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39)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39화(339/373)
흑마법사가 소멸한 후, 케인이 공간격리를 푼 것인지 살짝 세계가 일렁거리는 느낌이 드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저택 앞에 서있었다.
마법으로 애들의 몸에 묻은 좀비 체액이나 오물을 지워서 다행이지…….
아니면 썩은 내로 저택이 진동했겠는데.
“밖을 보니 예상한 것보다 시간이 많이 안 지났어.”
루나가 레비를 주물거리며 하는 말에 창가를 보니 이제 해가 뜨는 듯 민트색에 푸른 물감 조금 섞은 색채가 번지고 있다.
흑마법사의 기운을 느끼고 레이첼이 신나 했던 게 늦은 밤이니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은 셈.
아주 먼 곳에서 회색 연기가 곳곳에 피어오르는 걸 보니 케인의 공간격리에 다 들어가지 않은 언데드들을 누군가 잡은 뒤 태우는 모양.
밖으로 들리는 큰 소란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전부 처리가 된 거 같았다.
하긴 수도에 기어 나오려던 언데드 대부분은 우리가 케인의 공간 안에서 차치했으니 남은 것들은 많지 않았겠지.
“아. 움직였더니 배고프다.”
그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움직인 탓인지 레이첼이 할 법한 말을 파이얀이 하는 걸 보니 많이 배고프긴 한 모양이다.
‘좀 출출하긴 하네.’
개중 제일 평화로웠던 나도 살짝 허기가 느껴진 덕에 아까 생각한 메뉴를 제로에게 슬쩍 귀띔했다.
“아, 그럼 씻고 나오실 동안 전 아침 준비하겠습니다.”
마법으로 깨끗하게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씻는 건 또 기분이 다른지라. 그것을 핑계로 제로가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벌어 주방으로 들어간다.
“오늘까지는 제로가 해주는 밥 먹고 내일은 온천 특식에.”
술까지 딱.
레이첼이 잔을 꺾는 시늉을 하며 루나가 주무르던 레비를 손아귀로 움켜쥔다.
“싫어어…….”
“왜, 둥둥 해줄게. 둥둥.”
같이 씻자면서 가는데 레비가 싫다며 버둥거려도 안 놓는 걸 보니 많이 친해 보이네.
흐뭇한 마음으로 나도 씻고 나오니 맛있는 냄새가 난다.
“빵은 미리 만들어둔 게 있어서.”
금방하고 저도 씻었죠, 하며 제로가 방금 짠 자몽주스와 음식을 내려놓는데 루나가 입을 열었다.
“그러구 보니 남해에서 수영두 하구 수도에서 축제도 보구.”
겨울이 다 되어 북부에서 온천이라니 봄에 꽃놀이도 해보고 싶단 말에 내가 웃었다.
“그때는 라베스로 가면 되겠네.”
라베스의 호숫가에 분명 벚꽃 비슷한 꽃나무가 군집을 이루어 형성되어 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제법 이벤트 같은 이벤트를 챙기긴 했네. 어영부영.’
해변가나 축제, 불꽃놀이나 이번의 온천 같은?
서브컬쳐에서 챙기는 이벤트는 아무래도 비슷한 게 많을 수밖에 없다.
게임이건 소설이건 혹은 다른 무어라도.
‘계절 이벤트는 놓치면 아깝지.’
게임에 따라 다르겠지만 온라인이라면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 혹은 명절도 있을 법하고.
패키지 게임에서, 그것도 호감도나 연애라는 요소가 있는 게임에서 제일 자주 나오는 건 아무래도 바닷가나 축제. 온천 같은 거니까.
‘수영복이 있다는 게 좀 의외긴 했어.’
물론 저번에 남해 군도에 갔을 때 즐긴 물놀이에서도 우리 파티는 수영복을 입진 않았다.
그냥 편한 옷 입고 수영했지. 다들 옷으로 생기는 물의 저항 따위 의미 없는 몸들이라.
‘지금 중요한 건 수영복이 아니지.’
하여간 온천이라는 이벤트도 생겼겠다.
아까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는 동안 은근슬쩍 가디아도 부르려 했는데… 아주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나보고 지금 그리 친하지 않은 네 동료들과 옷을 벗고 더운물에 들어가라는 소리인가?’
세이렌으로 저렇게 말하는데 딱히 부정할 말이 없었다.
그 기억에 조금 슬픈 얼굴로 제로가 만들어준 베이컨 토마토 에그 머핀을 한입 베어 무는데 마카롱도 아니고 그걸 한입에 넣은 레이첼이 입을 열었다.
“쟤 아까 언데드 독 먹었어?”
“아니!”
