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4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47화(347/373)
“돛을 내려라! 갑판 위에 굴러다니는 거 전부 정리해! 어서!”
“파도가 거칩니다! 실드를 지금이라도……”
“안돼. 아직이다. 혹시 모르니 마정석을 아껴.”
거대한 배.
그리고 그 배와 맞먹는 파도가 몰아쳤다.
집채만 한 파도가 배의 옆면을 때리자 마치 옆으로 쓰러질 듯 기우뚱하던 배가 반원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더니 곧바로 선다.
“젠장. 낮까지만 해도 날씨가 좋았는데.”
“원래 바다란 변덕이 심하지 않은가.”
굴러다니다 부서지거나 바다로 떨어지지 않게 갑판 위에 올려둔 짐을 전부 아래로 내렸다.
그 덕에 앉을 자리도 부족해 아무렇게나 쌓인 그물 위에 걸터앉은 사내가 구석에 밧줄로 고정해둔 통에서 술을 꺼내 한병씩 돌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하필 도련님이 탔을 때 이러니 면목이 없수.”
아르만은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에게 사과주를 한 병 내미는 선원에게 웃어 보인 뒤 병을 받아들었다.
“아닙니다. 이게.”
“으어어!”
“바다가 아니겠습니까.”
“아으으!”
배가 기울 때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데굴 구르는 호슈아의 뒷덜미를 잡아채며 대답하는 아르만의 모습에 선원이 낄낄거렸다.
“뭐 그래도 선장실보다는 여기가 좀 더 나을거요 도련님.”
다들 파도에 젖어 냄새도 퀴퀴하고 물건이 어지럽게 놓여 자리는 좁지만.
“저 위는 지금 아주 정신없을 테니까.”
비록 선장실은 하급이라고는 하나 결계가 쳐져 파도에 부서질 염려가 없긴 해도.
그 덕에 그거 믿고 사람들이 모여 배가 전복되지 않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테니.
“위에서 뺑이치는 동안 우리는 여기서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쉽시다.”
하고 선원이 술을 한 번에 전부 들이마신 뒤 술병을 목침 삼아 목 아래에 끼워 넣고 벌렁 누워 눈을 감았다.
“으… 멀미가…….”
호슈아가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리자 아르만이 자신의 품을 뒤적거렸다.
“아, 이런. 짐이 다 위에 있는데.”
아무래도 귀족의 짐을 갑판 아래에 두긴 그러니까.
선장실 옆의 귀빈용 선실에 뒀고 그 덕에 멀미 포션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호슈아가 아르만의 뒤에 쓰러지듯 누웠다.
“폭풍우 그치면… 얼른 돌아갑시다…….”
그리고 그 못된 것들에게 엄벌을!
호슈아의 속삭임에 아르만이 난처하게 웃었다.
‘하필 이럴 때 날씨가 안 도와줄 줄은.’
아르만이 자신을 미끼로 남해 귀족들을 낚으려고 시작한 항해였다.
예상한 대로 자신이 탄 배를 격침해 유일한 헉슬리의 계승자를 죽이거나 혹은 손에 넣는다면 아르만, 자신의 아버지인 리암 대공을 제대로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하극상이며 분란이다.
하지만 황제는 칩거한 지 오래며 원래 실권을 틀어잡고 있던 1황녀 세리아의 세력은 흔들리고 갑자기 12황자 샤하드의 세력이 커지는 중이다.
수도는 그로 인해 혼란스러우니 남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한들 중앙에서 관여할 여력이 없을 거라 생각했겠지.
대공가의 힘을 승냥이 떼처럼 서로 뜯어먹고 제2의 남부 대공 자리를 노리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본디 그리 쉬운 흐름은 아니었을 테지만.’
남부가 특이한 일이었다.
원래라면 절대적이었어야 하는 힘의 격차가 겉보기에는 비등해져 있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 헉슬리 가가 남해 군도의 안전을 위해 고삐를 느슨히 잡은 대가였다.
해적과 몬스터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으나 같은 남부의 귀족들에겐 해로의 수호를 같이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관대했으니.
‘그런 줄 알았지, 나도.’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를 미끼로 해적이고 다른 귀족이고 다 낚는 사람일 줄 누가 알았으랴.
‘계획 자체는 나쁘지 않았는데.’
세이렌이 가득 실린 배와 더불어 헉슬리가의 유일한 후계자가 함께한 상행.
