗은 수로의 마나와 자신의 마나를 공명하며 흑마법사가 중얼거렸다.
“깊은 잠에서 일어나 모든 산 것을 증오하라.”
지하수로 전체가 조금씩 진동하더니 여기저기서 음차원 이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
* * *
“드디어!”
레이첼이 배를 긁으며 쿠키를 먹다가 벌떡 일어난다.
“계약자야.”
레비도 통통 뛰어오더니 내 몸을 타고 내 머리 위에 배를 얹었다.
동시에 제로가 주방에서 나오고 리프가 읽던 ‘제가 바로 역하렘 레이디입니다.’라는 책을 덮는다.
아니 저 책은 뭐야.
“오늘 아니면 내일 같다더니.”
얼른 해치우고 놀러 가자. 하며 저택에 와 미리 대기하던 파이얀이 웃는다.
나는 심문하던 바다 마녀 구슬을 냉큼 체이서에게 던졌다.
내 아공간에 살아있는 건 못 넣으니까.
‘그러고 보니 제로의 시체 아직 있지.’
“아델리안.”
“준비됐어.”
케인이 날 부름에 아공간에서 코덱스와 아이기스를 꺼내 허공에 놓아두며 대답하자 케인이 잠시 응시한다.
“자 그럼 황성을 중심으로.”
누가 보면 그곳에서 한 것인 줄 알게.
내 말에 케인이 끄덕였다.
그리고 동시에 느리게 황금색 눈동자를 감았다 떠낸다.
아주 잠깐, 사방이 일렁인 것 같다.
나는 이 감각을 안다.
책 속에 체이서가 난입했던 그때처럼 세계가 잠깐 멈춘 거 같았다.
하지만 그건 아주 찰나의 시간.
눈을 잠깐 감았다 뜨니 아무것도 없는 부서진 대지 위에 서 있었다.
아니, 근처에 언데드가 몇 마리 있었으나 레이첼이 빠르게 주먹으로 부숴버렸다.
“하하하! 좋아 나 먼저!”
간다아!
목소리가 멀어질 만큼 급하게 뛰어가는 레이첼을 따라 루나도 뛴다.
“레이첼! 혼자 그렇게 멀리 가지 마.”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감탄했다.
큰 산이나 숲이 없이 메마른 대지라 멀리까지 보이는 가운데 시야 닿은 곳 전부에 언데드들이 서있다.
“엄청나네.”
드래곤들이 말해주기 전부터 흑마법사가 수로에서 하는 짓은 알고 있었다.
다만 얼마나 일이 진척되었는지는 몰랐을 뿐.
그야 흑마법사가 우리 파티에 없으니까 스킬 매커니즘이 다르니 진도를 가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걸 드래곤들이 메꿔준 덕에 미리 준비했었다.
언데드란 전염병이나 다름없다.
하나가 물면 물린 이가 또 다른 이를 문다.
물리고 또 물고, 연쇄 작용으로 하나의 언데드가 수십으로 늘어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수만의 언데드가 한 번에 나타난다면?
모두가 잠든 시간 도시를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죽여댄다면?
그걸 피하기 위해 흑마법사를 견제하고 언데드를 훔쳐 팔았다.
미리 연구해 방법을 강구해두라고.
‘하지만.’
케인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지.
“이 정도면 수도 대부분이 영역인가?”
내 물음에 케인이 가볍게 끄덕였다.
“네 저택이 아닌 황성을 중심으로 차원 분리를 했기에 외곽 지역 정도만 권역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그 정도는 치안대와 나에게서 언데드를 싸게 사간 마법사들이 처리해주겠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원래라면 이제 막 지하수로로 소환되었을 수많은 언데드들이 사방에 퍼져있다.
케인이 저 많은 언데드들을 자신의 차원으로 이동시킨 덕에 밖에는 몇 줌 안 되는 것들만 남았을 터.
“그럼 오늘 끝내자.”
제법 긴 악연이다.
제대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파이얀의 권속이 된 까마귀 필의 말에 따르면 케인이 나보다 키가 작을 때부터 얽힌 악연 아닌가.
케인이 찌른 덕에 제대로 된 상위 리치가 되진 못했다고는 하나 본디 이노센트 사가에서 메인스트림으로 분류될 만큼 상대하기 힘든 적이다.
자체의 강함보다는 연쇄적인 언데드화 덕이지만.
‘여기 산 사람은 우리들 뿐이니.’
그 격은 조금 낮아졌을 터.
그렇다 해도 케인은 업적을 쌓아야 한다.
“흑마법사는 꼭 네가 처리해.”
나는 케인의 등을 툭 쳤다.
* * *
“신 난 다!”
레이첼이 크게 소리치며 입을 벌려 아하하 웃었다.
신난다.
물론 아델리안이 고안해낸 게임 아티팩트 덕에 덜 심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걸 원했다.
주먹에 두른 오러 덕에 손이 인간을 지점토처럼 뭉쳐서 만든 시체 골렘의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팔 대신 낫이 달린 언데드가 휘두르는 것을 피해 몸을 숙였다.
동시에 반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붉은 머리카락에 오러를 싣는다.
아직 완벽하게 아물지 않은 심장 덕에 여전히 마나를 마법처럼 외부로 내뿜지는 못하지만 머리카락 또한 신체의 일부.
길게 하나로 땋은 머리카락이 채찍처럼 주위에 몰린 몬스터들의 머리와 몸을 반으로 갈랐다.
썩어 검게 변한 피가 후드득 바닥에 떨어지니 바닥이 검게 삭아든다.
“아델리안 보고 피 한 방울도 조심하라 그래!”
