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4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45화(345/373)
언제나 밝은 빛이 들어오던 성.
복도에는 언제나 꽃다발이 가득 담긴 화병이 올려져 있어 바람이 불면 얇은 커튼이 나부낌과 동시에 향기가 내부를 가득 메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꽃은 전부 치우고 창문은 닫았으며 커튼은 밖과 안을 분리하듯 두텁고 짙은 것들로 늘어졌다.
묘한 향기 나는 향초를 아침이고 낮이고 꺼지지 않게 켰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은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요즘 분위기가 참 흉흉해.’
깊은 한밤중.
황녀 세리아의 궁에서 일하는 시녀 하나가 초를 들고 천천히 걸어 주방으로 향하며 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축제 때 일어난 테러.
그 자리에서 바로 대피한 세리아 황녀와는 달리 자리에 남아있던 샤하드 황자에게로 여론이 기울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숨죽이고 있던 샤하드 황자의 세력이 제대로 구축되어 일어났다.
그 덕에 세리아 황녀의 세력뿐 아니라 황녀의 거처에서 일하는 사용인들마저도 위축되어 활동을 자제한 지 오래.
세리아 황녀마저도 무슨 생각인지 늘 밝고 천사 같았던 대외적 모습을 버리고 지금은…….
‘아니야. 그런 생각 하지 말자.’
시녀가 고개를 저었다.
요즘 많은 것이 바뀌긴 했지만 그건 10년 가까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세리아 황녀 쪽에서 샤하드 황자에게 저울이 기울어진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세리아 황녀는 강인하고 아름다웠으며 사람을 이끄는 재주가 있는 분이니 곧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재정비 하시리라.
그리 생각하며 시녀는 주방의 문을 살짝 노크한 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준비되었나요.”
“준비라고 할 것이 있나.”
주방장이 착잡한 표정을 한 채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리 세팅된 접시는 은으로 된 푸드커버로 덮여 있었다.
그것을 조심히 들어 트레이에 옮긴 뒤 칠링을 위해 아이스 버킷에 넣어둔 와인도 버킷 그대로 들어 올려 놓았다.
“망조가… 망조가 들었어…….”
요리에 쓰고 남은 술을 병째로 마시는 주방장을 바라보다 시녀가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한 손으로는 트레이를 밀고 다른 손으론 초를 들고 걷기 시작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비록 실질적으로 궁을 꾸리던 세리아 황녀의 유모가 나빠진 건강을 이유로 자리를 비우긴 했으나.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을 생각하면 황녀의 유모가 돌아온 후 다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리아 황녀도.
당당하고 아름다우며 기품있고 온화한, 예전의 모습으로 금방 되돌아오겠지.
시녀는 그리 믿고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황태녀님. 식사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전이라면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거나 체중이 조금 늘었다는 이유로 이런 시간엔 차나 말린 견과류 정도만 먹었을 세리아가 요즘은 밤낮이 바뀐 듯 굴었다.
한밤이 되어서야 첫 끼니를 제대로 챙기는 경우가 다반사.
오늘도 그러했기에 시녀가 속삭이듯 말했고 안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렸다.
“들어와.”
그에 시녀가 문을 열었다.
조금 더 진한 향초의 향기와 더불어 그것에 섞인 비릿한 냄새.
다른 곳보다 농도가 진한 기분에 시녀는 잠시 숨을 참았다가 천천히 내어쉰 뒤 트레이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어둡고 컴컴했으며 곳곳에 놓인 향초 외에는 불빛이 전무했다.
꼼꼼히 보고 지나가지 않으면 곳곳에 놓인 가구에 몸이 부딪힐까 걱정되는 정도.
하지만 세리아는 마치 밝은 대낮인 것처럼 안을 자유로이 누비며 의자에 앉았다.
“일단 와인, 와인부터.”
밖에 나갈 일도 없는데 세리아는 꽃인지 깃털 모양인지 모를 장식이 목 끝까지 올라온 긴 드레스에 베일까지 쓰고 있었다.
저런 걸 쓰고 이 안을 걸어 다니시면 위험할 텐데.
시녀는 그리 생각하며 세리아가 원하는 대로 와인을 먼저 개봉해 잔에 따르기 시작했다.
