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57)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57화(357/373)
허브가 섞인 향초의 연기가 자욱하다.
제국의 가장 깊은 곳. 어느 누구도 쉬이 침범할 수 없는 공간.
그곳에서 테이트리아는 느리게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니 길고긴 실타래 같은 황금색 머리칼이 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완전히 몸을 바꾼 건 처음이군.”
느리게 손끝부터 접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 본다.
셰인의 몸을 제어하며 동시에 언제든 다시 바꿀 수 있도록 약간의 접점을 남겼던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확실하게 본래의 몸에 모든 격과 업을 가지고 내려왔다.
본래의 육신과 만난 영혼이 한층 더 견고하게, 동시에 더욱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감각에 테이트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길고 긴 시간.
억겁에 달하는 인고의 열매가 드리울 때가 왔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원한다면 그 어떤 비밀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거짓된 세계를 만든 게 바로 자신이니.
지리멸렬한 과거들이 겹겹이 붙어 지금이 되었다. 길고 긴 케인과의 악연도 도륙 낼 순간이다.
그리도 연약한 외세계의 인간이라는 게 참으로 우스우나 뭐 어떠한가.
끝이 보이지 않던 길의 저 앞에 깃발이 하나 생겨난 거나 마찬가지이다.
테이트리아는 자신이 있었다. 그들이 진정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서 이 세계 자체를 강탈해야 함을 알고 있었기에.
이미 본래의 역사는 그 흔적을 찾기도 힘들 만큼 잘못 쓰여졌다. 순전히 테이트리아 자신이 하나씩 쌓아 올린 세계.
그런 이 세계의 권한을 케인이 자신에게서 빼앗을 수 있을까.
모든 문제가 그러하듯 정답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면 누구나 쉬이 풀 수 있을 거 같이 보인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단 한 번의 기회로 완벽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재미있어.”
이런 기분을 얼마 만에 느끼는 걸까.
테이트리아가 일어서니 긴 머리카락이 황금이 흐르는 강처럼 흘러내렸다.
단순히 시선을 던지기만 해도 침대를 둘러싸고 있던 휘장이 걷어지며 창문이 열리고 방안에 가득 차 있던 향기가 전부 날아간다.
허공에 검고 둥근 것이 생겨났다. 어둠의 마나가 물질화한 그것은 마치 거울처럼 테이트리아를 비추기 시작했다.
고작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긴 황금색 머리칼과 검은 눈을 하고 어둠의 마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전성기의 육신이라 지금의 케인과 맞지 않는군.”
강한 마나와 오러의 주인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보통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육신이 가장 완벽하다 여기기에 강할수록 그 연령대로 돌아가 고정되는 습성을 가졌다.
“10년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5년 후부터 나이를 먹어가면 될 것이다.
테이트리아가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빗든 이마부터 쓸어넘기자 흐드러져 있던 머리칼이 길게 하나로 땋이며 어깨 위로 늘어졌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실내복으로 펄럭였던 하얀 튜닉의 색이 짙어지며 프록코트형 정복으로 변했다.
“폐… 폐하?”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린 문 앞에, 베일을 쓰고 있는 세리아가 서 있었다.
“어찌…….”
굳어버린 몸.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파충류의 비릿함.
뒤가 유독 부푼 치마와 더불어 손끝에서 풍기는 약간의 피 냄새. 그리고 쇠 냄새.
테이트리아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세리아.”
“예… 예 폐하…….”
가녀리게 웅크린 어깨가 떨린다.
테이트리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드래고니안이로구나.”
그 말에 떨리던 세리아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래 그런 적도 있었지. 나의 교단이 트레잇을 빌미로 잡아 너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해 대륙에서 정화를 시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끔은 결국 독살을 당하거나 내 교단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재능을 얻게 될 때도 있었지.
“이건 성녀 상인가.”
그 아델리안이란 사내가 이런 데까지 손을 뻗어 나를 방해했구나.
테이트리아가 손을 뻗어 베일을 걷자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와 피부에 돋아난 비늘이 보였다.
그 불안한 눈동자는 이내 바로 무릎을 꿇으며 테이트리아에게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폐하. 아니 아버지… 아버지…….”
세리아는 두려움에 테이트리아의 옷을 잡고 애원했다.
순혈 인간만이 귀족으로 인정받는다. 최소 3대 이내에 다른 피가 섞이지 않아야 했다.
그렇다면 황족은?
단 한 번도 아인족과 섞인 적 없는 피. 그것이 황실이었고 그것이 황족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리아 자신의 몰골이 어떠한가.
태어나기를 순수한 인간으로 태어났으되 지금은 더러운 아인족의 모습이 섞이지 않았던가.
