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55)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55화(355/373)
아무것도 모르던 것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으나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니 레이첼도 다른 드래곤의 기억을 모으거나 다른 정보를 얻으려 신에게 접촉하려 했지.
기억에도 없는 것에 대한 공포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니까.
물론 그런 와중에 아델리안이 케인에 대한 레이첼의 오해와 증오가 쌓일까 봐 말해주지 않았던가.
인간족과 아인족의 증오, 전쟁. 공포의 이유까지.
그렇지만 지금 와서는 인간족도 아인족도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도 비열하고 잔혹하게 대했으니 어느 누구도 무고한 피해자는 없다며 아델리안이 말했지.
그래서 레이첼이나 소르페, 하다못해 루나조차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며 비밀이 있다고 여기긴 했지만 그게 이런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세계가 수십, 수백 번이 아닌 무수히 많은 루프가 진행되고 있음을.
“…그럼 지금 남아 있는 신은 뭔데.”
그런 잔혹함을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받고 있음에도 침묵하는 만신전들의 신을 떠올리며 파이얀이 날카로운 눈으로 마리안느에게 물었다.
그에 마리안느는 진주색 눈동자로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시겠지만 신들은 전지 혹은 전능하지 않아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반기를 들었던 신들이 있었겠으나 우리는 은혜도 존재도 이름마저도 잊고 살죠.
그렇게 반기를 든 신들은 소멸하고 더한 영락을 누리기 위해, 혹은 현상 유지라도 하길 바라며, 영원한 반복을 즐기는 신들 또한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침묵하고 인내하는 분들도 계시기 마련입니다.”
분명 있었는데 사라진 많은 신들. 그 신들 사이에서 웅크려 있던 몇몇 신들.
이번에 살아 있는 신에게 반기를 들었으니 만약 실패하고 다음 회차로 넘어간다면 소멸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위험을 알면서도 이번에 손을 내민 것이 태양신, 운명의 신, 그리고 양면의 신입니다.
마리안느가 담담하게 말했고 그에 분명 들었는데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머리를 쥐고 있던 에리엘이 고개를 번뜩 들었다.
“그 무슨. 아니 제가 모시는 신께서는 아무 말도 안 하셨는데. 저는 속았어요. 속아서 온 건데… 저의 신께서 하시려고 한 게 아니라…….”
자신은 죽어도 좋고 소멸되어도 좋지만 양면의 신.
바사하의 소멸은 안 된다는 듯 에리엘이 횡설수설하는 것을 바라보던 케인이 입을 열었다.
“바사하 또한 알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가장 크게 관여한 존재겠군.”
“네……?”
고작 이번 봉인진에 힘을 빌려준 정도의 태양신이나 운명의 신과는 달리.
케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바사하의 경우 가장 깊게 얽혀있으니.”
원래 이곳의 존재가 아니었던 강 수호. 아델리안이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
서로 다른 공간, 그 시간을 비틀어 뚫은 자가 있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죠.”
불안감에 눈 아래가 검게 그을리듯 피곤함이 내린 에리엘과 다른 이들의 시선에 케인은 입을 열었다.
많고 많은 기억, 엉키고 뒤섞인 그것을 정리하며 알게 되었다.
신조차 미치지 않기 위해 쪼개둔 그 모든 기억을 합치고 뭉개고, 미치지 않기 위해 그 기억에 뒤따르는 감정은 지우고 사실만은 남긴 채.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몇 번째인지 모르는 루프에서 단 한 번.
레이첼부터 자신까지. 꽤 많은 이들이 세계의 비밀을 알고 기억을 떠올리며 가뮈르처럼 엿봤던 적이 있었다.
보통 많아 봐야 두엇, 혹은 넷.
한 손에 꼽힐 정도의 이들만이 비밀을 공유했다면 유달리 그땐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알았으며 엿봤었기에 힘을 좀 더 쉽게 모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테이트리아와 전선을 유지하며 내린 결론은 변수를 만들자는 것.
하지만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은 이미 수없이 테이트리아와 대적해 본 적 있거나 혹은 그를 추앙하는 이들만 남았는데 어찌 변수가 될 것인가.
