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6)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6화(36/373)
피를 쏟아 그런지 오래 자고 일어났음에도 피곤해 다시 깜빡 잠들었을까.
나를 조심스레 깨우는 손길에 무심코 손목을 잡아내다 굵직한 감각에 슥 눈을 뜨니 아까 그 신관의 얼굴이 보인다.
“일어나십시오. 고위 신관이 오셨습니다.”
살짝 몸을 당겨 일어나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니 온화한 외모의 나이 든 사내가 웃으며 다가온다.
“잘린 다리를 가져왔다 들었습니다만.”
“아, 그거요.”
백발이 성성한 그를 보다 나는 아공간을 열어 슬쩍 흐린 눈 한 채로 내 다리를 빼내 그에게 건넸다.
묵직하고 차갑고,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지는 촉감에 얼른 건네자 나이 든 신관이 내 다리를 쥔 채로 이리저리 둘러본다.
“보관이 굉장히 잘 된 데다 아주 깔끔하게 잘렸군요. 절단면이 매끈함에 가깝고 유실된 부분도 없으니 이후의 회복도 빠를 겁니다.”
이르면 당장에라도 부자연스럽겠지만 내 발로 걸을 수 있을 것이란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입을 열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값도 꽤 넉넉하게 치렀으니. 내 무릎을 잡고 파랗게 질린 다리를 마주한 뒤 신관이 몇 가지 주문 같은 말을 외자 살덩이가 움직이며 서로 붙기 시작한다.
그리곤 하급 신관이 내 다리를 주무르고 마사지를 하며 문지르니 퍼렇게 죽어 보라색 혈관이 올라오던 다리가 점차 생기가 돌았다.
“윽…….”
미친, 다리가 찌르르한 게 한 30시간 깔고 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다리에 전기로 된 알들이 가득 차다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주 강한 고통이라기엔 덜 괴롭고, 간지럽다기엔 너무나 괴로움에 나는 앓는 소리를 하며 몸을 웅크렸다.
이내 발끝이 쥐가 나 비틀리는 것처럼 경련하더니, 발이 돌아가는 기분에 몸을 비틀었다. 그러니 하급 신관이 열심히 주물러 경직된 근육을 풀어준다.
젠장, 다시는 내 몸을 미끼로 쓰지 않으리.
무슨 다리 잘리는 것보다 지금이 더 힘들어?
식은땀을 한 바가지는 흘렸을까. 드디어 끝이 난 듯 몸의 떨림이 멈추고 힘이 풀림에 숨을 고르자 두 신관이 나를 바라보며 일어난다.
“끝났습니다.”
“조금 쉬시다 일어나보십시오. 많이 걸을수록 회복도 빨라질 겁니다.”
알았으니 나가보란 듯 내가 급하게 손짓하자 그 둘은 볼일 다 본 듯 냉큼 나간다.
둘이 문을 닫고 나간 뒤에야 나는 대놓고 좁은 침대를 구르며 앓았다.
물론 진짜 마법이 있는 세계라지만 짠 하면 떡하니 붙어서 멀쩡할 거라고 생각은 안 했지.
그래도 진짜 너무 아파서 마지막엔 눈물도 찔끔 나왔는데 그 와중에 드는 생각이 케인과 루나 보내둬서 다행이라는 거라니.
“진짜 부유감 만세다…….”
다리를 잘랐다 붙여도 드는 생각이라곤 눈물 쪼르륵하는 쪽팔린 모습 안 보여서 다행이라는 게, 나약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트레잇이네, 이거.
난 침대에 누워 별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꼼질꼼질.
발가락도 움직여보고 발목도 돌려보니 뭔가 좀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잘 움직인다.
신관의 말대로 자꾸 써서 이 어색한 감각을 줄이는 게 낫겠는데.
“으음…….”
밖을 보니 이제 막 동이 트는 듯 하늘이 밝아지고 있다.
“새벽 산책이나 갈까…….”
