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4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40화(340/373)
북부의 끝자락엔 북해가 있다.
너무 추운 곳이라 인어족은 거의 없고 몬스터도 적긴 하지만 한둘 있는 몬스터가 굉장히 강하다고 했던가.
‘뭐 그래도 잠깐이라면 괜찮을 테니까.’
나는 아공간에 있을 폭풍우의 구슬을 떠올렸다.
‘가디아가 구해준 덕에 잘됐어.’
확실히 속성 비보는 체이서까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이들을 붙여서 그런지 회수에 한참 걸렸다.
정 힘들면 그냥 파괴하라고 말을 전했는데 운이 좋았지.
덕분에 레비가 일반적인 각성이 아닌 제대로 각성할 수 있을 테니까.
‘더불어 살아 있는 신을 만날 무대도 준비해야 하니까.’
나는 깃펜으로 무언가를 적으며 정리하다 문득 손을 내려보았다.
만약 볼펜이면 좀 똑딱거리는 맛이라도 있을 텐데.
엄지로 깃펜의 깃을 쓰니 부드럽다.
갑자기 집중이 안 되는 이유야 분명하다.
살아 있는 신.
저번 온실에서 잠깐 마주쳤을 때 유난히 내가 동요한 것도 그렇고.
사용자의 눈이 통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부유감도 먹통이 되는 것 같단 말이지.’
지금까지 사용자의 눈이 통하지 않은 적은 단 두 번뿐이다.
레이첼과 살아 있는 신.
레이첼은 아마도 나에게 사용자의 눈을 준 주체라서 그렇지 않나 하고 여기는 중이고.
살아 있는 신은 레이첼의 힘을 넘어선 존재라서 안 먹히는 건가 싶긴 하다.
다른 신들은 만나본 적 없지만 비슷하게 안 보이지 않을까 싶긴 한데.
‘문제는 부유감이지.’
사용자의 눈은 레이첼에게 통하지 않지만 부유감은 통한다.
그게 아니라면 레이첼의 매력 트레잇을 단 한 번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부유감이 통하니 지금 내 눈앞에 레이첼이 벗고 나온다고 해도 생닭 보는 얼굴로 옷을 입혀줄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살아 있는 신 같은 경우 부유감도 통하지 않는다.
‘저번엔 준비하지도 못한 채 맞닥뜨린데다가 바로 본체를 본 게 유효한 거 같긴 한데.’
나는 턱을 괴고 종이에 적은 살아 있는 신과 셰인의 이름에 번갈아 동그라미를 쳤다.
나와 체이서가 구상한 일에 따르면 이번 북부에서 만날 살아 있는 신은 셰인의 몸에 들어가 있는 상태일 것이다.
그때도 상태창과 부유감이 무의미할까?
‘확률은 반반 정도.’
나는 잠시 생각하다 깃펜과 종이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부유감만 너무 믿고 있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일종의 편법 같은 거니까.
다른 이들은 부유감 같은 거 없이 이곳에서 살아가는데.
지금까지 덕 보며 왔으면 그것으로 이득이라 여겨야지 편법이 통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법이다.
“…뭐 쫄기 밖에 더하겠어?”
꼴사납게 기절 같은 것만 하지 말자.
우리가 살아 있는 신에게 크게 엿 먹이려고 북부에서 준비하는 중이니까.
* * *
파이얀은 무화과를 한입 베어 물다 말고 자신의 방에 노크하고 들어온 케인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케인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머릿속에 든 거라곤 강해지는 거나 수련이나 뭐 그런 거 외엔 없을 녀석인데. 그렇다고 파이얀 자신과 대련하기엔 이미 격차가 너무 나니까.
‘그러니 겨루기나 한 판 하자고 온 건 아닐 테고.’
파이얀은 살짝 눈 휘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다른 이들에겐 머리 굴려도 저 케인에겐 그냥 이게 낫지.
케인은 파이얀이 예상한 대로 쉽게 입을 열었다.
“물어볼 게 있다.”
“네가? 나에게?”
파이얀은 먹던 무화과를 잠시 접시에 내려놓으며 한쪽에 놓인 소파를 눈짓했다.
“긴 이야기라면 앉아서 하고.”
“짧지는 않을 것 같군.”
케인의 말에 파이얀은 몸을 들어 케인의 반대편에 앉았다.
“뭐가 그리 궁금해?”
내 신체 사이즈? 하며 장난스레 말하며 파이얀은 웃었다.
이걸 아델리안이 봤다면 재미있어했으리라.
“새벽이라는 암시장에서 통용된다지. 소울이라는 것.”
이번에 아델리안이 사용해 읽지 못하던 책을 읽게 된 수단과 방법.
