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50)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50화(350/373)
“저 사람 뭐예요?”
에리엘은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렇게 멀쩡하게…….”
약간 어리둥절한, 혹은 난처한 얼굴로 레비라 부르던 이를 쫓아가는 아델리안을 보며 에리엘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자신의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사시나무 떨리듯 간헐적인 발작이 이어진다. 숨을 몰아쉰 뒤 간신히 고개 돌리자 그 옆에 서있던 마리안느도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마주했다.
“원래 그런 분이야…….”
이 거대한 마나 폭풍 속에서도 오롯하게 서서 바라보던 아델리안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리안느가 대답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눌릴 만한 광경이었다.
마나가 실체를 띄는 것도 모자라 물리력까지 행사하며 사방을 쓸었다.
그것이 주는 압박감은 실로 거대했다. 하나의 존재가 크게 각성하며 휘몰아쳤던 마나는 대부분 삼켜졌으나 일부는 길을 잃었다.
만약 미리 마나 폭풍을 상쇄시키는 마법 결계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북부의 일부가 둥근 모양으로 파먹혔으리라.
드래곤급의 마법사가 적어도 셋 이상 붙어 만든 마법 수식에다 그에 비견되는 이가 주축으로 이룩한 결계였다.
그런 것을 아주 긴 시간 공들여 새기지 않았던가.
거기에 소모되었을 마정석 뿐만 아니라 단순히 작업의 용이성을 위해 환경을 조절한다 생각했던 것마저 사실은 토양을 마법으로 길들이고 있었으니 겨우 무너지지 않았던 것이겠지.
말 그대로 대륙에서 초월자라 이름 불릴만한 이들이 다수 투입된 행위였다.
한 나라의 왕이라고 해도, 대륙에서 가장 강하다는 테이트리아의 황제라도 쉽지 않았으리라 마리안느는 장담했다.
다른 것은 그 권력과 금력으로 채워 넣을 수 있어도 사람만은 그럴 수 없었기에.
‘게다가 이렇게 준비한 마법진을 결국 마나 폭풍이 찢어발길 뻔했었지.’
그토록 완벽히 준비했는데도 여파가 너무 거대했다. 하마터면 여기 있던 이들 대부분이 핏물 하나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을지도 모를 만큼.
다만 결계가 버티지 못할 거 같으면 그 미증유의 마나를 누군가가 흡수했기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마리안느는 무표정한 얼굴로 레이첼이 잡은 레비의 손에 문질러지는 케인을 응시했다.
이 거대한 마나를 몸으로 흡수한 케인도.
그리고 까딱 잘못했다면 이곳 전체가 가루가 될 정도의 마나 폭풍을 마치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듯 태연한 아델리안도.
그리고 그런 그들이 당연하다는 듯 구운 생선 하나로 싸우기 시작한 그들의 파티도.
마리안느는 적응되지 않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성녀로 사는 게 낫다니까요.”
그래, 세상은 저런 사람들이 구하는 거지.
갑자기 허파에 이상한 바람이 들어 용사를 하네 마네 내가 이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된 건 숙명이라며 내가 구세주라며 어린 시절 잠시 방황할뻔했던 마리안느가 중얼거렸다.
* * *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와 진짜 미쳤다. 더 포동포동해진 거 봐.”
나는 레비를 주무르다 그것을 빌미 삼아 괜히 레비의 몸으로 케인을 문지르며 괴롭히는 레이첼을 응시했다.
“레비… 각성한 거 맞지?”
―맞습니다. 이젠 측정되지 않는 마나량입니다.
나는 리프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아까 있었던 일이나 애들 반응을 보면 레비가 각성을 한 건 맞는데 외형적 변화는 거의 없다.
원래 인어족도 그렇고 원작에서도 물속에서는 반인반어의 모습을.
뭍에서는 다리를 지닌 인간족의 모습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일단 각성 자체는 확실하니까.’
나는 습기 덕에 눅눅한 몸 안으로 더운 차를 한 모금 밀어 넣으며 사용자의 눈을 켰다.
[레비니아 _ 적법한 계승자]대표 Traits : [물의 지배SS] [신체 변환A] [날씨 지배B]
히든 Traits : [거대화B] [정신감응B]
확실히 각성했다.
그로 인해 너무 많은 게 변했다. 지금 내 기억으로는 이름 빼곤 다 바뀐 정도였다.
나는 자기들끼리 레비를 기특해하며 말을 거는 이들 몰래 아공간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예전에 인어족에게 쫒기다 소용돌이 덕에 난파된 뒤 바다 마녀의 던전에 들어갔을 때 한번 봤던 레비의 트레잇을 적어둔 게 있었다.
