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46)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46화(346/373)
제로는 소파에 기대앉아 머리칼 뭉치를 꺼냈다.
금색 실타래 같은 그것은 소르페의 머리카락이었다.
이것을 삼킨다면 잠시간 소르페의 기억과 더불어 그 마법적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겠지.
다른 이들이 미리 가있는 해안 절벽으로 간다면 이것으로 그곳에 생성 중인 마법진과 봉인진의 완성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을 못 믿어서라기보단 원래 같은 마법이라도 종족별로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다른 법이니까.
원래 중요한 것일수록 여러 번 확인하는 게 맞는 일이고.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라도 도울 수 있으면 좋다.
‘가끔은 이해하지 못했지.’
아델리안이 종종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이유를.
말로는 효율을 따진다느니 뭐니 하지만 누군가의 생명이 효율로만 분류될 수 있는 것인가.
그 효율이란 게 단순하게 육체적 마법적으로 뛰어난 것으로만 판단하여야 하는가.
그걸 아델리안에게 물었을 때 아델리안은 그럼 뭐로 나눌 거냐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여러 일이 있은 후 지금은 알았다. 아델리안에게는 묘하게 뒤엉킨 구석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이유가 이곳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그게 제로에겐 큰 놀라움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마족도 있고 천족도 있으며 정령도 있고.
하다못해 남의 삶을 탐내는 몬스터도 있지 않은가.
마계나 천계나 이곳과는 다른 세계다. 아델리안도 그냥 그런 식으로 조금 다른 세계의 사람인데 소환된 거나 다름없는 거지.
다만 문제는 이 부분이었다.
‘케인 선배님이 그러셨지.’
과연 아델리안이 순수하게 자신의 의지로 이런 곳에 왔을까, 하고.
누구나 죽음은 싫다. 괴로움도 두려움도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망가진 곳에,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오고 싶었을까.
미쳐버린 신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잡아둔 세상.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을 짜내어 영혼을 마모시키는 곳.
그러다 한번 잘못해서 실패하면 본인조차도 그 무한한 굴레에 갇히거나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위험부담을 안고 누가 오려고 할까.
제로는 소르페의 머리카락을 사각사각 소리가 날 만큼 매만지며 생각했다.
‘협조해.’
귀에 아직도 케인의 목소리가 묻어있는 것 같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케인의 말을 따라서는 안 되는 일이다.
케인은 아델리안이 이 세계에 묶이기 전에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생각했으므로.
그 방법은 아직 확실하지 않으나 온 방법이 있다면 가는 방법 또한 있을 거라며.
하지만 머리로만 생각하면 그리해서는 안 되었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죄가 아니다. 받은 것을 떠올리지 못한다고 해서 고통이 아니진 않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두가 지옥을 살고 있다. 영혼이 닳아가는 지옥.
그리고 유일한 변수가 아델리안이라면 절대 보내서는 안 되지 않은가.
‘하지만…….’
하지만 그건 이기심이지.
본디 이 세계에서 고통받는 이가 아님을 알면서, 돌려보낼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란 걸 직감하면서 모르쇠 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타인의 삶을 훔쳐 대신 사는 괴물도 아는 것이다.
머리로는 잡아야 한다고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으로는 그런 희생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로는 비겁해지기로 했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는 작은 방패를 받고 싶었다.
그래서 제로는 아델리안에게 물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델리안이 앉은 의자 옆에 몸을 낮춰 쪼그려서는 하는 말에 아델리안이 푸른색 눈으로 응시하다 피실 웃었다.
“갑자기?”
“그냥…….”
비겁하다. 약아빠졌으며 치졸하다.
제로가 녹색의 보석안을 내려 바닥만 바라보자 아델리안이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끝나고 다 같이 가자.”
거긴 다 같이는 못가요 아델리안 님.
그 말에 그냥 제로는 웃었다.
“가고는 싶단 말씀이시니까.”
제로는 느리게 일어났다. 한번 마음을 정했다면 그대로 행하여야 할 것이다.
살아 있는 신에게 제약을 걸 봉인진. 그 힘의 일부를 케인과 연결할 때 약간의 변칙을 넣는 것.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으로 케인이 정보를 얼마나 파악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찰나의 연결이라도 케인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겠지.
