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5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52화(352/373)
방심했나?
뭐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
테이트리아는 느리게 웃었다.
온몸을 파고든 그림자 사슬은 가시의 모양으로 변해 계속해서 신성과 마나, 그리고 힘을 핏물의 형태로 빨아들인다.
그 모든 것들은 봉인진을 한번 거쳐 대다수는 다시 테이트리아를 압박하는 봉인진의 연료가 되고 나머지를 보이는 버러지들이 서로 나누어 감내했다.
드래곤과 마족, 그리고 성녀와.
아.
빌어먹을 도플갱어의 종주도 여기 있었군.
어디로 도망갔나 했더니?
하지만 우습게도 그동안 단 하나의 사람도 삼키지 않았는지 멀쩡한 모습이다.
폭식은 본능일 테니 단 한입이라도 누군가를 제대로 뜯어먹었다면 이성이 점차 흐려졌을 텐데.
짐승이 인간 흉내를 내는 광경들을 바라보다 테이트리아는 케인을 응시했다.
“흐음.”
고작 이런 것들을 믿고 자신을 마주했는가.
본신도 아닌데다 자신과 상성도 좋지 않은 이의 육신에 강제로 강림했다.
신성이 무너지고 마나가 흩어지며 육신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혈액까지 빨려 심장조차 이제 제대로 뛰지 않는 이 몸은 이미 죽기 직전이다.
피륙을 파고드는 고통, 뼈를 갉아대는 섬찟함.
하지만 고작 그것뿐이지.
원래의 힘에서 작게 떼어낸 한 톨만큼의 힘으로도 이들을 짓누를 수 있으나.
티끌만큼 남은 권능만으로도.
신격이란 이런 것이다.
마나도 신성도 아닌 단순히 존재의 격을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이 주변이 전부 짓눌러진다.
쿠웅 하는 웅장한 소리와 함께 지반이 내려앉는다.
테이트리아를 둘러싼 이들 전부에게 위압이 유형화되어 내려앉았다.
마치 거대한 산이 몸을 짓누르는 느낌일 터. 위압감에 피를 토하는 이들을 사방에 두고서 테이트리아가 웃었다.
아주 조금, 조금만 더 격을 분산시키지 못하고 받았다면 전부 무릎과 고개를 바닥에 치받았을 것이다.
역겨운 것들이 제대로 된 신을 우러러보는 것처럼.
그것이 본디 맞는 광경이겠으나 자신의 격을 상대로 맞서 이 주변을 통제하기 시작한 케인 덕에 망쳤다.
점차 테이트리아가 뿌리는 위압과 신성이. 신의 격이 케인의 힘에 의해 밀려나기 시작했다.
“재미있네.”
아무리 자신이 이번 회차에서는 힘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다고는 하나 케인도 어린 나이의 시대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성장이라.
당장 존재하는 기억을 샅샅이 뒤집어도 이런 광경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테이트리아는 낮게 웃었다.
변수는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어차피 그 어떤 변수가 생긴다 해도 자신은 체스판 밖의 존재요 케인은 체스 말에 지나지 않으니까.
“마지막에 날 재미있게 해주려고 노력했구나.”
그래서 기꺼웠다.
체이서의 배신 따위는 화도 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배신해봐야 다음이 되면 또다시 자신의 개가 될 이니 한 번의 변수야 달콤한 자극일 뿐.
“그러는 넌.”
고작 그 정도인가.
케인이 한 걸음 다가오며 더욱 많은 공간을 장악한다.
봉인진이나 체이서의 체인 같은 요소를 전부 떠나 단순히 지금 당장 가진 힘만을 따진다면 이 화신보다는 케인이 훨씬 강하다.
봉인진으로 굳이 자신을 약화하지 않았어도 케인이 이 육신을 죽이는 것은 아주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죽여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그 많은 반복 중에 이런 날이 단 한 번도 없었을 리가.
케인은 케인이다.
조금만 흐름이 잘못되면 이 몸보다 강해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이득을 본 건 자신이지.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은 진실로 케인에게 패한 적이 없었다.
첫 번째 생을 제외한다면.
케인이 자신을 죽여도 좋다. 단 하나 남은 가족을 제 손으로 죽이는 케인은 언제나 영혼이 조금씩 부서져 내리니까.
