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63)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63화(363/373)
“젠장.”
샤하드는 벽을 주먹 옆면으로 쾅 치며 다른 손으로는 목에 걸린 장식을 손에 쥐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길이의 섬세한 무늬가 들어간 황금 목 장식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그에 샤하드가 그것을 콰득 쥐어 우그러트린 뒤 으깨듯 벗어 던지며 숨을 몰아쉬었다.
“도대체 황성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이옐이 샤하드를 바라보며 급하게 마실 것을 건넸다.
누가 보아도 샤하드의 속에서 불이 끓는 것 같았다.
샤하드는 벽을 쳤던 손으로 자신의 적금발을 마구 흩어내더니 다른 손으로 컵을 쥐고 그대로 꿀꺽꿀꺽 마시며 의자에 몸을 던지듯 털썩 앉았다.
“세리아의 모습이 멀쩡하더라. 아마 황제가…….”
샤하드가 거기까지 말한 뒤 나직하게 욕을 뱉으며 이를 빠득 갈았다.
“폐하께서? 세리아 황녀를 지지한다 공표라도 하셨습니까.”
최근 이노센트 쪽에서 받은 정보에 의하면 눈 감은 성녀상이라는 아티팩트의 부작용으로 인해 세리아가 궁지에 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교차 검증을 위하여 샤하드 쪽에서도 여러모로 모은 정보에 의하면 세리아 쪽에 아주 큰 황위 계승의 결격 사유가 생겨 조만간 그것을 공격할 계획이었는데.
방금 샤하드가 세리아를 입에 올리며 이리도 분을 참기 힘들어한다면 결국 그런 이유 아니겠는가.
이옐의 말에 샤하드가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를 생각하듯 하다 입을 열었다.
“분명 확실한 정보에 의하면 세리아는 지금 드래고니안의 모습에 가까워야 하지.”
증인을 비롯해 모습을 녹화한 수정구까지 손에 넣은 상태였다.
이대로 조금만 시일을 끌었다면 샤하드 쪽에서 그걸 빌미로 세리아의 황위 계승권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을 터.
그렇다면 수도권에 있는 다른 귀족 중 혈통을 중시여기는 중립 귀족들을 비롯해 세력을 더 손에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그대로 수포로 돌아갔다.
세리아가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나온 것이다.
거기에 지금까지 계승자들의 경쟁에 그 어떤 반응도 없이 황성의 가장 깊은 곳에서 침묵하던 황제가 나왔다.
죽기 직전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너무나 완벽한 모습으로.
“그렇다면 도대체 왜 지금까지…….”
이옐이 중얼거리듯 물었다.
왜 황제는 지금까지 후계자 자리를 놓고 싸우는 것부터 제국을 운영하는 일까지 모든 것을 손 놓고 있었나.
물론 제국은 황제에 의해 마치 기계 골렘처럼 머리가 없어도 그 치세가 돌아가던 상태이긴 했다.
수많은 이들이 부속품이 되어 돌아가는 완벽한 골렘.
물론 제국 곳곳이 부패한 것은 사실이나 테이트리아 제국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이 넓은 곳을 이만큼 다스리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렇다곤 해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황제의 자리는 공석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제국의 권력은 샤하드와 세리아의 양강 구도로 돌아갔고, 샤하드가 우위를 점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걸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겪어왔던가.
샤하드는 자신의 손을 내려보았다.
비쩍 말라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던 팔, 뛰기는커녕 걷는 것도 오랫동안 할 수 없었던 몸의 흔적을 지금은 찾을 수 없다.
검을 쥐어 생긴 굳은살이 박힌 손과 이어진 팔은 강인하며 키도 한 뼘 반 넘게 더 자라지 않은가.
몸무게도 거짓말 조금 더 보태어 거의 두 배가 늘었다. 대부분이 근육이었다.
누가 보아도 강인하며 마치 야생마나 다름없어 보일 정도의 활기를 몸에 채웠다.
이것은 트레잇에 걸렸던 봉인이 풀렸다고 이루어진 게 아니다.
샤하드의 끝없는 노력이 뒷받침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허무하게 무너질 거 같다는 생각에 샤하드가 이마를 짚었고 그 모습에 이옐이 입을 열었다.
