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3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37화(337/373)
“감히! 이 버러지들이!”
노기가 섞인 거친 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검은 마나가 마치 바람 부는 산등성이의 안개처럼 밀려온다.
그에 레이첼이 미간을 좁히며 주먹을 칵 움켜쥐었다.
“그런 대사는 드래곤 전용이다!”
어딜 냄새나는 리치 주제에! 어차피 드래곤 미만 모든 종족은 그 종족 평균 한계점이 뚜렷한데.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오만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건 드래곤 정도지!
제법 진지하게 화를 내는 레이첼을 보며 루나가 고개를 두어 번 저었다가 문득 위에서 아래로.
발꿈치로 공간을 내려찍듯 막 달려들던 망령 기사를 갑옷 채로 우그러뜨렸다.
투구가 가슴까지 내려가고 양어깨가 맞닿으며 무릎을 꿇던 그것이 스멀스멀 다시 일어나더니 기괴하게 비틀려 박힌 투구를 움켜쥐고 위로 당기듯 몸을 뺀다.
레이첼도 자신이 주먹으로 머리를 깨부순 것이 마치 시간을 뒤로 당긴 듯 재구성되는 걸 보고 히죽 웃었다.
“이거 일반 리치가 아니구나?”
“또 신나하는 거 봐…….”
루나의 핀잔에도 못 해도 십 년 가까이 아예 몸을 마나 용액에라도 담근 모양인데? 하고 레이첼이 즐겁게 중얼거렸다.
“이 끈적한 마나, 이게 전부 사라질 때까지 신나게 놀 수 있겠어.”
끊임없이 재생할 테니까.
* * *
“아, 이 자식은 푸줏간 그놈 닮았네? 그리고 쟤는 꽃집 그 자식 닮았고. 그리고 또.”
이때 리지랑 같이 왔으면 더 속 시원했을 텐데.
파이얀이 허리춤에서 막대를 꺼내 마나를 밀어 넣자 은은한 보랏빛으로 빛나는 채찍이 길게 늘어졌다.
“오랜만이지만.”
역시 손에 감긴다니까.
아델리안을 처음 만난, 루비라는 이름을 쓸 때는 아직 각성 전이라 무기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말이지.
“요즘은 쓸 일이 없었는데.”
제대로 요마족의 피를 각성하여 어지간한 인간형 적들은 대들지 못하는 데다.
‘리지가 있으니까.’
예쁘게 입힌 옷을 휘날리며 우산으로 개 패듯 패주니 파이얀이 직접 손을 쓸 일이 적었으므로.
하지만 지금은 매료가 통하지 않는, 사고를 할 뇌 따위 썩어 문드러진 언데드들만이 존재한다.
“그러니 오랜만에…….”
스트레스 제대로 풀겠네.
파이얀이 웃으며 손목의 스냅만으로 채찍을 가볍게 휘둘렀다.
본디 미궁 도시에서 초보 탐험자의 뒤통수나 때려가며 살던 파이얀이었다.
선과 악. 둘 중 무엇에 더 가깝냐 하면 악이지.
본질도 봐. 결국 마족의 피를 각성한 것 자체가 그런 의미다.
그런데 아델리안의 명으로 길드는 접수했지만 하는 일이 뒤 세계 길드치고 너무 꽃향기만 났단 말이지.
“이 세계가!”
파앙!
“얼마나 지독한데!”
퍽!
순간적으로 음속을 넘은 채찍이 해골을 부수고 난 다음에야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그것에 걸리면 갑옷은 찢어지고 뼈나 육신이 있는 것은 말 그대로 분쇄가 되었다.
파이얀은 땀도 안 나면서 소매로 이마를 스윽 닦는 척했다.
“보스도 정말 그렇게 물러서 말이야.”
아무리 귀족이라 험한 일을 직접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무르다.
솔직히 지금 아델리안의 주위에 모인 이들의 면면만 봐도 마음만 먹으면 크루거 공국을 세워도 세웠을 인물들인데.
엉뚱하게 파이얀에게 서류의 산이나 세워주고 있으니.
파이얀이 채찍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는데 순간 언데드 마법사가 쏘아낸 불덩이가 파이얀에게로 날아들었다.
그것이 몸에 닿으려는 순간 그 부분만 이지러지듯 흐려지더니 안개로 변해 마법을 통과한 후 다시 또렷해진다.
“이건 턱뼈가 부정 교합인 게 그 시골 영지의 기사 놈을 닮았고…….”
그 자식 덕에 서류 세 장 더 늘었다.