대표 Traits : [물의 축복A] [귀여움S] [물의 마나A]
히든 Traits : [덜렁이A] [물의 지배SS _비활성] [신체 변환B_비활성]
그때 내 예상으론 물의 축복이나 마나는 물의 지배가 활성 상태로 돌아가면 합쳐질 트레잇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맞았던 모양.
축복과 마나는 물의 지배가 활성화되며 사라졌다. 신체 변환이 생긴 걸 보니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모양이다.
다만 아직 저 말랑말랑한 형태로 존재하는 건 레비가 저 모습이 편하기 때문이겠지.
칭호 또한 인어족의 로열블러드에서 적법한 계승자로 바뀌었다.
인어왕이 아니라 계승자로 끝난 것은 레비에게 아직 충성을 바친 무리가 없기 때문일 테니 이건 차차 인어족들 잡아 족치면서 해결하면 된다.
‘날씨 지배는…….’
아마 이본과 비슷하지만, 더 강한 능력이 아닐까 싶고. 거대화는 뭐 명확한 이름이라서 괜찮은데 정신감응이 좀 애매했다.
이게 같은 이름의 트레잇이라도 직관적인 근력 같은 게 아니라 모호한 것은 그 효과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였다.
‘게임 할 때도 그랬지.’
정신감응은 종종 뜨는 트레잇이었다. 효과는 비전투시엔 케릭터의 스텟이나 소지품 혹은 줄 수 있는 퀘스트 등등 전반적인 걸 훔쳐볼 수 있었다.
전투시엔 다음에 쓸 스킬을 미리 알거나 운 좋은 경우 내 쪽에서 조작해 같은 편을 공격하게 할 수도 있었고.
그런데 여긴 현실이니 더 감이 안 온다.
저게 아군 한정인지, 적도 포함인지.
이노센트로 따지면 동족만 가능하거나 동일 속성이나 혹은 심하면 쌍둥이끼리만 가능한 경우도 있어서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레비가 알겠지.’
나는 레비의 예전 트레잇을 적어둔 것 위에 줄을 그어 취소 선을 만든 뒤 밑에 지금 걸 적고선 얼른 아공간에 던져넣었다.
“레비, 나도 한번 안아보자.”
나는 자신을 자꾸 케인에게 문지르던 레이첼을 꼬리로 후려치는 레비를 보며 웃다가 끌어안았다.
아니 정확하겐 품 안으로 끌어안으려 했는데 레비가 내 얼굴을 감싸 안는 덕에 레비의 등만 안았다.
약간 차갑고 촉촉하고 얼굴에 감기는 게.
언젠가 아주 예전에 누나가 얼굴에 올려준 마스크팩 같았다.
* * *
“자 이렇게 된 이상 플랜 B로 넘어가죠.”
체이서가 웃으며 하는 말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잔인한 놈. 진짜 너무한다. 자기 몸 아니라고 계획 막 짜는 거 봐라.”
그 몸이 누구 몸인데! 무려 케인 여동생 몸인데!
내가 그건 아니라며 열변을 토한 뒤 케인을 바라보았지만 되려 케인은 입을 다물고 있다가 고개만 까닥인다.
“인정머리 없는 거 봐!”
인간성 상실한 녀석!
내가 체이서를 나무라자 체이서가 우는 척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게 효과적이라니까요?”
아델리안님의 코덱스에 리커버리 2장이나 넣었다면서요?
“레비도 각성한지라 죽지만 않으면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몸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체이서가 얼굴을 가린 손에서 손가락만 벌리고 눈까지 휘어 웃으면서 말하는 꼴을 보고 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래도… 음.”
그래도 사람 몸 안에 수백 개의 가시 사슬을 관통시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 몸이 설사 신이 강림하여 보호받는 몸이라 해도…….
“원래 계획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봉인진과 연동하여 사슬로 묶는 것으론 조금 위험할까?”
내 물음에 체이서가 검은 눈동자를 반질거리며 응시했다.
“아주요. 많이. 너무나?”
그러니 그 사슬을 관통시키고 몸에서 쉽게 빠지지 않게 사슬의 고리마다 가시를 세워 몸 안에 박아 넣어야 해요.
또한, 죽지 않을 만큼 피와 마나를 빼냄과 동시에 재생하지 못하도록 계속 몸의 내부를 공격해야 하죠.
“더불어 몸에 내린 신성을 계속 교란해야 제대로 된 강림을 못 할 텐데…….”
아무리 일반적인 신관이 아니라 성녀 두 명과 대주교라고는 해도.