그래서 선택한 것이 새벽의 기적이었다.
새벽에서만 통용되는 소울. 그것은 단순한 화폐 대용이 아닌 일종의 신앙이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 그것을 물질화 한 게 소울이며 그것을 바치는 행위로 바사하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었다.
그것이 신앙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케인은 그 루프 때 도박을 결심했다.
수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 동안 소울을 모아 단 하나의 소원을 빈다면, 그것이 얼마나 강력할 것인가.
신이란 신앙을 받는 만큼 격이 높아지는 존재.
그 힘으로 이 완벽한 새장을 비틀어 틈을 만든다.
그 틈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모르나 천계나 마계, 혹은 정령계와 같은 곳이 아닌. 동전의 뒷면처럼 본디라면 만날 수 없던 세계로 닿을 것이다.
동시에 어차피 심장이 불완전한, 스스로를 반쪽짜리라 여긴 레이첼이 자신의 영혼 일부를 쪼개 길잡이로 보내기를 자처했다.
그 말에 레이첼의 친우인 루나도 자신의 영혼을 쪼개겠다고 했으나 결론적으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리프가 자신이 가장 효율적이라며 영혼을 가르기로 했었다.
그렇게 양면의 신 바사하에게 살아남은 모든 이들이 오랜 시간 모은 소울은 신성이 되고 그 신성으로 기적을 바라였으니.
그 결과가 아델리안이었다.
테이트리아가 알 수 없게 케인이 테이트리아를 죽이는 그 순간, 어차피 다시 시작되기 위해 새장이 망가지던 때에 맞춰서 레이첼과 리프도 자신의 영혼을 찢어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나눠진 레이첼과 리프의 영혼이 아델리안의 세계로 넘어가 그를 만나서 무엇을 약속했을지는 알 수 없으나 결국 아델리안은, 강 수호는 이곳으로 오고 말았다,
그러니 이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피해자요 우리 모두를 가해자로 둔 희생양인 것이다.
그에 케인은 말했다.
“10년을 받았다. 그리고 가장까진 아니지만 제법 많은 이들이 이 세계의 진실을 알고 있지.”
그렇다면 굳이 아델리안을 이곳에 붙잡고 있어야 할까.
그에 루나가 조금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 도련님께서… 나는…….”
“솔직히 말해서 케인 당신이 앞으로 진행을 맡는다면 이탈자가 반드시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루나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자 체이서가 받아 말하며 눈 휘어 웃었다.
“강한 자가 훌륭한 리더는 아니죠. 그럼 뭐 이미 살아 있는 신이 끝냈어야지 이 모든 걸, 안 그래요?”
제가 계약한 사람은 또 주인님이기도 하고.
하며 장난스레 말하다가도 느슨하게 숨을 흩었다.
“물론 이번이 마지막 기회란 생각에 협조는 하겠지만요. 따로 움직여도 되겠죠? 물론 주인님을 되돌려 보내는 건 찬성.”
“솔직히 나도 보스가 약속한 게 있기도 하고 굳이 보스 아닌 이상 그렇게 바쁘고 힘들게 일할 필요 있냔 생각은 드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이탈할 생각은 없거든. 나도 찬성.”
파이얀이 한 손 들고 말하자 루나가 울 거 같은 얼굴로 레이첼과 레비를 번갈아 응시했다.
“각성 다 해서 계약자가 없어도 안정화된 상태야. 나도 괜찮아.”
“솔직히 아델리안이 뭐 검을 잘 쓰냐 마법을 잘 쓰냐. 코덱스에 있는 마법 그거 아는 드래곤 하나만 불러도 되는데. 돈? 카이만이 협조 할 거 아니야.”
그럼 아델리안의 존재가 뭐가 필요한데.
레이첼이 차갑게 말했다.
“보내자. 그런데 보낼 방법은 있고?”
레이첼의 물음에 케인이 잠시 눈을 가늘게 뜨다가 고개를 조금 돌려 아직 간이침대에 누워있는 아델리안을 짙은 황금색 눈동자로 응시했다.