레이첼의 의심에 레비가 자신을 뭐로 보냐는 듯 의자에서 일어나 통통한 배를 내밀며 대답하자 파이얀이 그 배를 챱챱 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얼굴이 저래.”
리치도 소멸시켰겠다 이제 며칠은 놀아도 되는데, 하며 레이첼이 자신의 앞에 쌓여있던 베이컨 머핀을 다 먹어 치운 뒤 입맛을 다셨다.
슬금 손을 레비의 접시로 뻗다가 찹 하고 레비가 통통한 손으로 제재하자 아쉬운 얼굴로 손을 거둔다.
그 모습에 제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부엌으로 가 음식을 더 가져 나왔다.
“한 번에 주지!”
“놓을 공간이 없어요, 후배님.”
나는 알콩달콩 사이가 좋은 그 모습을 보다가 안 잘리고 길게 늘어나는 베이컨을 그냥 통째로 입에 넣고 씹었다.
“숙소는 초대해 준 게드만 대공이 제공한다고 했고.”
빈손으로 가긴 뭐한데 뭘 사 들고 가야 하나?
잠시 궁리하는데 리프가 날 바라보더니 물었다.
―그런데 관리자님. 정말 따로 온천욕 합니까?
아까 하루 정도는 각자 온천 즐기고 나중에 만나는 게 어떻냐는 말을 했더니 의아한 듯 묻는 얼굴에 나 또한 의아한 눈으로 응시했다.
“맞아요. 도련님. 심심하잖아요.”
루나까지? 뭐, 그럼 우리가 다 같이 모여서 온천에 들어가자는 소리인가.
나는 밥 먹다 말고 무슨 소릴 하냐는 듯 시선을 흘렸다.
내 지금은 머리카락이 금발이지만 원래는 검정색이다.
유교의 향기가 묻은 나에게 무슨 저런 망측한 소릴?
“그럼 네가 내 등 밀어주게?”
내가 장난스레 말하니 루나가 원래 저택에서 메이드 했을 때 순번제로 목욕 준비해드렸단 말에 내가 어? 하고 멈칫했다.
그래도 지금은 안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니 레이첼이 씩 웃으며 허공에서 무언가를 박박 미는 시늉을 하는데.
“내가 해줄게, 내가.”
부끄러우면 뭐 잠깐 인간 남성으로 폴리모프 하는 게 아마 가능할 거라며 누가 봐도 이상한 소리를 했다.
레이첼에게 걸리면 박피가 될지도 모른다. 어이가 없어 대답도 하지 않고 시선을 돌리는데 이번엔 파이얀이 말을 이었다.
“다 같이 놀아야 재미있지. 보스.”
“어차피 옷 입으면 되는 거죠.”
체이서도 슬쩍 거드는데.
아니, 온천하면 뜨끈하고 시원하게 몸 좀 물에 불리고 지지면서 하루를 마치고 시원한 주스나 한잔 마시고 혈액순환 잘 된 몸으로 깨끗한 침구에 들어가 한숨 푹 자야 하는 거 아닌가?
여긴 달랐나?
나는 잠시 강수호로서의 기억은 접어두고 아델리안으로 지낼 때의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아니, 술도 좀 다 같이 마시고 어? 게임도 하고. 그러다 지는 놈은 머리부터 들어가게 하고.”
레이첼이 제로의 빵에서 베이컨만 빼먹으며 하는 말에 내 눈치를 보던 제로가 입을 열었다.
“온천으로 놀러 가자고 하셔서 미리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말입니다.”
북부는 워낙 척박한데다 온천 외의 더운물을 구하려면 땔감을 많이 써야 하니 몸을 녹이기 위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옷 입고 온천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답니다.
대신 젖은 옷을 차가운 곳에서 오래 입고 있으면 오히려 몸을 데우지 않는 것보다 못하니 온천에서 나오면 탈의실에서 빨리 갈아입는답니다.
하면서 조금 눈을 빛내는데 파이얀이 다시 슬쩍 거둔다.
“솔직히 보스가 돈도 많고 생활 마법을 아티팩트로라도 쓸 줄 아니까 안 익숙하겠지만.”
보통 용병이나 모험가들은 오히려 남녀가 구분된 욕탕이 낯설다며.
피 묻고 내장 묻은 몸 급하게 냇가에서 빨아야 하는데 그런 게 보이겠냐고 하는데 제로의 눈이 더 빛난다.
‘아… 이거.’
알겠다. 일단 대충 알겠네.
눈치를 보아하니 제로는 원래 모험가나 이런 것에 로망이 있어서 뭔가 다 같이 으쌰으쌰 씻고 술 마시고 이런 게 해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리고 파이얀과 레이첼은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같은데.
