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5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53화(353/373)
크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 때문에 온몸이 흔들리며 조금씩 가시에 찢겨나간다.
고작 웃는 소리다. 그런데 그거 하나하나가 내 몸을 갈기갈기 찢는 거 같다.
내가 지금까지 부유감의 혜택을 얼마나 누리고 있었는지 알겠다.
분명 케인이 어느 정도 보호해주고 있을 텐데 피부가 면도칼로 저며지는 것처럼 저릿저릿하다.
본적은 없지만 피에 굶주린 짐승이 아가리를 열어 내 머리를 물고 있어도 이보다 심장이 빠르게 뛰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 이런 게 두려움이고 공포겠지.
단어로 나열되는 모든 부정한 감정이 이런 것에서 비롯되겠지.
형언할 수 없는, 언어나 몸짓, 그림으로라도.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다 하더라도. 본능적으로 알아낸 사실 하나가 나를 지탱했다.
‘저건 날 죽이지 못할 거야.’
그런 확신이 들었다. 계시에 가까웠다.
저것은, 살아 있는 신은.
테이트리아는 나를 죽이지 못한다.
이 세계에 떨어져 부유감 덕에 제대로 돌지 않던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이 핑핑 도는 것 같다.
피가 몸을 타고 흐르는 게 지금 느껴지는 것 같다.
동시에 뇌가 각성한 듯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그 또한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저건 나를 죽이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 있는 신 앞에서 도망치고 싶은 본능을 지우게 만들었다.
걸어 다가가 셰인의 얼굴을 한 그 악신을 응시했다.
서로의 눈빛이 교차하고 우리는 각자 원하는 것을 직감했으리라.
“다 웃었지?”
그럼 이제 원하는 것을 주고받을 순간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력을 제대로 견고하게 다질 시간이었다.
그리고 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고통과 번민, 그리고 절망이다.
역설적이지만 이쪽에서 흔들 가장 큰 미끼는 우리의 가장 완벽한 몰락이었으므로.
온 힘을 다해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을 만큼 신을 거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하여 완전한 절망으로 잠기는 것이 우리가 가진 패였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10년.”
“길다.”
테이트리아가 퉁명스레 모든 준비를 하지 않았냐는 말에 나는 속에서 오르는 분노를 꾹 삼켰다.
“양심 없네, 그럼 얼마 생각하는데.”
저거 신이면서 지금 인간이랑 흥정하는 거 뭐야.
통 크게 그래 너희가 얼마나 발악하는지 지켜보겠다 하면서 백지 수표 같은 시간 끊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저런 것도 신이라고 위압감에 경련이라도 오는 듯 팔이 아파져서 주무르며 노려보니 테이트리아가 느리게 웃는다.
그리고는 1년이면 충분하지 않냐는 물음에 내가 어이가 없어 대답했다.
“1년?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아니, 원작도 그렇고 본인이 나눠준 기억도 그렇고 시간 넉넉하게 10년 이상 줬으면서 왜 지금은 1년인데.
하지만 내 물음에도 궁금하니까 빨리 결과 확인하고 싶다는 의도가 가득 실린 대답에 나도 모르게 개X끼라고 중얼거렸다.
“좋아 9년.”
인심 썼다.
유한한 삶에서 1년이나 양보했으면 많이 했지.
하지만 저 치사하고 양심 없는 악신은 자꾸 1년을 입에 올린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케인보고 좀 후려치라고 하고 싶다.
누구는 당장 기절이라도 할 거 같은 걸, 저것은 그냥 악령이나 빙의령 같은 거다.
주머니 몬스터로 치면 동글한 고스트류 같은 거다, 하면서 버티는데.
자기는 피와 함께 신성과 마나가 흡수되어 송장 같은 얼굴로도 여유 있으니 화가 난다.
하필 셰인의 몸을 저놈이 입은 덕에 저 모든 고통을 셰인이 겪고 있다는 것도.
셰인의 눈으로 우리 애들을 훑어보며 가늠하고 판단하는 것도.
지금까지 케인을 비롯해 여기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삶을 망가뜨려 가며 제멋대로 세상을 주무른 것도 전부 화가 났다.
어차피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며 그것은 영원불멸의 법칙이라는 듯 구는 것이 아니꼽다.
나는 케인의 파멸을, 루나와 제로. 리프와 레이첼에 파이얀과 레비.