화이트와인이 차가운 냉기와 함께 컵에 담겼다. 잔의 바깥쪽이 하얗게 번지는 것을 보던 세리아가 잔을 들며 다른 손으로 베일을 살짝 올렸다.
잔이 베일 안으로 들어가더니 조금 기울어지고는 이내 홀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얼핏 들으면 할짝거리는 소리에 더 가까웠으리라.
“맛있는 냄새가 나는걸.”
아직 푸드커버를 벗기지 않았음에도 세리아는 그리 말하며 장갑을 낀 손을 움직여 푸드커버를 벗겼다.
그 위에는 시녀가 보기엔 날것이나 다름없는 고깃덩이가 하나 놓여있었다.
접시의 바닥에 아주 조금의 핏물도 비치지 않을 정도로 신선한 고깃덩어리.
그것을 보며 세리아가 입맛을 다시더니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 썰기 시작했다.
레어 스테이크와는 달랐다.
겉 표면이라도 익은 것이 아닌.
말 그대로 근막과 지방 등만 정리한 날것의 덩어리.
그것을 세리아는 잘라 입에 넣으며 맛있다는 듯 연신 낮은 목소리로 감탄했다.
“으음.”
신선하네.
세리아의 나이프가 지나간 자리 정도에만 아주 살짝 핏기가 비치더니 접시에 묻어났다.
한 덩어리의 날고기를 맛있게 먹던 세리아가 기분이 좋은지 몸을 조금 들썩이는데 그런 세리아의 드레스 아래로 무언가가 시녀의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놓인 몇 개 되지 않은 향초로만 빛 삼아 본 그것은 아무리 봐도 이 방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그것이었다.
‘…뱀?’
언 듯 보았으나 길고 얇으며 살짝 움직이는 그것은 마치 뱀의 몸이나 꼬리의 일부분같이 느껴졌다.
그에 시녀는 아직 식사를 즐기고 있는 세리아를 살짝 곁눈질로 본 뒤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만약 뱀이 성안으로 들어왔다면 큰일이었다. 정원과 후원이 존재하는 곳이다 보니 종류에 따라서는 독뱀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살아남을 곳이었으므로.
독뱀이 아니더라도 혹여 세리아가 물리면 성의 모든 이들에게 불호령이 떨어질 것은 당연한데다 무엇보다도 세리아의 안전이 위협당하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방은 어둡고 그것은 짧게 보았으며 금세 세리아의 드레스 안쪽으로 기어가는 것만 같았다.
뱀처럼 보였지만 뱀이 아닐지도 모른다.
혹은 세리아 황녀의 드레스 안쪽 장식이 풀려있다거나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니 확신이 필요했다.
시녀는 세리아가 와인을 마시는 것을 확인한 뒤 슬쩍 비틀어진 물건을 정리하는 것처럼 몸을 옮겨 뒤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무례한 행동이나 혹시 뱀이라면 자신이 물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발끝을 움직여 살살 세리아의 드레스 아래쪽으로 조금 집어넣었다.
평소라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요즘 들어 예민해진 세리아와 어두운 방 안. 그리고 확실하지 않은 형태라는 것에 시녀는 아주 조금의 확신을 얻기 위해 약간의 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드레스는 밟거나 얼룩이 남지 않도록 발끝만 살짝.
그리고 그 순간 시녀는 자신의 발끝에 느껴지는 작은 감촉과 더불어 확 고개를 돌린 세리아를 마주했다.
“죄, 죄송합니…….”
시녀가 죽을죄를 지었다며 고개를 숙이는 순간.
쏜살같이 날아온 무언가가 시녀의 목에 꽂혔다.
시녀는 순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눈동자만 데굴 굴려 아래를 바라보았다.
황색 반점이 박힌 암녹색 비늘이 뒤덮인 뱀의 꼬리 같은 게 시녀의 목에 박혀있었다.
“이게 궁금했니?”
시녀가 천천히 입가로 피를 흘리며 바들거리는데 세리아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호기심이 네 명을 재촉했구나.”
세리아가 천천히 베일을 걷었다.
아름다운 자수정의 눈동자.