그런 사람이니까.
* * *
“으으… 추워.”
“추위 안 타잖아.”
레이첼이 양손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선 바들 떠는 그 가증스러움에 내가 한마디 하자 레이첼이 나를 흘긋 노려본다.
“나 화속성.”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더니 검지로 바람이 부는 허공을 찔렀다.
“빙속성.”
마나가 몸에 파고들면 시렵지! 하며 항의하는데 나는 못 들은 척 어깨를 으쓱였다.
“엄살 부리긴.”
“와. 안 되겠다. 당장 내 마나 내놔.”
나는 레이첼이 양손을 들고 달려들려는 것에 슬금 루나의 뒤로 숨었다.
“줬다 빼앗으면 쓰나.”
레이첼이 장난식으로라도 춥다고 하는 곳에서 난 멀쩡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일행들 모두가 자신의 마나를 나에게 한 겹씩 덧씌운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심호흡하자마자 폐가 찡하게 얼어붙었을지도 모를 일.
―관리자님. 곧 도착합니다.
나는 리프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저 끝으로 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보이고 그 경계선에 걸친 절벽 또한 눈에 들어온다.
부지런히 걸으면 한 시간 안에 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걷기 싫다. 능력 없는 체이서.”
파이얀이 툴툴거렸다 그에 체이서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요. 이 근처의 마나를 누군가가 자신의 지배하에 둔 걸 어쩌겠어요.”
괜히 그림자의 통로를 열었다가 유독 연약한 누군가의 몸이 잘못되면 제 목이… 남아날까요?
체이서가 그리 말하며 날 보는데 뭔가 고깝다.
하 이래서 안 서러우려면 마나건 오러건 개방했어야 하는데.
‘내 몸 반성해.’
나는 괜히 체이서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걸었다.
어차피 내가 이곳에 존재하는 누굴 때려도 안 아플 게 뻔하니 괜찮다.
체이서는 뻔뻔하게도 맞을 때마다 아야 소리를 내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엄청나…….”
그리고 내 머리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던 레비가 중얼거렸다.
아마도 북해의 거대한 마나를 느끼고 있는 모양.
레비는 본디 인어족의 왕, 물의 지배자로 각성할 수 있던 존재다. 그게 한번 망가지고 어그러졌다고 해도 완전히 실패로 끝나버리는 건 아니니까.
레비 본신의 마나는 크루거 가문의 마정석으로 채웠다.
외부의 마나는 본디 남해의 바다에서 충당했어야 하고 그 융화를 다른 인어족들이 도와야 했겠지.
로열블러드니까.
‘하지만 배신자들이 즐비한 남해에서 각성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어.’
레비에게 가장 익숙한 마나는 거기겠지만 북해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남해만큼 거대한 바다였고 섬이 없는 만큼 물로 더 채워진 공간.
마나의 공명과 조율을 도울 인어족은 없어도 폭풍우의 구슬은 있다.
원작에서는 빼앗긴 폭풍우의 구슬은 카이만이 불의 정수와 융화하기 위해 악신 교단과 손을 잡게 되는 이유였다.
그러나 불의 정수, 즉 레이첼의 드래곤 하트가 가진 힘이 너무 강해 카이만은 폭풍우의 구슬로도 제대로 융화하지 못한 채 레드 드래고니안의 상태로 주인공 파티와 대적하게 되는데.
‘뭐 결국 원작이건 게임에서건 가디아에게 죽게 되지만.’
융화되느라 그 힘을 대다수 폭풍우의 구슬은 파편으로 변하여 케인이 들고 다니다 나중에 합류하는 레비에게 건네주게 된다.
레비는 인어족이 인간 귀족에게 팔아넘긴 탓에 강제로 불완전한 성인식을 끝내게 되고 그 덕에 처연한 귀부인 속성의 누님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케인이 준 폭풍우의 구슬 파편으로 일부 각성하여 남해의 귀족들을 쓸어버린다.
그땐 이미 여러 가지가 꼬여 결국 제대로 된 각성은 하지 못한 채 쥐꼬리만 했던 파괴의 힘은 남해의 귀족들에게 쓴 뒤 사라졌고 치유의 힘만 남았다.