“이곳의 영혼이 아니니까. 그 희미한 이어짐이 저 너머로 닿아 있는 게 보이니 가능하다.”
“잘되었네. 솔직히 이번에 보니까 아델리안 같은 약골은 살아 있는 신이 눈빛만으로도 골로 보낼 수 있겠던데? 골로 가기 전에 집으로 먼저 보내자.”
“레이첼!”
케인의 말에 레이첼이 지금 자고 있을 때 얼른 보낼까? 하며 웃자 루나가 소리를 질렀다.
“너무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해? 도련님이랑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함께 했는데…….”
“동의합니다. 아델리안님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저희가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험해서 그런 거라면 저도 계속 강해지고 있고…….”
루나의 말에 제로까지 합세하는데 케인이 말을 끊었다.
“얼마나 더 희생하란 말인지 모르겠군.”
원래부터 이곳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으로 와 잘못하면 영혼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것보다 더욱 끔찍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이번에 테이트리아의 루프를 멈추고 완전히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면 모를까. 수많은 과거처럼 결국 다시 실패하고 모든 기억을 잊는다면.
과연 아델리안은 어찌 될까.
어쩌면, 테이트리아가 그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세계가 무너지고 다시 시작될 때 그의 영혼이 튕겨 나가 본래 자리로 되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한번 아델리안을 보았지 않았나.
인식했으니 테이트리아가 놓아줄 리 전무했다.
소멸 혹은 루프에 섞을지도 모르지. 혹은 단순히 손에 쥐고만 있는 것도 방법이다.
어찌 되었건 절대 케인 자신이나 다른 이들에게 되돌려주어 이번처럼 함께 하지는 못하게 만들겠지.
본래 세상으로도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거역한 인간이므로.
“네가, 우리가. 내가. 아무리 강해진다 하더라도 아델리안 만을 지키고 곁에 서있을 수는 없다.”
살아 있는 신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다면 당연히 아델리안의 곁이 아닌 전선에 서는 것이 맞는 일이요.
반대로 제대로 막을 수 없을 정도의 강함이라면 굳이 곁에 세워둘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에 제로가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약하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강해지면 되는 일이지만.
그것과는 본질이 다른 문제였으므로.
사실 머릿속으로 이해는 했다. 다만 아델리안을 오랫동안 보아온 루나와 아델리안으로 인해 미궁 밖으로 나오게 된 제로였기에 조금 더 감정에 매달렸을 뿐.
이 세계의 멸망도 반복도 그 어떤 것이든 이곳에 속한 존재들의 일이다.
그것을 자신들이 간절하다는 이유로 다른 세계의 존재를 말려들게 한 것은 그 어떤 말로도 포장할 수 없는 역겨운 행위였다.
“쪽팔리게.”
레이첼이 중얼거렸다.
그 회차의 자신은 미친 게 틀림없다.
아무리 간절하고 버겁고 구원을 바랐다 하더라도.
영원히 고통받을지언정 그 어떤.
하다못해 이 세계에서 원죄 또한 짊어지지 않은 이를 끌어들이는 건 아니지.
단순하게 도움 받다가 안 되면 되돌려보내면 되겠지, 하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잘 해냈다.
모든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 레이첼이 생각했을 때도 마리안느와 케인이 말한, 이 세계에 닥쳤을 멸망의 징조 혹은 원인을 몇 개나 엉클어뜨렸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조금 도움받다가 보낸다는 그런 마음이면 이미 차고 넘쳤다.
케인은 더하겠지.
듣자 하니 모든 인간족을 짊어졌던, 소위 말하는 종족의 영웅 아닌가.
그런 놈이 누군가를 희생시켜가며 자신의 안위를 챙기고 싶진 않을 테니.
“하여튼 더 반대하는 사람 없지?”
있으면 진짜 양심 없는 거고.
레이첼이 그리 말하며 케인을 바라보았고 케인 또한 레이첼과 더불어 눈물을 흘릴 거 같은 루나. 그리고 다른 이들을 훑어보다 아델리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어찌 생각하지.
케인의 물음에 아델리안이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아 케인의 황금색 눈동자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다른 건 다 미루고.”
딱 한 대만 맞자 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