소울과 기적.
“그거? 나보다는 보스에게 묻는 게 낫지 않아?”
아니면 하다못해 소울 벌이를 오래 한 루나와 리프, 레이첼에게 묻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 하는 말에 케인이 황금색 눈동자로 응시했다.
“당분간 아델리안의 귀에 들어갈 일 없으면 하니까.”
아아, 그렇지. 루나와 리프는 아델리안의 메이드이자 소속된 골렘이니 비밀을 거의 만들지 않으니까.
더불어 레이첼은 자신도 모르게 다 있는 곳에서 입에 올릴지도 모른다.
멍청하거나 바보라서가 아니라 드래곤은 스케일 자체가 너무 커서 어지간한 일은 비밀스럽고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을 수 있기에.
“더불어 당장 해답을 모른다 하더라도 넌 알아볼 수 있을 테니.”
케인이 덧붙인 말에 파이얀이 끄덕였다.
“좋아. 일단 말해봐.”
정 안되면 새벽에 심은 사람들을 통해 알아봐 줄 테니.
하는 말에 케인이 입을 열었다.
“만약, 우리 파티를 포함해서 꽤 많은 이들이 간절하게.”
약 10년 정도 소울을 모은다면 어떤 소원까지 빌 수 있을까.
케인의 질문에 파이얀은 청금색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그런 질문을?”
그러며 뒤로 몸을 기대 다리를 꼬아 앉아선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였다.
“흐음, 흐응…….”
이런 파티에 더불어 추가되는 인원이라.
“추가되는 인원을 생각하자면 얼마나?”
파이얀의 말에 케인은 숙고 없이 대답했다.
“많아도 1만 명 이하.”
‘대답이 빠른데.’
파이얀은 모른 체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만약에 게임이라도 하는 거야?”
케인이 먼저 꺼낼만한 말장난은 아니지만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게임이다.
사실상 긴 밤 혹은 긴 이동 중에 대화거리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것도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이들이라면 사생활이나 과거까지 탈탈 긁어낸 파티도 다반사.
보통 그때나 아니면 급조한 파티라도 더이상 대화거리가 없을 때 자주 나오곤 했다.
만약에 말이야.
오크 1마리와 고블린 10마리가 싸운다면?
만약에 뿔토끼 100마리와 사슴 10마리가 동시에 풀을 뜯는다면 어느 쪽이 더 많이 먹을까?
같은 시간 보내기식 잡담.
“그런 거라고 해두지.”
하지만 저 케인이 갑자기 농담 따먹기나 할 리는 없지.
파이얀이 느리게 웃었다.
“그들의 경지나 뭐 그런 건 어찌 돼?”
파이얀은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물은 뒤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10년간 1만 명 이상이 시작해서 마지막 해는 3천 명 이하로 줄어드는 것을 가정하고.”
경지는 못 해도 전부 오러 유저 이상.
그중 상위 10% 정도는 마스터에 근접하거나 마스터가 되었을 것이고.
개중 스무 명 안팎으로는 아주 강한 이들이 있었을 것.
더불어 10년 가까이 소울을 모아야 하는데.
“지금같이 단순하게 누군가의 의뢰를 받는 건 아니다?”
“일상적인 의뢰는 없을 것이다.”
“뭐 망해버린 세상이야? 신전이 주는 특수 의뢰가 주로 나오면?”
파이얀은 흔들림 없는 황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케인이 다 짐작하고 묻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질문들을 하면 파이얀 자신이 머리를 굴려 많은 생각을 할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묻는다는 건 확실하게 알고 싶은 게 있다는 것.
“좋아. 다 상정하고 생각해볼게.”
소울에 대한 거라면, 사실 직접 소울 벌이를 진행한 루나 파티나 아델리안 보다도 파이얀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자신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바사하의 높은 신관 정도겠지.
아델리안이 소울에 희망을 걸고 모으라 할 때 정보 길드를 맡은 자신이 뭘 했겠는가.
애초에 아델리안도 자신에게 소울로 이룬 기적들의 사례를 알아 오도록 부탁했었는데.
“소울을 모으는 이유는 기적을 사려는 거겠지?”
그만큼 비싼 건 그것뿐이니까.
문제는 이번 아델리안을 봐서 알겠지만 작정하고 모으자면 1년도 안 되어 어느 정도 급이 되는 기적은 가능하다는 거다.
그런데 한 달, 두 달도 아닌 시간 동안 기적을 위한 소울을 모은다?
“10년이면 제법 긴 시간이야.”
장수종에게는 별 것 아닌 시간이라 하더라도.
절박함을 이불 삼아 덮고 살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그 세월을 모아서 이룰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적이라면. 글쎄.
