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44)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44화(344/373)
마땅히 그러해야 할 기분이 들었다.
그런 직감은 신을 모시는 자에겐 흔한 일이 아니었다.
본디 내가 타고난 운명과도 같은 느낌.
양면의 신, 바사하의 성녀인 에리엘은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길 선택했다.
다른 신전에서 무슨 행사라도 하는지 연락이 되지 않는 대신관에게는 암구어로 당분간 자리를 비울 것이라는 연락 하나만을 남기고.
자신을 찾아온 운명의 신 르웰르의 성녀 마리안느를 따라 점점 북으로 북으로.
원래도 차가운 바람이 불었던 수도 테이트리아보다도 더욱 거친 바람이 스치는 땅을 내디뎠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뱉으니 하얗게 입김이 피어난다.
워프 게이트가 설치된 곳 중 가장 추운 곳. 그리고 거기서 추위에 강하다는 긴털 눈양을 타고 한참이나 더 올라갔음에도 마리안느는 도착했다 이르지 않았다.
조그마한 마을이나 하다못해 사람이 사는 모습은커녕.
짐승의 흔적조차 하루걸러 한 번 보게 될 때쯤.
희고 긴 털이 난 눈양조차 추위에 얼어붙을 지경이었고 거기에서 마리안느와 에리엘은 눈양의 고삐를 풀어준 뒤 짐을 메고 걷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 도대체 무슨 볼일이 있는 거죠?”
성녀라서 주어진 신의 은총이 아니었다면 가진 신성력을 전부 체온을 유지하는 데 소모하다 쓰러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혹독한 땅.
몬스터조차 이제 다가오지 않는 곳을 바라보다 너무 얼어 돌덩이나 다름없는 땅을 딛어 걸으며 에리엘이 묻자 마리안느가 털이 난 모자를 더욱 동여맨 뒤 입을 열었다.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일들을 지금까지 많이 겪어 왔기에.
“이유가 있고 근거가 있으며 확신이 있는 일은.”
사람의 일이죠.
신께서 바라시는 일은 명확한 이유도 확실한 근거도 선명한 확신도 없는 주지 않는답니다.
마리안느의 말에 에리엘이 밖으로 삐져나와 점점 얼어붙던 머리칼을 옷 안으로 다시 밀어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죠…….”
사실 에리엘도 알고는 있었다. 잠을 자면 결국 깨듯.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게 되고 목이 마르면 마실 것을 찾게 되듯이.
그냥 북으로, 북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 의지가 있었음을.
다만 명확한 지점도 시간도 알 수 없이 이 척박한 대지를 온종일 걷는 것이 지루하다 보니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사실… 좀 더 쉽고 편하게 가는 방법도 있긴 했었어요.”
마리안느가 몸에 딱 붙여 지니고 있은 덕에 얼지 않은 수통을 기울여 물을 마시며 말했다.
“그림자를 타고 눈을 한번 깜빡하면 어느새 도착해있는.”
그런 길을 택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며 마리안느는 오늘은 이곳에서 쉬어가자는 듯 익숙하게 바람을 막아주는 텐트와 모닥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리엘도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그 모닥불 위에 솥을 걸고 곳곳에 쌓인 눈을 가져와 녹이기 시작했다.
더운 김이 올라오는 눈 녹은 물에 옥수수 가루 한 봉지와 다져서 말린 베리 한 웅큼과 육포 가루를 지방에 섞어 굳힌 페미컨을 넣은 뒤, 둘은 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하지만 그 길을 선택했다면 우리는 이런 풍경을 보진 못했을 테니까.”
마리안느가 솥 안에서 끓기 시작하는 걸죽한 것에서 시선을 뗀 뒤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우아했으며 녹색과 푸른색, 흰색과 붉은색의 빛이 마치 커튼처럼 내려와 흔들렸다.
그 황홀한 모습에 에리엘도 고개 올려 멍하니 바라보다가 느리게 웃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바사하의 성녀가 된 이후 언제나 숨죽이고 살았다.
테이트리아 밖으로 나간 기억이란 고작 신의 힘을 사용하고 그 의지를 집행할 때뿐.
그것이 끝나면 누가 알아볼세라 얼른 돌아와 다시 기도하고 고행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에 마리안느를 따라온 뒤는 조금 달랐지.
“그러게요. 이런 건 못 봤겠죠.”
지나쳐온 마을들에서 있었던 일도 그때 본 목가적 풍경도 에리엘에겐 익숙지 못한 일이었다.