자신의 몸이 이렇게 되었는 데다 샤하드는 반대로 날아오르고 있다.
이대로라면 세리아 자신은 절대 다음 대 황제가 되지 못하겠지.
그 사실에 순간 눈이 뒤집혀 오늘 황제를 암살하려 마음먹고 왔으나 하필 깨어나 있을 줄이야.
바들거리는 몸으로 웅크려 애원하는 세리아를 테이트리아가 내려보았다.
“더러운 모습이구나. 하지만.”
테이트리아의 시선이 몸에 붙은 비늘을 향하다 손짓하자 세리아의 몸이 자연스레 들려 일어났다.
“오늘은 기분이 좋구나.”
천천히, 테이트리아는 세리아의 뺨을 어루만졌다.
얼룩덜룩하게 피부 안쪽부터 밀려 나온 듯했던 비늘이 테이트리아의 손길에 하나둘 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몸에 감돌던 비린내는 흩어지고 좁고 길어졌던 동공이 줄어든다.
허리 아래쪽부터 돋아나온 꼬리는 말려 들어가듯 사라지고 두텁고 날카롭게 돋아났던 손톱도 송곳니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 어.”
피와 날고기에 대한 충동. 그리고 절망과 분노, 수치스러움과 질투가 섞였던 머릿속마저 맑게 개는 것만 같다.
세리아가 자신의 몸을 바라보다 팔꿈치까지 덮고 있던 장갑을 한 짝 벗었다.
보기 흉한 검녹색 비늘은 사라지고 솜털만이 햇빛에 비쳐 보였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번 한 번은 넘어가 주마.”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꼭두각시가 되어 이 세계를 피로 물들였으니.
마지막이 될 이번 회차에서는 그냥 용서해도 될 것이라.
자비.
그것이야말로 신이 가져야 하는 덕목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아인족에게는 티끌 하나 줄 이유 없으나 자신의 아이에게 이 정도 자비는 베풀 수 있어야 하는 법.
테이트리아가 짙은 검은색 눈으로 세리아를 바라보았다.
“수도에 머무르고 있는 모든 귀족들을 부르도록 하거라.”
이제부터 제국은 내가 움직일 테니.
* * *
“케인 너는 나가 있어.”
내 잔소리로 괴롭기 싫으면.
“그래.”
잠시 시간이 걸릴 거 같으니 케인은 뭐 사냥이라도 해오라고 내보내 놓고.
나는 해바라기처럼 반짝반짝한 얼굴로 나를 바라 보는는 레이첼을 향해 웃었다.
“뭐 하고 있었다고?”
“아 별거 안 했다니까. 알지? 믿지?”
레이첼 네가 그렇게 화사하게 웃으니까 아주 잘 알겠다.
더불어 네 뒤에서 가뮈르는 은은하게 웃고 있고 체이서는 대놓고 그림자로 화살표 만들어 널 가리키고 있거든 지금.
‘딱 봐도 레이첼이 뭐 했구만.’
나는 레이첼이 안 피곤하냐며 얼른 한숨 자라며. 한숨 자고 일어나면 식사를 대령해놓겠다는 말에 심드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로.”
“예. 레이첼과 에리엘. 레비와 바하디 씨는 아델리안 님께서 복귀하지 못 하신다에 걸었습니다.”
아니 내가 케인과 치열한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 여기서 그걸 상대로 내기를 걸었단 말이야?
내가 배신감에 치가 떨린다는 표정으로 레이첼을 바라보니 해바라기처럼 웃던 레이첼이 슬쩍 고개를 돌린다.
그러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바락 화를 내며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나만 했나? 레비도 했는데?”
“앗… 그게… 으으…….”
레이첼이 루나에게 안겨있던 레비를 빼앗아 주물거리다 늘리며 말하니 레비가 차마 아니라고 말 못 하며 우물거렸다.
“레비는 아기잖아.”
애는 원래 그럴 수 있어.
내 말에 레이첼이 어이가 없단 얼굴로 입을 벌리며 레비를 톡 떨어트렸고 레비는 바닥에 부딪히기 직전에 동동 떠서 슬쩍 나에게 안긴다.
“거기에다 뭐 에리엘이야 원래 내 파티가 아니니까 그럴 수 있지.”
거기에 내가 말랑한 레비를 통통 두드리며 옷자락을 잡고 우물쭈물거리던 에리엘을 두둔하자 레이첼이 내가 얄미운 듯 바라보았다.
“나만 못된 거네, 나만?”
원래 서양용은 나쁘다고 그러더라.