그 뒤로는 힐러로서 같이 다니긴 하는데.
그때 서술된 내용이나 가끔씩 나눴던 대화를 미루어 보자면 지금의 레비는 아직 기회가 있단 말이지.
“자신 있어?”
내가 가볍게 콩콩이를 뛰듯 몸을 들썩이자 내 머리위의 레비가 즐겁다는 듯 웃으며 짧뚱한 손으로 내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응! 당연하지.”
나만 믿어 계약자. 하는 레비가 귀여워 웃다 보니 어느새 절벽이다.
“저기만 풍경이 다르네요.”
따스해 보여.
루나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칼바람이 몰아치는 저 뒤쪽과는 달리 꽃이 펴있고 바람 또한 잔잔해보인다.
그곳만 봄날이라는 스티커라도 붙인 것 같이 이질적인 광경.
그 중앙엔 텐트 하나가 보이고 좀 더 먼 벼랑의 끝엔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바다 근처니 간식으론 물고기라도 좀 구워볼까 합니다.”
제로가 팔을 걷으며 하는 말에 레이첼이 신나서 입을 열었다.
“큰 거 잡자. 돌판 하나 만들어서 스테이크처럼도 구워 먹어보자.”
물고기는 레비가 잘 낚지? 하며 레이첼이 내 머리 위에서 레비를 들고 가자 레비가 통통한 꼬리를 움직였다.
“물속에 있는 거 금방 낚을 수 있어!”
레이첼과 레비가 통통한 거 통통한 거 노래를 부르며 뛰어간다.
그에 인기척을 느낀 듯 절벽 끝에서 작업하던 이들도 우리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웃으며 손을 내미는 가뮈르.
“…….”
뭔가 지친 표정으로 걸어오는 바하디.
“흐어어 종주…….”
“봉인진과 결계의 구축은 마무리 단계예요.”
서러운 얼굴로 제로를 향해 뛰어오는 하미드와 그 뒤를 이어 따라오는 마리안느.
그리고.
“저기…….”
하늘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한 작은 체구의 소녀.
얼핏 보면 루나만큼 작은 몸집의 에리엘이 얼굴을 붉히고 조금씩 떨며 우리 쪽으로 온다.
‘어, 설마?’
귀까지 살짝 달아오른 게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는 모양.
나는 혹시나 하고 내 뒤를 흘긋 바라보았다.
흥미 없다는 얼굴로 바다를 보는 케인과 그 옆에서 다리 아프다며 체이서를 괴롭히는 파이얀이 눈에 들어온다.
‘…새로운 주식상장.’
나는 에리엘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것을 확인했다.
검도 독침도 아닌 곱게 보관한 종이 한 장.
얼핏 보니 무슨 그림 같은 게 그려져 있었다.
아.
나는 직감했다.
파이얀이 리프와 손잡고 무슨 소설의 삽화니 뭐니 하며 우리 파티의 얼굴을 팔아먹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 케인 정도의 얼굴이면.’
그림에 담긴 좀 어려워도 이게 어? 그렇다. 가능하다.
지구에서도 2D에 사랑을 느낀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란 정이 많아서 얼굴도 없는 로봇청소기에도 애착을 가지는데.
크루거 성에서 일하는 사용인 중 누가 그러지 않았나.
얼굴이 개연성.
나는 코끝을 문지르며 흐뭇하게 웃은뒤 몸을 돌려 길을 터줬고 에리엘은 떨리는 손을 들어 종이를 펼쳤다.
“사, 사인 부탁드립니다.”
“…어? 나? 왜?”
그리고 곱게 올라온 종이에 그려진 자신의 얼굴을 본 파이얀이 되묻자 에리엘이 입을 열었다.
“이노센트의 성녀이신 리온님.”
팬이에요.
하는 그 말에 파이얀은 입꼬리가 찢어졌고 나는 마음이 찢어졌다.
“아니, 어찌 알아봤지. 지금은 그 얼굴 아닌데.”
“등 뒤에서 후광이 막…….”
“내가 좀 예쁘긴 하지.”
파이얀이 웃으며 내 옆구리를 찌른다.
나는 말없이 슬프게 케인을 바라보며 아공간에서 깃펜을 꺼내 파이얀에게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