침몰하면 그것만으로도 대공가에 큰 손해요, 혹 나포라도 하면 더욱 큰 피해다.
그러니 어느 누가 군침 흘리지 않았겠는가.
갑작스러운 해적의 공격과 더불어 해적의 탈을 쓰고 약탈을 시도한 다른 가문의 해상전력들.
그것을 꼬리 물고 함정을 깔아둔 목적지까지 하루 나절 남았었다.
‘폭풍우만 아니었으면…….’
늘 바다는 변덕을 부린다. 그것은 한낱 인간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르만이 한숨을 쉬며 시계 아티팩트를 보는 순간 기우뚱기우뚱하던 배가 크게 휘청였다.
비꺽비꺽거리던 소리가 잠깐 멈추더니 아래쪽에서 큰 굉음이 울린다.
“방, 방금 무슨 소리여!”
그 소리에 선원들이 깨기 시작하더니 분명 물 한 방울 들어오지 않던 창문으로 파도가 칠 때마다 물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용골이라도 부서졌나! 축이 뒤틀렸어!”
“마나 엔진, 마나 엔진이 터진 거 아니야?”
그럼 우린 이미 가루가 되었겠지. 마나 엔진이 그렇게 쉽게 터지는 줄 알아?
‘…터진 거 같은데.’
우왕좌왕하는 선원들을 보며 아르만이 몸을 일으켰다.
“마나 엔진엔 인명사고를 줄이기 위해 폭발을 제어하는 마법진을 새깁니다.”
그러니 더 큰 폭발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아르만은 급한 대로 나무 수액을 발라 빈틈을 메꾸려는 선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더불어 최소한의 마력으로 배의 방어력을 올려주고 있었을 마나 엔진이 터진 이상 이런 폭풍우에 손 놓고 있으면 오래 버티기 힘들 겁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물건을 정비해 다른 이유로 배가 망가지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말에 수액을 바르던 선원들의 손이 멈췄다.
“하긴 나무 수액은 바르고 말리고 바르고 말리고, 몇 번 해야 방수기능이 제대로 먹히니 지금 해봐야 소용없지.”
누군가 그리 중얼거렸다.
하지만 의미 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사람은 급하면 하게 되길 마련이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부여잡는 마음으로 물이 조금이나마 덜 찼으면 하는 바람에 수액을 칠하던 선원들이 손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그럼 우린 다 죽는단 말이요?”
“그래도 도련님은 귀족이니 이런데 쓰는 마법 종이 이런 거 있을 거 아닌감.”
“그거 나눠 쓰면 안 되나?”
“예끼 이 사람아. 그게 얼마짜린데. 게다가 보통 한 명 아니면 두 명이나 옮겨준다던데.”
“그럼 뭐 되었지. 우리는 위험수당을 이래서 받는 거고… 마누라가 골드를 엉덩이에 깔고 앉겠구만.”
그걸로 애들 잘 키우면 되었지. 하며 선원들이 토닥거렸다.
해적이 아닌 정당한 급여를 받고 고용한, 가문에 충성하는 선원들이라서 그런지 아르만이라도 빠져나가면 다행이라는 표정에 아르만이 머리를 긁적였다.
“제 말은 배의 기울어짐으로 짐이 쏠려 내부에서 배가 파괴되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란 말이었습니다.”
아르만의 입장에선 엔진이 다시 터질 일 없으니 걱정 말고 내부 정리를 하자는 말이었으나 선원들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엔진도 터지고 폭풍우도 이렇게 치는데다.”
“무엇보다도 엔진이 터졌다는 건 누가 고의적으로 망가뜨렸단 소리잖소.”
배 아래에 구멍을 내어 기어들어 왔건 선원들 사이에서 숨어 있었건 누군가 고의로 파손했단 말을 하던 와중 비틀어진 창문 새로 들어온 물웅덩이에서 물줄기 하나가 길게 뻗었다.
[완료.]그 물줄기가 허공에 그린 글자에 아르만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돌아갈 준비가 끝났으니까.”
“으으, 이제 된 겁니까 도련님?”
호슈아가 멀미로 창백해져서 묻자 아르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본! 마린!”
―뀨와앙.
뭔가 큰 짐승의 새끼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휘청이던 배가 점차 잠잠해지더니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어둡던 창밖이 개이기 시작했다.
영원히 몰아칠 거 같던 폭풍우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폭풍우가 끝났어.”