이유 없이 빵 한 덩이를 더 받는 베풂도 오랜만이었다.
마리안느와 이곳까지 걸어오며 토끼를 잡아 구워 먹어보기도 하고 잔뜩 열린 산딸기를 주워 먹어보기도 했지.
책으로나 본 북부의 동물이나 몬스터를 직접 눈으로 보기도 했고 고행과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눈보라가 치는 날은 그것을 핑계로 종일 자보기도 했다.
“괜찮은 모험 중이네요, 우리.”
생각해보니 그랬다.
마치 그림자를 타고 가듯 은밀하고 빠르게 목적지까지 갔다면 늘 그랬듯 받은 임무를 빠르게 완수하고 돌아갔겠지.
그럼 이런 오로라도, 맛은 없지만 몸은 따뜻해지는 음식도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마리안느는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이제 다 익은 듯 걸죽하게 향이 올라오는 솥을 바라보는 에리엘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모습 너머로 다른 모습 또한 겹쳐 보였다.
신에게 선택받은 성녀라는 동질감으로 몇 번이나 마주했지만, 한쪽만이 기억하는 것은 조금 슬픈 일이지만.
저 얼굴은 매번 같으니까.
이번에는 에리엘이 덧없이 사그라지지 않기를.
그리고 이번엔 조금 더 즐거울 수 있길.
하늘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한, 저 가녀린 소녀는.
자기 자신이 생각보다 와일드하며 캠핑과 노숙을 좋아하고 등산을 즐기며 험지에서 구르는 걸 즐기는 사람이란 걸 아직 모른다.
마리안느는 걸죽한 페미컨 옥수수죽을 한술 뜨며 입을 열었다.
“며칠 더 부지런히 걸으면 바다를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보고 싶어 했던 이노센트 교의 성녀를 볼 수 있을 거라며.
그 말에 에리엘이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 * *
“뭔데.”
내가 무릎으로 올라온 레비의 등을 통통 두드리며 물끄러미 바라본 뒤 묻자 레이첼이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네가 알아야지.”
아니 내가 무슨 수호위키인줄 아나…….
나는 멋쩍은 얼굴로 요마족의 모습을 한 채 두 쌍의 날개를 퍼덕이는 파이얀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서큐버스라는 종족에 걸맞게 박쥐 모양의 피막 날개.
그리고 하나는 색은 희지 않으나 분명 천사나 달고 날법한 깃털 날개.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파이얀이 큼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다시 청금색의 머리칼과 눈동자를 한 라줄리의 모습이 되어 입을 열었다.
“저번에 보스도 봐서 알겠지만. 원래 까만 박쥐 날개만 있었는데.”
요즘 이상하게 어깨나 등이 간지럽고 뻐근하고 결린다 했더니 이런 게 생겼더라고요.
혹시 이유를 알아?
하고 묻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난 수호위키가 아니다.
아니 갑자기 요마족이었던 종족이 변했을 린 없고.
저거 뭐…….
“아.”
잠깐 뭐가 생각날 것도 같은데.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레이첼이 파이얀의 몸을 팔꿈치로 툭 치며 입을 열었다.
“뭐 알 수도 있다 했지, 내가?”
“너 말고 루나가 말했지 루나가.”
“둘 다 투닥거리지 말구 도련님이 하는 말씀 들어봐.”
이야기가 좀 길어질 거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습관적으로 레이첼을 먹이는 건지.
루나가 간식을 가져오자 레이첼이 연어 샌드위치를 하나 들고 입에 넣었다.
“흐음… 잠깐 생각 좀 해볼게.”
내가 해본 이노센트 사가의 플레이에선 저런 유닛이 나온 케이스가 없긴 한데.
한참 공략 영상이나 정보 글을 찾아볼 때 해외 공략 사이트에서 본 거 같기도 하고.
원작 소설 자체가 한국에서 연재된 웹소설에 게임도 펀딩으로 나온 거라 한글판 외엔 없긴 했는데.
이상하리만큼 볼륨이 거대하고 자유도가 높았던지라 해외에서도 컬트적인 느낌으로 소수의 마니아가 있긴 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국내 말고 해외 쪽 공략 유행 같은 걸 알아보려고 대충 훑어본 게시글 중 비슷한 걸 본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일단은 나도 연어 샌드위치 하나 집으며 기억을 더듬다가 힌트라도 얻어볼까 싶어 사용자의 눈을 활성화 시켰다.