“그리 오래 못 버틸 테니까요.”
체이서가 검지를 흔들었다.
일단 마법 텐트를 남자 텐트 여자 텐트로 나눈 뒤 마나 장막을 쳐서 우리끼리라 상관없긴 한데.
체이서의 검지를 바라보던 가뮈르가 입을 연 건 꽤 의외였다.
“신성은 아니나 세계를 지탱하는 힘 중 하나인 세계수의 축복을 가장 오래, 많이 받은 몸이니.”
나도 힘을 보탠다면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라.
그리 말을 얹은 가뮈르를 체이서가 바라보다 히죽 웃었다.
“그래봐야 태양 앞의 반딧불 정도이실 텐데.”
살아 있는 신의 힘을 이 중 제일 많이 겪어본 체이서는 웃는 얼굴로 계속 회의적인 대답을 했다.
아마도 누구보다 많이 겪은 만큼 그 강함을 익히 잘 알아서겠지.
그래도 이 일을 반대하지 않는 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니까.
“사실 죽기 직전까지라고는 해도 한번 죽이는 게 편하긴 할 겁니다.”
체이서가 다시 말하자 가만히 듣던 제로가 물었다.
“어째서입니까?”
“어떤 신이건 강림한 화신의 숨이 끊기면 권능을 거두는 게 당연하니까요?”
그러니 심장을 잠시 멈춘다거나 하는 게 제일 편하지만……, 하며 말꼬리를 늘리던 체이서가 하하 웃었다.
“하지만 심장을 두 동강 내도 강제로 뛰게 할 거 같긴 하네요.”
체이서의 말에 나는 레이첼을 떠올렸다.
그래, 그렇겠지.
“그러니 그냥 제압까지만 하는 게 맞을 거 같아.”
그리 결론 내리는데 제로가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제가 도울 게 없군요.”
마음 같아선 마리안느의 머리칼이라도 먹고 잠시라도 신성을 분담하고 싶다며 제로가 중얼거렸지만 나는 으쓱했다.
“괜히 성녀 건드렸다가 신의 저주받는 거보단 낫지.”
“그래도 아델리안님마저 힘을 얹는데 제가 아무것도 못 하니 죄송스럽습니다.”
뭐 그거야…….
사실 어찌 보면 살아 있는 신의 신성을 분담하는 건 못하지만 다른 일로 내가 할 게 있으니까.
적어도 교란 정도는 가능할 테고.
나는 괜히 시무룩한 제로를 도닥이다 입을 열었다.
“그럼 내일?”
“네. 제가 잘 데려오도록 할 테니 기대하세요.”
나는 장난스럽게 말하는 체이서를 응시했다.
환경도 나머지도 준비되었다.
레비의 각성으로 인해 이 근방의 마나가 불안정한 것부터 봉인진과 성녀의 준비까지.
당장 살아 있는 신을 소멸시키거나 루프를 부술 수 있는 힘은 아니지만, 강제로 점거 중인 화신의 몸에서 밀어낼 수 있을 정도는 될 것이다.
‘그리고 원래 영화나 드라마 보면 빙의령 같은 건 본체로 보낸 다음 박살 내야 없어지고 그런 게 클리셰니까.’
신이고 뭐고 좀 크게 잡으면 지금 테이트리아는 셰인의 몸을 강제 점거한 빙의령 같은 거 아닌가.
셰인의 몸에서 지지고 볶고 해봐야 본체가 황성에 있는데 의미 없다.
사실 본체 먼저 슥삭 하고 분리시킬 것도 생각해보긴 했는데 그랬다간 정말 거머리같이 붙어있을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루프가 없어지리란 확신이 없었으니까 이게 먼저다.
루프를 끝낼 방법은 나도 몇 개 생각해둔 게 있지만 이러나 저러나 케인이 조금 더 강해져야 하니까.
지금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원작을 너무 바꾼 바람에 살아 있는 신이 그냥 재시작 버튼을 누를지도 모르는 분위기가 되었다.
체이서가 염탐한 것에 의하면 악신 교단이 갑자기 세를 늘리는 걸 중단하고 지부들도 문을 걸어 잠갔으며 그 외 살아 있는 신의 행동도 수상해졌으니까.
그러니 한 번 정도는 무리해서라도 이쪽으로 다시 흐름을 가져와야 한다.
더불어 셰인도 돌려받고.
나는 이른 아침에 아이기스를 체이서의 주머니에 넣어주며 입을 열었다.
“잘 다녀오고.”
“올 때 큰 선물 가져올게요.”
체이서가 봉인진 중앙에서 그림자를 열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