“어떻게 네가 이럴 수 있어. 나에게 바친 몸과 마음은 날 믿었는데 그럼 무엇이 안 믿은 거야. 영혼? 말을 해봐.”
나는 한참이나 레이첼을 잡고 잔소리했고 그 덕에 레이첼은 씩씩거리면서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잔소리가 길어짐에 따라 레이첼의 얼굴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냉장고에서 꺼낸 지 오래된 아이스크림케이크처럼.
흐물하고 시무룩해 보이는 레이첼에게서 시선을 떼며 루나에게 물었다.
“레이첼은 뭐 걸었는데 저래?”
“음… 도련님 그게요…….”
내 물음에 드물게도 루나가 말하기 어려운 듯 말꼬리를 늘린다.
그 모습에 나는 리프에게로 눈을 돌렸다.
―레이첼은 이미 관리자께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맹세하였으므로 걸 수 있는 거라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였습니다.
“레어 버리고 오래 떠돌아다녀서 보물도 적었을 텐데.”
애초에 골드나 마정석 같은 걸 건다고 받아줬을 거 같진 않고.
내 혼잣말에 레이첼이 움찔하더니 슬쩍 딴짓을 한다.
“체이서.”
“드래곤 로드 걸었어요.”
처음부터 체이서에게 물어볼걸.
냉큼 일러바치는 것 봐.
내가 크루거의 반지에서 몰래 사탕 하나 꺼내자 내 손가락 그림자가 슬쩍 움직이더니 사탕을 그림자로 들고 간다.
“정확하게는 모든 드래곤의 소집권을 걸었습니다.”
가뮈르가 웃으며 보충 설명하듯 이야기를 이어 말했다.
레이첼은 드래곤 로드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걸었고 레비는 챠비드의 사막에 비를 내려주기로 했으며 에리엘은 나중에라도 한 번 더 우리를 돕기로 한 모양.
그에 내가 한번 크게 웃어버리고는 입을 열었다.
“다음에도 날 그냥 믿어.”
으쓱한 뒤 배고프다며 천막 문을 열자 밖에서는 케인이 커다란 사슴 몇 마리를 잡아 모닥불을 무슨 수련회 캠프파이어처럼 피워놓고 굽는 게 보인다.
“아니 저걸!”
“적어도 마차로 일주일 거리 내에는 동물이 없을 텐데…….”
그에 제로는 기겁해서 뛰쳐나갔고 마리안느는 신기한 듯 중얼거렸다.
“피는 다 빼구 굽는 거야?”
―통으로 구우면 오래 걸립니다.
루나와 리프도 제로를 돕기 위해 다가갔고 바하디와 가뮈르는 품에서 허브 같은 걸 꺼내 캠프파이어에 던져 넣었다.
그 풀 몇 가닥이 타들어 가더니 뭔가 세련된 약초 향과 훈제 향이 번진다.
“어휴 뭐 그래도 네가 안 가서 다행이라 생각해.”
그 모습을 보던 레이첼이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한 입만 먼저 먹어보자며 달려갔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파이얀이 슬쩍 나에게 붙었다.
“저는 당연히 남는다에 걸었어요, 보스.”
바보가 아니거든.
하며 찡긋 웃는다. 그에 에리엘이 ‘나는 모르는 게 당연하지. 상식적으로 내가 맞는데…….’ 하며 터덜터덜 걸어갔다.
“아델리안 씨.”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에게 마리안느가 아주 작게 속삭였다.
“우린 곧 헤어지겠죠?”
“뭐 그렇지. 아무래도.”
속성 비보를 찾고 하는 일에 마리안느를 부릴 권한은 나에게 없는 거니까.
사실 성녀란 신이 직접 선택하여 힘을 내려준 존재.
원래라면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운명의 신이 나를 돕기 위해 마리안느를 보내주긴 했지만 그건 정말 노예처럼 쓰라는 소리는 아니니 이 정도 힘을 빌렸으면 헤어지는 게 맞지.
내 말에 마리안느가 희미하게 웃더니 작게 말소리를 흘렸다.
“그냥 말이라도 해봐요.”
제가 당신의 파티원이라고.
그에 내가 마리안느를 지그시 쳐다보았고 마리안느는 그냥 웃는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님을 저도 알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운명적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하고 뭔가 모를 복선 같은 말을 자꾸 하는데.
손해 볼 것은 없으니 나도 그냥 마주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리안느. 당신도 내 파티원이야.”
그에 마리안느가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구워진 겉면만 먼저 회처럼 잘라 먹기 시작하는 레이첼에게로 다가가 고기를 얻어먹기 시작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먹으면서 설산의 눈물에 대해 말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