보나 마나 장난치려는 의도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크게 나쁜 의미는 아닐 테니까.
나는 자몽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가볍게 한 손을 들었다.
“다 같이 놀자는 사람. 손.”
당연히 케인은 안 들고, 의외로 루나는 든다. 소심함이 이젠 절대 보이지 않아서 뿌듯하긴 했다.
어디 보자… 제로와 리프에 레이첼이랑 레비…….
둘러보니 손을 안 든 건 나와 케인뿐이다.
“사실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긴 한데.”
손을 들어야 이분들에게 미움을 좀 덜 받을 거 같아서 하며 체이서가 히죽거렸다.
나에게 미움받으리란 생각은 안 해? 어?
물론 아델리안으로 산 기억이 있으니 귀족의 목욕 시중은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고 당번제로 하는 데다 이 세계가 지구랑 다르다 보니 이런 문제에서 기준이 느슨한 건 알지만.
나는 탄식하다가 문득 케인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야 강수호로 연애도 해봤고 루나는 남자 형제를 씻겨준 적도 있다.
제로는 다른 도플갱어 중 여자도 있는 데다 기억 공유도 받는 거 같으니까 넘어가고 리프는 골렘이라 넘어가자.
레비도 저렇게 봐도 이 중에서 레이첼과 비견되는 연장자에 파이얀과 체이서는 뭐 말할 필요도 없지.
그런데 케인 어쩌지.
자라나는 미래의 구원자에게 그런 자극적인 이벤트가 있어도 되는 건가.
갓 성인인데?
내가 의심스럽게 케인을 바라보는데 케인이 턱을 괴고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어 그래…….
* * *
“소화 잘되는 포션 주고 왔어?”
파이얀의 물음에 리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이야 식사를 하자마자 왼쪽으로 누워 자건 오른쪽으로 누워 자건 상관없는 몸이지만 아델리안은 아니니까.
혹시 몰라 됐다고 하는 걸 억지로 먹이고 왔다는 리프의 메모에 파이얀이 끄덕거린 후 입을 열었다.
“이번에 온천에 들어가면 잘 봐야겠어.”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하고 파이얀이 웃으니 리프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요즘 내가 새로운 사업을 기획 중이니까, 하며 파이얀이 청금색 눈동자를 빛냈다.
아델리안이 마약이나 노예 매매 고금리 사채나 살인 청부 등등으로 돈 버는 걸 싫어하니 어쩔 수 없다.
다른 것으로 메워야지.
물론 사실상 파이얀의 길드는 아델리안을 위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유지하는 거니 돈을 굳이 벌지 않아도 된다.
크루거 가문에서 지원받으면 되니까.
하지만 월급쟁이보다 내가 벌어 내가 사업에 투자하고 굴리는 게 더 재미있는 법 아닌가.
“요즘 저렴한 물감과 잉크 조합이 발견되어서 초상화나 삽화가 유행이거든.”
솔직히 이 파티만큼 외모와 신체가 뛰어난 모델은 드무니까 하며 파이얀이 중얼거리는데 루나도 입을 열었다.
“더불어 도련님의 몸도 좀 확인해야 하구.”
옷을 입어도 얼추 감이 오긴 하지만 근육은 원래 직접 눈으로 보는 게 제일 정확하니까.
케인 따라서 운동은 종종 하시는데 식단을 제로랑 같이 어떻게 더 짜야 할지 광배를 늘려야 하나 활배를 늘리는 운동을 짜야 하나, 하며 중얼거렸다.
파이얀은 그림의 모델과 소스를 얻기 위해. 루나는 아델리안의 식단과 운동강도를 가늠하기 위해.
그 둘을 보다가 레이첼이 입맛을 다셨다.
“원래 술은 다 같이 마셔야 해.”
더불어 뜨끈한 데서 마시면 적은 양으로도 잘 취한다.
“이번에 오러나 마나 돌리며 마시기 없기로 하자.”
자고로 한 파티라 하면 술주정이 뭔지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 법.
누군가 한번 위장을 거꾸로 쥐어짜는 걸 보겠다는 표정으로 레이첼이 웃었다.
“술이 그렇게 맛있어?”
케이크보다?
그런 셋을 보던 레비가 쿠키를 녹여 먹으며 묻는 말에 레이첼이 대답했다.
“어린이는 몰라도 돼.”
“나 어린이 아닌데.”
레이첼은 자신과 거의 또래인 레비를 잠깐 바라보다가 통통한 머리를 꾸욱 눌렀다.
“성인식 아직 안 치렀잖아.”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데!”
필요한 만큼의 마나를 아델리안이 준 마정석으로 채운 덕에 당장에라도 가능하다는 듯 레비가 꼬리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