선원들이 놀라움에 탄성을 섞어 중얼거렸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원래도 폭풍우가 물러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한 게 바다라지만 이렇게 한 번에 손바닥 뒤집듯 사라질 수가 있는 것인가.
그때 비꺽거리며 물이 들어오지 않게 꽉 막은 천장의 문이 열리고 갑판 위에서 누군가 둥실 떠서 내려왔다.
단발에 가까운 청록색의 머리칼과 올리브색의 눈동자. 품이 넓고 손보다 긴 소매가 팔락거렸다.
[증거 확보.]이본이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에 물로 쓴 글자에 아르만이 자신의 목을 주무르며 대답했다.
“어떤 폭풍우가 몰아쳐도 마린과 힘을 합치면 없앨 수 있다더니.”
진짜긴 했네.
아르만이 말하며 갑판 위로 올라서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도 비나 바람 정도의 간단한 날씨는 조종할 수 있는 이본이었으나 이런 폭풍우는 며칠에 걸려 만들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 했었다.
‘하지만 신수 해룡의 피를 받은 마린과 같이라면 할 수 있다더니.’
“뿌.”
그새 작은 범선만 해진 마린이 입으로 물대포를 쏘아 호슈아를 적심에 호슈아가 자신의 외알 안경이 날아갈세라 얼른 품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얼른… 돌아가도록 하죠…….”
말하는 와중에도 마린이 뿜은 물줄기가 입에 들어가 갈갈거리는 소리를 내며 호슈아가 재촉함에 아르만이 작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 위에 이본이 영상구 하나를 내밀었고 영상구 안에서는 인어족 여럿이 바닷속에서 배에 구멍을 내더니 마나 엔진을 터트리는 장면이 녹화되어 있었다.
“허리에 감은 천에 내가 아는 문장이 그려진 것도 잘 찍혔네.”
이 정도 증거라면 최소한의 근거는 될 터.
어차피 이보다 더한 증거를 찾아가도 발뺌할 이들이니 명분이 될 최소한의 모습만 찍혀도 괜찮다 여겼다.
하지만 어느 머저리가 인어족에게 자신의 가문 문양이 박힌 천을 선물한 덕에 아주 조금 더 쉬워졌음에 아르만은 숨을 흩었다.
“도련님. 성공하셨습니까.”
“하루 만에 살이 좀 빠졌습니다?”
유일하게 이 계획을 알고 있던 선장이 진땀을 훔치며 다가왔다.
아무 증거를 찾지 못하여도 침몰 직전에 모두를 구해주겠단 약속을 아르만이 하긴 했으나 간밤의 폭풍우가 너무 거칠어 마음 앓이를 많이 한 모습이었다.
“다시는 안 하렵니다. 심장이 아픈 걸 보니 오늘은 뭍에 도착하면 참치 심장 구이나 먹어야겠습니다.”
아르만은 정신을 차리고 나온 선원 몇몇에겐 마린과 배를 연결하라 말하고 다른 이에겐 이본이 들어오는 물을 막고 있는 동안 배 아래쪽에 뚫린 구멍을 수리하라 하며 웃었다.
“좋죠, 술은 제가 사겠습니다.”
아르만이 품 안에 수정구를 넣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아버님은 왜 갑자기 바뀌셨을까.’
원래 이렇게 과격하리만치 위험하게 증거를 찾을 분이 아니었다.
아들에게도 무심할 만큼 영지의 백성과 바다의 안전에만 뜻을 둔 분이었거늘.
‘비록 안전을 보장한다고는 하나 아무것도 모르는 선원들을 불안하게 만들 작전을 승낙할 분이 아닌데.’
이노센트의 수장이자 대륙의 사람들 모두를 기만하는 아델리안이 보면 답답하다 여길 만큼 대쪽 같은 사람이 리암 아니던가.
그런데 갑자기 바뀌었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혹은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원래라면 아르만 자신이 아무리 간언을 올리더라도 우직함으로 대했을 사람이 이번 작전을 허락해준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뀌면 의심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누군가가 리암 대공으로 변신한 건 아닐 것이다. 다만 갑작스레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이유만큼은 알아내야 할 것 같았다.
‘혹 그 이유가 이노센트와 다른 길을 가는 거라면 난 어찌해야 하는가.’
“쀼와아.”
아르만은 마린이 신나게 배를 끌고 가는 걸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