파이얀이 안개화로 거리를 좁혀 채찍으로 언데드 마법사의 턱뼈만 쳐내 가루로 만드는데 순간 으스러지며 날아가던 턱뼈가 다시 붙는다.
그리고 주변에서 방금 전에 채찍으로 살점이 터지고 뼈가 빻아진 언데드들이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에 파이얀이 업무 스트레스를 풀다 말고 어라 하며 웃었다.
“다행이다, 아까 그 자식 닮은 게 손맛이 좋았거든.”
* * *
“정말 고농도의 마나인데요.”
원래도 흑마법사의 마나는 티가 잘난다고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진한 마나가 섞인 안개라니.
체이서는 저 멀리 허공에 둥둥 떠서 뼈로 된 창을 누군가에게 날리는 흑마법사를 응시했다.
제물로 쓸 산 사람이 없는 데다 매개체 또한 완벽하지 않으며 촉매도 부족한데 이 정도 실력이란 말이지.
“과거에 암흑 태양을 띄운 자임은 알고 있었지만.”
오염된 마나 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하급 리치인 줄 알았더니.
리치의 술에 크게 실패하여 그 능력이 절반의 절반, 어떠면 더 이하로 떨어져 버린 하급 리치.
악신교에서도 지식과 흑마나를 다루는 노하우만큼은 진짜라 동맹을 맺었을 뿐 그 본신의 힘엔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의외네요, 이 정도 실력자임을 제가 예전에 알았다면.”
더욱 확실한 지원을 했을 텐데. 이제 마음만큼은 교를 나온 지 오래라.
체이서가 히실히실 웃었다. 아주 즐겁게도 저 리치는 분노 덕에 자멸 중이었다.
이 풍경을 보라.
누군가의 시체도 죽음도 없는 이곳에서 수없이 재생되는 저 언데드들을.
이건 저 리치가 오염된 마나 샘에서 아주 공들여 삼킨 마나를 얼마나 허무하게 흩어내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저야 좋지만요.”
체이서가 웃으며 자신의 스태프를 바닥에 박은 뒤 늘어진 그림자를 넝쿨처럼 꼬아 만든 것 위에 앉아서 중얼거렸다.
“언데드야 다른 분들이 처리해주실 테고.”
스태프 끝에 박힌, 검은 크리스탈을 깎아 만든 뱀 머리에 자신의 옆머리를 기댄 채 체이서가 검은 눈으로 배회하는 망자들을 흘긋였다.
저것들은 본능적으로 산자를 쫓는다.
그 말인즉슨 죽음에 가까운 기운을 두르면 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소리.
마법의 시전자가 직접 조작하면 모를까 이런 외각까지 저 리치가 눈여겨볼 리 없지.
체이서는 팔짱을 낀 그대로 크리스탈로 된 뱀 머리에 옆머리를 비볐다.
“이 김에 저는 마나나 흡수해야겠네요.”
뭐 주인께는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언데드들을 잡았다고 하면 될 테고.
“사실 굳이 제가 거들지 않아도 상관없으니까.”
이 넓고 적막한 대지에서 지켜야 할 사람은 단 하나뿐인지라.
굳이 인력을 과잉 투여할 필요 있을까요?
체이서가 허공에서 살짝 손을 움직였다.
마치 더운 물이 가득 찬 욕조를 한번 휘젓듯.
그 손에 따라 어둠의 마나들이 일렁거렸다.
그것을 체이서가 자신의 그림자로 흡수하며 낮게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 *
“감히, 네가 나를 능멸하는구나.”
죽음으로 갚으리니.
하얀 손뼈가 움직이는 곳으로 뼈 창이 수십 대의 발리스타를 쏜 것처럼 날아든다.
그것을 하나하나 쳐내거나 피하는 대신 케인은 스카를 철퇴의 모양으로 바꿔 날아오는 것을 바스러트렸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어지간한 철로 된 창보다도 강한 본 스피어들이 삶은 닭 뼈처럼 날카롭게 터져나간다.
주위에 케인 외의 다른 동료가 있었다면 그 파편 하나에만 찔려도 금세 시독과 부패독으로 쓰러졌을 터.
하지만 케인 주변에는 뭉개졌다 다시 일어나는 좀비 골렘만이 존재할 뿐.
그에 흑마법사가 노여움이 섞인 소리를 클클 흘렸다.
본디 언데드, 그리고 흑마법사의 싸움이란 그러했다.
살아있기에 불리하고 의지하는 동료가 있으면 더욱 불리해야 할 싸움.
하지만 그것을 정확히 되받아치듯 케인의 주변엔 그를 발목 잡을 동료가 없다.