레이첼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내뻗는데 레이첼의 주먹이 닿기 전에 눈앞의 언데드 하나가 쾅 하고 터지듯 곤죽으로 변했다.
“혼자 이만큼이나 오구.”
루나가 한숨 쉬며 썩은 살점이 묻은 발끝을 톡톡 바닥에 두드리며 하는 말에 레이첼이 씩 웃었다.
“신나잖아!”
레이첼이 대답하며 제법 고위 언데드인지 몸이 바위처럼 단단한 언데드를 주먹으로 치니 루나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비위 상하는 걸.”
작은 체구의 소녀가 몸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현실감 없는 파육음이 들렸다.
저 가느다란 다리가 얼마나 억센지 잘 벼른 검마저도 뭉개진다.
레이첼처럼 무언가를 깨부수는 것을 즐기지 않는 루나라 지저분한 것이 닿는 게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얼른 끝내구 가서 씻구 싶어. 찝찝해.”
“이거 끝나면 북부야 루나. 온천!”
거기에서 반만 몸 담그고 시원한 주스나 술 마시면 얼마나 맛있게?
신나게 주먹을 내뻗는 레이첼과 대조되는 모습으로 루나는 입술을 비죽거리며 발을 빠르게 허공에 차서 다리에 묻은 썩은 피와 뭉개진 살점을 털어냈다.
* * *
저 멀리서 흔들리던 붉은 머리카락과 하얗고 말랑하게 쳐진 토끼 귀가 시야에서 아예 사라진다.
케인도 이미 빠르게 이동한 지 오래고.
파이얀은 길드 업무가 스트레스 쌓였던지 안개화로 냉큼 스트레스 풀러 언데드가 많은 곳으로 이동했다.
더불어 체이서도 그림자로 사라진 게 내가 안 보일 만큼 먼 곳에서 처리하는 모양이다.
“다들 신났는데, 너희는 안 가도 괜찮아?”
나는 내 조금 앞에서 걷는 리프와 머리 위에 자리 잡은 레비.
그리고 곁에서 활만 몇 번 날리며 느긋하게 나와 보폭을 맞추는 제로를 바라보았다.
―저는 관리자님의 방패입니다.
“저거 냄새나.”
“혹시 모르잖습니까.”
리프와 레비는 그렇다 쳐도 제로 넌 뭐를 모르는데…….
“여기는 우리랑 언데드. 그리고 흑마법사뿐인데 뭐가 문제야.”
내가 코덱스를 열어 스켈레톤 같은 최하급 언데드를 매직 미사일로 부수며 대답했다.
1서클 마법은 마정석만 갈아 끼우면 페이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불어 1서클인 매직 미사일이나 번 같은 마법은 최하급 언데드만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 위험한 건 이미 제로가 보일 때마다 화살로 저격 중이니 상관없는 일이지.
“오.”
드물게 최하급 스켈레톤인데도 불구하고 몸이 벌건 게 화 속성 스켈레톤인가.
저런 건 속성 안 맞추면 못 잡지 보통.
2서클린 아쿠아 애로우는 페이지가 아쉬우니 속성석을 아공간에서 빼내 매직 미사일에 속성을 발라 쏘아내며 입을 열었다.
“아이기스도 있고 난 괜찮으니 오랜만에 놀다 오지 그래.”
내 말에 리프는 고개를 저었고 레비는 냄새난다며 꼬리로 내 등을 촉촉하게 쳐댄다.
그리고 제로는 그냥 순하게 웃었다.
“어차피 곧 끝날 거 같습니다.”
제로가 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작은 동산 만한 어보미네이션이 쓰러지는 중이다.
보이는 곳 가득 찬 언데드들 중 대지를 딛고 서있는 것이 몇 개 없다.
본래라면 산 것을 물어 계속 증식해야 하지만 이곳은 케인의 공간.
몸으로 내뿜는 독기도 나나 위험하지 나 빼고 그 독기를 산소 대신 마셔도 기침 한 번 안 할 놈들뿐이었다.
“그러게 금방 끝나겠는데.”
솔직히 본 드래곤 이런 거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이 쉽다고 떠올린 순간 나는 반성했다.
전쟁 중에 돌아가면 결혼하겠다거나 아니면 해치웠나?
이런 마법의 주문 같은 생각을 내가 하다니!
“감히! 이 버러지들이!”
쇠 긁는 소리.
허공으로 검은 천이 나부끼듯 떠오른다.
아주 먼 곳이지만 내가 있는 곳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구름처럼 뭉게뭉게 솟는 검은 연기가 아주 빠르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저 연기 몸에 안 좋겠지?”
이래서는 오타쿠 실격이다.
그런 대사를 내가 마음속으로 해버리다니…….
물론 영영 실격되긴 싫으니 30초만 자체 실격하기로 마음먹으며 묻자 제로와 리프가 끄덕인다.
“걱정 마, 내가 있잖아.”
맞아 우리 레비. 정화와 회복은 레비가 최고다.
레비가 꼬리를 말랑하게 흔들자 딱 내 몸 주위로만 파란 막 같은 실드가 생겼다.
그리고 그게 만들어지자마자 검은 안개가 우리를 훅 덮는다.
바닥이 갑자기 기분 나쁘게 부드러워진다.
마치 부엽토를 밟은 것처럼 단단하던 흙바닥이 부스러지며 색이 검게 변했다.
동시에 땅에서 노랗게 바랜 색의 손뼈와 썩어가는 살점이, 덜렁거리는 손이 툭 튀어나왔다.
“그어어.”
“그륵…….”
이곳은 만들어진 케인의 세계.
그러니 이미 묻혀있던 시체는 없을 테고.
흑마법사가 마나를 짜내 소환했을 언데드들이 바닥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