완전히 해가 떠 루나나 케인이 오면, 특히 루나는 내가 막 붙은 다리로 산책한다 하면 걱정할 거 같으니까. 오기 전에 산책 해치우자. 그 김에 젖은 몸도 좀 씻고.
침대를 잡고 일어나 바닥을 디디니 더욱 느껴지는 다리의 위화감.
그에 나는 아공간을 뒤져 땔감용으로 모아 둔 것 같은 나무토막 중에 적당한 것을 꺼내 지팡이 대신 잡고 한 걸음씩 걸어 밖으로 나왔다.
정신을 잃고 옮겨진 덕에 방 외엔 못 봤으니 몰랐는데 확실히 미궁 도시가 큰 곳이다 보니 신전 또한 제법 크다.
잘 꾸며진 조경에 새벽부터 청소하는 이들도 보이는데…….
“……?”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건 아니지만 빗자루로 바닥을 쓸다 눈이 마주친, 허드렛일을 하는 하녀의 옷을 입은 저 여자는 형언할 수 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나 오로라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진주색 눈동자. 그 색의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 감청색 머리칼.
그냥 지나친다면 모를 그 얼굴은 한번 보고, 눈을 감았다 다시 바라보면 다시 새로운 얼굴로 한겹씩 한겹씩 덧칠하듯 그 아름다움이 피어올라 숨을 멎게 한다.
‘뭐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부유감덕에 나는 홀린다거나 넋이 나가지 않고 이렇게 뜯어 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은 어떻게 그냥 저 여자를 두고 지나가고 있는 거지?
‘트레…….’
“당신은… 묘한 운명을 타고났군요.”
트레잇 창을 열려는 순간, 그녀가 다가와 입을 연다.
“이봐, 당신.”
누구지?
원작에서도 게임에서도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내가 그 진주색 눈동자와 마주하는 순간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천천히 뒷걸음쳐 물러난다.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잠시, 잠깐만.”
젠장, 다리가…….
내가 불편한 한쪽 다리를 끌듯 움직였으나 모퉁이를 돌아선 그녀는 마치 유령처럼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거슬리는 소리만 내뱉고 사라지다니. 이상하게 찝찝하네…….
하늘은 해가 다 뜬 듯 밝아지고 새벽 특유의 공기 냄새도 사라졌다.
그 여자가 누군지 궁금하지만, 일단은 씻고 루나와 케인이 오기 전에 방으로 가는 게 더 급하다.
‘하아, 진짜. 꼭 영화나 드라마 보면 이런 게 복선이고 어?’
나중에 찾으면 ‘네? 저희 신전엔 그런 여자 없는데요.’ 이러고 그러던데.
그럼 또 보다 욕하는 거지. 아, 그때 당장 뛰어가서 잡아야지 그걸 그냥 보내주냐!
충실하게 시청자의 시각으로 상황 하나 뚝딱 만들어내며 씻곤 밖에 나간 적 없는 척 침대에 누워 내 방에서 쓸어온 잡다한 물품 중 책 한 권을 아공간에서 꺼내 팔랑였다.
처음엔 컴퓨터도 핸드폰도 없는 이곳에서 뭐 하며 지내나 하고 고민했는데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더라.
어릴 때 동물 백과나 공룡 대사전 이런 거만 봐도 재미있었는데 이곳에 와서 몬스터 일람 이런 거 보니 꽤 흥미로운 게…….
“도련님… 다행히 신관이 다녀왔다 갔나 봐요.”
“루나 왔어? 케인도 얼굴이 좀 낫네.”
한참 빠져 읽다 부르는 소리에 한 손을 올려 루나와 케인에게 흔들어 주곤 웃었다.
“그래, 아리아는 잘 보냈어?”
“네, 도련님은 왜 같이 안 왔냐구 그래서 적당히 둘러대구 보냈어요. 당분간 본가에서 일하다 돈이 모이면 다시 올 거라구 그러더라구요.”
과연 미궁 도시로 아리아가 다시 올 수 있을까?
나는 아리아를 떠올리며 서류 노예는 놓아주면 안 되지 하고 중얼거리다 루나가 다리를 주물러주어 몸을 늘어뜨렸다.