멀리 하나씩 따로 떨어져 흑마법사 자신의 전력을 갉아먹는 기생충들만 있을 뿐.
더불어 그 기생충들조차 케인의 곁에 있다 한들 발목을 잡을 무능한 것들은 아니었으나 이상하게도 케인을 당장 도울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케인을 보조할 그 흔한 원소 마법사 하나 없다면 허공에 떠 있는 자신을 상대하는 힘이 반감될 터.
기사, 혹은 검을 든 자.
그것이 아니라면 무기를 손에 쥐거나 몸 자체가 무기인 자들.
오러를 쓰는 이들의 가장 약점이란 공격 범위 아니겠는가.
오러를 방출한다고 해도 그것의 속도는 한정되어 있으며 또한 지금처럼 언데드들이 난무하는 대지 위에서 안정적으로 쏘아내기는 힘든 일.
결국 케인과 자신과의 독대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케인을 죽이고 저 육신을 되살린다면 이 허구의 세계가 깨지며 테이트리아의 수도를 덮칠 수 있을 터.
“너에게는 날개가 없고.”
나에겐 자비가 없으니.
흑마법사는 허공에 떠 뼈의 창과 부식의 화살로 케인을 견제함과 동시에 마법을 영창했다.
‘이건…….’
케인이 미간을 잠시 좁혔다.
발끝에 닿는 지면이 무르다.
원래도 부패된 흙 덕에 뭉그러지는 대지였으나 그보다 한 겹 더 질척해진다.
케인은 반사적으로 뛰어올라 언데드들의 머리와 어깨를 밟으며 움직였다.
반경 수십 미터에 달하는 대지가 검녹색 진흙이 오르더니 독의 늪으로 변한다.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가 올라왔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한 모금 들이마시는 순간 폐가 아닌 코 자체가 녹아내렸을 정도로 강한 독기.
그 늪에서 녹고 바스러지다 재생하는 언데드들 덕에 바닥이 곤죽이 되어간다.
케인은 자신을 향해 휘두르는 검을 쥐어 당겼다.
그 검을 잡은 팔뼈 채로 뜯어낸 뒤 스카를 활대의 모양으로 변형해 검을 화살처럼 리치에게 쏘아내며 움직였다.
마음 같아선 오러를 실어 날리고 싶지만 너무 강한 오러는 케인이 따로 분리한 이 공간을 상하게 할 터.
드래곤들과의 전투 덕에 몸을 이용하는 것 자체는 늘었으나 검에 실어 휘두르는 게 아닌 원거리로 내뿜는 힘의 출력을 조정하는 것은 아직 익숙지 못했다.
어차피 아무리 먼 곳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허공에 있더라도 박차고 오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 공간에 케인과 리치뿐만이 아닌 다른 이들도 존재한다.
드래곤들과 싸울 때처럼 움직이면 땅이 갈라지고 산이 무너지며 무심코 휘두른 오러가 동료가 있는 곳까지 날아갈 수밖에 없는 일.
대지를 박차고 오르는 것 또한 이렇게 무르게 변한 곳에서 잘못 힘주어 허공으로 솟으면 땅이 어찌 될지 모르니.
케인은 허공에 떠있는 리치를 바라보았다.
리치와 자신과의 사이로 산성을 띈 구름이 서서히 형성된다. 그것이 떨구는 부식의 비를 오러로 막으며 케인은 생각했다.
케인 자신에게 날개가 달리지 않는 한 리치와의 거리를 급격히 좁힐 수는 없다.
오러를 날개처럼 이용하는 건 본디 날개라는 기관이 없는 인간이 하기는 힘든 일.
‘그렇다면 리치를 바닥으로 당기는 것은.’
케인은 산성 구름을 가르고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뼈로된 화살을 쳐내며 황금색 눈동자로 리치를 응시했다.
지금 자신이 다루는 힘은 가낙스가 넘긴 시공간이라는 트레잇.
시간과 공간.
그 힘 덕에 이 세계는 케인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공간이며 더불어 밖과 시간 또한 다르게 흐를 수 있다.
즉 이곳은 케인이 지배하는 세계.
원한다면 생명을 틔울 수도 비를 내릴 수도 있는 또 다른 세상.
물론 그리하기엔 엄청난 노력과 마나. 그리고 재능이란 이름의 기적이 필요하겠지만.
케인은 케인이니까.
당장 필요한 것은 생명도 아니요 내릴 비나 부는 바람도 아닌.
리치와 자신의 거리를, 공간을 좁힐 힘.
케인은 즉석에서 자신이 공간을 얼마나 다룰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검을 허공으로 찔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