10년씩이나 모은 소울을 한방에 터는 기적이라.
애초에 정확히 어떤 소원에 소울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모른다.
“내가 생각하건데 꽤 초기에 소울을 한번 썼을 거야.”
파이얀은 생각을 정리한 듯 입을 열며 테이블을 손으로 톡톡 쳤다.
“원하는 기적을 이루기 위한 소울의 양을 알려달라는 기적을 한번 살 거 같거든.”
아델리안 때를 생각하자면 기적에는 정확한 가격이 없다.
같은 소원이라도 사람에 따라 소울이 소모되는 양이 달랐으므로.
그러니 이번에 아델리안도 그냥 최대한 많이 모아서 질러보자는 식으로 모으지 않았나.
그런데 10년을 그런 식으로 허비할 수는 없다. 해서도 안 되고.
만약 10년을 모아서 빌었는데 불발하면?
다시 10년을 같은 간절함으로 모을 수 있을까? 그때는 10년이 아니라 20년 30년.
얼마나 더 모아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그 소원을 이루는 기적에 필요한 양을 어떤 식으로건 확인해야 해.”
정확하게는 아니라도 얼추라도 알려주는 정도의 기적이라면 참여하는 인원을 생각했을 때 10년의 초반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걸 바탕으로 10년 정도 모은 걸 거야.”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도 같아서 당연히 갈수록 해이해지기 마련.
그러니 기간이 아닌 가시적인 무언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거까진 뭔지 짐작 안 되고 중요한 게 아니지만 결론은 이것이었다.
“그 소원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우리도 비슷하게 그 소원을 이루어줄 기적에 필요한 소울을 알려달라고 하지 않는 한.”
케인이 물은 것의 답이 나오진 않을 거란 말에 케인이 잠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만약.”
아델리안을 내가 없애겠다고 한다면 넌 어찌할 생각이지?
케인의 물음에 파이얀의 눈이 가늘어졌다.
케인의 저 잘난 얼굴이 어쩐지 오늘따라 더 선명하다.
파이얀이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짐작하고 있으면서 나한테 왜 물어.”
케인은 저래보아도 누구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다.
파이얀 자신도 잔머리야 나쁘지 않지만, 케인은 다 알면서 굳이 티 내지 않는 사람에 가깝다.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물을 필요가 없단 소리였다.
어차피 자신이 말한 결론은 혼자도 냈으니까.
다만 자신에게 물은 건.
“중립적인 입장을 알고 싶었으니까.”
요컨대 그거였다. 보통 케인은 감정을 배제하여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하니까.
예를 들면 아무도 모르는 사람과 물에 빠졌는데 둘 다 수영을 할 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보다 힘이 강하다면?
보통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발판삼아 올라서서 숨을 쉬려고 들진 않겠지만.
케인은 상황에 따라 효율적으로 그게 필요하다 판단되면 그리할 녀석이니까.
사고방식이 조금 다르니 혹시나 하고 교차검증한 것이리라.
케인이 갑자기 아델리안을 없애겠다 운운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그게 케인이 원하는 목적에 효율적이라는 것.
그리고 아마도 명백하게.
그게 더 아델리안에게 이득이 될 확률이 높겠지만.
“난 보스랑 계약했지 너랑 한 게 아닌데?”
아델리안을 케인이 탐탁지 않게 여겼다면 신의 계약서로 계약했다 하더라도 이미 따로 움직였을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함께 온 것만으로도 강제력 없는 동행이란 소리.
그런데 갑자기 아델리안을 없앤다라.
“그럼 이 파티가 존재할 리도 없고.”
다 하나씩 모난 구석이 있는 데다 친하긴 하더라도 굳이 한 파티로 뭉쳐 다닐 단 하나의 목적은 없는 셈이다.
그걸 케인도 알면서 저런 말을 하는 건.
“보스가 일반인치고 험한 일에 자꾸 끼긴 해.”
사실 흑마법사와 언데드와 마주한 것도 그렇지 않은가.
파이얀의 말에 케인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이젠 집에 가고 싶어 할지도 모르지.”
어조로 미루어 보아 당장 할 생각은 아닌 거 같지만 언젠가 아델리안이 집에 가고 싶다고 여기면 당장 라베스로 보내버릴 거 같다.
하지만 그랬다간 냉큼 돌아온 아델리안이 케인의 목을 조르는 장면을 볼지도 모른다.
파이얀이 유쾌하게 웃었다.
“이길 자신 있어?”
케인 멋대로 아델리안을 포탈 태워 보냈다가 뒷감당할 자신 있냐는 듯 파이얀이 묻자 케인이 드물게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