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59)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59화(359/373)
아공간에 생수는 들어가도 와인은 들어가지 않는다.
마른 잎은 들어가니 차는 끓여 마실 수 있어도 술은 지금까지 마을에 가지 않는 한 마시기 힘들었는데.
‘포도를 꺼내면 레비가 어떻게 만들 수 있을 줄이야.’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아니 바다의 힘이나 물의 힘 같은 게 알콜이랑 무슨 관계가 있지
차라리 흑마법의 부패마법을 적절히 이용해 발효를 했다고 하면 몰라도.
그런데 뭔가 됐다.
결론적으로 아공간에 있던 포도를 가득 꺼냈더니 다들 기분 좋게 취한 상태다.
나는 그걸 바라보다 바람이나 쐴 겸 해서 일어나는데 문득 생각난 게 있어 케인이 앉은 의자의 등받이를 툭툭 쳤다.
따라 나오라는 듯 고갯짓하며 나가니 한밤중의 바다와 유난히도 커 보이는 달이 한눈에 들어온다.
달이 크고 밝은데다 별도 많은데 그것들이 전부 바다 위에 한 번 더 반사되니 라이트나 횃불은 필요 없었다.
나는 조금 걸어 살아 있는 신 덕에 튀어 오른 듯 흙이 묻은 바위 위에 앉아선 입을 열었다.
“약속 지켰다?”
그 말에 케인이 내 옆에 털썩 앉더니 황금색 눈으로 응시했다.
“나도 그러할 것이다.”
내가 그때, 케인을 경매장에서 산 뒤에. 눈앞에서 성 하나의 값어치를 지닌 마정석 하나를 부숴가며 불굴을 꺾으려들 때.
나는 케인의 동생인 셰인을 입에 올렸고 그에 케인이 결국 나와 손을 잡지 않았던가.
내가 가장 처음 사용한 신의 계약서.
그것의 내용은 별것 없었다.
나 아델리안이 그 어떤 방법으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케인의 눈앞에 여동생을 데려오겠다는 그 약속.
대신 케인은 나의 검이 되겠다는 맹세.
그래, 솔직히 말해서 진실을 알고 나면 내가 아주 치사한 방법을 쓴 거지.
테이트리아가 셰인의 몸을 차지하고 있으니 어찌 되었건 둘은 언젠가 만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원작에서는 자신이 그토록 죽이려 했던 살아 있는 신이 여동생의 몸에 강림했음을 알게 된 케인이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을 찔러오는 검을 피하지 않아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다.
나중에 이야기가 진행되며 죽음만이 살아 있는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 여겼기에 케인은 동생의 안식을 위해 검을 들지만.
뭐 속은 문드러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걸 알면서도 이용했고.
그래서 늘 그 부분에 있어서는 말을 쉬이 하지 못했는데.
‘마음이 좀 가벼워졌네.’
결국 테이트리아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은 확실해졌다 해도.
셰인이 풀려났으니까.
만에 하나 잘못되어도 케인이 셰인을 죽여야 하는 일은 없어졌으니.
“이제 네 계약서는 없애도 되겠다.”
셰인은 이제 우리와 있고 너는 나의 검은 되지 않더라도 테이트리아를 겨누는 검은 될 테니.
내가 아공간에서 케인이 나보다 키도 작고 말랐을 때 사인했던 신의 계약서를 꺼냈다.
“내가 멋대로 하면 어찌할 건가.”
내가 찢으려 양손으로 쥐는데 케인이 묻는다. 마치 그거 없이 자신을 어찌 통제할 거냐는 듯 묻는 그 눈에 나는 실실 웃었다.
“아. 네가 멋대로? 그건 원래 그랬잖아.”
언제는 뭐 내 말에 아주 충성을 다 한 줄 아나 본데. 넌 원래 완전 자기 마음대로 살았어, 인마.
나는 신의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어 바람에 얹듯 날렸고 그것들은 케인의 곁을 스치며 이내 황금색 불꽃으로 타올라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래. 넌 약속을 지켰지.”
그러니 다시 맺은 약속도 지켜라.
케인이 그리 말하며 일어난다. 그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려면 네가 아주 약해지던가.”
혹은 아주 강해지던가.