자신이 케인을 죽이면 빠르게 다시 시작이다.
그렇다고 죽이지 않는다면?
케인은 수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테이트리아가 셰인의 육신으로 남을 죽이거나 자해하거나 힘을 되찾아 케인을 죽이려는 것을 버텨야 한다.
단 한 순간 방심하면 케인의 손에서 벗어나 이 몸을 핏물로 씻으며 케인이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
이 육신마저도.
“널 당장 죽일 생각은 없다.”
“셰인의 몸을 죽일 수 없나 보군. 그래 그런 적도 있지. 그렇다면 곁에 두고 감시할 건가?”
그래봐야 결국 너는 너의 죽음까진 막지 못할 텐데.
비웃고 또 비웃었다.
저 고지식하고 남과의 소통 따위 개나 준 케인은 언제나 그랬듯이 결과적으론 영혼의 일부를 바스러트리며 다음 회차로 넘어갈 뿐일 것이다.
워낙에 강한 영혼이었기에, 절대로 굴복하지도 굴종하지도 않는 이었기에 오히려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거지.
저 영혼 전부가 망가져 다음 생도 없이 영원한 소멸을 맞이할 때까지 고통만을 반복하니 그 어찌 지옥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시간은 언제나 나의 편이니까.”
나는 부서지지 않는다. 나는 휠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너의 영원을 기다릴 수 있다.
그리 말하는 테이트리아의 앞으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너는.”
처음 보는 인간 사내다.
지금까지 케인이 동료랍시고 데리고 다녔던 이들은 결국 돌고 돌아 이중 몇몇이다.
그 말은 보통 눈에 익은 이가 케인의 곁에 존재했단 소리.
그런데 처음 보는 사내였다.
분명 모든 기억을 되찾은 건 아니니 언젠가 본 적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상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케인의 곁에서 버틸 수 있을 정도의 그릇이 되지 않으니까.
얼핏 보아서는 그러했다. 그 어떤 능력도 없는 평범한 인간.
하지만 케인의 위광 아래 테이트리아 자신이 내뿜는 격과 업을 버티고 서서 자신을 응시하는 그 푸른 눈을 들여다보았을 때.
테이트리아는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아주 작디작은.
자신의 조각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찰나였다. 보통의 사람이 가지는 사고의 속도로는 잴 수 없는 시간과 시간의 사이.
그 짧은 순간 테이트리아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 남긴 조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아델리안을 응시했다.
저것은 기회요 욕망이며 거짓된 희망이다.
다시 살고 죽고 또다시 살아 시작하던 이 무한 속에서.
이토록 크게 웃은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셰인의 육신을 입은 덕에 카랑카랑하게 목소리가 갈라졌다.
몸을 파고든 가시 돋친 체인이 피륙을 갈기갈기 찢는대도 이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너무나도 가엽고 딱해서.
그 케인이, 천하의 케인이 남은 수라곤 저런 나약한 것뿐이라.
언젠가 잠시 열린 세계의 틈으로 끄집어 당긴 불안정한 영혼.
다른 곳에서 끌려온 저 영혼 하나.
겨우 이 세계에 없던 작디작은 톱니바퀴 하나가 이 거대한 흐름을 어찌 감당할까.
흐르고 흘러 이제는 관성이 붙어버린 루프다. 신으로서 격이 낮아 아주 조금씩.
사건 하나, 사람 하나만을 바꿔가며 케인을 몰아세웠던, 구멍투성이의 과거도 아니다.
이제는 원래의 진실보다 이렇게 세계가 흐른 지 수백 수천 배는 더 길어졌다.
케인은 인간족의 구원자라는 하늘에서 진창으로 처박힌 지 오래되었고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자신이 손댄 그대로 흘러간다.
그런데 저런 인간 하나가, 지금 제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죽을힘을 다하고 있을 사내가 케인의 기회요 희망이자 다른 이들이 희생하여 이룬 소원이라니.
테이트리아가 크게 웃으며 이미 멈춰도 한참 전에 멈췄어야 했을 심장을 의지만으로 뛰게 하며 고개를 든 순간, 차가운 푸른색 눈동자가 마주했다.
“다 웃었지?”