“…도련님 설마 직접 걸어서 씻구 오신 건 아니죠?”
왜 이리 깨끗하지? 하며 다리를 주무르다 말고 내 몸 근처에서 코를 킁킁대던 루나의 모습에 나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원래 잘 생기면 안 씻어도 향기나고 그래.”
“머리에 이상이 생긴 것 같군. 신관을 불러오지.”
내 말이 가소롭다는 듯 단박에 뭉개는 케인을 노려보다가 화제전환을 위해 붙인 다리를 높이 들어 발가락을 움직였다.
“어때. 멀쩡하지? 이제 퇴원… 아니, 퇴전해도 되지 않을까?”
루나가 잼잼이를 하는 내 발가락을 보다가 눈꼬리가 슬슬 올라간다. 그에 나는 천천히 다리를 내리곤 알아서 이불 펴서 덮은 뒤 다시 누웠다.
이불 안에서 발목 돌려보며 점검해도 별 이상 없는데… 억울하다.
“최소 3일은 누워 계세요. 아시겠죠? 그리구 이제 제가 늘 있을 테니 소소한 건 다 저 시키시구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던전 부수고 나온 데다 루비가 무슨 짓을 해서 들어간 건진 모르겠지만 원래 출입금지 된 곳에 들어갔다가 나온 걸 조사로 다 알았을 텐데.
그런 뒤처리는 누가 하려고 나랑 루나가 여기 붙어 있어?
나는 혀 대신 칼을 박아둬도 이상하지 않을 케인과 허허실실 소심 루나를 보다가 하하 웃었다.
“루나, 농담이 늘었네?”
느리게 턱 괴며 오랜만에 흑막 얼굴 좀 해주며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린다.
“둘 다 시간 많아? 나는 여기서 쉬더라도 너희는 쉬면 안 되지. 안 그래?”
“하지만…….”
“원래 네가 생각한 전투 인원은 나뿐일 텐데. 루나는 원래 너의 메이드…….”
나는 시무룩해지는 루나를 변호하듯 입을 여는 케인의 말을 잘라먹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무슨 소리야. 내 파티는 만능이어야지. 둘 다 던전 돌며 감 좀 익혀야 할 시간에 여기서 뭐 해. 어? 설마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내 말에 둘의 입이 닫힌다. 나는 루나의 시중 정돈 필요 없다는 듯 허공에서 물병을 꺼내 마시며 말했다.
“내가 누워 있는 동안 던전 관리처 쪽에서 사람 나와서 조사받았지? 나머진 내 쪽으로 넘기고 너희는 움직여. 자세한 정황은 내가 증언하고 마무리할 테니.”
어차피 루나와 케인이 아는 거라곤 내가 파티를 맺어 합류해서 같이 들어갔다 정도인 데다 루비와의 연결고리인 내가 어제 일어났기에 오늘은 되어야 감찰관이 올 것이다.
뭐 그런 거야 내가 처리 가능하니 그동안 케인과 루나는 미궁 노가다를 하는 게 훨씬 낫지.
“죽다 살아나도 같군. 하루 만에 바로 기운 차린 걸 보니 있을 필요 없겠어.”
“그치만…….”
케인이 루나를 보며 고개를 저어내다 무언가 속삭이더니 이해한 표정의 루나를 데리고 나간다.
큰일도 겪었으니 지금 한창 경험치가 쌓이는 시기다. 이럴 때일수록 감을 잊지 않게 현장을 돌아야 하는 법.
‘뭐, 나도 마찬가지지만.’
코덱스를 이용해 마법을 쓰는 타이밍이나 파티원의 움직임을 예상해 보조를 맞추는 일 같은 건 계속해 봐야 손에 붙는데.
지금 다리가 걷는 것도 약간 부자연스러우니 뛰는 건 더 무리지.
따라가 봐야 말뚝딜이고 그건 컨트롤 증가엔 도움되지 않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휴가받은 셈 치고 쉬는 게 나을 수 있다.