* * *
케인은 몸에 묻은 차가운 마나를 털 듯 손으로 제 어깨를 툭툭 쳐낸 뒤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옆 텐트는 이제 술과 더불어 게임으로 넘어간 듯 환호성 소리나 혹은 아쉬운 탄성이 번갈아 들린다.
하지만 이곳은 조용했다.
케인은 자신의 간이침대 위에 누워 가는 숨소리만 내며 잠든 셰인을 바라보았다.
긴 검은 머리와 빛 한 점 본 적 없었던 것처럼 희다 못해 투명하고 창백한 피부.
케인 자신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조금 더 여리고 부드러운 얼굴선.
어릴 때 마지막으로 본 얼굴과 비교하자면 제법 많이 컸나.
이제는 그 기억.
사랑하던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이 불타고 동생이 끌려간 그 기억은 거짓임을 알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제로는 일어났던 일이나 사실 연극이나 다름없음을.
그 모든 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테이트리아가 만들어 낸 시나리오.
그리고 셰인마저 어떻게든 케인 자신의 영혼을 태울 만큼 강한 슬픔과 고통을 주기 위해 이용한 것이니.
이 어린 동생은 오롯하게 자신 때문에 이용당했음이라.
아니.
케인 자신 하나 때문에 이 세계의 모든 것이 파괴당하는 중임을.
“셰인.”
흘러내린 머리칼을 손끝으로 쓸어 넘겨주며 케인은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강한 힘과 높은 격을 지녔다 하더라도 소중한 사람의 영혼이 다칠까 강제로 깨우지도 못한다.
스스로 일어나기를 바랄 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몸에 자신이 거부하는 신을 받고 있었을 테니 사실 살아 있는 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되었다.
이제 조금 남아있던 불안과 두려움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케인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자 아스라한 황금색 빛이 천막을 채우다 이내 빨려 들어가듯 사그라든다.
이제 자신이 원한다면 육신을 버리고 만신전의 신처럼 저 높은 곳 위에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바라건대 이 모든 것들이 마지막이길.
케인은 셰인을 내려보며 인간에게 기도했다.
* * *
“나쁜 놈.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고…….”
라헬라는 우유가 가득 든 통을 안고 울먹였다.
그 모습에 라헬라를 다시 바다 바녀의 던전에 데려다준 체이서가 낮게 목 울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델리안 주인께서 좀 그런 면모가 있긴 하죠?”
“완전 많이!”
아니 당신도 봤잖아. 하며 라헬라가 우유를 한잔 따라 마시더니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대적하느니 뭐니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아…….”
육신을 가지고 내려 온 신이다.
어느 멍청한 이들이 생각하기에 육신이 있다는 건 피를 흘린다는 소리니 결국 죽일 수 있다는 말이지 않냐고 하겠지.
‘하지만 틀려. 그런 개념이 아니야.’
라헬라는 우유를 홀짝이며 던전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차라리 모든 산을 베어 바다에 넣자고 하는 게 더 쉽다니까.”
그 모습에 체이서가 흠. 하며 웃더니 그 앞으로 걸어가 라헬라와 눈높이를 맞추듯 무릎 굽혀 앉았다.
“왜 해보지도 않고 우는 소리를 해요, 바다 마녀 씨.”
“신이 무슨 심해 잡어로 보여?”
유들유들한 체이서의 얼굴을 라헬라가 화가 난 표정으로 노려보며 대답했다.
“일단 육신이 있다는 건 그만큼 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이 높다는 거야…….”
의식체가 아닌 본신.
즉, 지금은 잠들어있는 진짜 바다 마녀 라헬라 리브로아도 쌓은 업과 격을 생각하면 하급 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신이 되면 그 신위를 쌓아감에 있어서 신격을 높일수록 전능해지고, 전지해지며 의식을 초월할 수 있음에 따라 차원을 넘는 그 무언가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말인즉슨 결국 신이 사는 세계와 살아 있는 것들이 사는 세계는 다르다는 소리였다.
육신을 버리고 신계로 가게 되면 신계에서 주로 운명을 이어나가게 된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도 다른 법.
괜히 다른 신들이 중간계에 간섭할 때 조심스러워하는지, 그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다.
“개미의 세계는 개미일 때 가장 잘 파악할 수 있고 간섭할 수 있는 거야아…….”