“세리아 황녀가 아티팩트의 대가를 이겨냈다고 해서 저희가 진 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리 구냐는 듯 말하는 이옐의 모습에 샤하드가 허탈하게 웃었다.
“…세리아가 문제가 아니다, 이옐.”
세리아는 단지 증거일 뿐이지.
샤하드가 짙은 적금색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했다.
축제 전에 만났던 황제는 지금과 비교하면 그냥 빈껍데기나 다름없었다.
지금의 황제는…….
그것을 오롯한 인간이라 부르면 안 될 것이다.
원래도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으나 샤하드는 깨달았다.
저것은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쓴 그 무언가라는 것을.
그건 신성이란 트레잇을 지닌 샤하드였기에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늘 황성에 있던 그 모든 이들, 마법사나 오러를 쓰는 기사들. 샤하드보다 강한 이들이라 하더라도.
그 너머의 신성은 오롯하게 본인만이 꿰뚫어 봤으리라.
너무 까마득하여 가늠조차 되지 않는 존재.
그것이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면 황성이 아닌 수도, 아니 어쩌면 제국 전체를 덮을 크기를 지닌 태풍과도 같았으리라.
“…남쪽으로 가자.”
더 이상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대비할 의지조차 꺾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넘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므로.
그리말하는 순간 누군가 툭툭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었다.
―손님이 왔습니다.
탁한 소리.
마치 쇠가 서로 부딪히며 긁히는 소리를 조합해 인간의 언어처럼 들리도록 만든 것 같은 음색.
샤하드의 호위를 위해 이노센트에서 보낸 골렘인 이트가 들어와서 하는 말에 샤하드가 눈동자만 올려 바라보았다.
“누구지.”
“나야.”
샤하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조금 열린 문을 팍 밀어치며 들어왔다.
청금색 머리칼과 눈동자를 지닌 중성적인 외모의 남성과 그 뒤를 조용히 따라 들어오는 소녀.
레몬색 단발 위에는 꽃으로 장식된 녹색 미니햇을 얹고 분홍색 프릴 셔츠에 녹색 멜빵 치마.
그리고 꽃잎을 모아 만든 것 같은 복숭아색의 우산을 든 리지가 따라 들어왔다.
“라줄리.”
“고민이 있어 보이는데, 황자님.”
라줄리, 즉 남장한 파이얀이 샤하드를 바라보며 짙게 웃었다.
* * *
나는 북부의 지도를 바라보며 턱을 매만졌다.
이게 설산의 눈물이지만 설산에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게 치면 바다 빛 진주는 누가 봐도 수 속성에 바다에 있게 생겼지만 사실은 바람 속성인데다 비공정에 있지 않았나.
원작을 생각하면 설산의 눈물은 분명 북부에 있는 건 맞긴 한데…….
‘어디 있지.’
나는 지도를 보며 게드만 대공에게 들은 곳을 몇 군데 체크했다.
“일단 북부에 사는 주민들의 입에서 나온 걸 토대로 체크한 건데 말이야.”
사람이 가면 사라지는 동굴. 바람이 불지 않아도 흔들리는 나무가 있는 침엽수림.
더불어 마나가 유난히도 집약되어 있다는 빙벽 구간까지.
내가 지도를 톡톡 치며 케인에게 물었다.
“어딜 먼저 가볼까.”
그걸 왜 자신에게 묻냐는 듯 바라보는 눈동자에 나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되물었다.
“네가 직접 가보면 비보 확인 가능하지 않아?”
일단 속성 마나가 어마어마하게 뭉친 에너지 자체가 속성 비보니 나는 몰라도 넌 알아야지.
내가 당당하게 묻자 케인이 살짝 눈가를 찌푸리다 입을 열었다.
“어쩌면은 무슨 어쩌면.”
난 널 믿는다. 내가 케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바라보니 케인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안정화된 비보의 경우 외부로 마나를 쉬이 흘리지 않는다.”
그리 말하면서 케인이 잠시 지도를 훑어보았다.
“그래도 확실하지는 않으나.”
마치 기억을 되짚듯 손끝으로 지도를 매만지던 케인이 한곳을 가볍게 두드렸다. 거대한 설산이었다.
“여기?”
“이곳.”
내가 체크한 곳과는 완전 다른 방향이다.
“정확히 비보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곳에 무언가 있다고 들었다.”