[파이얀 _ 성녀라 불리는 서큐버스]대표 Traits : [매료SS+] [정신 지배 A+] [꿈의 강림A+]
히든 Traits : [여왕의 방종B-] [노예의 기품A-] [마기 제어A] [신성력D+]
아니 저거 뭐야.
나는 파이얀의 히든 트레잇에 붙은 신성력에 시선을 고정했다.
일단 차분하게 생각하려면 내 앞에서 게임기 들고 도발하는 레이첼부터 쫒아내야하는데.
“한판 할래? 할래?”
“내가 생각하기엔 이번에 파이얀이 성녀의 모습으로 대외적인 활동을 한 것 때문 같거든.”
나는 도발 거는 레이첼을 슬쩍 모르쇠한 뒤 파이얀에게 말했고 그에 파이얀이 무언가 깨달은 얼굴로 자신의 몸을 끌어안듯 양팔로 감쌌다.
“뭐야, 저 그럼 지금 진짜 성녀된 거?”
아니 마족인데 악신의 가호를 받은 것도 아닌데 그게 가능해 보스? 하며 되묻는 파이얀을 바라보다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일시적인 걸 수도 있고.”
아니 몸에서 날개가 돋았는데 무슨 일시적이야? 하며 레이첼이 끼어든 뒤 손에 든 게임기를 내미는데.
나는 그것을 슬쩍 손으로 밀어내며 대답했다.
“갑자기 생겼으면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는 거지. 일단은 이노센트교는 활동 중지 상태니까 조금 지켜보면서 확인해보자.”
왜냐하면 이노센트는 내가 만든 거라 모시는 신 자체가 없기에 신성을 나눠 줄 주체가 없는 것이다.
지금 파이얀에게 신성력이 생겼다는 것은 누군가가 신성을 가진 뒤 나눠줬다는 말인데.
‘내가 아는 신성이란 트레잇의 소유자는 샤하드 뿐이고.’
그런데 샤하드는 파이얀이 성녀로서 연기하기 수월하게 꽃에 신성을 불어 넣어준 거 외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노센트교를 믿는 이들의 의지가 샤하드에게로 갔을 리는 전무한 일.
케인은 얼마 전 봤을 때 없었고 급한 대로 날 봤지만 나도 없다.
케인의 완벽이란 트레잇 안에 신성이 있을 수도 있기는 한데…….
저번에 가낙스에게서 받은 시공간이란 트레잇을 생각하면 갑자기 생긴 트레잇은 일단 뜰 확률이 높으니까.
신성이란 트레잇이 격이 낮은 것도 아니니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니 당장 추측할 내용은 이노센트 교의 교세를 확장할 때 파이얀이 성녀로서 활동하면서 받은 사람들의 선망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생긴 트레잇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 원래 파이얀은 수많은 환상을 보여주는 서큐버스라는 호칭을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 성녀라 불리는 서큐버스라는 칭호를 달았으니.
아예 성녀라는 속성이 확고했으면 서큐버스 성녀라고 정립되었을 거 같은데 그것으로 불리는, 이란 수식어가 붙었으니까.
불리는건 누구나 불릴수 있지 그럼.
실제로 확실한 성녀인 마리안느와 에리엘의 경우 어떤 신의 성녀인지 호칭에 명확하게 들어있다.
파이얀과는 다른 경우인 거지.
“아마 이노센트 교가 대외적으로는 선한 이미지의 종교라서 깃털 날개가 당장은 생긴 거 같은데.”
“하긴 그러게요. 신을 만드는 것도 죽이는 것도 사람의 의지라고 하잖아요?”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태초부터 존재한 신도 있기야 하겠으나 살아있는 신만 봐도 많은 이들의 염원과 선망으로 신이 된 거나 다름없으니까.
왜 만신전이란 이름으로 많은 신들이 모였는가.
이름 높은, 예를 들면 태양신 칼다라 정도면 몰라도 뒤늦게 깨달음과 격을 얻어 신의 반열에 올라선 이들은 믿는 이가 사라지면 신격 또한 잃게 된다.
하지만 만신전에 들어가면 만신전이란 개념 자체에서 나오는 효과로 인해 최소한의 인지도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살아 있는 신이 자신의 이름으로 대륙에서 가장 큰 나라와 수도를 이룩했겠지.
“이노센트교를 사람들이 잊으면 아마 사라질 거야.”
나는 파이얀을 달래며 그리 말했다.
카이만이 이노센트교의 이름으로 더 이상 지원하진 않을 테니 뭐 그렇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