인간은 분명 개미보다 강하지.
그 개미를 손가락 하나로 짓누르거나, 혹은 설탕을 뿌려줄 수도 있고 물에 빠진 것을 건져 올릴 수 있으며, 혹은 몇 걸음 걸어 전혀 다른 공간에 내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개미굴을 청소하고 알을 돌보고 새로운 여왕개미를 추대하는 것은 개미가 더욱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신은 지금 인간이 병정개미의 몸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야.”
개미굴이 무너질까 봐 진정한 힘은 내지 못해도 아주 최고의 병정개미라 못 하는 게 없지.
그런데 우리는 그냥 일개미도 아니고 되다 만 개미 부스러기라고 치자.
어찌어찌 뭐 그 최고의 병정개미에게 수많은 부스러기들이 덤벼들어 결국 이겼다고 치자고.
“그럼 끝이야? 아니지.”
병정개미의 몸에 욱여넣은 인간이 나타나서 손가락으로 다 눌러버리는 거야. 개미도 못된 개미 부스러기들을.
“지금 그 신이 육신에 자기를 묶어놨다고 그것만 죽이면 끝날 거 같아?”
그다음은 진정한 신을 상대해야 한다니까.
“그런데 그런 존재를 상대하는 환상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라헬라가 여러 개의 눈에서 후득 후드득 하고 서로 다른 속도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만들 수야 있지……. 있는데…….”
그건 그냥 생긴 모습만 가져다 붙인 가짜.
결국 이번에 본 그것들을 적용하기에는 턱없이 격이 부족하다.
우유에 소금 한 꼬집 설탕 한 스푼 섞어 마시며 몸의 촉수들이 시무룩이 흘러내려 있는 라헬라를 바라보다가 체이서가 눈 휘어 웃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네가?”
제가 이래 봬도 제법 그 신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몸이라.
체이서의 말에 라헬라의 눈들이 여러 번 깜빡이더니 냉큼 양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에 체이서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대신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능력을 올리기 위해 잠시 따로 떨어져 연구를 할 생각이었거든요.
“제가 마법을 연구할 공간을 좀 내주시면 좋겠는데.”
말은 사근사근하지만 누가 봐도 이건 협박이었다.
적어도 라헬라만큼은 그리 느꼈지만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말이야 물을 게 있는데.”
라헬라의 길게 찢어진 고동색 눈 두 쌍이 체이서를 응시했다.
“나도 마녀니까 알 수 있거든.”
체이서는 외도마법사.
그림자와 정신 마법, 그리고 혈 마법을 다루는 존재.
그 마법들은 배움이 매우 어렵고 난해하나 굉장히 강력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체이서는 그 외도마법을 셋이나 다루는 데다 그 경지가 외도마법뿐 아니라 다른 속성마법사들을 통틀어 손꼽힐 정도.
아델리안의 파티에는 워낙 괴물들이 많으니 상대적으로 티가 나지 않지만 체이서는 시간만 넉넉히 주어진다면 작은 나라 하나 정도는 몰락시킬 수 있는 정도였다.
“지금도 그 파티의 발목을 잡을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뭘 원하는 거야?”
그에 체이서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웃었다.
“제가 알고 있는 게 하나 있어요, 바다 마녀 씨.”
아델리안, 아니 강수호의 기억을 엿보았을 때. 그리고 살아 있는 신이 보여준 환상으로 체이서는 보았다.
수많은 광신도들이 자신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 하나를 죽이기 위해 악을 쓰는 장면을.
“다른 세계에는 이런 말도 있더라고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 없다고.
“힘없고 세뇌당하여 죄 없는 일반 사람들을.”
가족이 인질로 잡히고 고문과 고통에 어쩔 수 없이 칼을 들고 찌르려고 덤비는 이들 수천, 수만 명을.
“죽여도 괜찮은 사람은 또 많이 없어서.”
그 파티의 누군가가 의미 없이 손에 피 묻히는 짓을 좀 싫어하시는지라.
“하지만 그걸 해야 하는 사람이 또 필요하잖아요?”
이해하시겠죠? 그리 웃는 체이서의 검은 눈이 마치 뱀의 어두운 비늘 같다고 라헬라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