그러나 그 동공이 길게 찢어져 있었으며 요사스럽게 붉은 입술을 핥는 혀끝 또한 살짝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뺨까지 돋아난 암녹색의 비늘과 세리아 황녀의 드레스 안쪽에서 뻗어 나온 뱀 같은 꼬리.
“누… 누굵……”
피거품으로 그륵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꼬리가 스륵 빠지더니 시녀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세리아는 자신의 앞에서 절명한 몸뚱어리를 바라보다 꼬리를 들어 올려 자신의 가슴팍 쪽에서 느리게 흔들며 중얼거렸다.
“향기로운 냄새.”
짙은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세리아는 자신의 꼬리에 묻은 피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장갑을 벗었다.
관리 잘되어 윤이 나던 손톱 대신 두텁고 녹색 빛이 나는 손톱과 비늘이 돋은 손등이 보였다.
그대로 검지를 들어 꼬리에 묻은 피를 살짝 찍어 그대로 두 갈래로 갈라진 혀 위에 바른 뒤 음미하듯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입에 넣게 된다면.”
이런 피 보단 좀 더 고귀한 피가 맛있지 않을까.
세리아는 본궁 깊숙한 곳에서 나오지 않는 황제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 * *
“저건 뭐죠……?”
칼바람을 헤치며 걷던 에리엘이 중얼거렸다.
그것은 기묘한 풍경이었다.
사람은커녕 이제 몬스터나 곤충도 살기 힘들 정도로 추워진 북쪽의 끝.
저 멀리에는 바다가 보이고 이끼와 비슷한 것들이나 겨우 바닥에 붙어살고 있었다.
부는 바람에는 눈이 스며있어 몸과 가방에 스칠 때마다 번지는 서리로 인해 에리엘과 마리안느는 신성력까지 동원해 겨우겨우 이곳까지 왔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이 무색하게도 저 멀리, 저 끝은 거대한 유리구슬을 덮은 테라리움처럼 모습이 달랐다.
발목까지 자라난 풀과 그곳만을 비껴가는 칼바람.
조금 더 자세히 보니 노랗고 하얀 나비까지 날아다닌다.
발목까지 올라온 풀 사이로 언뜻 꽃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마치 그 자리에만 봄이 온 것 같은 모습에 둘은 입을 벌리고 있다가 마리안느가 먼저 정신을 차린 듯 대답했다.
“저기가 목적지예요.”
먼저 온 분들 덕인 거 같은데…….
마리안느는 스스로 말하면서도 확신이 없는 듯 말꼬리를 늘렸다.
아무리 그래도 냉기의 마나가 이렇게나 거친 곳에서 저런 곳을 만들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힘을 유지해야 할 것인가.
하루, 이틀?
글쎄, 적어도 일주일은 마나를 개방해 저 공간 전체를 돌봐야 했을 것이다.
그게 가능한 이가 몇이나 있으랴.
마리안느의 뇌리에 스쳐 가는 이야 있었지만, 대부분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도 이리 이타적으로 구는 경우는 드물었다.
자신의 근처뿐이 아닌 저리 큰 공간 자체를 온화하게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마리안느는 일단 에리엘을 데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저 힘은 절벽 안쪽에 서있는 텐트를 중심으로 퍼져있었다.
누군가 저 안에서 끊임없이 이곳을 노리는 차가운 마나와 환경을 다스리며 있으리라.
그리고 텐트와 좀 떨어진 풀밭 위에서 한참 무언가를 그리며 고심하는 엘프와 인간 여자 한 명을 보고 그제야 얕게 웃었다.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마리안느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에리엘이 눈치 보다가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인기척에 살짝 수척해진 바하디와 하미드가 한참 마법진과 봉인진을 그리고 만들다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그리고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한 바하디는 아쉬운 얼굴을 하며 고개를 숙였고 하미드는 너무나도 밝게 웃었다.
하미드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 손을 주먹 쥐어 높게 들자 하미드의 코랄색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드디어 왔다!”
그리고는 마치 사막에서 물을 만난 낙타처럼 뛰어오는 모습에 마리안느와 에리엘이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미드는 그에 그들이 도망갈세라 한 손에 한 명씩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
“얼른 같이 만듭시다!”
봉인진 얼른 만들고 탈출합시다, 우리!
그 말에 마리안느는 어색하게 웃었고 에리엘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