그리고 가디아와 다른 이들까지.
그들의 몰락을, 고통을. 억울함과 분노 그 덧없는 희망까지.
전부 내가 담보로 잡아서 내 말을 들어주면 우리 전부를 망가뜨릴 수 있을 거라고, 그것을 상품으로 내세워 저걸 유혹해야 하는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역겹고 화가 났다.
마치 자기는 모든 것에서 비켜나가 즐거움만을 누리고 있는 기분인가 보지?
“1년도 길지 않나?”
어차피 1년을 주건 100년을 주건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저런 식의 제안.
그에 뭔가 두려움이 툭 하고 썰려 나간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뭘 걸고 대화하는데 넌 아무것도 저울에 올린 것이 없는 줄 알아?
나는 테이트리아의 얼굴에 닿을 듯 고개를 들이밀고 속삭였다.
“네 손에 칼자루가 들린 것처럼 구는 게 이제는 습관이 된 모양인데.”
우리가 네게 흔드는 먹이가 우리의 파멸이라는 것이.
곧 네가 우월하며 우세하다는 소리가 아님을 모르나 봅니다, 신께서는.
그것을 미끼로 내놓을 만큼.
그게 너에게 간절하다는 소리잖아.
이 끝없는 소모전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정점의 순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 기회를 네게 흔드는 거란 걸 왜 몰라.
머저리같이 기억을 전부 흩어두니 지능도 그만큼 조각나는 건가?
“너도 알고 있잖아.”
이 세계가 케인에게 지옥이라면 네게도 지옥임을 사실은 알고 있으니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거잖아.
케인을 죽일 수 있는 정도의 경지는 아니겠으나 나를 죽이는 것은 너무나도 쉬울 것이다.
지금 봉인진으로 누르고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명백히 이 별의 성좌에 가장 가까운 신.
정말 이 상황에서 케인이 날 보호하더라도 아무 능력도 없는 인간 하나를 죽일 힘이 없을까?
나와 이렇게 길게 대화를 나누는 대신 그냥 날 죽이고 언제나 그랬듯 케인과 함께 다시 지옥 속에 빠지면 될 텐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너도 사실 내가 네게 기회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잖아.
이 거대한 세계. 대륙의 모든 이들을 루프 시키는 그 에너지는 전부 테이트리아가 부담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힘을 소모해야 하니 자신의 이름을 딴 제국을 만들고 악신 교단을 만들어 힘을 회복하는 거지.
정말 네가 닿을 수 없는 만큼 강한 신이면 굳이 테이트리아라는 이름으로, 악신 교단의 더러운 짓으로 신성을 끌어모을 필요도 없는 거니까.
너도 너 자신을 소모해가며 이 짓거리를 하면서도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없잖아.
그리고 그러다 정말 어느 순간 깨달은 자가 나타난다면?
이 세계의 비밀을 결국 알고 격을 높여 아주 잠깐이라도.
단 한 번의 회차에서라도 테이트리아를 능가하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물론 루프 한다면 사라질 존재라고 해도 이 모든 억겁의 시간을 버틴 테이트리아의 앞에 동등하게 선 이가 아인족이라면.
“그 순간 네 자아가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언제까지 의미 없는 소모만 계속할 것인가.
그 옛날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채 강해지기만 했던 그 첫 번째 삶에서 결심한 것처럼.
케인이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면 케인을 죽이면 되지.
죽어도 안 한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소멸시키면 되겠지 하고 어린애 같은 결론으로 이만큼 왔으면.
이제는 이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야지.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언젠가 케인이 네게 질 거라 생각했어?
너도 케인도 그냥 영원히 이 짓을 반복할 거라고도 생각했어야지.
영원히 언제나 끝없이.
케인과 테이트리아보다 이 세계가 먼저 무너질 때까지.
“케인에게 내가 유일한 기회라고 한다면.”
왜 너에겐 아닐 거라 생각해.
내 속삭임에 무표정해진 테이트리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원하는 게 뭐지.”
“시간.”
그리고.
“이 몸에서 나가.”
나는 그 황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짓씹듯 말했다.
“그런 뒤 기다려.”
우리가 모든 준비를 마칠 때까지.
너를 죽이고 이 모든 것을 멈출 수 있을 때까지.