보통 중요아이템은 한 스테이지에 한두 개 정도니까 어지간하면 여기 있다는 소리네, 그럼
아니 설산의 눈물이라더니 진짜 설산에 있는 건가.
‘설마.’
나는 살아 있는 신을 떠올렸다.
매번 기억 되찾으려고 비보를 모아야 하니 직관적으로 그냥 이름 지었나.
하긴 기억을 자기가 숭숭 뚫었으니 좀 찾기 쉽게 해둬야 편했을지도 모른다.
“좋아, 그럼 널 믿는다.”
나는 케인이 손가락으로 짚은 그곳을 깃펜으로 동그라미 쳤다.
“그럼 준비 되는 대로 내일쯤 날씨 보고 떠나자.”
눈보라 칠 때 움직이면 여러모로 움직이는 게 번거로워지니까.
내 말에 가볍게 케인이 끄덕이다 제로가 들어오니 잠시 눈짓하곤 둘이 나간다.
아마 케인의 공간에서 대련이라도 하려는 모양.
평소 레이첼이 대련 아니면 게임 하자고 조르는 탓에 오랜만에 둘이 하는 거 같은데.
그 김에 나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리프에게 다가갔다.
“재미있어?”
―네, 관리자께서도 한번 읽어보시겠습니까.
나는 리프가 건네는 소설책을 응시했다.
표지에는 웬 악어 수인이 홍조를 띠며 돌기 난 꼬리를 안고 있었다.
“음… 나는 다음에.”
슬쩍 시선을 돌리다 문득 생각난 것을 물었다.
“만약에 리프가 소설을 쓴다면 어떤 내용을 쓸 거 같아?”
내 말에 리프가 읽던 책에 잠시 갈피를 끼우더니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저라면 이미 완벽한 시장분석을 하여 결론 내린 키워드 3가지로 글을 쓸 것입니다.
그 시장분석이 조금 의심스럽긴 한데… 그래도 뭔가 호기심이 생겨 나는 다시 물었다.
“키워드? 어떤 건데.”
그에 리프가 손가락을 하나씩 펼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광대한 세계관.
―많은 인연.
―세심하고 꼼꼼한 묘사.
“아냐 그거 아니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버럭 소리쳤다.
아니야, 그거 아니야.
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 케인이랑 다른 애들이랑 있는 모습을 보면 사실상 핑크빛 기류 같은 거 안 생길 거 같은데 원작은 왜 그랬나 했더니.
내가 괴로워하며 머리를 쥐자 리프가 무표정하지만, 내 눈에는 의아해 보이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나는 리프의 트레잇을 기억하고 있었다.
너 작문은… 아니야.
그렇지만 그 말을 할 자신은 없었다.
리프는 글을 좋아했으니까.
“…그건 일단 내 생각에 무조건적으로 좋은 키워드는 아닌 거 같다.”
여기서 케인에 대한 글을 쓰면 위인전이나 역사책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냥 판타지 소설이니까.
혹시 모른다. 이게 나비효과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실패한다면.
“혹시… 리프 너만 괜찮다면 소설 말고 웹툰… 아니, 그림책도 한번 써 보는 게 어떨까?”
무언가를, 어떤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싶으면.
내 말에 리프가 조금 생각하다가 자신의 손에 들린 소설책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말로는 그리 말하지만 저 단호한 눈을 보니 당연히 소설로 써야 많은 이들이 알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얼굴이다.
‘그래. 내가 실패 안 하면 되니까.’
나는 리프를 바라보다가 웃어버리곤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뒤 다시 읽으라며 갈피를 끼워둔 책의 페이지를 열어주는데 세이렌이 울렸다.
“어?”
여러 명에게서 왔는데.
<보스. 여기 난리 남.>
<남해 군도에서 해룡 전설 두 개 생길 거 같으니 정보 교란 부탁드립니다.>
<아델리안이냐? 미안하다. 그렇게 됐다.>
파이얀과 아르만에 레이첼까지.
너희 한 번에 말하면 정신없어서 잔소리 안 할 줄 알고 지금 이렇게 셋이서 말하는 거냐? 그런 거야?
아니 무슨 짓을.
나는 잠시 멈췄다 하하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대로 말해봐 제대로.”
도대체 누가 무슨 사고 쳤냐, 지금.