나는 허공에서 손을 움직여 코덱스를 꺼내 사용한 마법과 남아 있는 마법을 확인했다.
확실히 이번엔 공격, 혹은 방어형 마법을 많이 쓰고 유틸성 마법의 소모는 적은 편.
“마탑도 들려야겠네.”
세이렌이 알카이도와 할론에게 전달되면 그걸 연구해 개체 수를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원작에서 세이렌을 얻은 외팔 사내가 케인의 적이 되는 바람에 정보전에서 밀리고 여론에서 밀리고 개고생한 걸 떠올리면 열 받지만, 이제 세이렌 프로토타입이 내 손에 들어온 이상 그걸 똑같이 이쪽에서 할 수 있단 말이지.
처음엔 크루거 상단의 연락망 느낌으로 먼저 돌려서 깔다가 마케팅으로 귀족에서 일반인까지 몇 년 안에 깔아두면 나중에 대륙 전쟁이 발발하고 악신교단과 맞설 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빅브라더 느낌으로 감시 기능 넣을 수 있나도 연구하라 할까.’
핸드폰을 이용한 민간인 사찰?
대한민국에선 불법이지만 여기선 알게 뭐야. 나 좋으면 장땡이지.
아, 게다가 나중에 수요가 더 늘어나는 속성석도 더 사고…….
‘그러고 보니 인첸트가… 되나?’
몸 대신 머리만 돌리다 보니 잊고 있던 시스템이 하나 더 떠올랐다.
지금 신전에서 시도해 보는 건 좀 무리지만, 나중에 나가면 코덱스에 속성석이 인첸트 되는지 확인해 봐야겠는데.
나는 슬쩍 밖을 내다보았다.
루나와 케인은 간지 좀 되었고. 언제 두고 간 것인지 식은 수프 한 그릇이 침대 옆 서랍에 놓여 있다.
나는 그것을 반납한다는 핑계로 슬쩍 일어나 천천히 걸어나갔다.
‘역시,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찜찜해.’
그 여자.
너무 수상해.
아침에 봤던 그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의 옷. 아마 하급 신관도 아닌 신전에서 고용한 하인의 옷인 것 같았다.
그걸 입고 있는 중년의 여인에게 난 인사하며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여쭈어 볼 일이 있어 그런데…….”
“아구… 아구아구, 귀족 나으리. 이건 저 주세요.”
그래… 나 오만 트레잇 있다.
아무리 공손해도 공손하지 않나 보다.
나는 일단 접시를 조심스럽게 넘겨드리곤 다시 물었다.
“혹시 이곳에 일하는 사용인 중에 진주색 눈동자와 감청색 머리칼을 한 여인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내 물음에 그녀의 눈이 위로 올라가며 무언가 떠올리듯 하다가 끙하고 앓는 소리를 흘린다.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그럴 리가. 그 외모는 잊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인 외모였는데.
나는 천천히 다시 아침에 본 그 여인을 설명했고 눈앞의 아주머니는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얼굴을 하다가 본당 앞을 빗자루질하고 있었단 말에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매일 본당 앞마당만 청소하는 그 처녀. 아,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 색이 푸르딩딩했던 거 같기도 하고.”
뭔가 있네.
나는 묘하게 섬뜩한 예감에 억지로 웃으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예. 그 사람과 대화 할 일이 있어 그런데… 어디 가면 볼 수 있죠?”
내 말에 그녀의 얼굴로 난처함이 천천히 떠오른다.
“에… 하지만 나으리. 그 아이는 오늘 아침에 그만뒀는데…….”
“하?”
“분명 그만뒀습니다요. 세계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면서… 급히.”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가.
이게 영화나 드라마였으면 ‘아까 잡았어야지!’ 하고 누가 내 욕을 잔뜩 했겠지?
하지만 들어보세요. 저는 그때 깽깽이 발 아니면 쫓아갈 수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약간 정줄이 나가는 기분에 대상도 없이 홀로 변명하고선 나는 쓰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