네가 절대로 우릴 막을 수 없는 그 순간까지 기다려.
그래야 그게 우리의 최선이지. 너도 진실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야 저울에 올려진 우리의 파멸과 너의 파멸이 수평을 이루게 되겠지.
“지금까지 케인의 진창을 즐겼잖아.”
모두의 나락에서 재미 봤잖아.
“그럼 그 값을 치러야지.”
내 말에 테이트리아가 살짝 숨을 내어 쉬듯 웃었다.
“아델리안.”
내 이름은 어찌 알았지 저놈이.
아, 하긴 나에게 심긴 자신의 파편을 흡수해서 알겠네.
“말해.”
“내가 너를 이 자리에서 죽이면 케인과 다른 짐승들이 절망하지 않겠는가.”
그 순간 봉인진과 속박이 더 강해지기라도 한 듯 테이트리아가 휘청이다가 낮게 웃었다.
“너 나 못 죽이잖아.”
“해볼 만한 거 같은데. 내 생각엔 너를 여기서 죽여도 내가 원하는 결과에 더욱 가까워질 것 같다만.”
“안 죽이는 게 아니고 너 나 못 죽여.”
말했잖아.
너에게도 내가 마지막 희망이라고.
영원한 소모전의 종지부를 찍을 조각이라고.
먹히지도 않을 소리 하지 말란 속삭임에 테이트리아가 대답했다.
“좋아.”
우득, 우드득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테이트리아의 몸에 박혀있던 가시 체인을 무시한 채 테이트리아가 나에게로 한 걸음 걸어온다.
팽팽한 실같이 관통해있던 체인들이 전부 터져나가듯 하며 동시에 봉인진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에 봉인진의 축으로 서있던 마리안느와 에리엘, 하미드의 혼절을 시작으로 나머지 인원들도 전부 기절하거나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한다.
“허억. 윽……”
그 레이첼이 아무 말 하지 못하고 피를 술처럼 토해낸다. 내 앞으로 다가온 테이트리아를 막듯 케인이 나에게 오는데 테이트리아가 멈추며 해할 의도가 없다는 듯 양손을 들었다.
“걱정 말도록. 사실 아델리안의 말대로 당장 죽일 수 없으니.”
다만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테이트리아, 아니 셰인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복구된다.
모든 붉은 색이란 사라졌던 것 같은 몸에 혈기가 돌고 입술이 붉어지며 손끝과 뺨이 연한 장밋빛으로 번졌다.
엉망으로 갈기갈기 찢겨나가던 몸은 온데간데없고 티끌 하나 생채기 하나 없는 몸으로 내 앞에 서서 나를 응시한다.
“너는 지금까지 날 상대하기 위해 많은 것을 노력해왔는데.”
왜 굳이 내 족쇄를 풀려고 하지?
그리 말하며 테이트리아가 양손을 천천히 늘어뜨림에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대답했다.
“나중에 그걸 변명 삼아 정신승리 하지 말란 소리지.”
얼른 셰인의 몸이나 내놓고 꺼져.
“후회하지 말지어다.”
내 말에 테이트리아가 한번 흩어 웃더니 그대로 셰인의 눈이 뒤집히며 마치 실을 끊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앞으로 쓰러진다.
그에 내가 셰인을 끌어안았고 동시에 케인이 나와 셰인의 몸에 손을 올렸다.
천천히 셰인을 케인에게 넘겨준 뒤 나는 그제서야 숨을 몰아쉬며 덜덜 떨리는 몸으로 아공간에서 코덱스를 꺼냈다.
그동안은 폭주한 아드레날린이나 엔도르핀, 그리고 분노로 잠시 제정신 아닌 것으로 버텼지만 몸은 정직하게 두려움에 떨었던가.
“아델리안… 그… 정신…….”
케인의 목소리가 웅웅거린다. 마치 바싹 마른 모래로 몸을 만든 것 같다.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 너무 힘들다.
“아직 안 되는데…….”
일단 가져온 리커버리는 다 써야 하는데.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 나라는 인간의 형체도 없이 주저앉아 쌓일 것 같다.
몇 걸음 앞으로 내딛기도 전에 눈앞부터 흐려진다.
나는 레비를 바라보며 리커버리가 적힌 코덱스의 페이지를 찢은 뒤 내 어깨를 잡는 케인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