마치 다 알아들었냐는 듯 묻는 거 같았다.
그래 그렇겠지, 너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와 만나 이미 알고 있겠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10년.”
아델리안의 말에 테이트리아가 미간을 좁혔다.
“길다. 지금까지 내 눈을 피해 모든 것을 해왔으며 준비해오지 않았던가.”
“양심 없네, 그럼 얼마 생각하는데.”
테이트리아는 자신의 격 때문인지 하얗게 질린 얼굴로도 애써 태연한 듯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어 묻는 아델리안을 바라본 뒤 느리게 웃었다.
“1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눈동자, 그리고 그 너머.
불안정한 영혼과 묻어있는 여러 기운들.
그중 하나는 카이만의 기운이니 이미 그 또한 저 사내가 손을 잡았다면 전쟁 준비야 쉬울 테고.
“1년?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원래 10년 정도 늘 공들였잖아.”
“나의 일기장을 다시 읽는 것은 의무에 가까우나 남의 손이 닿은 것은 내용이 알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노릇이지.”
그러자 사내가 개X끼도 아니고 기다려를 가르쳐야 하느냐며 중얼거리더니 얼굴을 구긴다.
“좋아, 9년.”
“1년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을 텐데.”
테이트리아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노려보는 토끼족과 인간을 삼키지 않아 이지를 그대로 보존한 도플갱어의 종주.
망가지지 않은 골렘과 심장을 되찾은 드래곤.
타락하지 않은 마족과 결국 왕의 자격을 얻은 인어족까지.
이 자리에는 없으나 아비를 살해하지 않은 딸 또한 저 아델리안이란 사내와 손을 잡았을 터.
오롯한. 망가지지 않은 이들을 이토록이나 손에 넣은 그 수완이 무엇인지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1년도 길지 않나?”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애초에 저 아델리안이란 자는 자신을 상대할 것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다.
전염병을 지우고 수인족과의 전쟁을 막고 몬스터의 움직임을 제어하였으며 언데드를 죽였다.
그 모든 업의 흔적이 묻어있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는 말에 아델리안이 고개를 들이밀고 차갑게 속삭였다.
“네 손에 칼자루가 들린 것처럼 구는 게 이제는 습관이 된 모양인데.”
지금 네가 무릎 꿇고 빌어서라도 잡아 대화해야 하는 게 누군지 제대로 알아야 할 거야.
그 말에 테이트리아가 셰인의 황금색 눈으로 아델리안과 시선을 마주 얽었다.
“너도 알고 있잖아.”
케인은 결국 절대 무너지지 않고 부러지지 않을 거라는 걸.
“케인에게만 지옥일 거라 생각하나 본데.”
왜. 너는 아닌 거 같아?
영원히 너도 기약 없는 시간을 돌고 돌면서 이 무한의 궤도 위를 달리는 중이잖아.
그에 테이트리아가 웃는 모습 그대로 잠시 아델리안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미소를 지우기 시작했다.
“기억을 쪼개고 이 세계를 맴돌게 하는 부하를 네가 전부 짊어지고 있지.”
수없이 많은 이들을 이 세계에 묶어 세상의 흐름을 끊은 채로 반복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힘의 소모일 텐데.
그렇다면 네가 아무리 신이라 해도 결국 오롯한 이 세계의 주인이 아닌이상 네 영혼도 망가지고 있겠지.
“케인이 버티고 버티며 이 세계의 반복을 유지하는 덕에 유구한 시간을 보낸 이 세계의 사람 중 누구 하나가 이 모든 것을 떠올릴 수도 있을 거야.”
결국 영혼이 바스라진 케인과 너보다 딱 한끝만 강해지는 이가 나온다면.
그리고 그게 네가 그토록 싫어하는 아인족이라면.
“그 순간 네 자아가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왜 멍청하게 이걸 장기전이라고 생각하지.
내가 있는 순간 이제 단기전에 돌입했는데.
아델리안이 차갑고 날 서린 얼굴로, 목소리로 그렇게 속삭였다,
“케인에게 내가 유일한 기회라고 한다면.”
왜 너에겐 아닐 거라 생각해.
그에 완전히 무표정해진 테이트리아와 서늘한 아델리안의 시선이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